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가 대중화되면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 그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바로 전기차의 충전 및 주행 성능, 그리고 주행 가능 거리일 것이다. ‘전기차의 주행 가능 거리에 대한 우려(Range Anxiety)’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엔진의 폐열을 이용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난방에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전기차의 특성상 외부 환경에 따라 에너지 소비 효율은 크게 달라진다. 이런 까닭에 전기차는 더욱 정교한 열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미래 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열의 복사 원리를 이용해 실내 온도를 낮춰도 탑승자의 온열감을 유지하고, 동시에 전력 소모를 줄여주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도 그 일환이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일부 차종에 탄소 직물 발열체의 복사열을 활용한 적외선 무릎 워머를 커스터마이징 사양으로 적용한 바 있으며, 지난 2022년에는 모빌리티 온돌 콘셉트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난방 기술의 미래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현재 어떻게 개발되고 있을까? 통합열관리리서치랩, 열에너지차량시험1팀, 제네시스내장설계팀, 제네시스내장디자인팀의 담당 연구원들을 만나 최신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기존의 기술과 어떤 점에 차이가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고 있는지 들어봤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명칭 그대로 열의 복사 원리를 응용한 기술이다. 열이 이동하는 방식은 크게 전도, 대류, 복사로 나뉜다. 전도는 물질 내부의 분자들이 충돌하면서 열이 전달되는 현상으로, 쉽게 말해 금속의 한쪽을 뜨겁게 만들면 반대편까지 열이 전달되는 현상이다.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자동차의 경우 신체에 직접 닿는 열선 시트 및 열선 암레스트 등에 활용되고 있다.
대류는 흔히 물, 공기를 가열했을 때 일어나는 열 전달 방식이다. 자동차의 송풍구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 실내 온도를 높이는 공조 히터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복사는 열원으로부터 전자기파의 형태로 열을 방출하는 원리다. 태양열이 우주 공간을 넘어 지구까지 도달하는 원리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난로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바로 복사 방식에 따른 열 전달이다. 현대차그룹은 차량의 실내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적용해 전도(시트 및 암레스트 열선), 대류(PTC 히터 공조), 복사(복사열 워머)로 구성된 총체적인 난방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
복사 난방은 현재 주택용 난방으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 난방 방식인 온돌에서도 복사열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구들장 아래로 열기가 이동해 방바닥을 뜨끈하게 만들고(전도), 따뜻해진 바닥이 방 안으로 열을 방출해(복사) 방 안의 공기를 데우는 방식(대류)이다.
통합열관리리서치랩 오만주 연구위원은 온돌의 복사열 원리에서 영감을 얻어 자동차용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개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량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증하면서 전기차의 에너지 저감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했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복사 난방에 대한 리서치를 하던 중 전통 가옥의 온돌이 은은하게 온열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착안했다.”
오만주 연구위원은 최신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한층 진보한 기술을 품었다고 언급했다. 현대자동차 베뉴, 투싼, 팰리세이드, 기아 셀토스 등 일부 차종에 적용됐던 1세대 복사열 난방 시스템인 무릎 워머와는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을까? 이에 대해 통합열관리리서치랩 정소라 책임연구원이 무릎 워머를 적용했던 배경부터 현재 개발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류 방식의 공조 히터는 차 안의 공기 온도를 전체적으로 올리는 데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인체에 직접 열을 전달하는 덕분에 온열감을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이전까지 차량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적용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탑승자에게 온열감을 줄 수 있는 여러 부위 중 체감 효과가 가장 좋은 무릎 워머를 개발해 커스터마이징 제품으로 우선 적용했고, 실제 소비자 조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는 탑승자의 모든 신체 부위에 온열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스터디 모델을 제작해 평가 및 해석을 진행, 최적의 부위에 발열체를 적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1세대 기술에 사용한 탄소 직물 발열체 대비 발열 면적이 넓어 더욱 효과적으로 온열감을 제공할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 소재의 필름형 발열체를 선행 개발했고, 이에 맞춰 새로운 48V 전원 아키텍처 개발도 마쳤다. 아울러 선행 검증 차량에서 난방 에너지 저감 및 전비 향상 효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소라 책임연구원의 설명대로 새로운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 85~110℃의 고온을 내는 필름형 발열체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1세대 복사열 난방 시스템에 쓰인 발열체나 다른 제조사에서 선보인 열선 내장형 워머보다 우수한 기술로, 열을 빠르게 방출해 더욱 따뜻하고 쾌적한 실내를 조성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선 발열 구조 대신 면 발열 구조를 사용한 덕분에 균일한 면적으로 온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참고로 필름형 발열체에 쓰인 탄소나노튜브는 전기 및 열전도율이 뛰어나고 강도가 우수해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항공기 등 다양한 산업에 폭넓게 쓰이고 있는 신소재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실내 탑재 위치와 인테리어 디자인에 맞춰 형상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구조는 부품의 형상을 고정하는 사출 코어, 부품의 열 변형을 막고 복사열이 실내로만 방출되게끔 돕는 단열재, 고온의 열을 내는 필름형 발열체, 그 위를 감싸는 스킨 부위로 이뤄진다.
제네시스내장설계팀 이재용 파트장은 “기존의 복사열 난방 시스템보다 온도가 높은 발열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필름형 발열체 안팎으로 단열과 난연성을 확보하는 게 큰 도전이었다. 복사열의 전달량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신체에 온열감을 줄 수 있는 거리는 10cm 내외가 적당하다. 최적의 효과를 제공할 수 있도록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탑승자의 신체에 화상의 위험을 줄여야 하는 대책이 필요했고, 결국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또 다른 핵심 특징인 화상 방지 시스템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화상 방지 대책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2가지 방향으로 마련됐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발열체의 두께를 얇게 만들어 열용량을 낮추고, 열전도율과 열용량은 낮지만 열 방사율이 높은 직물 소재를 스킨 부위에 활용해 화상 가능성을 낮췄다. 소프트웨어 차원의 대책으로는 발열체에 정전식 터치 센서를 탑재해 신체가 직접 닿으면 전원을 즉시 차단하는 제어 로직을 적용했다. 부품이 파손되거나 전원 연결 및 소프트웨어 오류가 발생했을 때 즉시 발열 기능을 해제하는 안전 시스템도 반영해 혹여 모를 화상의 위험까지 철저히 방지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시기, 야외에 오랜 시간 주차한 차에 탔을 때 시트에 닿는 엉덩이와 허벅지가 시렸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의 대류식 공조 난방과 함께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탑승자의 신체 온도를 더욱 빠르게 높여 한결 쾌적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온이 그리 낮지 않은 환경에서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 자체만으로 하체 난방 효과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개발진은 남양기술연구소 환경시험동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실질적인 난방 효과를 분석했다. 스티어링 휠 하단의 슈라우드(Shroud, 덮개)와 도어 트림, 센터 콘솔 등 운전석 5개 부위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적용하고, 조수석에는 글러브박스를 비롯한 도어 트림, 센터 콘솔 등 4개소에 적용한 결과 -20℃에서 3분 이내에 설정 온도까지 도달해 하체에 온열감을 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에너지차량시험1팀 김상훈 글로벌R&D마스터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에너지 저감 효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바람을 내뿜는 기존의 공조 시스템과 함께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실내 디자인이나 차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난방 소모 에너지를 약 17% 저감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정소라 책임연구원은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실내 공기질 개선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이용하면 기존의 공기 히터를 덜 사용해도 동일한 수준으로 난방이 가능한 덕분에 실내 공기가 덜 건조해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겨울철 피부 관리를 위해 여성 소비자들이 히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이들에게 따뜻한 공간과 쾌적한 경험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복사열을 차량 난방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통합열관리리서치랩을 비롯해 부품 설계, 시험 및 평가 등 다양한 부문의 팀이 협업하고 있는 가운데,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양산을 위해 디자인 부문에서도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 제네시스내장디자인팀 오재호 팀장은 올해 초 공개한 제네시스 네오룬 콘셉트의 대시보드, 도어 트림, 바닥, 시트백, 콘솔 사이드 등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적용한 것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네시스 네오룬 콘셉트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활용해 럭셔리 디자인과 첨단 기술의 조화를 제시한 것처럼, 심미적인 디자인, 튼튼한 내구성, 열을 전달하는 성능까지 모두 갖춰야 하는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새로운 도전의 영역이었다. 앞으로는 차의 인테리어와 최적의 조화를 이루면서 복사열 난방이 가능한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도록 다양하게 개발 중이다.”
이렇듯 개발진들의 긴밀한 협업과 노력 덕분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양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랜 세월 개정되지 않았던 유럽 시장의 히터 부품 관련 자동차 법규를 새롭게 바꾸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기존의 UN R122 히팅 시스템 법규에 따르면 인체가 접촉 가능한 부분이 금속일 경우 70℃, 비금속 재질은 8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었는데, 현대차그룹이 주도해 법규를 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통합열관리리서치랩 양현규 책임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열을 전달하는 매개체의 성질과 열용량에 따라 뜨거운 정도가 다르고 화상의 위험도 다르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난방 성능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80℃ 이상의 표면 온도가 필요한데, 유럽의 관련 법규에 맞추면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효과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어려웠다. 이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 개발진과 현대차그룹 법규인증팀, 유럽기술연구소, 정부산하기관 등 여러 부서가 깊은 논의를 가진 끝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의 안전성과 난방 효과, 에너지 저감 효과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고, 마침내 올해 유럽 법규를 개정할 수 있었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은 머나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가까운 시일 내 양산이 가능할 정도의 완성도는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디자인과 소재, 공법, 법규 및 인증 제도와 같은 장애물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현대차그룹 개발진의 열정과 끈기가 계속되는 한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제네시스 네오룬 콘셉트에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적용된 것처럼 가까운 시일 내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으로 찾아와 한층 쾌적한 겨울철 이동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사진. 조혁수
영상. 남도연, 임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