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30 현대 모터스포츠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흔히 ‘신들의 랠리’로 불린다. 2021년 WRC 캘린더에 돌아온 이후 라미아를 거점으로 삼아 온 이 경기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인근에서 열리는 화려한 세리머니를 치른 후에 아테네 북부 산악지대로 이동해 거친 자갈길과 찌는 무더위 속에서 극한의 생존 게임을 벌인다.
아크로폴리스 랠리의 역사는 무려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1951년, 그리스의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기구인 ELPA(Elliniki Leschi Periigiseon kai Aftokinitou)가 개최한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1973년 최초로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일정에 포함된 이후 랠리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그리스가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으며 FIA의 부채를 갚지 못해 2013년, 캘린더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이후 한동안 ERC(European Rally Championship)에서 개최되던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8년 만이었던 지난 2021년에 WRC 캘린더에 복귀했다.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별도의 세팅과 보강이 필요할 정도로 역사상 가장 혹독한 랠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그리스 여름의 무더위는 랠리카와 선수들에게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캘린더에서는 9월이었지만 올해 6월로 일정을 변경함에 따라 선수들은 엄청난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기온은 30°C를 훌쩍 넘고, 뙤약볕 아래 랠리카의 실내는 70°C까지 치솟는다.
그리스의 노면은 초반 주행으로 표면의 흙과 모래가 날아간 후 바닥 아래 숨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바위가 드러나 호시탐탐 타이어를 노린다.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초창기 800km의 장거리를 달렸지만 지금은 300km 정도를 달린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스테이지가 2개 늘어 경기 구간 역시 40km 가량 길어진 345.76km가 되었다.
올해의 랠리1 클래스의 출전 명단은 지난 이탈리아 랠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아크로폴리스 랠리에서 2022년과 지난해 시상대를 독점하는 올 포디엄을 2번이나 달성했다. 가장 전적이 좋은 무대에서 시즌 전반의 부진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현대팀에서는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오트 타낙(Ott Tänak), 그리고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가 출전한다. 2번의 올 포디엄 당시 모두 우승컵을 차지했던 누빌은 아크로폴리스 랠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의 길은 넓고 꽤 딱딱합니다. 지난 2년간은 그리 거칠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가혹한 랠리에요. 올해는 6월이기 때문에 이 무더위가 선수들과 차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겁니다.”
타낙은 이탈리아에서 불의의 스티어링 고장으로 아쉽게 우승을 놓친 후 시즌 첫 승에 재도전한다. 아직 그리스에서 우승 전적은 없지만 이탈리아나 칠레 등 거친 랠리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타낙은 현재 챔피언십 4위지만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가 파트타임 출전인 만큼 실질적으로는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칼레 로반페라(Kalle Rovanperä)와의 경쟁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 2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선두와의 점수차를 25점으로 줄인 것도 희망적인 부분이다.
한편 포모는 개막전에서의 깜짝 포디엄에 오른 이후 여러 번의 사고와 머신 트러블로 암울한 시즌 전반을 보냈다. 지난 이탈리아 랠리에서도 선두권을 달리다가 코스를 벗어나며 종합 20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는 챔피언십 순위가 낮은 만큼 출발 순서가 뒤쪽이라는 이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요일 시작 순서를 잘 활용해서 후반에 좋은 포지션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펑처 위험이 시즌 통틀어 가장 높기 때문에 타이어 뿐 아니라 차량 내구성과 드라이버의 대응도 매우 중요하죠. 올 시즌부터 도입된 한국타이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랠리카와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거친 노면 때문에 타이어 선택이 정말 어려워요.” 참고로 아크로폴리스 랠리에서 포모의 개인 통산 최고 순위는 2021년의 7위다.
토요타는 엘핀 에반스, 세바스티앙 오지에, 칼레 로반페라,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를 출전시키고 별도팀의 사미 파야리(Sami Pajari)까지 총 5대의 GR 야리스 랠리카를 준비했다. 팀 득점 담당은 에반스와 오지에, 로반페라다. 오지에는 이탈리아 우승으로 챔피언십 2위로 올라서긴 했지만 지난해처럼 타이틀 도전을 위해 시즌 후반 풀 출전은 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M-스포트 포드 역시 이탈리아 랠리와 같은 드라이버진으로 그리스에 엔트리했다. 그레고와 뮌스터(Grégoire Munster)와 조쉬 멕컬린(Josh McErlean)이 팀 득점을 담당하며, 파트타임 드라이버 마틴스 세스크스(Mãrtiņš Sesks)가 그리스 첫 도전인 반면 홈그라운드의 프라이비터 조던 세르데리디스(Jourdan Serderidis)는 8번째 도전이다.
WRC2에서는 33대가 엔트리했다. 챔피언십 상위권에 있는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와 요한 로셀(Yohan Rossel), 로베르토 다프라(Roberto Daprà)와 얀 솔란스(Jan Solans) 외에도 최근 결혼식을 올린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와 카에탄 카에타노비치(Kajetan Kajetanowicz),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 등이 출전했다.
올해의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다시 아테네 시내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6월 26일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Panathenaic Stadium) 앞에서 세리머니 행사를 치른 후 파르테논 신전 인근 자페이온(Zappeion) 앞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 준비를 위해 건립되었던 자페이온 주변에 마련된 1.5km의 특설 스테이지는 고대와 현대가 뒤섞인 도심을 배경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SSS1에서는 현대팀의 타낙과 오지에가 1분 18초 1의 타이 기록으로 스테이지 1위를 기록했고 가츠타, 포모, 누빌, 에반스 순으로 첫날을 마쳤다.
6월 27일 금요일.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참가자들은 코린토스 운하 근처에 위치한 26.76km의 아기 테오도리(Aghii Theodori)를 시작으로 12.9km의 루트라키(Loutraki)를 거쳐 아기 테오도리를 다시 달려 오전을 마무리한다. 오후에는 북쪽 테베(Thiva)로 이동해 19.58km의 SS5를 달리고 다시 서쪽으로 달려 SS6 스티리(Stiri), SS7 엘라티아(Elatia)에서 하루를 끝맺는 여정이다.
금요일을 시작하는 SS2 아기 테오도리는 기술적인 스테이지로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스테이지다. 키아파 베카 교차로 근처 자갈길에서 시작해 오르막이 이어진다. 7km 부근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아스팔트는 참가자들을 방심하게 만들 수 있다. 프라티의 성모마리아 예배당을 지나 익숙한 구간으로 재진입하면 도로 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며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구간은 아크로폴리스 랠리답게 거칠고 원초적이며, 가끔 냇물도 가로질러야 한다. 전 구간에 걸쳐 노면 변화가 심한 스테이지다.
금요일의 오프닝을 오지에가 잡으며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2번째로 출발하는 오지에는 그립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SS2를 가장 빠르게 달렸다. 누빌은 3번째 기록으로 종합 2위에 올라섰다. 가츠타와 멕컬린, 세스크스는 첫 스테이지부터 타이어 펑처로 뒤처졌다. 가츠타가 타이어를 바꾸느라 멈추어 섰을 때 남긴 흙먼지 때문에 포모는 시야가 가려 기록에 손해를 보았다.
SS3 루트라키는 출발 직후 파나기아 파네로메니 교회를 지나 3.3km의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달린다. 이후 4.3km의 급한 내리막길로 리듬이 급변한다. 결승점에 가까워지면 가파르고 기술적인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12.9km로 비교적 짧지만 급커브와 경사로, 제한된 시야로 인해 매우 도전적인 스테이지다.
포모를 필두로 누빌, 타낙까지 현대팀 트리오가 루트라키 톱 그룹을 형성한 가운데 누빌과 포모가 오지에를 제치고 종합 1-2위로 올라섰다. 에반스는 종합 7위로 고전했고 타낙은 오지에, 파야리에 이어 종합 5위였다.
펑처에 취약한 코스 때문에 선수들은 수차례 악몽을 겪어야 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장거리 스테이지 아기 테오도리를 다시 달리는 SS4에서는 오지에가 톱타임으로 다시 선두에 복귀했다. 이번에는 타낙이 종합 2위가 되었다. 반면에 누빌은 피니시 7km를 앞두고 펑처를 겪어 40초 가량 손해를 보아 종합 6위로 밀려났다. 누빌은 스테이지 직후 “돌멩이가 엄청나게 많아 펑처도 많을 겁니다. 40초를 잃었지만 그냥 달린 것은 옳은 결정이었어요. 랠리는 길고 아직 초반일 뿐입니다. 앞으로 주말 내내 펑처가 훨씬 많이 날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누빌의 말대로 멕컬린은 SS4에서 벌써 두 번째 펑처를 당했다.
포모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선두 오지에와의 시차를 11초로 줄였다. 반면 누빌은 연속 펑처에 직면했다. 이번에는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기에 2분 가량 손해 볼 수밖에 없었다. 파야리는 SS5를 완주하긴 했지만 이동구간에서 오일 누유를 해결하지 못하고 리타이어했다.
SS6 스티리는 이번 경기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초반 9km는 넓은 노폭의 완만한 오르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개의 타이트한 헤어핀을 통과해야 한다. 숲으로 진입한 후에는 점점 노폭이 줄어들며 후반에는 거친 채석장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내리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에서 펑처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포모는 발군의 달리기로 연속 톱타임을 달성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포모가 연속 톱타임을 기록한 가운데 타낙이 2번째 기록으로 종합 선두에 복귀했다. 오지에는 타낙과 10초 차이로 3위를 기록했다. 로반페라는 스테이지 막판 타이어가 터져 종합 8위로 밀려났다. 수많은 타이어 펑처의 최대 수혜자는 에반스였다. 가장 먼저 스테이지를 달리는 청소 담당임에도 어느새 종합 4위까지 올라왔다. 가츠타는 스테이지 막판에 핸드 브레이크가 고장났고, 멕컬린은 연료 계통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금요일을 마무리하는 클래식한 SS7 엘라티아는 2022년 사용되었던 엘라티아-렌기니 레이아웃을 다시 사용했다. 엘라티아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시작해 연속 헤어핀 구간을 오른 후 모터크로스 경기장을 거쳐 고속 내리막 구간으로 이어진다.
누빌이 이번 경기 첫 톱타임으로 오전의 불운을 약간이나마 만회했다. 타낙이 종합 선두를 유지했고, 포모가 타낙과의 시차를 3초로 줄이며 현대팀이 1-2위로 금요일을 마감했다. 오지에는 타낙과 16.9초 차이로 3위였고 4위 에반스부터는 선두와 1분 20초 이상 벌어졌다. 뮌스터, 가츠타, 로반페라, 누빌이 4~8위였으며, WRC2의 솔베르그, 케에타노비치가 그 뒤를 이었다.
토요일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해 SS8 파블리아니(Pavliani)를 시작으로 SS9 카루테스(Karoutes), SS10 이노호리(Inohori)를 달린 후 오후에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렸다. SS8~SS13 6개 스테이지 합산거리 123.44km에서 승부를 겨루었다.
토요일 아침을 여는 24.58km의 파블리아니는 아크로폴리스의 진정한 클래식 스테이지로 관중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단단한 자갈길을 따라 7km의 직선구간으로 시작해 헤라클레스의 화장터(Pyra of Heracles)로 이어진다. 속도가 높아지는 카타보트라 지역에 이르면 많은 팬들이 몰려드는 캠핑 구역이 펼쳐진다. 하지만 진짜는 후반부에 펼쳐진다. 무려 해발 1,660m가 넘는 정점에 이른 후 펼쳐지는 좁은 내리막은 이번 랠리에서 가장 정교한 운전을 요구한다.
세스크스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스테이지에 들어섰다. 타낙이 오프닝을 잡으면서 리드를 조금씩 벌렸다. 타낙은 경기 직후 “리듬을 잡는 것이 정말 어려워요. 최선을 다해 깔끔하게 달리려고 했지만 정말 힘든 무대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오지에가 그 뒤를 이었고 포모 역시 바싹 따라붙으며 선두권을 형성했다. 파야리는 랠리카를 고치지 못해 토요일 경기를 통째로 날렸다. 토요타는 연료 계통 트러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 골치를 썩었다. 누빌은 피니시 12km를 남기고 다시 한번 타이어 펑처의 공포와 직면했다. 슬로 펑처라 차를 세우진 않았지만 40초가량을 손해 보았다.
타낙은 토요일 첫 스테이지부터 파죽지세로 달려 톱타임을 기록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이어지는 카루테스(19.48km) 역시 오랜 전통의 스테이지로 1970년대부터 사용되어 왔다. 마을 인근 포장도로에서 시작해 숲으로 진입하면 고난이도 구간이 나타난다. 약 4km를 달리면 시작되는 내리막길은 이번 경기 중 손꼽히는 멋진 풍광을 자랑했다. 포모가 오지에보다 3.3초 빠른 기록으로 피니시했으며, 이어서 달린 타낙은 윙에 살짝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포모를 6.7초 따돌리고 2연속 톱타임으로 종합 선두를 질주했다.
17.66km의 SS10 이노호리는 다양한 특징을 한데 담고 있다. 매끄러운 자갈길 오르막으로 시작해 관람객들에게 최고의 뷰와 캠핑 장소를 제공하는 채석장 구간을 통과한다. 이후 길이 좁아지면서 짧은 아스팔트를 통과한 후 다시 자갈길로 복귀해 카토 파블리아니 근처에서 마감된다. 노면과 풍경, 속도감과 리듬이 매우 변화무쌍해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테이지다.
오지에가 타낙보다 0.1초 빠른 기록으로 톱타임을 작성했다. 한편 포모는 오른쪽 리어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파손된 채 3위로 후퇴했다. 포모는 라인 바깥쪽에 바위가 있었지만 페이스 노트에는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속도 부족에 시달린 로반페라는 사고까지 나 7위 누빌과의 시차가 1.8초에서 17.8초로 늘어났다. 핸드 브레이크가 고장난 뮌스터가 가츠타의 추월을 허용해 종합 6위로 밀렸다. 누빌과의 시차는 불과 0.4초였다.
오전 스테이지를 반복한 오후에도 타낙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타낙은 3연속 톱타임으로 오지에와의 시차를 더 벌렸다. 로반페라는 오후를 시작하는 SS11에서 코스를 벗어나며 차에 손상을 입어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가츠타 역시 코스를 크게 벗어나 벼랑을 들이박고 리타이어했다. 누빌은 뮌스터를 제치고 종합 5위로 부상했다. M-스포트 포드 진영은 더욱 암담했다. 뮌스터와 멕컬린 차의 핸드 브레이크가 고장났고, 세르데리디스는 컨디션 난조로 리타이어를 선택했다.
토요일을 종합 선두로 마친 타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반적으로 좋은 하루였습니다. 오후에는 바위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구간이 몇몇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부드럽고 일정해서 예상보다 괜찮았어요. 좋은 리듬을 유지했고 하루 종일 이어갈 수 있었죠. 우리가 선두를 지키고는 있지만 아직 포인트를 얻은 건 아닙니다. 여전히 거친 스테이지들이 남아있고, 새로운 스테이지도 있어 까다로운 도전이 될 겁니다.”
타낙과 43.6초 차이로 오지에가 뒤따르고 포모가 종합 3위. 에반스, 누빌, 뮌스터가 뒤를 이었다. 선두권은 차량별로 1분 가량 시차가 있어 무리한 푸시보다는 순위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종합 6위인 뮌스터는 저녁 서비스에서 차량 문제가 발견되어 일요일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솔베르그가 종합 7위이자 WRC2 선두를 달렸고, 그린스미스와 카에타노비치가 뒤를 이었다.
일요일은 지난해보다 1개 늘어난 4개 스테이지, 99.06km 구간에서 최후의 승부를 겨루었다. 26.16km나 되는 오프닝 스모코보(Smokovo)와 23.37km의 타잔(Tarzan)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구성이다. 보통 50~60km를 달리는 대부분의 WRC 마지막날에 비해 상당히 긴 거리를 달린다.
올해의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30년 만에 테살리아(Thessaly) 지역으로 복귀해 아름다운 풍경의 인공 호수인 스모코보 인근에 새로운 무대를 마련했다. 이번 경기 중 2번째로 길면서 최고로 까다로운 스테이지였다. 참가자들은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 냇물,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면 컨디션과 마주했다. 고속 구간이 약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혹하기 짝이 없는 스테이지다. 그 와중에 타낙은 일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빨랐다. 오지에와의 시차를 벌리며 우승컵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상위권은 시간차이가 커 순위변동을 기대하기 힘든 반면에 WRC2에서는 그린스미스와 로셀, 카에타노비치가 2위 자리를 두고 접전을 벌였다.
아크로폴리스 랠리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지 중 하나인 SS15 타잔은 오후에 최종 스테이지이자 파워 스테이지(SS17)를 겸한다. 거친 숲을 따라 10km의 험난한 내리막으로 시작되며 로볼리아리와 렌티아 사이의 유명한 자갈길 구간은 랠리카를 혹사시키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이런 험로를 23.37km나 달려야 한다.
타낙이 연속 톱타임으로 추격자들의 의지를 꺾었다. 여유가 있음에도 평소의 타낙답게 공격 모드를 해제하지 않았다. 반면 3위 포모는 다소 안정적인 주행을 선택했다. 더 이상 리타이어 당하지 않고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의지였다. 4위 에반스가 시차를 좁혔지만 아직 27.9초의 여유가 있었다. 로반페라는 슈퍼선데이 추가득점을 노리고 밀어붙이다가 다시 타이어가 터졌다. 누빌은 댐퍼가 파손되는 바람에 슈퍼선데이에서 에반스에게 밀렸다.
스모코보에서 진행된 SS16에서는 오지에가 가장 빨랐다. 타낙이 2번째였고, 포모가 3번째로 에반스와의 시차를 34.4초로 벌렸다. 엔진 출력이 떨어진 누빌은 종합 5위는 유지했지만 슈퍼선데이* 득점권에서는 밀려났다.
*슈퍼선데이는 일요일 기록만 합산하며 1~5위까지 5~1점의 점수를 부여한다
펑처의 혼란 속에서도 신들린 주행을 연속한 타낙이 트로피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23.37km의 타잔을 다시 주행하는 SS17은 최종 스테이지이자 파워 스테이지를 겸했다. 가츠타는 SS16을 버리면서 파워 스테이지 추가 득점을 노렸지만 타이어 펑처로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현대팀은 리스크가 높은 추가 득점보다는 안정적인 승리와 더블 포디엄을 원했다. 게다가 타낙은 기어박스에 문제가 있었다. 속도를 늦추어 달렸음에도 타낙은 추격자들을 압도하며 우승컵을 차지했다. 오지에 2위, 포모가 개막전에 이어 오랜만에 3위에 올랐다.
이번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현대팀과 타낙 모두에게 시즌 첫 우승이었다. 더블 포디움까지 거두며 그야말로 겹경사를 맞았다. 그렇게 지난해에 이어 그리스에 다시 한번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에반스, 누빌이 4~5위였고 6위 솔베르그가 WRC2 우승을 거머쥔 가운데, 그린스미스, 카에타노비치, 맥켈란, 세스크스가 득점권을 마무리했다.
타낙이 30점의 대량 득점에 성공함에 따라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에서 로반페라를 밀어내고 3위로 올라섰다. 아울러 선두 에반스와의 점수차는 12점으로 줄였다. 포모는 아쉽게 2위를 놓쳤지만 시즌 2번째 포디엄 피니시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제조사 챔피언십 포인트에서는 현대팀이 토요타에 65점 차이로 따라붙었다. 시즌 전반을 마친 WRC는 7월 17~20일, 타낙의 홈그라운드 에스토니아에서 시즌 후반을 시작하는 제8전을 치른다. 제9전 핀란드까지 초고속 그레이블 랠리가 이어진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