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8 제네시스
플래그십 모델이나 럭셔리 모델에는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요소가 있다. 바로 정숙성이다. 최대한 부드러운 주행 환경을 탑승자에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플래그십 모델은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차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플래그십 모델에도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요소가 더해지고 있다. 플래그십 모델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은 플래그십 모델에서도 운전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바로 제네시스 G90에 세계 최초로 적용된 ESEV(Engine Sound by Engine Vibration) 기술이다.
ESEV는 세계 최초로 엔진의 진동 신호를 가상의 엔진 사운드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기존 액티브 엔진 사운드(Active Sound Design, 이하 ASD)와 달리, 실제 엔진의 응답 특성이 반영되기 때문에 운전자가 체감하는 가속, 변속 등의 주행 성능과 일치하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제네시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사운드 등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했다. 새로운 운전 경험을 제공하는 ESEV는 어떻게 개발되었을까? 담당 개발자를 만나 ESEV 기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Q. 현대차그룹이 소리와 진동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울러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정인수 연구위원 | 자동차의 경쟁력은 성능, 기능, 디자인 그리고 NVH 등 다양한 요소가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 소음과 진동은 운전자와 주변 환경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러한 이유로 소음과 진동 제어 능력이 모델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은 자동차 동력 시스템의 소음과 진동을 저감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고,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동력 시스템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한 주행 사운드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제품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객에게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나아가 미래 모빌리티에 핵심 기술로 여겨지는 소음, 진동 데이터를 활용한 AI 신호처리 기법 기반 고장 상태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Q. ESEV의 개발 배경이 궁금하다. 선행 연구를 시작한 당시 상황은 어땠는가?
정인수 연구위원 | ASD는 고객이 선호하는 가상의 사운드를 차량 속도와 가속도 등에 따라 튜닝해 브랜드 이미지와 운전 경험을 강화하는 기능이다. 하지만 엔진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속, 변속 등 운전자가 체감하는 주행 성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와 같은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개발한 것이 ESEV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주행 성능은 연소에 의한 엔진의 동력 응답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ESEV는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물리적 엔진의 진동을 활용하는 독창적인 사운드 제어 기술이다. 가령, 운전자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차량 속도와 변속 등과 일치하는 가상의 사운드를 통해 스포티한 운전 경험을 제공한다.
Q. ESEV 개발에 참여한 인원은 총 몇 명인가? 또한 각 팀이 담당한 역할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정진솔 연구원 | ESEV 개발에는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을 비롯해 엔진전장설계팀, 전자설계3팀, 인포테인먼트설계2팀, 인포테인먼트UX개발팀, PM 등의 팀이 힘을 모았고, 12명 정도의 연구원이 참여했다.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은 ESEV 기술 선행 개발 및 양산 개발 지원을 담당했고, 엔진전장설계팀은 노크 센서(Knock sensor, 이하 진동 센서)와 A2B(Automotive Audio Bus) 통신 모듈 개발을, 전자설계3팀은 와이어링 구현을, 인포테인먼트설계2팀은 오디오 제어기와 실차 평가 및 사운드 튜닝을, 인포테인먼트UX개발팀은 AVN 내 메뉴와 이미지 구성을 담당했다. 그리고 PM은 현안 발생 시 관련 부분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Q. ESEV는 세계 최초로 엔진 진동 신호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와 관련된 국내 및 해외 특허 출원이 되어 있는가?
박지홍 책임연구원 | 지금까지 가상 사운드 제어 기술은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많은 브랜드가 개발 및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엔진이나 동력 시스템 신호를 기반으로 실제 사운드를 제어하는 기술은 ESEV가 최초다. 세계 최초의 기술이기 때문에 유사 기술을 사용하는 사례를 사전에 방지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개발 초기인 2016년부터 지적재산1팀과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이 i-LAB 협의체를 구성해 특허망을 구축하고 있다. ESEV 기술을 대표하는 특허로는 ‘엔진 진동 기반 사운드 구현 지능형 제어 기술’과 ‘엔진 특성 측정 센서 기반 가속감에 어울리는 엔진 음색 제어 및 출력 시스템 기술’ 등이 있다. 아울러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내연기관 외 동력계 시스템의 신호를 이용한 사운드 제어의 지적재산권 선점 방지에도 대비하고 있다. 현재 전동화음향진동리서치랩은 국내 13개를 비롯해 해외 37개의 특허 출원을 마쳤다.
Q. ESEV는 ASD와 비교했을 때 어떤 기술적 차이가 있나?
이동철 책임연구원 | ASD는 물리적 특성을 이용하지 않고 가상의 사운드를 구축했다. 반면, ESEV는 엔진 진동이라는 엔진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주행 사운드를 구현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리적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시간 엔진의 동력 응답 특성이 반영된 진동을 측정하는 센서와 신호 처리를 위한 통신 모듈을 신규로 개발했다. 센서가 측정한 진동 신호로부터 가속 주행 사운드에 필요한 신호 성분을 추출하고, 주행 성능과 일체감 있는 차량 사운드를 개발할 수 있는 제어 알고리즘을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Q. ESEV의 알고리즘은 어떻게 구축했는가?
이동철 책임연구원 | 엔진 진동 신호에는 엔진의 동력 응답 특성 정보가 있으며, 넓은 주파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특정 주파수 영역대의 진동 신호는 스포츠 주행 경험을 제공하는 엔진 사운드 성분이 포함된 것을 파악했다. 이를 활용하면 주행 상황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사운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ESEV 제어 알고리즘 구축을 위해 전체 주파수의 진동 신호 중 엔진 동력 성능과 상관관계가 높은 기본 엔진 차수(Order) 성분 값을 추출하는 기법을 적용했다. 예를 들면 6기통 엔진의 경우 3차, 6차 성분이 엔진 동력 성능과 상관성이 높다. 따라서 제어 알고리즘 입력값의 주된 성분으로 사용된다. 또한 엔진의 가속 성능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진동 신호를 실시간으로 추출하고, 주행 사운드의 특성을 결정짓는 성분인 엔진 차수 배열(엔진 회전수에 비례하는 주파수 성분)과 각 차수 레벨의 비율을 제어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구성했다. 또한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사용하는 상황과 같이 정속 주행을 하는 경우에는 차량의 속도 미분 알고리즘으로 ESEV 출력 게인(Gain) 설정을 자동으로 줄여 정숙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ESEV 제어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진 주행 사운드는 오디오 제어기에 설정되고, 뱅앤올룹슨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운전자에게 제공된다.
Q. ESEV에 적용된 오디오 제어기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최영선 책임연구원 | ESEV에 적용된 오디오 제어기는 진동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신할 수 있도록 A2B 기술을 최초로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차량 센서들을 데이지 체인(Daisy Chain)으로 연결하며, 기존 SPDIF(Sony/Philips Digital Interface) 기술 대비 단순화한 케이블을 통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에 품질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검증 과정이 필요했다. 우선 제어기 시스템 및 차량에서 전자파 시험을 비롯해 여러 시험을 통해 강건성을 검증했으며, 시스템 단위로 최악의 테스트 조건을 수립해 검증하기도 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고장 진단과 복구가 가능한 로직을 적용해 시스템 안정성을 높였다.
Q. ESEV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은 무엇인가?
진재민 책임연구원 | ESEV는 엔진에 장착된 1개의 진동 센서와 ESEV 제어 알고리즘을 구현한 오디오 제어기, 진동 센서가 측정한 신호를 오디오 제어기로 전송하는 장치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진의 동력 응답 특성을 나타내는 진동을 오디오 제어기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두 시스템을 연결하기 위해 진동 센서가 측정한 신호를 오디오 제어기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의 개발이 필요했다.
Q. 디지털 신호전송장치 A2B 통신 모듈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이동수 책임연구원 | ESEV는 오디오 제어기가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측정된 엔진 진동 신호를 입력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진동 신호 측정을 위한 센서는 아날로그 타입과 디지털 타입으로 나뉘며, 각각 장단점이 존재한다. 가령 아날로그 타입의 경우 원거리 전송 시 노이즈에 취약하다. 반면, 디지털 타입은 측정 부위인 엔진의 높은 온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SEV A2B 통신 모듈을 개발했다. A2B 통신 모듈은 엔진의 높은 온도에서도 사용 가능한 압전 소자의 변형을 통해 전압값을 출력하는 아날로그 타입의 진동 센서를 적용했다. 또한 원거리 통신이 가능하도록 센서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A2B 통신 방법을 채택해 실시간 진동 신호를 오디오 제어기에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있다.
Q. 가상 엔진 사운드는 이질감 해소가 핵심이다.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이동철 책임연구원 | 사람의 청각은 매우 민감하다. 아주 짧은 시간의 소리 변화 차이도 인식할 정도다. 운전자는 주행 시 청각과 시각의 변화, 차량 시트로 전달되는 진동 등 모든 감각을 통해 상황을 인지한다. ESEV 기술을 개발하면서 운전자가 체감하는 주행 상황과 청각으로 느끼는 사운드 간 시간 지연(Time delay)으로 인한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 사람이 소리의 시간 차이를 인지하는 범위는 대략 0.03초(30msec)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ESEV 제어 알고리즘의 제어 루프(Loop) 시간을 0.023초(23.3msec)로 최적화해 운전자가 사운드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설정했다. 제어 루프 시간을 짧게 설정하면 고단으로 변속되는 매우 짧은 시간에 엔진의 동력이 차단되는 느낌이 그대로 사운드로 표현되어 변속감을 청각으로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변속 시 엔진 출력이 순간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을 진동 센서가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ESEV 제어 알고리즘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Q. ESEV를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G90에 최초로 적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진솔 연구원 | ESEV 기술을 통해 플래그십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엔진 사운드를 제공해 고객에게 제네시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SEV는 기존 ASD에 비해 빠른 응답성과 자연스러운 가속감이라는 장점과 동시에 감성 품질을 개선했기 때문에 프리미엄 브랜드에 어울리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최초의 기술이라는 점 역시 이유 중 하나다.
Q. 플래그십 세단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연출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운드 튜닝 과정은 어땠는가?
김보용 책임연구원 | G90는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모델이다. 이런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주행 사운드의 음질 목표 수립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타 브랜드 경쟁 모델의 주행 사운드를 청음 평가하고 측정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경쟁 모델의 사운드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스포티한 사운드다. G90 역시 스포티한 사운드를 적용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제네시스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해 차별화를 꾀하기로 했다. 스포티한 사운드보다 차분한 성격의 사운드를 구축하는 것이다. G90 ESEV가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되면서 스포티함과 즐거움을 겸비한 사운드로 구성된 이유다.
Q. ESEV 개발에 앞서 고객이 원하는 사운드 특성을 파악한 결과, G90를 포함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고객이 원하는 사운드 특성은 무엇이었는가?
김보용 책임연구원 | ESEV를 개발하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사운드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람마다 원하는 사운드 특성과 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G90는 플래그십 모델이기 때문에 스포츠성이 강한 사운드보다 조용한 사운드의 선호도가 높았고, 쇼퍼 드리븐으로 이용하는 고객이 다수였다. 하지만 직접 운전을 즐기는 고객도 많았기 때문에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기능을 통해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할 필요성을 느꼈다.
플래그십 세단의 특성을 고려해 일반적인 고객이 원하는 사운드와 제네시스만의 특별한 사운드를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따라서 차분하고 조용한 사운드를 통해 제네시스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동시에 세련되고 스포티한 사운드를 통해 운전의 즐거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다양하게 구성했다.
Q. ESEV를 개발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진재민 책임연구원 | 개발 당시에는 내구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아무리 좋은 기능이라도 내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엔진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크 센서를 진동 센서로 사용했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주파수 영역의 진동 신호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진동 센서 신호의 검증이 필요했다. 아울러 차량 앞쪽에 위치한 엔진에서 실내의 오디오 제어기까지 진동 신호를 안정적으로 송신하기 위한 통신 방법 채택과 와이어링(Wiring) 배치 역시 중요했다.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해 관련 팀과 논의를 거쳐 내구성을 높일 수 있었다.
Q. ESEV와 같은 가상 사운드 기술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ESEV가 고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기를 희망하는지 궁금하다.
정인수 연구위원, 진재민, 이동철, 김보용 책임연구원 | 소리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 분야이자 인간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소음 레벨 저감에만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가상 사운드 기술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지금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의 가상 사운드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현대차그룹은 ASD와 e-ASD(electric Active Sound Design), 그리고 ESEV 등으로 가상 사운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고객에게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연기관과 전기차가 공존하는 시점에서 사운드 제어 기술이 ESEV로 발전한만큼 내연기관이 가진 가속 성능과 일체감 있는 사운드가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는 요소로 평가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최대일,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