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8.14 기아
지난 6월 10일, 기아는 오토랜드 광주 하남 공장에서 차세대 중형표준차의 양산 기념식을 가졌다. 이는 최초의 중형급 표준차가 생산된 1977년 이후 48년 만에 이뤄진 세대교체로, 새로운 중형표준차는 기존 2½톤(K511) 및 5톤(K711) 차량을 대체할 예정이다. 기아는 육군으로의 인도를 시작으로, 향후 국내외 고객들에게 중형표준차를 순차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표준차’란 국군이 운용하는 군 전용 차량으로, 실제 전시 상황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물자와 병력을 수송한다. 때문에 표준차는 야전 어디서든 운용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동력 성능과 험로 주파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정비가 간편하고 부품 호환도 쉬워야 하며, 유지 부품 역시 15년 이상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기아는 1973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특수사업부를 운영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표준차를 개발, 국군의 전력 향상에 기여해 왔다.
기아 표준차 개발 역사의 첫 페이지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용차 원천 기술이 필요했던 기아는 표준차 제작을 위해 미군 차량 제작사(AM제너럴)와의 협업을 거쳤다. 기아는 제작 과정에서 단순한 기술 이전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지형과 운용 환경에 맞게 개량하여 5톤급 표준차를 완성했다. 최초의 표준차이자 차세대 중형표준차의 조상 격인 5톤급 트럭 ‘K711’은 배기량 10L의 디젤 엔진을 탑재해 67%의 경사도 오를 수 있는 강력한 힘과 9톤이 넘는 적재량을 제공했다.
이듬해, 기아는 기동성이 뛰어난 ¼톤(K111)과 2½톤(K511) 표준차를 양산했다. 이중 K511은 장병들 사이에서 ‘육공 트럭’, ‘두돈반’ 등 다양한 별칭이 붙은 차량으로, 생산 대수가 가장 많아 현역 장병과 전역자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차량으로 손꼽힌다. 기아가 최초로 제작한 K711과 외관이 유사하나 적재량을 비롯한 세부 성능은 다소 차이가 있다. 오랜 기간 높은 범용성을 인정받아 일부 부대에서 여전히 운용 중이기도 하다.
1980년 1¼톤(K311) 표준차의 양산을 시작한 기아는 5년 후 국내 최초의 특수차량 전문 연구실을 설립했다. 해당 시설은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군용 차량 전문 연구실로, 기아는 현재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과의 협업으로 보다 체계적인 개발 환경을 구축해 오고 있다. 기아는 이러한 개발 체계 속에서 통합체계지원* 자체 분석 능력을 통해 표준차의 성능 개량과 독자 모델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통합체계지원(Integrated Product Support) : 국방 체계의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운용을 위해 개발부터 폐기 단계까지 필요한 모든 군수지원 요소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활동
실제로 전쟁에 투입되었던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된 초기 표준차들은 야전에서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져 도로 위의 최신 승용차들과 비교하면 편의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기아는 연구개발을 통해 표준차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동시에 탑승자 편의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대량 생산되는 민수 차량과의 부품 호환을 통해 문제 발생 시 정비 시간과 비용을 단축시키고자 했다.
1997년, 기아는 기존의 ¼톤급 K111을 대체하는 K131의 양산을 개시했다. 군수 사업 20년의 노하우를 담아 만들어진 2세대 표준차의 첫 주자였다. 기아는 개발 목표에 따라 K111의 우수한 임무 수행 능력은 유지하면서 승용차 제작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녹여냈다. 예컨대 K131은 콩코드와 크레도스 등에 쓰였던 2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연비와 정숙성을 개선했다. 또한 군용 차량으로는 이례적으로 에어컨을 장착하고 일반 도로에서도 준수한 승차감을 발휘했다. K131은 실제 차량명보다 ‘군토나’라는 별명으로 더 친숙하다. 기아 SUV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레토나가 바로 K131을 바탕으로 제작된 민수용 모델이기 때문이다.
K131로 시작해 표준차의 본격적인 성능 개선 작업에 돌입한 기아는 2003년 1¼톤 · 2½톤 · 5톤 표준차의 개량 모델인 ‘K311A1’ · ‘K511A1’ · ‘K711A1’의 양산을 시작했다. 기아가 첫 표준차를 선보인 1977년 이후 26년 만에 등장한 개조 차량 A1 모델은 2세대 표준차인 K131과 마찬가지로 인체공학적 설계를 적용함과 동시에 편의성과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 신규 기술을 도입했다.
예컨대 K511A1의 경우 파워 스티어링과 유압식 클러치를 적용해 차량 조작이 한결 편해졌다. 또한 공기유압식 브레이크의 채택으로 안전성을 더하고, 자체 개발한 6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해 연비와 성능을 높였다. 기아는 2017년 이후 생산한 K511A1 · K711A1에 후방카메라를 장착하는 등 양산 이후에도 A1 모델을 꾸준히 개선해 장병들의 운전 편의를 높이고자 했다.
표준차의 성능 개량을 지속적으로 이뤄온 기아는 군용 차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국군의 전투력 보강에 일조해 왔다. 하지만 오래된 미 군용차를 바탕으로 표준차의 근본적인 설계가 이뤄졌기에, 오늘날 국군의 실정에 맞는 독자 모델의 개발이 필요했다. 기아는 글로벌 톱 티어 수준으로 도약한 승용차 개발 능력을 극대화하면서 국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한국군 특화 모델 개발에 돌입했다.
국방부 역시 표준차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소형전술차 제조 업체로 기아를 선정했다. 기아는 시제품 개발과 여러 시험을 거쳤으며, 2014년 국방부의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아 양산 체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기아는 ‘IDEX 2015(국제방위산업전시회)’를 통해 소형전술차(Kia Light Tactical Vehicle, 이하 KLTV) 실물을 최초로 공개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듬해 양산을 시작한 KLTV는 마침내 한국군 독자 모델 시대를 열었다.
‘현마(現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KLTV는 전방 부대 배치를 시작으로 기존 소형급 표준차였던 K131을 대체했다. 기아는 KLTV 설계 당시 모듈형 플랫폼을 적용했다. 용도에 따라 단축형(K151 계열)과 장축형(K351 계열) 섀시를 제공해 보다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가령 높은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지휘 차량 및 수색 차량, 경장비 탑재 차량은 단축형을 사용하며, 많은 탑재량이 필요한 카고 차량이나 정비 차량 등은 장축형 섀시를 적용한다.
단단하고 강인한 외관은 손쉽게 무장할 수 있는 구조로 STANAG(Standardization Agreement, 표준화 협정)* 기준을 충족하는 방탄 사양 외피를 장착할 수 있다. KLTV는 기아 모하비의 3L 디젤 엔진을 개량해 탑재했으며, 사륜구동 시스템과 독립식 서스펜션, 전자식 타이어 공기압 조절장치(CTIS) 등 험로 주행에 특화된 설계와 기술이 적용되어 어떠한 지형에서도 우수한 기동성을 자랑한다.
*STANAG : 나토 협의체 구성원 간의 군사용 또는 기술적 장비들에 대한 프로세스, 운영절차, 용어 및 조건들을 기술한 표준화 협정
기아는 이와 같은 작전 수행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편안한 이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후방카메라 및 주차 가이드라인 등을 적용했으며, 표준차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채택했다. KLTV는 이처럼 야전에서의 탁월한 성능과 편의성을 겸비한 군용 차량으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전술 및 특수목적용 차량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 수출 중이며, 최근에는 폴란드 군용차량 교체 사업에서 신규 차량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KLTV 양산을 통해 성공적으로 소형전술차를 대체한 데 이어, 기아는 1970년대 최초로 도입한 중형급 표준차의 교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새로 개발되는 차량은 K511A1과 K711A1을 대체하는 차세대 중형표준차다. 기아는 K131과 KLTV의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국군의 요구 성능을 만족하면서, 민수 차량과 부품을 공유해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했다.
고중량 적재와 험로 주행에 적합한 차체 조건을 고려해 기아는 보디 온 프레임 구조의 중형 상용차를 표준차의 바탕으로 삼았다. 상용차 플랫폼을 활용함으로써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일반 상용차와의 부품 호환이 가능해 유지보수 편의도 높일 수 있었다. 특히 혹독한 야전 운용 환경에서도 최적의 주행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파워트레인, 프레임, 서스펜션 등의 성능과 내구성을 대폭 보강했다.
기아는 2019년 12월, 육군과 사업 계약을 체결한 이후 시제품 개발 과정과 운용시험평가, 초도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새 중형표준차의 양산을 앞두게 되었다. 그리고 KADEX 2024(대한민국 국제 방위산업전시회)에서 새 표준차의 실물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Kia Medium Tactical Vehicle(KMTV)’라는 이름이 붙은 차세대 중형표준차는 이듬해 본격적인 양산을 통해 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기아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2½톤(K551) 및 5톤(K751) 차량을 모두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존 중형표준차 K511, K711이 각각 다른 플랫폼으로 만들어져 부품 호환성이 다소 떨어졌던 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 유지보수 편의성을 높인 영리한 설계인 셈이다. 또한 K551과 K751은 각각 280마력, 330마력을 내는 상용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8단 자동변속기를 더해 강력하면서도 편안한 주행 성능을 제공한다.
기아의 철저한 파워트레인 및 섀시 강화 개발을 통해 KMTV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탁월한 임무 수행 능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KMTV는 수심 1m의 하천도 건널 수 있으며, 60%의 종경사*와 40%의 횡경사**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게다가 전자파 차폐 설계와 함께 일부 모델(K-752)은 방탄 차체를 갖춰 한층 높은 방호 성능을 자랑한다. 또한 43℃의 고온이나 영하 32℃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작전 중 타이어가 손상되어도 일정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가 선택 사양으로 제공된다.
*종경사: 전∙후진을 통해 경사로를 오르내리는 상황
**횡경사: 옆으로 기울인 채 주행하는 상황
차세대 중형표준차의 또 다른 강점은 풍부한 편의 사양에 있다. 기아는 이전 표준차에서 부족했던 편의 사양을 대거 추가해 운용 효율성과 병사들의 운전 편의를 크게 향상시켰다. 가령 스티어링 휠과 시트에는 열선 기능을 기본 적용했고, 파워 윈도우와 전자식 컬럼 변속기도 새로 탑재했다. 특히 운전자의 체형과 체중에 따라 시트 높낮이를 조절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에어 서스펜션 시트를 장착해 장시간 운전의 피로도도 크게 줄였다.
참고로 기아 특수차량연구실과 긴밀히 협업 중인 기품원은 KMTV의 개발 완료 이후 양산 직전까지 품질 보증 작업을 수행해 왔다. 기품원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5월까지 국방 규격에 의한 성능 및 내구 시험을 실시하였으며, KCTC(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진행한 3만 2,000km 내구 주행 시험에서 70개 항목의 보완 사항을 개선하며 KMTV의 품질을 향상시켰다. 기아는 이와 같은 철저한 품질 보증 작업이 군의 전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기아는 KMTV의 다재다능한 설계를 활용해 특수목적차량을 개발 중이다. K551의 4x4 구동계에 더해 K751의 6x6 구동계를 갖춘 KMTV는 이전 중형표준차와 같이 군 운용을 지원하는 차량은 물론 일반 고객 대상의 다양한 특수목적차량이 개발될 예정이다. 현재 기아는 120mm 박격포를 탑재한 차량과 더불어, 지형이 험난해 일반 소방차로는 산불 진화가 힘든 곳에서 활약할 수 있는 험지용 펌프차를 개발해 고성능 플랫폼 기반의 특수목적차량 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같이 기아는 표준차량 개량 및 대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최근에는 미래 군용 모빌리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수소의 생산부터 운용에 이르는 전사적인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기아는 현대차그룹의 수소 생태계에 주목해 야전에서의 수소 활용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기아가 국내외 방산전시회를 통해 공개한 수소연료전지 발전기 탑재차량 및 수소 ATV(All Terrain Vehicle, 경전술 차량)에서 수소 군용 모빌리티의 실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수소연료전지 발전기 탑재차량은 운용 소음이 큰 기존의 디젤 발전기 차량을 대체해 군 작전 지역과 재난 긴급 구조 활동에 투입될 예정이다. 또한 수소 ATV는 수소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차세대 군용 모빌리티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 대비 이동 중 발생하는 소음이 적어 은밀하고 안전한 임무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아는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모빌리티 개발 콘셉트를 단계적으로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향후 군용 차량에 요구될 수 있는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래 군용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할 전망이다.
이처럼 1970년대부터 이어진 기아의 군용 차량 제작 노하우는 브랜드의 미래 전략 구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기아의 특수사업부는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상용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해, 소형 트럭 및 대형 버스의 파생 상품 비즈니스를 추진 중이다. 따라서 기아가 현재 전개하고 있는 PBV 전략은 바로 이와 같은 고객 맞춤형 모빌리티 개발과 제조 과정을 통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아는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을 수호하는 표준차 개발과 개량 작업을 지속할 예정이며, 더 많은 고객에게 최상의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