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6 현대모비스
전기차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자동차의 얼굴은 바뀌고 있습니다. 공기저항을 줄여 전비를 높이기 위해 범퍼,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등을 포함한 ‘전면부 모듈(Front End Module)’의 모습을 계속 다듬고 있기 때문이죠. 그 중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부분은 그릴일 것입니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그릴은 엔진 냉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로도 널리 쓰였죠. 하지만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얹어 냉각 중요도가 비교적 적은 전기차에서의 그릴은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흡입구를 없앤 평평한 면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이런 디자인 변화는 내연기관차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핵심 디자인 요소가 크게 달라졌으니까요.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더하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릴을 키우고 LED 패턴 조명을 더하거나 헤드램프와 그릴의 경계를 없애는 등 방법도 다양합니다.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Lenticular Grille Lighting) 기술’은 이런 그릴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물이자 자동차에 감성을 더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두 눈의 시차를 이용해 깊이감을 구현하는 렌티큘러 렌즈와 LED 조명을 이용해 기존의 전기차 그릴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자아낸다는 점입니다. 평면이었던 그릴에 입체감을 더한 것이죠. 아울러 패턴과 LED 조명을 이용해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의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을 만나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에 사용된 디자인의 이름은 ‘스타더스트’입니다. ‘소성단(小星團)’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타더스트(Stardust)’를 차용했죠. 이름처럼 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특징입니다. 정확히는 SF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우주 속 광속 이동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죠.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의 디자인을 담당한 모빌리티제품디자인셀 차준혁 연구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기존의 그릴 라이팅 기술은 LED를 이용해 평면에 패턴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입체 공간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입체감과 모션감(움직이는 느낌)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공간감을 극대화하려면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모이는 형상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SF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워프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죠.”
“보통 영화 속 워프 장면에서는 별의 잔상효과를 넣어 움직이는 느낌을 냅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뻗어가는 수많은 선의 패턴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선의 두께와 선명도를 달리해 별 사이의 거리감을 표현했습니다. 덕분에 패턴마다 각기 다른 입체감과 모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의 차별성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우주에서 영감을 얻어 깊이감을 더한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것은 세밀한 광학 기술입니다. 렌티큘러 렌즈의 핵심 기술은 광학 시스템을 이용해 양쪽 눈의 시차를 만들어 입체감을 구현하는 것이죠.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에 사용된 렌티큘러 렌즈의 두께는 2.2mm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다초점 초소형 광학 시스템을 통해 눈이 인지하는 깊이감과 초점이 맺히는 거리차를 구현한 덕분에 40~45mm에 달하는 입체감을 만듭니다.
이는 기존 렌티큘러 렌즈 기술 대비 커다란 진보입니다. 2019년에 현대차 베뉴의 테일램프에 적용되었던 렌티큘러 렌즈는 1.4mm의 두께로 25~28mm의 입체감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에 적용된 렌티큘러 렌즈는 내부 구성을 변경해 입체감은 1.6배, 모션감은 2.5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숨겨진 이미지 층을 더해 그림자 효과까지 구현했습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의 광학 개발을 담당한 램프선행양산기술셀 김석현 책임연구원은 렌틸큘러 렌즈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렌티큘러 렌즈의 3D 효과는 제품 크기가 가진 한계를 넘어섭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깊이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의 두께를 늘려야 합니다. 하지만 렌티큘러 렌즈와 다층 구성 이미지를 이용하면 얇은 공간에서도 깊이감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는 이에게 초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하며, 차별화된 디자인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의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디자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580개의 광원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3D 패턴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다양한 광학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자동차의 그릴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내연기관차의 그릴은 입체적이지만 모션 연출을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전기차의 LED 그릴은 모션 연출이 가능하지만 입체감이 없습니다. 현대모비스의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입체감도, 모션 연출도 모두 구현이 가능합니다.
“렌티큘러 렌즈를 통해 평면에서 3D 효과를 가진 패턴을 구현하면 복합적인 연출이 가능합니다. 경우에 따라 입체감만을, 또는 모션만을 구현할 수 있죠. 이처럼 다양한 방법이 있기에 전기차에 적용한다면 각 브랜드의 디자인 콘셉트를 맞추면서도 기존과 차별화된 디자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원의 개별 제어를 통해 보행자 등 외부와 소통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석현 책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짜임새 높은 설계를 자랑합니다. 그릴과 같이 자동차의 외장에 사용되는 부품들은 외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까닭에 내구성이 높아야 합니다. 특히 렌즈와 LED 등 민감한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선 밀폐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물론 서로 다른 특성의 재료를 아우르는 만큼 작은 오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의 설계를 맡은 글로벌램프수주대응셀 이영수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아우터 렌즈, 렌티큘러 렌즈, 이너 렌즈, 리플렉터&LED 모듈, 백커버, 하우징 등 6개 부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우터 렌즈는 외부의 이물질과 충격에서 내부를 보호합니다. 렌티큘러 렌즈는 양안시차 현상을 이용해 입체감과 모션감을 만듭니다. 이너렌즈는 빛을 분산해 균일한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리플렉터&LED 모듈은 광량 집중 및 광량 확보에 쓰입니다. 백커버와 하우징은 조립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충격에서 내부 부품을 보호합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을 설계하면서 내구성 못지 않게 중요했던 부분이 바로 경량화였습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만큼 무게를 줄여야 전비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양한 차종에 적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습니다.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을 활용하면 전기차의 매끈한 외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공력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션과 입체 패턴 효과까지 연출하는 디자인 자유도가 있기에 전기차의 특성을 살리면서 기존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의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기존의 기술을 개량하고 융합해 완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완성까지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시행착오도 따랐습니다. 가령 렌티큘러 렌즈는 초점과 이미지의 매칭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층으로 구성된 렌티큘러 렌즈의 경우 각 레이어의 특성이 달라 재질별 굴절 효과가 발생하기에 이를 조정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복합 곡률 구현도 난관이었습니다. 각 재질의 늘어나는 특성이 달라 층간 분리가 생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부문의 담당자들과 공법 분석을 하는 등 치밀한 분석과 조율을 거듭한 끝에 완성할 수 있었죠. 덕분에 현대모비스의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은 확장성도 뛰어납니다. 다양한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화를 통해 그릴 외 다양한 부문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산업이 격변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모든 것이 바뀌고 있죠. 익숙해진 것들을 다시 한번 새롭게 살펴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 함께 자동차에 특별한 감성을 더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된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현대모비스가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 기술과 함께 열어갈 조금 더 감성적인, 조금 더 특별한 전기차 시대를 기대해 봅니다.
사진. 조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