현대자동차그룹 최초의 스마트 팩토리인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yundai Motor Group Innovation Center Singapore, 이하 HMGICS)’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HMGICS는 차량은 물론 미래의 다양한 모빌리티를 생산하기 위한 제조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혁신 테스트베드다. HMGICS가 기존 공장과 크게 차별화된 점은 제조 기술과 첨단 IT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HMGICS에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 제조 기술이 대거 투입됐으며, 이 기술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새로운 모빌리티의 개발과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HMGICS에 적용된 혁신 기술은 크게 셀 생산 방식, 디지털 트윈, AI, 데이터 그리고 로보틱스로 구성돼 있다. 이 다섯 가지 기술들은 HMGICS가 진정한 스마트 팩토리의 모습을 갖추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기반의 제조 기술을 새로운 모빌리티 생산 공장에 대거 적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술들은 HMGICS에서 어떻게 활용될까? 앞으로 총 5편의 시리즈물을 통해 각 기술에 담긴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편에서는 ‘셀(Cell) 생산 방식’의 기능과 도입 배경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셀 생산 방식을 적용해 완전히 달라진 자동차의 생산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HMGICS의 생산 현장이 우리가 알고 있던 자동차 공장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셀 생산 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먼저 ‘셀’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셀은 작은 규모의 ‘작업장’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쉽게 말해 전통적인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기능별로 분리해 모아 놓은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자동차 공장은 고정된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는 긴 컨베이어 벨트를 중심으로 차량을 생산한다. 컨베이어 벨트는 자동차 대량생산의 주역이다. 1908년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개발한 이래, 자동차 제조 분야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대량 생산 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자동차의 수요 속에서 컨베이어 벨트는 정해진 차종을 한정된 시간 내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반면, 셀 생산 방식은 차종과 사양에 제한 없이 시간과 비용 효율적으로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전혀 다른 모빌리티에 대한 생산 수요가 동시에 발생해도 공정을 즉시 재구성할 수 있다. 정해진 생산 라인을 따르지 않고 각 셀 별로 다른 종류의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의 유연성도 높아진다.
HMGICS의 생산 현장에 들어서면 타원형 지붕으로 이뤄진 여러 개의 작업장을 마주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 작업장 하나를 셀이라고 부르는데, 셀 안에서는 팀 단위의 작업자와 생산 로봇이 함께 차량의 생산을 위한 작업을 수행한다.
총 27개의 셀로 구성된 HMGICS 생산 현장은 공정별로 크게 묶어 트림 셀, 샤시메리지 셀, 유연 셀, 파이널 셀, 검차 셀로 구분된다. 그럼 각 셀에서는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걸까?
먼저 생산이 시작되면 차체는 가장 먼저 트림 셀로 들어간다. 트림 셀은 작업자가 직접 차량을 조립하는 ‘수동 셀’과 로봇이 자동으로 부품을 장착하는 ‘자동 셀’로 구성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크래시 패드, 리어 범퍼 등 비교적 부피가 큰 부품이 장착된다.
여기서 셀 방식 생산의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컨베이어 방식 기준으로 통상 5~10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 셀 하나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끊임없이 일정하게 움직이는 생산 라인 위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업자는 로봇과 함께 호흡을 맞춰 차량의 품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트림 셀에서 필요한 부품이 모두 장착되면 차체는 이동 로봇인 AGV(Automated Guided Vehicle) 위에 얹혀 다음 공정인 샤시메리지 셀에 도착한다. AGV가 컨베이어 벨트를 대신하는 셈이다. 샤시메리지 셀에서는 차체를 플랫폼과 결합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차체를 리프터로 높이 들어 올린 후 PE 시스템, 고전압 배터리, 서스펜션 등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HMGICS에서는 무겁고 위험할 수 있는 업무를 자동화된 설비와 로봇이 대신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플랫폼과 결합돼 완성된 차량의 모습을 제법 갖춘 차체는 다음 과정인 유연 셀로 이동한다. 이곳에서는 각종 편의 사양과 안전 사양을 차량에 반영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유연 셀은 셀 생산 방식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다. 다양한 고객의 세분화된 수요에 따라 접수된 주문을 생산 공정에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사양의 차종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정해진 공정만을 일정하게 수행하는 컨베이어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이후 조립이 완료된 차량은 검차 셀로 이동한다. 이곳에서는 협동 로봇과 자동화된 검사 시스템을 통해 차량의 조립이 잘 되었는지 품질 검사가 이뤄지며, 이 모든 셀 공정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완성된 차량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자동차 제조 분야에서 셀 생산 방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반적인 공산품에 비해 자동차는 부품 수도 상당히 많고, 생산 공정이 매우 복잡한 데다가 대부분의 공장은 대량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현대차그룹이 HMGICS에 셀 생산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 ICT 및 소프트웨어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차량에 적용되는 각종 편의 사양 역시 세분화하고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전동 스쿠터와 같은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를 비롯해 사용자 수요에 초점을 맞춘 목적기반 모빌리티(PBV), 도심 항공 모빌리티(AAM) 등이 대두되면서 점차 다양한 종류의 모빌리티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처럼 이동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빌리티 서비스와 디바이스가 서로 연결되는 미래 도시에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모빌리티의 등장이 예상된다.
이처럼 다양한 차종으로 확장되는 모빌리티 시장의 수요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도전 배경이 됐다. 싱가포르에 혁신센터를 열고 ‘셀 생산 방식’이라는 개념을 생산 현장에 도입해 다차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셀마다 각기 다른 생산 공정을 적용할 수 있어 다양한 모빌리티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전통적인 자동차 공장이 특정 차종에 맞춰진 설비와 생산 시스템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럼 셀 생산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먼저, 앞서 언급한 ‘다차종 소량 생산’을 들 수 있다. HMGICS는 시장의 다양한 수요에 따라 각기 다른 사양으로 주문된 차량을 셀에 배분하고, 각 셀에서는 공정별로 내려진 작업 지시에 따라 차량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가 동시에 주문이 들어오면, 두 차량의 사양을 반영한 주문이 각각의 셀에 전달되고, 각 셀에서는 정해진 순서와 작업 지시에 따라 두 차량을 완성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혼류 생산은 셀 생산 방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셀 생산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유연성이다.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 방식은 한 개의 차종에 맞춰 모든 공정과 설비가 설정돼 있으므로 공정의 개선이나 변경이 결코 쉽지 않다. 그에 반해 셀 생산 방식은 하나의 셀 단위로 공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계획을 비교적 쉽게 변경할 수 있다. 차량을 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 역할은 AGV가 대신하고, 고객이 주문한 차량의 사양에 따라 필요한 셀로 이송해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셀 생산 방식을 활용하면 새로운 차종의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공정으로 라인을 빠르게 수정해 대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셀 생산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높은 차량의 완성도를 위한 신기술을 각 셀 공정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HMGICS는 셀 단위 공정에서 생산뿐만 아니라, 품질 검수 및 수정 등의 과정을 포함하므로 생산 효율은 물론 높은 품질까지 확보할 수 있다.
HMGICS는 공정 전반의 프로세스를 단 몇 개의 셀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하나의 셀 단위로 계산하면 작업량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HMGICS는 차량의 품질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셀 공정에 다양한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실제로 셀에서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 ‘스팟’으로 완성도를 체크하거나 부품의 체결 보증 등으로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또한 작업자가 능숙하게 조립할 수 있도록 AI 기술 기반의 AR(증강현실) 글래스를 활용 중이고, 전장부품의 연결 작업 여부를 전기 신호로 알 수 있는 스마트 글러브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셀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다양한 모빌리티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HMGICS만의 생산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의 생산 구조를 적용한 것만으로는 진정한 셀 생산 방식을 구현할 수 없다. 모든 생산 공정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소프트웨어 기반의 다양한 혁신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물류 설비와 생산 셀, 그리고 수많은 작업자와 로봇을 디지털로 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상의 공장을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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