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대표하는 산업계와 학계의 연구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기차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제37회 세계전기자동차 학술대회·전시회(The 37th International Electric Vehicle Symposium & Exhibition, 이하 EVS37)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EVS37은 ‘미래 모빌리티로 향하는 전기 물결(Electric Waves to Future Mobility)’이라는 주제로 전기차 기술의 메가 트렌드를 제시하는 동시에 미래 모빌리티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 EVS37에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과 미래 모빌리티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전기차 핵심 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모비스는 ‘모비온(MOBION)’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으며, 현대케피코는 차량통합 및 전력 변환, 충전 제어 기술과 더불어 초고속 EV 충전기, 자동 충전 기술 등을 선보이며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시했다.
EVS는 글로벌 완성차 및 전기차 업계 관계자, 전기차 전문가 등이 한데 모여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동시에 대규모 전기차 관련 전시회를 열어 트렌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VS는 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기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다. 1969년 미국 피닉스에서 문을 연 후 미국을 넘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까지 개최지를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아울러 혁신적인 전기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도 개최되며 명실상부한 세계 전기차 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다. 참고로 EVS는 매년 대륙별 전기자동차협회와 함께 아시아, 유럽, 북미 대륙을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37회를 맞이한 EVS는 세계전기자동차협회(WEBA)와 아시아태평양전기자동차협회(EVAAP)가 주최하고, 한국자동차공학회(KSAE)가 주관한 가운데 지난 4월 23일부터 나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치러졌다. EVS의 한국 개최는 지난 2002년과 2015년에 이은 세 번째다. 이번 EVS37은 미래 모빌리티로 향하는 전기 물결이라는 주제에 맞게 다채로운 구성과 혁신적인 전기차 관련 기술을 선보이며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EVS37에는 총 49개국에서 2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기업은 물론 유럽, 아시아, 미주 등 글로벌 기업 200개 사가 참가해 무려 600개의 부스를 차리며 최대 규모로 역대 개최됐다. 학술대회의 규모 역시 남달랐다. 60개국의 1,500명에 달하는 전기차 관련 인사가 500여 편의 논문을 제출했다. 이는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EVS36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EVS37 현장에는 전기차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현대차그룹 전시 공간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현대차는 투명 솔라 필름(Transparent Solar Film)과 전동화 모빌리티 시대로의 전환에서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운 더 뉴 아이오닉 5를 선보였다. 또한 기아는 PBV의 다양한 활용성을 보여주는 모형물을 통해 새로운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현대차가 선보인 투명 솔라 필름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투명 솔라 필름은 전기와 광학적 측면에서 우수한 특성을 가진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소재를 적극 활용해 50%의 투과도와 10%의 셀 효율을 갖춘 1.5kW급 투명 필름이다. 투명 솔라 필름은 차량 선루프에 적용할 경우 별도의 장치 없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건물 외벽이나 창에도 부착이 가능하며 실내 전등으로도 발전이 가능하다. 이번 전시 부스에서는 전등 빛을 받아들인 투명 솔라 필름이 LED 램프를 작동하는 구성의 전시를 선보여 관람객들도 투명 솔라 필름의 우수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기아는 PV5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PV5는 기아 PBV 패밀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모델로,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활용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EVS에서는 3분의 1로 축소한 PV5 섀시캡(Chassis Cab) 모형을 통해 운전 공간을 제외한 후면 모듈을 통째로 교체할 수 있는 이지 스왑(Easy Swap) 기술을 재현했다. 이지 스왑은 패널 밴, 카고, 승합 등 총 세 가지 모듈을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은 PV5의 이지 스왑 과정을 살펴보며 PBV의 다양한 확장성을 직접 경험했다.
EVS37에서 가장 화제를 끈 곳은 현대모비스 부스였다. 앞서 CES 2024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모비온은 e-코너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전기차 구동 기술을 구현한 콘셉트 모델이다. CES 2024에서 모비온을 공개했던 첫날, 1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현대모비스 부스를 다녀갔을 만큼 높은 인기를 끈 바 있다.
현대모비스는 모비온에 적용된 혁신적인 기술력을 선보이기 위해 직접 모비온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모비온은 앞뒤 바퀴 모두 90°까지 꺾어 마치 게처럼 옆으로 이동하는 크랩 주행은 물론 제자리에서 360° 회전하는 제로턴까지 선보였다. 또한 뒷바퀴만 꺾어 회전하는 모습도 시연하며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모비스는 이런 모비온의 혁신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도 함께 전시하며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인휠 시스템과 e-코너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인휠 시스템은 기존 구동 시스템과 달리 각 바퀴에 구동력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최적의 선회 능력이나 차체 자세 제어 성능을 구현하는 모터를 장착한 기술이다. 또한 드라이브 샤프트와 같은 별도의 부품이 필요하지 않아 구동 효율과 전비 향상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모비온의 또 다른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e-코너 시스템은 각 바퀴의 구동, 제동, 조향, 서스펜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한 차세대 기술이다. 모비온이 크랩 주행 및 제로턴과 같은 특별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는 이유다. e-코너 시스템은 인휠 시스템과 전동브레이크, 전동 조향, 댐퍼 등 총 4가지의 기술로 조합된다. 모터는 직접 바퀴를 구동하며 전동 조향은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전동브레이크와 댐퍼는 속도를 줄이고 충격을 흡수한다.
이 밖에 현대모비스는 전기차의 구동 모터와 인버터, 감속기를 하나로 묶은 전기구동장치 EDU 3-in-1, 전기차 배터리팩과 냉각 및 전원차단장치를 한데 모은 배터리시스템(BSA) 등 다양한 차세대 전동화 기술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현대모비스의 혁신적인 기술은 머지않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미래 모빌리티에 모두 탑재될 것이다.
현대케피코는 전동화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차량통합, 전력변환, 충전 제어, 초고속 충전, 자동 충전 등을 선보이며 전기차 충전 및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제시했다. 현대케피코의 부스는 ‘ALL Control Solution Zone’과 ‘Ultra-fast EV Charge Zone’, 그리고 ‘Autonomous Charge Zone’ 등으로 구성돼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 건 전기차 시스템의 이해를 돕는 모형이었다. 중앙 집중형 차량 도메인제어기를 비롯해 충전관리시스템(VCMS), 전력변환시스템(OBC, LDC, V2LC),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현대케피코의 노하우로 완성한 전기차 핵심 제어 부품들이 어떻게 연계해 작동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울러 전동화 모빌리티 시대를 위한 급속 및 초급속 충전기를 선보이며 전기차 충전 환경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360kW급 초고속 충전기였다. 현대케피코의 초급속 충전기는 파워뱅크가 분리된 형태다. 파워뱅크의 용량은 충전기 수에 따라 달라지며, 충전기가 하나일 경우 240kW, 120kW 파워뱅크가 각각 하나씩 장착된다. 반면, 충전기가 2개인 구성은 240kW 파워뱅크 3개가 탑재된다.
이용 환경에 따라 충전 속도를 달리할 수 있는 충전기도 함께 선보였다. 이 충전기는 충전기 수에 따라 100kW급 급속부터 200kW급 초급속까지 지원하며 증설과 확장이 용이하도록 파워뱅크 분리형 타입으로 구성됐다. 예컨대, 두 대의 차량이 충전할 경우에는 각각 100kW 속도로 충전하며, 한 대만 충전하는 상황이라면 200kW 초급속 모드로 사용이 가능하다.
아울러 플러그 앤 차지(PnC) 기술을 적용해 인증부터 충전, 결제까지 한 번에 가능한 초고속 경제형 충전기도 소개했다. 해당 충전기는 현대차의 전기차 충전 기술 플랫폼(E-CTP, EV Charging Technology Platform)을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24인치 스크린과 피벗 암 방식의 케이블을 적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한층 끌어 올린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충전의 번거로움을 줄여줄 자동 충전 기술도 소개됐다. 이 기술은 충전 위치에 차량을 주차하면 로봇이 다가와 충전기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또한 충전이 완료된 경우에는 충전기를 제거하고, 충전이 필요한 다른 차량으로 커넥터를 가져가 삽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로봇에는 카메라와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충전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EVS는 단순한 전기차 기술 전시회가 아닌 미래 모빌리티를 향한 방향성을 논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학술대회다. EVS37의 학술대회는 크게 EV 테크 서밋과 전기차 관련 논문 발표로 구성됐다. 현대차그룹의 연구원들은 주요 세션 연단에 올라 그간의 성과를 발표하고 전기차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정보를 공유해 글로벌 산학연의 관심을 끌었다.
EV 테크 서밋은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전기차의 리튬이온 배터리 열폭주의 이해 및 완화 전략’이었다.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의 기초와 셀 설계 등을 소개하며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온도와 화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두 번째 주제는 ‘소프트웨어 정의 세계에서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패널로 나선 현대차의 이경민 박사는 성공적인 SDV 전환을 위한 아키텍처 개발, 새로운 가치 창출, 소프트웨어 중심 개발 등의 폭넓은 이야기를 전했다. 마지막 주제는 ‘전고체 배터리 소재 및 셀 혁신’이었다. 참가자들은 전해질, 무양극, 등방압 접근 방식 등 전고체 배터리의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논의했다.
다양한 주제의 논문 발표도 이어졌다. 전기차의 부품과 정책, 규정, 제어, 배터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현대모비스는 수십 건에 달하는 논문과 함께 참가사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발표에 나섰다. 전기차 구동시스템과 배터리, 안전부품, 플랫폼, 인포테인먼트 등 연구 분야도 방대했다. 또한 전기차 모터 최적 냉각 설계, 저마찰 도로에서의 차량 제어, 차량용 컴퓨터의 분리 및 방열 구조, 전기차 후륜조향장치 활용 방안 등 다양한 논문도 함께 발표하며 미래 모빌리티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했다.
EVS는 자동차 산업의 현재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다. 다양한 신기술을 공개하고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가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돕는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와 같은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인류에게 새로운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고, 사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EVS와 현대차그룹이 가져올 미래가 기다려진다.
글. 허인학
사진. 민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