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16 기아
기아 브랜드 최초의 픽업, 타스만은 그 이름의 유래처럼 거친 자연과 다채로운 지형이 공존하는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의 강인함을 닮았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견고한 구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형과 환경에서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정통 픽업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아는 이러한 타스만의 다재다능함을 완성하기 위해 1,800여 가지에 달하는 시험을 1만 8,000회 이상 반복했으며, 현대자동차그룹 최초로 개발 과정에 도하 성능 평가를 도입해 타스만의 활동 반경을 한결 넓히고자 했다.
그러나 개발 경험이 없는 분야였기에 타스만 개발진은 머리를 싸매고 더 많은 논의와 협조를 거쳐야 했다. 정통 픽업의 본질과도 같은 오프로드 성능을 구현해 많은 고객들에게 색다른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전에 없던 평가 기준을 수립한 이후, 보다 치밀한 설계를 적용하고 이를 검증하는 혹독한 시험을 거쳐 동급 최고 수준의 도하 성능을 완성할 수 있었다. 브랜드 최초로 도하를 가능하게 만든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현대차그룹의 연구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타스만 개발 과정에서 도하 성능을 고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MSV샤시시험팀 김근수 파트장 | 적극적으로 험로 주행을 즐기는 고객들의 액티비티 환경을 고려했다. 실제로 오프로드 마니아들은 험악한 산지를 주파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천이나 강을 건너는 도하 성능도 픽업의 필수 덕목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정통 픽업’이라 일컫는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경쟁 모델은 대부분 일정 수준의 도하 성능을 확보했으며, 제조사도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더욱이 타스만은 브랜드 최초의 정통 픽업이면서 시장에서는 후발 주자의 입장에 놓여 있었다. 고객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안겨 주기 위해 최소 경쟁 모델과 동등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도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Q. 실제로 타스만은 어느 정도의 수심까지 주행이 가능한가?
MLV바디시험팀 허순호 책임연구원 | 기아는 타스만의 차량 사용설명서를 통해 수심 800mm 이하의 도하 상태에서 시속 7km 이하의 속도를 유지하라고 명시한다. 이는 연구소에서 도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과 거의 동일한 조건으로, 실제로는 이 상태에서 600m를 문제 없이 주행해야 성능 기준을 충족한다.
해외를 비롯한 여러 험난한 환경에서도 무사히 테스트를 마쳤기 때문에 기준을 충족한다면 대부분의 상황에서도 문제 없이 도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험로 주행은 늘 변수가 많다. 물속 노면이 고르지 않고, 유속이 빠른 곳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도하를 진행해야 한다.
Q. 처음으로 개발하는 분야였기에 평가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MSV샤시시험팀 박정훈 연구원 | 기아는 군용 차량을 개발하고 있지만 일반 고객 차량 개발 과정에서 도하 평가를 진행한 건 처음이었다. 최초로 개발하는 사양이었기에 설계 부문과 시험 부문의 개발진 모두에게 도전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기존 차량도 침수 방지를 고려하긴 하지만 보통 폭우로 침수된 도로에서 엔진으로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도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타스만은 본격적인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만큼, 험로 주행을 즐기는 고객들의 실제 사용 환경을 개발 기준으로 삼았다. 보다 실전에 가까운 평가 체계를 수립하고자 경쟁 차량의 도하 성능 수준을 분석하고, 비교 시험을 반복해 우리만의 기준을 차차 세워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초기 개발 목표를 상향 조정해 수심 800mm를 기준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Q. 800mm는 평균 신장인 성인 여성의 허리까지 오는 높이다. 그만큼 깊은 수심에서도 엔진으로 물이 유입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MLV샤시설계6팀 이승현 책임연구원 | 도하 측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부분도 역시 엔진으로의 물 유입이다. 내연기관 차량은 연소를 위해 공기를 흡입하는 에어 인테이크 부품이 존재하는데, 도하 상황에서는 이 곳을 통해 물이 엔진 내부로 유입될 수 있다. 따라서 엔진의 치명적인 손상을 막기 위해 에어 인테이크의 덕트 위치를 950mm까지 높여 800mm 수심의 도하 조건에서도 엔진으로의 수분 유입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Q. 에어 인테이크 덕트를 후방으로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MSV샤시시험팀 박정훈 연구원 | 에어 인테이크는 원활한 공기 흡입을 위해 덕트를 전방으로 설계한다. 하지만 도하 상황에서는 물의 흐름과 차량의 움직임으로 수위가 갑자기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 기존 설계로는 덕트로 물이 쉽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덕트를 후방으로 배치하고 내부 구조도 변경해 물이 최대한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계했다. 게다가 수위가 높을 때는 엔진룸으로 들어온 물이 펜더 에이프런(펜더 내부의 차체 구조물)을 통해 덕트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어 펜더 쪽에 사이드커버를 장착해 이를 효과적으로 방지했다.
Q. 에어 인테이크 덕트의 후방 배치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지는 않았나?
MLV샤시설계6팀 정기 책임연구원 | 새로운 설계를 적용한 이후 이뤄진 테스트에서 흡기 성능과 함께 도하 성능도 만족스러운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덕트를 후방에 배치하자, 공기가 흡입되면서 발생하는 ‘기류 소음(Aerodynamic noise)’이 기존보다 실내로 과도하게 전달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우선 에어클리너 내부에 기류 소음기를 추가해 소음을 분산시켰다. 또한 에어 인테이크 덕트는 흡음 성능에 유리한 압축 성형 부직포 소재를 적용하고, 펜더 부위에 블럭폼을 비롯한 흡음재를 더해 도하 성능과 함께 NVH 수준까지 높일 수 있었다.
Q. 보통 제어기 같은 주요 전장 부품은 플로어 쪽에 배치하는데, 타스만은 어떤가?
MLV차체설계1팀 노광일 파트장 | 실제로 대부분의 차량은 도하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일부 전장 부품을 플로어(차체 바닥)에 설치한다. 일반적인 설계 과정이라 타스만 개발 초기에 일부 제어기를 플로어에 장착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도하 시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설계팀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800mm 수위의 도하를 지속하면 실내로 물이 들어오는 상황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험팀에서 제시한 도하 기준을 들었을 때 상당히 가혹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 다른 제어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위치를 변경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설계팀 내부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시험팀과 협조하여 방수가 되지 않았던 부품도 방수 소재로 모두 교체하는 작업을 거쳤다. 또 플로어에 위치하는 일부 ADAS 제어기나 우퍼 등과 같은 전장 부품을 800mm 높이 이상의 캐빈 백패널로 옮겨 도하 성능을 충족시켰다.
Q. 국내에서는 도하를 간접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필드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하였나?
MSV샤시시험팀 전현수 연구원 | 남양연구소에도 관련 시험장이 있지만 수위가 다소 낮고 시험로가 짧아 목표로 했던 조건을 시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광주의 기아 군차량 도하시험장에서 테스트를 거쳐 성능 평가를 진행했다. 내부 시험은 그렇게 일단락지었지만 실제 자연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법규 등의 문제로 도하 평가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또한 더 가혹하고 다양한 조건에서의 검증도 필요했기에, 회의를 거쳐 호주의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s)에서 현지 평가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타스만 2대와 함께 MSV샤시시험팀, MLV샤시설계6팀, MLV바디시험팀, MLV차체설계1팀 인원 9명이 시험에 참여해 3일간 수천 km를 달려 실제 자연환경에서 도하 성능을 검증할 수 있었다.
Q. 다양한 테스트 환경 중에서 호주를 최종 점검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MSV차체설계1팀 노광일 파트장 | 미국 역시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픽업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이지만 호주는 보다 오프로드 드라이빙 같은 액티비티에 친화적인 곳이다. 타스만이라는 이름부터 호주 남부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유래했다. 호주는 국토가 광활하면서도 환경 자체가 험난하고 다채로워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험로를 거닐곤 한다. 특히 주요 시험 코스였던 블루 마운틴은 경사가 높은 산지나 하천 같은 지형은 물론, 바위와 자갈, 모래처럼 오프로드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환경을 갖춘 최적의 테스트베드였다.
Q. 블루 마운틴은 험난한 환경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어떤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나?
MSV샤시시험팀 백형두 기술기사 | 당시 현지의 오프로드 전문가를 섭외하고 실제 고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들을 찾아 필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변수가 많은 자연 환경이었지만 시험에 참가한 개발진은 다양한 수심에서 속도를 바꿔가며 테스트를 진행해 가혹한 조건을 연출했다. 예컨대 평균 수심 600mm 수준의 구간에서는 실제 상황을 가정해 도하 속도를 시속 20km까지 올려 테스트하기도 했다.
Q. 자연에서 경험했던 타스만의 도하 성능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나?
MSV샤시시험팀 김근수 파트장 | 블루 마운틴에서 험로 주행을 즐기는 현지 소비자들의 차량은 오프로드 튜닝이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정 상태였던 타스만이 테스트 코스를 완벽하게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개발 도중 성능 목표치를 상향했던 덕분인지 시험 과정에서 타스만의 도하 성능이 오프로드용으로 튜닝된 차량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테스트 코디네이터로 섭외한 현지 전문가들이 실제 주행 패턴대로 타스만을 거칠게 다뤘는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도하 성능을 보여줬다.
그런데 테스트 도중 타스만 1대가 바닥이 움푹 패인 곳에 빠져 강 속에서 30분 이상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에서 빠져나온 타스만을 꼼꼼히 점검했지만 차량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엔진을 비롯한 주요 부품에 문제가 있을 법한 상황이었기에, 현장의 개발진은 물론 현지 오프로드 전문가들까지 타스만의 내구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차량은 시험이 끝난 이후에도 현지 도로를 문제 없이 4,000km 가까이 달리며 도하 성능 뿐만 아니라 높은 내구 성능도 의도치 않게 검증할 수 있었다.
Q. 테스트 환경이 거친 곳이었던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MLV바디시험팀 박종서 기술주임 | 도하를 위한 타스만의 고유 설계 중에 플로어 배수 구조가 있다. 800mm 이상의 수위에서 차량이 방치되면 도어에 수밀 처리가 잘 되어 있어도 압력 때문에 실내로 물이 들어차기 마련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차량에 이상이 없도록 이미 제어기와 같은 전장 부품들은 캐빈 백패널로 이동시킨 상태였으나, 실내에 차오른 물을 빼내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드레인 홀 구조를 마련했다.
그런데 호주 현지 테스트에 대동했던 차량은 이 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시험 제품이라 구멍을 직접 뚫어야 했다. 임시방편으로 진행한 작업이었지만 설계와 거의 동일하게 홀을 구성하고 배수 플러그를 장착해 의도한 기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었다.
Q. 새로운 평가 기준을 수립한 만큼, 이후에도 현대차그룹에서 도하 성능을 충족하는 차량을 만나볼 수 있을까?
MSV샤시시험팀 전현수 연구원 | 기존에 있던 시험 구간은 본격적인 도하 성능을 평가하기 어려워 타스만 개발과 함께 남양연구소 내에 새로운 도하 시험장을 건립했다. 기존보다 평가 가능한 최대 수심이 훨씬 깊고, 구간도 훨씬 넓게 확보해 시험이 더 용이하게끔 설계했다. 따라서 추후에도 SUV를 비롯한 일부 차량 개발 과정에 도하 평가를 도입할 계획이다.
결국 타스만이 블루 마운틴의 거센 강물에서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견뎌낸 개발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야기를 나눴던 9명의 연구원들은 처음 도전하는 영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후련함과, 혹독한 평가에서 뛰어난 성능을 입증한 타스만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통해 몇몇 연구원은 고객들에게 무모한 도하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도, 기준에 맞는 환경이라면 공들여 개발한 도하 성능을 몸소 체험해 주길 바랐다. 그들의 말처럼, 타스만을 통해 정통 픽업이 선사하는 새로운 영역의 경험을 마음껏 누려 보길 바란다.
사진. 조혁수
※ 콘텐츠 내 이미지의 일부 차량은 국내 판매 모델과 디자인 및 사양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