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3 현대자동차그룹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urpose Built Vehicle)’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PBV는 사용 목적에 초점을 둔 이동 및 운송 수단을 뜻합니다. 승용차가 운전의 능률과 탑승자의 편안한 이동에 집중한다면, PBV는 간결한 구조로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공간을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PBV는 한 번에 여럿을 태우는 이동 서비스는 물론, 물류 배송에 유용합니다. 특히, 물류 배송 중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하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Last mile delivery)’ 분야에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작업은 주로 1톤 트럭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샤시 캡(Chassis Cab)’ 적재함을 장착하고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샤시 캡 적재함은 옆면에 미닫이문을 달아 짐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건을 비교적 편하게 넣고 꺼낼 수 있어 소형 화물 배송기사가 선호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공간과 활용성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적재함은 조금 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샤시 캡은 두 개의 미닫이문이 각각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문 하나의 두께가 70mm로 가이드를 포함하면 적재 공간의 너비가 140mm 이상 줄어듭니다. 게다가 문이 열리는 공간이 한정적이고, 완충 장치가 없어 부상의 위험이 있습니다. 조금 더 효율적이며 사용하기 편한 적재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대자동차그룹의 바디선행개발팀은 PBV 시대의 새로운 적재함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업계의 배송기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고객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인 것이죠. 물류배송의 최종 단계를 맡은 배송기사만큼 적재함을 많이 사용하고, 사용하기 좋은 적재함이 꼭 필요한 직군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설문 조사에서 배송기사가 탑차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상/하차 편의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옆문(사이드 도어)의 필요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선호하는 적재함 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옆문, 옆문+후문(리어 도어) 조합을 합쳐 84%나 됐습니다. 그 이유는 물건을 배송 순서에 맞춰 꺼낼 때 옆문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후문만 있다면 배송 순서에 맞춰 물건을 쌓아도, 결국은 적재함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문의 개폐 방법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옆문은 슬라이딩(미닫이) 62%, 스윙(여닫이) 23%로 슬라이딩의 선호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하지만 후문은 슬라이딩 42%, 스윙 33%, 셔터 25%로 비교적 고른 선호도가 나왔습니다. 택배/잡화, 식품/냉동 등 주로 싣는 화물 유형에 따라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업무 유형에 따라 선호하는 문의 개폐 방식도 달라집니다. 한 가지 방식만 지원하는 도어로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것이죠. 설문 조사 결과 역시 적재함의 문 사용 시 가장 불편한 사항은 ‘제한된 개폐 방식’이 47%를 차지했습니다. 어느 때는 슬라이딩이, 어느 때는 스윙이 편리한 상황이 계속 생기는 것이죠.
바디선행개발팀은 이와 같은 사용자의 니즈에 주목하여 ‘*플러시 슬라이딩 & 스윙 도어’를 개발했습니다. 옆면 2개의 문을 필요에 따라 슬라이딩으로도, 스윙으로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구현하게 한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재함에 슬라이딩 기능을 위한 가이드 레일, 스윙 기능을 위한 힌지를 모두 적용합니다. 그리고 양쪽 문에는 가이드 레일과 힌지의 연결을 위한 홈을 만들죠. 마지막으로 가이드 레일과 힌지에 결합, 해제 장치를 더한 것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슬라이딩 손잡이를 당길 때 스윙 힌지 부분의 고정부가 풀립니다. 반대로 스윙 손잡이를 돌리면 가이드 레일의 프레임 고정부가 해제돼, 필요에 따라 문을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이중구조를 도입하려면 복잡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손잡이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잠금/해제 장치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용 방법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해 복잡한 기술을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고객을 위해 설계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일 것입니다.
*플러시 도어(flush door) : 단차가 없이 평평한 도어
‘플러시 슬라이딩 & 스윙 도어’를 사용한 적재함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슬라이딩 방식으로 문을 열 때 가이드 레일을 이용해 옆문 바깥으로 문이 겹치게 올라가거든요. 기아 카니발의 슬라이딩 도어와 비슷합니다. 기존 방식의 적재함과 달리 적재 공간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죠. 적재함의 사용성을 고려한 사려 깊은 부분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적재함 가운데의 필러입니다.
양쪽 문이 맞닿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 필러는 적재함의 강성을 유지하며, 양쪽 문과 맞물려 차폐성을 높입니다. 하지만 양쪽 문을 전부 열고 큰 짐을 실을 때는 장애물이 될 수 있죠. 그래서 ‘플러시 슬라이딩 & 스윙 도어’는 필러를 상하단 프레임에 연결해 탈부착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큰 짐도 더 편하게 실을 수 있습니다.
시제품을 직접 살펴본 배송기사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상황에 따라 미닫이/여닫이를 고를 수 있어 좋습니다.”, “부피가 큰 화물을 싣기 편합니다.”, “업무 편의가 많이 향상될 것 같습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고장 시 수리가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전동 기능이 적용된다면 금액에 상관없이 구매하고 싶습니다.” 등의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했기 때문일까요? 설문 조사에 참여한 배송기사 중 93%가 구매 의사를 밝혔고, 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구매하겠다는 의견이 80%가 넘었습니다. 우수한 상품성에 큰 호감을 보낸 것이죠. 해당 기술을 적용한 적재함의 등장을 기대할 만합니다. ‘플러시 슬라이딩 & 스윙 도어’는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된 상태이며, 특수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아 특허 출원도 완료된 상태입니다.
현대차그룹의 ‘플러시 슬라이딩 & 스윙 도어’는 고객의 관점에서 쓰임새를 면밀히 고려한 끝에 완성된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산된다면 PBV 시대는 물론 지금의 소형 상용차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널리 보급되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이처럼 유심히 다시 살펴보면 개선할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이처럼 세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