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0 현대자동차그룹
분야를 막론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에 놓인 글로벌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에너지에도 관심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내연기관 퇴출에 대한 압박이 늘어나고 전동화 전환에 속도가 붙고 있는 자동차 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관련 업체들은 진정한 친환경 모빌리티의 완성을 위해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통한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에너지 분야에서는 기술 개발이 시작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사용하는 태양전지에 높은 성장 잠재력이 기대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찍이 이와 같은 태양광 에너지의 미래 가치와 태양전지 기술의 친환경성 및 실용성에 주목해 모빌리티용 발전 시스템을 구현하는 기술 콘셉트를 실현한 바 있다.
가령 2019년 데뷔한 8세대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현대차그룹 최초로 폴리실리콘(이하 실리콘) 방식의 태양전지 패널을 장착한 모델이었으며,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비용으로 솔라루프 사양을 제공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경쟁사는 구현하지 못한 프레임 구조를 적용해 승객 안전까지 고려한 구성을 선보였으며, 순수 전기차 모델로 솔라루프 적용 범위를 확장해 소비자들에게 모빌리티 태양전지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솔라루프 기술을 장착한 전동화 차량은 태양전지로부터 생산한 전기를 주행용 배터리에 저장해 추가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으며, 시동용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한 발전기의 작동 부하를 줄여 연료 소비 효율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효용성 검증을 거쳐 실리콘 태양전지 기반의 솔라루프 양산 이후에도 태양광 발전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태양전지 기술의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를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실리콘 태양전지는 구조화학적으로 안정된 소재로, 일찍이 상용화가 이뤄져 제조 기술의 성숙도 역시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높은 가격경쟁력과 함께 신뢰도 높은 안전성을 기반으로 태양전지 패널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전지 기술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발전 효율의 개선이 더뎌 기술의 잠재력과 미래 가치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특히 모빌리티의 적용을 시작으로 태양전지 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제한된 적용 공간에서 더욱 높은 발전 효율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여러 기관 및 기업들은 발전효율 향상이 한계에 다다른 실리콘 태양전지를 대신할 새로운 소재를 물색해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라는 나노 물질이 태양전지 업계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1839년 우랄산맥에서 최초로 발견된 페로브스카이트는 러시아의 광물학자 레프 페로브스키의 이름을 따왔으며, 당시 그가 발견한 산화칼슘타이타늄(CaTiO3) 광물의 특수한 ABX3 결정 구조를 ‘페로브스카이트’ 물질로 명명하게 되었다. 이후 동일한 구조의 광물들이 발견됨에 따라 ABX3 구조를 지닌 유무기 복합체를 통상적으로 ‘페로브스카이트 구조(Perovskite Structure)’라고 칭하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이하 페로브스카이트)는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으로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효율이 높아 태양전지로 제작했을 때의 이론적인 발전효율이 40%를 상회한다. 또한 수십 년간의 상용화를 거쳐 생산 비용이 안정된 실리콘 태양전지와 비교해도 패널 공정 비용이나 소재 생산 단가가 낮아 기존 기술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상용화 단계 이전으로, 모빌리티와 건축물 등에 사용하기 위한 패널의 내구성과 안정성 등의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산학과 글로벌 기업들은 페로브스카이트의 다양한 장점을 핵심 가치로 삼고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전동화 차량에 신재생 에너지를 일찍이 접목해 온 현대차그룹도 페로브스카이트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에 주목했다. 추후 시장에 내놓을 전동화 차량은 물론 스마트 시티 속 미래 모빌리티에 이를 적용하기 위해 기술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기초소재연구센터 전자소자연구팀 소속 연구원들이 개발 중인 투명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투과도와 함께 색채 조절이 가능한 페로브스카이트 소재의 특성을 극대화한 기술이다. 기존 태양전지에서는 불가능했던, 물리적인 투명 상태를 구현해 활용 범위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미세 타공 설계를 기반으로 한 실리콘 투명 태양전지 기술과는 달리, 전자소자연구팀의 기술은 광흡수층의 두께를 조절해 가시광선이 부분적으로 투과하도록 구성했다. 따라서 기존의 투명 패널보다 근거리에서의 시각적 이질감이 적고, 태양광을 모을 수 있는 면적도 넓어 상품성 측면에서 기존 기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또한 페로브스카이트 소재의 특성 덕분에 패널의 두께를 실리콘 패널 대비 200~300분의 1 수준으로 제작이 가능하며, 무게 역시 훨씬 가볍다. 아울러 유연성이 뛰어난 기판을 적용하여 곡면 형태로 생산 가능한 것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탁월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전자소자연구팀은 투과도와 색채 조절이 가능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특성을 두고 투명 태양전지가 모빌리티의 윈도(유리)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시판 중인 자동차의 윈도 투과율 법규를 검토 중이며, 이에 적합한 투과율별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윈도 비중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PBV에 도입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PBV 관련 부서와 함께 투명 태양전지를 적용한 프로토타입을 구상 중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창문의 가시성은 확보하면서 에너지 생성이 가능한 점에서 거주 및 상업 용도 건물의 창문도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건축 업체와 함께 채광 면적이 가장 넓은 부분의 적용 가능성을 진단하는 등, 투명 태양전지의 파생 활용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투명 태양전지는 이처럼 높은 활용 가능성을 지녔으나 상용화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소재가 투명할수록 태양광을 흡수하는 광활성층 물질이 얇아져 이에 따른 광흡수량이 줄어드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다. 전자소자연구팀은 발전 성능과 더불어 일정 수준의 투과율을 만족하는 방향으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며, 내외부 광학 구조 설계의 최적화를 거쳐 발전효율 성능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는 모빌리티와 더불어 타 분야로의 적용을 위해 기존의 셀 단위 연구에서 벗어나 모듈 단위에서의 효율 검증을 거쳤으며, 내구성 확보와 함께 밀봉 처리(encapsulation) 관련 기술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태양전지 패널의 모듈화와 기술 상용화를 향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태양전지의 기술 분류상 3세대 기술로 취급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광흡수율이 높은 성질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해도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발전효율을 넘어설 정도로 높은 미래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태양전지의 효과 극대화를 구상 중인 현대차그룹은 더 높은 출력 확보와 함께 대형화가 가능한 태양전지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미래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현대차그룹 선행기술원에서 개발 중인 탠덤 태양전지는 현대차그룹이 태양전지에 필요로 하는 조건들을 만족하는 기술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마찬가지로 업계의 차세대 기술로 손꼽히는 탠덤 태양전지 기술은 발전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두 개의 태양전지를 적층한 구조를 띄고 있다. 전극 구조를 통해 전기적으로 연결된 탠덤 패널은 같은 종류의 태양전지를 적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에너지 흡수 영역이 다른 부품을 조합해 제작한다. 핵심 물질의 광흡수 영역대에 해당되지 않는 파장은 사실상 버려지는 단일 구성 태양전지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선행기술원이 개발하고 있는 탠덤 태양전지는 자외선과 가시광선 영역의 고에너지 파장을 흡수하는 페로브스카이트 셀과 적외선 영역의 저에너지 파장을 흡수하는 실리콘 셀을 조합했다. 페로브스카이트 셀이 1차적으로 태양광을 흡수한 후, 걸러진 태양광 에너지를 실리콘 태양전지가 재차 흡수하는 상호보완 구조로 전체 발전 효율을 높이는 원리다.
현재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 태양전지를 조합한 탠덤 구조는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가장 현실적인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로 손꼽히고 있다. 높은 발전효율 성능을 지닌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원활한 전력 공급과 기술적 안정성이 보장된 실리콘 셀을 보조 개념으로 더함으로써 안정성 확보와 높은 출력이라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기관들은 이론적인 한계 효율이 29% 수준인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해 페로브스카이트를 조합한 탠덤 태양전지는 최대 44%까지 발전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선행기술원 소속 연구원들은 실제로 높은 발전효율을 지닌 탠덤 태양전지를 전기차에 장착했을 때 하루에 20km 가량의 추가 주행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셀 크기 166x166mm², 루프 및 후드 적용시, 국내 연평균 일조량 4시간, 전비 5km/kWh 기준).
현대차그룹 선행기술원은 탠덤 태양전지의 상용화를 바라보고 양산 가능한 공정을 연구해 대면적 셀을 개발한 이후, 모듈화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모빌리티의 발전 시스템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면적을 크게 확보할 수 있다는 특성을 활용해 전동화 상용차에 기술을 접목하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다. 대형 트레일러를 장착한 트랙터나 대형 버스 및 캠핑카의 경우 평평하고 넓은 공간을 갖추고 있는 만큼, 저렴한 페로브스카이트 및 실리콘 태양전지를 조합한 대면적 탠덤 태양전지를 적용할 경우 전력 생산 측면에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탠덤 태양전지는 획기적인 패널 구조로 짧은 연구 기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기대 이상의 발전효율 성능을 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 성숙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 상용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페로브스카이트 기반의 태양전지는 수분이 많거나 온도가 높은 상황에서 내구 성능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150도 이하의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제작이 가능한 소재의 특성을 극복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탠덤 태양전지 기술과 관련한 태양광,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기술을 분석하고 있으며,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협업으로 내구성을 확보해 안정적인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완성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소개한 두 가지 기술을 차세대 모빌리티에 적용해 태양광 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예컨대 발전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린 탠덤 태양전지는 기존의 루프 뿐만 아니라 보닛이나 도어 패널과 같이 면적이 넓은 곳에 사용해 전체 생산 전력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여기에 투과율 조절로 글라스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투명 태양전지는 윈드실드나 윈도에 적용해 차체의 대부분을 발전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주된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수십 년간 쌓은 자동차 설계 노하우와 모빌리티용 태양전지 패널 제작 경험을 기반으로 차세대 태양전지를 양산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태양광을 주요 전력원으로 삼는 ‘솔라카’의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첨단항공모빌리티(AAM)와 로보틱스 등에 관련 기술을 파생 적용하여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의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글. 윤현수
영상. 남도연, 임우진
사진. 조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