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9.15 현대 모터스포츠팀
월드랠리챔피언십(WRC) 2025 시즌, 남미에서 두 번째로 치러진 랠리의 무대는 칠레였다.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칠레 국토 중앙에 위치하는 비오비오(Biobío)와 콘셉시온(Concepción)에서 열린다. 2000년 시작된 국내 선수권을 모체로 2016년부터 WRC 개최 활동을 시작한 칠레는 2019년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며 WRC 역사상 32번째 개최국이자 남미 대륙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이은 3번째 개최국이 되었다. 하지만 칠레의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며 WRC를 지속하는 것이 불투명해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까지 가중되며 칠레 랠리는 2023년이 되어서야 부활했다.
랠리 서비스 파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태평양에 인접한 칠레 제2의 도시 콘셉시온에 자리 잡았다. 울창한 삼림을 통과하는 중고속 코너는 평평하고 비교적 잘 닦여 있는 그레이블 노면으로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다. 반면, 상당히 좁은 구간과 거친 노면을 포함하기 때문에 정교한 조작이 필수적이다. 방심하는 순간 덤불이나 나무를 들이박고 언제든 리타이어할 수 있다. 임업으로 유명한 비오비오 지역은 스테이지 상당수가 개인 소유의 임업 지역을 통과한다.
게다가 기술적인 코너가 많아 복잡하면서도 주행 속도가 빠른 숲길은 운전자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시야가 탁 트인 구간에서는 태평양의 멋진 풍경을 맛볼 수도 있다. 남반구에 위치한 칠레는 이제 겨울을 벗어나 막 봄으로 접어든 시기. 칠레 랠리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기로 비가 많이 내리면 영국 랠리처럼 진흙탕으로 돌변한다. 시야를 가로막는 짙은 안개도 변수 중 하나다.
금요일 아침, 풀페리아(Pulpería)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16개 SS 합산 306.76km 구간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콘셉시온 인근 120km 이내에 마련되었으며 대부분이 10km 이상의 중장거리 스테이지. 10km가 안 되는 코스는 일요일 파워 스테이지인 비오비오(8.78km) 뿐. 지난해와 완전히 동일한 구성으로 펼쳐진다.
칠레 랠리는 노면이 비교적 단단해 타이어 마모가 심한 편이며, 이에 따라 타이어 관리가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랠리1의 경우 한국타이어의 다이나프로 R213W 하드 22~28개, 소프트 8~12개를 범위 안에서 최대 28개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FIA는 정찰 주행(recce) 직후 참가팀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소프트 타이어 허용량을 최대 20개까지 늘렸다. 폭우 예보에 따라 낮은 기온과 미끄러운 노면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정찰 주행 후 제조사 피드백을 반영해 소프트 타이어 할당량을 늘렸습니다. 하드 타이어는 내구성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선택지이지만 소프트 타이어를 추가하면 변화하는 환경에서 팀들이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변경은 랠리1에만 해당되며 최대 사용량 28개는 유지됐다.
현재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선두 엘핀 에반스(Elfyn Evans)부터 4위 오트 타낙(Ott Tänak)까지의 점수 차이가 18점에 불과하다. 시즌 후반에 접어든 시점에서 이 정도 접전이었던 해는 페터 솔베르그(Peter Solberg)가 불과 1점 차이로 챔피언에 올랐던 2003년으로, 간만에 드라이버 챔피언을 향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다소 불리한 위치에 있는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의 타낙은 직전 파라과이 랠리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에 2위에 올라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세팅의 어려움과 함께 토요일에 타이어까지 터지며 뒤로 밀려났다. 챔피언십 선두 에반스에 18점 뒤진 타낙은 칠레를 반등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2019년과 2023년 우승컵을 차지했으며 지난해에는 현대팀 소속으로 포디엄 피니시(3위)하는 등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어 온 랠리다. “챔피언십 상황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고 상당히 접전입니다. 칠레는 우리에게 더 잘 맞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라과이 랠리에서는 4위로 경기를 마쳤던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가 리타이어를 선언하며 최종 순위가 바뀌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는 페널티를 피하기 위한 현대팀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파라과이와 칠레 랠리는 연계 경기로, 파라과이 랠리 완주 차량은 기어박스나 디퍼렌셜 등 주요 부품을 같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만약 이를 교체할 경우 5분 페널티가 부과된다. 따라서 현대팀은 칠레 랠리에서 페널티 없이 포모의 기어박스를 교체하기 위해 그를 파라과이 랠리에서 리타이어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포모는 파라과이에서 점수를 포기해야 했지만, 4위에 오를 만큼 좋은 페이스를 보여준 만큼 칠레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한편, 5위로 경기를 마친 타낙은 4위가 되면서 2점의 추가 득점을 챙길 수 있었다.
파라과이에서 3위로 포니엄 피니시했던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은 분위기를 이어 높은 성적을 노린다. 참고로 2023년 칠레에서는 2위를 기록했었다. “칠레에서는 과거에 좋은 결과를 남겼기 때문에 기대 중입니다. 경험은 대체할 수 없고, 이번에는 출발 순서도 좋으므로 처음부터 좋은 흐름을 타고 싶습니다. 앞선 파라과이 랠리에서도 같은 세팅을 기반으로 달렸기 때문에 차가 조금 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질 겁니다. 특히 저는 이 노면에 익숙합니다. 타이어에 매우 까다로운 코스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라고 누빌은 설명했다.
토요타 월드랠리팀(이하 토요타팀)의 드라이버진 역시 파라과이 전과 동일하게 엘핀 에반스, 칼리 로반페라(Kalle Rovanperä),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 사미 파야리(Sami Pajari)로 구성했다. 파라과이에서 2위를 차지한 챔피언십 포인트 선두 에반스는 파라과이 우승자인 오지에와 9점 차, 로반페라와는 7점 차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코스를 달리면서 노면 청소를 맡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오지에는 이번 칠레 랠리가 자신의 200번째 WRC 참전이다. 이 부문 기록은 토요타팀 감독인 야리마티-라트발라(Jari-Matti Latvala)가 보유한 209회다. 오지에가 내년에도 파트타임 드라이버로 참전한다면 라트발라의 기록을 어렵지 않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즌 전반 파트타임 출전에도 불구하고 칠레 랠리 직전, 드라이버 챔피언십 3위를 달리고 있는 오지에는 결국 남은 경기에 모두 출전해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기로 했다.
M-스포트 포드는 그레고와 뮌스터(Grégoire Munster), 조쉬 멕컬린(Josh McErlean)에 더해 칠레 출신의 프라이비터 알베르토 헬러(Alberto Heller)를 엔트리했다. 뮌스터는 랠리1에서 칠레 랠리 출전이 3번째다. 특히 2023년 칠레 랠리는 뮌스터의 랠리1 데뷔전이었다. 반면 맥컬린은 첫 칠레 데뷔전을 치른다. 2023년 칠레에서 M-스포트 포드로 랠리1을 처음 경험했던 헬러는 올해도 현지 드라이버이자 랠리1 유일의 남미 선수라는 이점을 살려야 한다.
WRC2에서는 현재까지 4승을 거두고 있는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의 챔피언 타이틀 확정 가능성이 높다. 득점 선두인 솔베르그가 칠레에서 우승할 경우 타이틀을 확정하지만, 요한 로셀(Yohan Rossel)이 우승할 경우에는 계산이 복잡해진다. 득점 1, 2위인 솔베르그, 로셀은 이번 경기가 시즌 마지막인 반면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는 아직 남은 세 경기에서 점수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막판 뒤집기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주 초에 있었던 정찰 주행에서는 비와 안개 때문에 많은 참가자들이 코스 확인과 페이스 노트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목요일 아침에는 날씨가 갰지만 6.79km 길이의 쉐이크다운 테스트 스테이지 후반은 아직 축축했다. 가장 빨랐던 타낙은 테스트 직후 이렇게 말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같은 날씨라면 출발 순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틀 정도면 노면이 마를 거예요. 날씨를 두고 봐야죠.”
9월 12일 금요일 아침, 19.72km의 풀페리아를 시작으로 칠레 랠리가 막을 올렸다. 13.34km의 레레(Rere)와 첫날의 최장 스테이지인 산 로센도(San Rosendo, 23.32km)까지 달린 후에 콘셉시온에서 서비스를 받고 오후에 3개 스테이지를 다시 반복하는 구성이었다. SS1~SS6 6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 112.76km 구간에서 스피드를 겨루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내린 폭우와 칠레의 봄 기온이 합쳐진 낮은 기온 때문에 노면은 젖고 접지력이 낮은 상태였다.
오프닝 SS1을 잡은 것은 지난해 우승자인 로반페라였다. 에반스는 출발 순서가 불리하지만 타낙보다 0.8초 빠르게 2번째 기록으로 첫 스테이지를 완주했다. 타낙은 경기를 마친 후 "차가 불안정하고 까다롭다"고 말했다. 포모와 누빌은 파야리보다 늦은 5, 6위 기록이었다. 스테이지 완주 직후 포모는 “노면 그립이 많이 변하고 있어요. 일부 코너는 꽤 젖어있고요. 차량 후미를 다루는 데 좀 고생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스테이지 막판에 안개가 낀 SS2에서도 로반페라가 연속 톱타임을 이어갔다. 타낙이 2번째로 빨라 종합 2위로 부상했으며, 세팅을 살짝 바꾼 포모가 파야리를 추월해 종합 4위로 올라섰다. 오전을 마감하는 SS3에서는 로반페라가 주요 경쟁자 중 첫 희생자가 되었다. 코너를 벗어나면서 뒷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보았다. 대신 SS3 톱타임을 기록한 에반스가 종합 선두로 올라섰고 타낙이 0.5초 차이로 2위, 포모가 그 뒤를 이었다. 누빌은 파야리를 따돌리고 오지에 0.6초 뒤 종합 5위가 되었지만 테스트 직후 교체한 드라이브트레인 때문에 고전했다. “악몽 같았어요. 겨우 살아남은 느낌이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지만 전혀 좋은 느낌이 아닙니다. 지금은 디퍼렌셜 세팅만 사용할 수 있어요.”
랠리 초반, 타낙이 꾸준히 높은 페이스를 보여주며 선두 자리까지 꿰찼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점심 서비스를 받은 후 풀페리아를 다시 달린 SS4부터는 노면 상황이 급변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며 빠르게 말랐지만 코스 일부는 여전히 축축했다. 타낙은 오지에가 흘리고 간 범퍼 조각을 피하느라 스테이지 기록이 4위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에반스를 6.9초 차이로 밀어내고 종합 선두가 되었다. 포모와 누빌이 3, 4위로 현대팀 진영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파야리는 톱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합 6위였다.
직전 랠리의 리타이어를 만회하려는 듯, 포모 역시 타낙의 뒤를 쫓으며 날랜 드라이빙을 선보였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타낙은 이어진 SS5를 잡아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팀 동료 포모와는 9.7초, 누빌과는 14.1초로 벌어졌다. 에반스가 4위로 밀려남에 따라 현대팀 트리오가 1위부터 3위까지 독점했다. 포모는 “결과가 좋습니다. 스테이지는 빨랐고 타이어 관리가 꽤 힘든 구간이었어요. 루프 전체에서 강하게 밀어 붙였습니다. 타낙이 빨랐습니다. 이제야 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금요일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타낙의 파죽지세가 멈추고 말았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하지만 포모가 말했던 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금요일을 마무리하는 SS6 산 로센도를 달리던 타낙이 엔진 트러블로 코스 중간에 멈춰 서고 만 것이다. 결국 포모가 종합 선두가 되고 누빌이 2위로 올라섰지만 현대팀으로서는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타낙의 설명에 따르면 실린더 하나가 스테이지 초반에 고장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실린더까지 고장 났다고 한다. 타낙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로변에 주저앉아버렸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에요. 모든 것이 좋은 결과를 향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차도 하루 종일 잘 달렸습니다. 뭔가 잘못될 징후도 없었죠. 첫 이상 징후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계속 달리려 노력했지만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끝내게 되어 아쉽습니다. 챔피언십이 가까운 지금 더욱 그래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일요일에 좋은 결과(슈퍼선데이 추가 득점)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타낙의 리타이어로 포모가 금요일을 종합 선두로 마무리했다. 누빌은 변속기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1초 차이로 종합 2위. 오지에와 파야리, 에반스가 그 뒤를 이었고 가츠타, 뮌스터, 로반페라, 솔베르그 순이었다. WRC2에서는 로셀과 그린스미스가 랠리카 문제로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남에 따라 솔베르그의 타이틀 확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9월 13일 토요일은 SS7 펠룬(Pelún)을 시작으로 SS8 로타(Lota), 그리고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SS9 마리아 라스 크루세스(SS9 María Las Cruces)가 이어졌다. 오후에는 이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렸다. SS7~SS12의 6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는 139.2km다.
이날 역시 많은 비가 내려 오전 내내 진흙투성이로 미끄러웠다. 금요일 막판에 리타이어했던 타낙이 스테이지에 가장 먼저 들어서 제일 빠른 기록을 세웠다. 젖은 노면 때문에 주행이 거듭될수록 달리기 힘든 환경이었다. 종합 순위에서는 포모가 여전히 선두였고 누빌이 2위, 영국 진창길에 익숙한 에반스가 단번에 종합 3위로 올라섰다. 선두 포모와 에반스의 시차는 3.8초, 5위 파야리까지도 7.3초에 불과한 근접전 양상이었다. 한편 M-스포트 포드에서는 멕컬린과 헬러가 모두 기계적 문제로 무릎을 꿇고 뮌스터만이 살아남았다.
토요타팀의 공세 속에서 포모가 상위권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분전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SS8 로타는 급한 오르막으로 시작해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521m나 되는 고저차를 가진 스테이지다. 타낙이 경쟁자들을 10초 이상 차이로 따돌리는 역주를 보여주었지만 어제 손해 본 시간을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에반스와 오지에 등 토요타팀 선수들이 추격하며 현대팀 진영을 흔들었다. 익숙한 웨일즈 랠리 느낌의 스테이지에서 에반스가 선두 포모의 0.9초 뒤까지 따라붙었고, 4위 오지에도 3위 누빌을 0.6초 차이로 위협했다.
포모는 스테이지를 마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에반스가 빠른 것 같습니다. 저는 약간 시간을 잃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권에 있어요. 랠리는 길기 때문에 끝까지 이어간다면 뭐든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이전 2개 스테이지는 까다롭고 힘들었지만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니 계속 레이스를 이어가겠습니다.”
타낙은 오전 2개 스테이지를 잡았지만 현실적으로 순위권 복귀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일요일의 추가 득점(슈퍼선데이 및 파워 스테이지)에 집중하기 위한 전술적 후퇴를 결정했다. 고친 랠리카의 성능을 확인한 만큼 차와 타이어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함이다. 시즌 당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은 2기로 제한되어 있는데, 타낙의 엔진은 이미 제2전 스웨덴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때 교체했던 엔진을 다시 장착했기 때문에 컨디션 유지를 위해 엔진을 아끼기로 한 것이다.
누빌 역시 포디엄 등극을 위해 타이어를 아끼지 않고 역주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오후를 시작하는 SS9에서 에반스가 종합 선두로 올라섰고 오지에가 포모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포모와 누빌은 3, 4위로 밀려났다. 오전을 반복한 오후에는 노면이 서서히 마르면서 컨디션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지에가 3연속 톱타임을 잡으며 에반스를 제치고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2위 에반스와의 시차는 6.3초. 3위 포모는 26.8초, 4위 누빌은 41.7초로 벌어졌다. 누빌은 토요일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톱타임의 오지에보다 13.6초나 느렸다. 누빌은 스테이지를 마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이어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냥 밀어붙였어요. 좋은 스테이지였지만 솔직히 포디엄에 다가가려면 타이어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 세팅을 시도해 보며 노력했지만 최상의 결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더 빨라질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9월 14일 일요일, 칠레 랠리의 마지막 날은 18.62km의 라라케테(Laraquete)와 8.78km의 비오비오(Bio Bio) 스테이지에서만 경기가 열린다. 이 두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SS13~SS16 4개 스테이지 합산 54.8km 구간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렸다. 비가 그치고 노면이 빠르게 마르기 시작했지만 숲에 가려진 일부 구간은 그렇지 못했고, 차량이 지나가 길이 파이면 습기가 올라올 수도 있었다.
오프닝은 오지에가 잡았다. 토요일까지 에반스와의 시차가 6.3초였기 때문에 오지에에게 안전히 주행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반면 일요일 추가 득점을 노리고 복귀한 타낙은 스테이지 막판에 다시 문제에 직면했다.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출력을 잃었고 온도가 너무 높습니다” 타낙이 한탄하듯 이야기했다.
포모가 포디엄 피니시를 확정 지은 가운데, 누빌 역시 4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리타이어를 만회하기 위해 타낙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보너스 포인트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파워 스테이지의 리허설이라고 할 수 있는 SS14 비오비오에서는 에반스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오지에를 압박했다. 토요타 세력이 기록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포모와 누빌이 3, 4위 자리를 지켰다. 포모는 스테이지 직후 “칠레 랠리는 2개의 랠리를 합친 것 같습니다. 금요일과 토, 일요일이 정말 달라요. 우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성능이 부족했습니다.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스테이지는 꽤 멋집니다. 이번에는 자갈이 많아 펑크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달렸습니다. 젖은 노면, 마른 노면, 다양한 조건에서 달린 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라라케테를 다시 달린 SS15에서는 오지에가 다시 톱타임을 기록하며 에반스와의 시차를 10.3초로 벌렸다. 포모는 에반스와 33초 이상 떨어져 있었다.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최종 SS16가 시작되었다. 오지에가 파워 스테이지와 슈퍼선데이까지 모든 점수를 싹쓸이하며 칠레 랠리의 우승자가 되었다. 시즌 전반 파트타임 출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5승째를 거둔 오지에는 에반스를 2점 차이로 밀어내고 결국 챔피언십 선두까지 올라섰다. 에반스가 2위였고 현대팀의 포모가 3위로 포디엄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누빌이 4위를 차지한 가운데, 파야리, 로반페라, 가츠타, 뮌스터, 솔베르그, 그리야진 순이었다.
타낙과 누빌은 챔피언십 순위를 유지했지만 타낙은 선두와의 점수차가 43점으로 늘어남에 따라 타이틀 경쟁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WRC2에서는 올리버 솔베르그가 우승하면서 결국 챔피언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다음 경기는 10월 16~19일 열리는 제12전 중앙유럽 랠리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3개국을 달리는 변화무쌍하고 테크니컬한 타막 랠리는 2023년 시작된 이래 빠르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25 시즌은 이제 일본과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까지 3전밖에 남지 않았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