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2.17 현대 모터스포츠팀
개막전 모나코 몬테카를로 랠리에 이은 제2전 스웨덴은 2025 시즌의 유일한 풀 스노 랠리다. 눈과 얼음만으로 구성된 스테이지이기에 WRC 14개 경기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속 팁이 박힌 스터드 타이어가 높은 접지력을 제공하며, 코너가 적고 비교적 단순한 구성이라 랠리카의 스피드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덕분에 설원과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고속 주행과 점프가 관중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일반적인 랠리와 다른 또 하나의 포인트는 눈을 양옆으로 높게 쌓아 올린 스노뱅크(snowbank)의 활용법이다. 소위 말하는 이 ‘벽타기’ 기술은 잘만 활용하면 빠른 코너링이 가능하지만, 자칫 실수로 눈밭에 빠지면 경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올해는 타이어 공급사가 바뀐 만큼, 그립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이런 환경의 영향으로 스웨덴 랠리의 역대 기록 상위권은 대부분 인근 출신 드라이버가 보유하고 있다. 역대 최다승은 스웨덴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스티그 블롬퀴스트(Stig Blomqvist)가 7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역시 스웨덴 출신인 비웨른 발데가르드(Björn Waldegård)가 핀란드의 마커스 그론홀름(Marcus Grönholm)과 동률인 5승으로 뒤를 잇는다. 토요타팀의 야리마티 라트발라(Jari-Matti Latvala) 감독은 4승으로 역대 3번째 기록을 세웠다. 현역 선수로는 세바스티엥 오지에(Sébastien Ogier)가 3승, 오트 타낙(Ott Tänak)이 2승을 기록 중이다. 이외에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칼레 로반페라(Kalle Rovanperä),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가 1승씩을 챙기는 등 근래에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가 우승을 차지해 왔다.
1950년 시작되어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스웨덴 랠리는 근래 스웨덴 남부 칼스타드(Karlstad)에서 주로 개최되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눈 덮인 스테이지 확보가 점점 어려워져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 가령 눈이 녹아 진흙탕으로 변하거나, 같은 코스를 여러 번 달리면서 흙바닥과 자갈이 드러나 스터드 타이어가 파손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안전한 경기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하던 스웨덴 랠리 측은 결국 2022년부터 지금의 우메오(Umeå)로 개최지를 옮겼다. 북부 노를란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우메오는 위도상으로 아이슬란드와 비슷하며, 한겨울에 최저기온이 영하 30°C 아래로 떨어질 만큼 추운 곳이다. 올해는 얼음 바닥이 단단하게 얼어붙고 적설량도 충분해 훌륭한 경기 환경을 만들어 냈다.
이번 경기는 랠리1 11대와 랠리2 26대를 포함한 총 61대의 랠리카가 엔트리했다. 현대는 개막전과 마찬가지로 누빌과 타낙 그리고 신예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를 그대로 엔트리했다. 4번째 차를 투입할 가능성도 거론됐으나, 일단 이번 시즌에는 이 3명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챔피언의 숙원을 푼 누빌은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새로운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개막전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6위를 기록했다. 타낙 역시 몬테카를로에서 5위에 그치며 시즌 극초반부터 삐걱거렸다. 반면 현대팀에 갓 합류한 아드리안 포모가 3위로 포디엄에 오르며 팀을 이끌었다.
이번 랠리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랠리카에 있다. 현대팀은 스웨덴에서 이번 시즌 첫 업데이트를 거친 랠리카를 투입했다. 기존의 경사진 댐퍼 각도를 수직으로 세운 새로운 서스펜션을 투입하고 경량화에도 주력했다. 이런 변화는 기존에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고속 그레이블 랠리를 위한 부분으로, 시즌 중후반 열리는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랠리에서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차량이 바뀐 만큼 세팅 데이터 역시 새롭게 쌓아야 하는 현대팀이다.
한편, 토요타팀은 에반스와 로반페라,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를 출격시키고 세컨드 팀의 사미 파야리(Sami Pajari)까지 4대의 GR 야리스를 준비했다. 지난해 팀 에이스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에반스는 몬테카를로에서 2위에 오르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반대로 풀 시즌 복귀한 로반페라는 아직 몸이 덜 풀린 모양새다. 이번 경기에는 원래 로렌초 베르텔리(Lorenzo Bertelli)가 GR 야리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업무상의 이유로 경기를 포기했다. 프라다 그룹 후계자인 재벌 2세 베르텔리는 지난해까지 M-스포트 포드 소속으로 WRC에 종종 출전했었다.
M-스포트 포드에서는 무려 4대의 푸마 랠리카를 준비했다. 정규 드라이버인 그레고와 뮌스터(Grégoire Munster)와 신예 조쉬 맥켈런(Josh McErlean) 외에 파트타임 드라이버 마틴 세스크스(Mārtiņš Sesks)가 출격했다. 여기에 개인 자격 참가자인 조단 세르데리디스(Jourdan Serderidis)까지 엔트리했다.
랠리 본부 근처 레드반 아레나(Red Barn Arena)에 마련된 SS1 우메오 스프린트는 도심 스테이지 치고는 긴 5.16km 코스다. 해당 코스는 목요일의 오프닝뿐 아니라 금요일과 토요일의 마무리에도 쓰이며, 일요일에는 전반부를 연장한 파워 스테이지로도 활용됐다. 경기가 시작된 목요일 저녁 7시, 이곳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요즘 스웨덴은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이미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다.
타낙은 셰이크다운부터 제법 날랜 주행을 선보였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첫날은 SS1 1개 스테이지만 진행되었다. 에반스를 선두로 포모, 로반페라, 타낙, 누빌 순으로 스테이지에 들어섰다. 지난 경기 우승자는 오지에였지만 이번 경기에는 엔트리하지 않았다. 에반스는 노면 청소 담당이 되었음에도 SS1에서 가장 빨랐다. 종합 선두에 오른 에반스 뒤로 로반페라, 타낙, 포모, 누빌 순으로 목요일을 마쳤다. 그 와중에 누빌은 오전부터 있었던 인터컴(의사소통 장비) 문제가 밤까지 이어졌다.
2월 14일 금요일은 28.27km의 장거리 SS2 비그드실럼(Bygdsiljum)을 시작으로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한 후 우메오 스프린트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SS2~SS8 7개 스테이지 합산 124.32km로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거리를 달려야 한다. 숲을 통과하는 고속 구간의 오프닝 SS2는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손발을 잘 맞추어야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곳은 복잡한 마을 코스와 몇 개의 점프 구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어지는 SS3 안데르스바트넷(Andersvattnet)은 올해 새롭게 추가된 스테이지로 좁고 기술적인 구간을 지나면 아름다운 고속 숲길로 전환된다. SS4 백(Bäck)은 시작점과 종점이 거의 붙어있는 독특한 구성으로 비교적 완만한 마을 도로에서 시작해 구불거리는 숲속 도로로 이어진다. 타이어는 모두 스터드 타이어를 장착했지만 스페어 개수에서 갈렸다. 현대는 모두 스페어 1개만 실었고 로반페라, 가츠타, 뮌스터 등은 2개를 실었다.
레이스 초반, 포모가 파죽지세로 연속 톱타임을 기록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SS2를 잡은 에반스가 여전히 선두, 2위와 3위는 각각 타낙과 가츠타였다. 이어진 SS3, SS4에서 포모가 연속 톱타임을 기록해 에반스와의 시차를 1.9초로 좁혔다. 반면 타낙과 누빌은 그립 부족과 언더스티어를 호소했다. SS3 직후 누빌은 “언더스티어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스테이지 초반은 괜찮았지만 마지막에는 좀 심했습니다. 차의 밸런스가 수시로 바뀌는 것 같아 이를 개선할 수 있는지 파악 중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점심 서비스를 받고 오후에는 오전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렸다. 가츠타가 SS5를 잡으며 종합 선두로 올라섰고 SS6에서는 타낙이 가장 빨랐다. 그리고 SS7에서 누빌이 톱타임을 기록했다. 그 뒤를 이은 타낙이 가츠타를 밀어내고 종합 선두로 부상했다. 주행 직후 타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타이어 전략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지만 이번 스테이지에서 정말 열심히 달렸습니다. 아찔한 순간도 몇 번 있었어요. 고속에서 눈더미와 충돌했죠. 하지만 큰 일 없이 다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우메오로 돌아가 SS8을 마쳤을 때는 다시 에반스가 선두를 탈환했고, 가츠타가 2위로 올라섰다. 타낙, 포모, 누빌이 3~5위로 토요타 듀오를 바짝 추격하는 가운데, 선두 에반스부터 5위 누빌까지의 시차는 불과 9.1초였다. 6위 로반페라는 누빌과 16.4초 떨어져 있었다.
2월 15일 토요일은 15.65km의 SS9를 시작으로 하는 3개 스테이지를 오전 오후 반복해 달리고, 다시 우메오 스프린트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7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는 97.04km. 오프닝 SS9 벤네스(Vännäs)는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랠리 스테이지 중 하나로 90년대 초반부터 여러 랠리 시리즈에서 사랑 받아왔다. 마을을 출발한 후 고속과 테크니컬 구간, 강렬한 점프와 좁은 다리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인 곳이다.
이어지는 SS10 사르욀리덴(Sarjöliden)은 14.23km 길이로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빠른 속도 때문에 내리막 코너에서 제동 타이밍에 신중해야 한다. SS11 콜크셀레(Kolksele)는 다양하고 도전적인 무대로 리드미컬하며 스릴 넘친다. 드라이버와 랠리카의 능력을 모두 요구하는 스테이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금요일까지의 성적에 따라 출발 순서가 바뀌었다. 랠리1 최하위인 세르데리디스를 선두로 뮌스터, 파야리, 맥켈런이 차례로 스테이지에 진입했다. 계속 눈이 내리기 때문에 앞서 달리는 선수들은 노면을 청소해야 했다. 타이어는 모든 랠리1 선수가 스페어 하나씩만 장비했다.
오프닝 SS9를 잡은 건 로반페라였다. 그의 이번 랠리 첫 스테이지 승리였다. SS10에서는 선두 에반스가 톱타임으로 달아났지만 시간 차이는 아직 근소했다. 세팅을 손본 누빌은 여전히 언더스티어를 개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SS11에서 누빌이 톱타임으로 타낙을 제치고 종합 3위로 올라섰다. 포모가 출발 시 헬멧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 이를 고쳐 쓰는 시간으로 20초 가량을 허비하기도 했다. 덕분에 로반페라가 포모를 추월해 종합 5위로 부상했다. 오후는 대부분의 선수가 스페어 타이어를 2개 싣고 출발했다. 포모와 세르데리디스만 스페어 1개만 싣는 도박을 했을 뿐이다.
누빌이 연속 톱타임을 기록하며 순위를 끌어올리는 와중에 포모가 눈에 빠지며 희비가 엇갈렸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SS12에서는 포모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겨우 오전의 실수를 만회했다. SS13에서는 에반스가 가장 빨라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조금 벌렸다. SS14와 SS15에서는 누빌이 연속 톱타임을 기록해 선두권과의 시차를 좁혔다. 그런데 SS13 스타트 직후 고속 왼쪽 코너에서 포모가 눈 속에 빠지고 말았다. 주변에 관중이 없는 지역이라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50분가량 사투를 벌였지만 차를 꺼내지 못하고 결국 리타이어했다. 토요일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종합 선두는 여전히 에반스였다. 그런데 SS15에서 실수로 시동을 꺼뜨리는 바람에 추격을 허용했다. 가츠타가 2위였고 누빌은 선두 에반스와 불과 6.3초 차이로 3위였다. 타낙, 로반페라, 세스크스, 파야리가 뒤를 이었다.
2월 16일 일요일은 단 3개 스테이지에서 경기가 열렸다. SS16 베스터빅(Västervik)은 이번 스웨덴 랠리에서 가장 긴 29.35km짜리 스테이지. 지난해 베르터빅 스테이지(25.5km)를 바탕으로 했다. 초반에는 리드미컬한 코너로 이루어져 있으며, 막판 4km가량이 연장되었다. 여기에서 2번 연속 주행한 후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우메오 스프린트의 연장 버전 코스(8.62km)에서 최종 승자를 가렸다. 3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는 67.32km. 모든 선수가 최대한 무게를 덜기 위해 스페어 타이어는 하나만 준비했다.
많은 드라이버들이 마지막 날까지 눈에 빠지며 고속 스노 랠리의 험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어제 리타이어한 포모가 가장 먼저 스테이지에 들어섰다. 일요일 추가 득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지만 가장 먼저 출발해 노면을 청소하는 처지라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지금 위치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얼음 위에 새로운 눈이 많이 쌓여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파워 스테이지를 지켜보아야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네요.”
오프닝 SS16에서 가츠타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에반스를 밀어내고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그 와중에 M-스포트 포드의 멕켈런이 눈더미에 파묻히며 리타이어했다. 베스터빅을 다시 달린 SS17에서는 에반스가 가장 빨라 다시 선두로 복귀했다. 누빌은 여전히 3위에 머물렀으며 선두와의 시차는 11.1초로 벌어졌다.
SS18에서도 에반스가 가장 빠른 기록으로 스웨덴 우승컵과 함께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 5점까지 챙겼다. 가츠타는 3.8초 차이로 결국 에반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분전한 누빌은 3위로 포디엄 마지막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뒤이어 타낙이 누빌과 4.9초 차이로 4위, 그 뒤로 로반페라, 세스크스, 파야리, 뮌스터 순이었다. WRC2에서는 올리버 솔베르크를 선두로 코르호넨, 헤이킬라가 뒤를 이었다.
한편, 북극권의 차가운 날씨를 벗어난 참가자들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프리카 케냐에서 제3전을 준비한다. 3월 20~23일 열리는 사파리 랠리는 WRC를 통틀어 가장 뜨겁고도 거친 서바이벌 전이다. 2021년 WRC에 복귀한 전통의 이벤트로 현대팀은 아직 우승 기록이 없지만 시즌 초반 연속 포디엄을 기록한 만큼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본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