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오사카엑스포 타임캡슐의 모습 1970 오사카엑스포 타임캡슐의 모습

2023.04.27 현대자동차그룹 분량7분

5,000년 뒤 미래로 보낸 선물, 엑스포를 통해 등장한 타임캡슐

1939년 뉴욕박람회와 1970년 오사카엑스포는 당대를 대표하는 각종 산물을 미래의 후손에게 전하려는 시도로 타임캡슐을 묻었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의 저자 오룡이 역대 엑스포에서 소개된 타임캡슐의 의미를 살펴봤다.

엑스포 타임캡슐을 형상화한 모습

‘Everything begins with EXPO(모든 것은 엑스포에서 시작됐다)’ 2012년 여수엑스포 국제박람회기구(BIE) 전시관 입구를 장식했던 문구다. 과학기술이 이룩한 모든 문명의 산물이 엑스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다. BIE가 이처럼 당당한 슬로건을 내건 배경에는 19세기 중반 발원한 세계박람회의 빛나는 전통이 있다.


당시 BIE 전시관은 인류 문명의 쇼케이스로 자리 잡은 엑스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전시 키워드는 진보와 평화, 교육과 혁신, 교류와 협력이었다. 3세기에 걸쳐 엑스포의 기둥이 돼온 이들 가치는 세상을 움직인 혁신적 발명품으로 가시화됐다. 실제로 현대문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생산물이 엑스포에서 선보인 뒤 대중에 보급됐다.

엑스포에서 등장한 역대 발명품을 설명하는 표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수많은 발명품이 세계박람회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증기엔진, 기중기, 수세식 화장실, 재봉틀, 타자기, 청소기, 가스레인지, 고무타이어, 탈곡기, 축음기, 전화, 활동사진(영상), 엘리베이터, X-레이, 컴퓨터, 로봇 등 온갖 발명품이 엑스포 무대에서 대중과 만났다. 아이스크림, 케첩, 솜사탕 같은 가공식품과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의 예술작품, 그리고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등의 기념물도 마찬가지다.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넓힌 조형물과 전시물은 과학기술과 산업 진보를 이끈 위대한 과학자, 발명가, 학자, 예술가, 기업인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이처럼 엑스포는 인류에게 지식과 기술, 자본과 인력이 총동원된 문명의 전시장 역할을 했다. 그 방대한 스케일을 극적으로 표출한 발언이 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박람회 조직위원장 데이비드 프랜시스는 개막사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만약 끔찍한 재앙이 일어나서 이 박람회장 바깥에 있는 인류의 모든 성과물이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여기 모인 각국 전시물만으로도 문명을 재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엑스포는 당대 문명의 집대성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산물을 미래 사회에 전하는 역할도 했다. 먼 훗날 사람들이 열어보게 한 ‘타임캡슐(Time Capsule)’이 대표적이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주도해 절정을 맞이한 엑스포 역사에서 타임캡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9년 뉴욕박람회였다. 전기설비 회사인 웨스팅하우스(Westing House)가 타임캡슐 제작과 매설을 맡았다.

6939년 개봉 예약된 1939년 뉴욕박람회 타임캡슐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세워진 조형물의 모습

1939 뉴욕박람회는 미래를 예상한 첫 세계박람회였다. 트릴론(Trylon)과 페리스피어(Perisphere)라는 기념비적인 조형물이 미래를 상징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1939년 뉴욕박람회는 미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운 첫 세계박람회였다. ‘미래 세계 건설’을 주제로 설정해 100년 뒤인 2039년의 미래를 내다봤다. 이전의 박람회가 과거의 성취를 집약했다면, 뉴욕박람회는 동시대 문명의 실체에 대비한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기점으로 엑스포의 흐름은 미래주의로 기울었다.


뉴욕박람회는 전통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자 기존 방식이 남아 있던 마지막 세계박람회였다. 미국은 세계 최대 도시에서 ‘지상 최대의 쇼’를 개최함으로써 미래의 선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20세기 중반 미국이 도달한 과학기술 문명이 미래 세계의 좌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세워진 건축물의 모습

1939 뉴욕박람회에는 당대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미래상을 제시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1939년 4월 30일 일요일 저녁에 열린 개막식은 NBC방송을 통해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에 생중계됐다. RCA가 개발한 기술과 당시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송신탑이 인류의 미래상을 제시한 역사의 현장을 전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개막사에 이어 과학자 대표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우주 광선에 관한 연설을 했다.


박람회장은 생산, 배급, 교통, 커뮤니케이션, 식품, 커뮤니티 관심사, 오락 등 7개 주제별 섹터와 300여 개 전시관에서 미래 세계를 구현했다. 대표적 테마 전시는 2039년 상상 속 미래도시를 예상한 ‘데모크라시티(Democracity)’의 모습을 첨단 전시기법으로 조감한 디오라마 쇼였다. 박람회장을 압도한 전시 콘텐츠는 ‘자본주의의 얼굴’인 미국 기업들이 주도했다.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개최된 타임캡슐 매장식의 모습

1939년 뉴욕박람회의 웨스팅하우스 전시관 앞에서 엑스포 사상 최초의 타임캡슐 매장식이 개최됐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회사를 비롯해 AT&T, IBM, 코닥, RCA, US스틸, 제너럴 일렉트릭 등 쟁쟁한 미국 대기업들이 전시관을 개설해 미래 세계 건설의 주역임을 과시했다. 이들 거대기업은 자신들의 힘을 빌지 않고는 박람회에서 제시하는 찬란한 미래도 없을 것이란 확신을 대중에게 주입했다. 예컨대 GM 전시관은 유선형의 미래형 제트 교통수단 형태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무한 교통의 미래를 영상쇼로 펼쳤다. 


웨스팅하우스 전시관은 첨단 전기설비를 총동원한 빛의 탑을 세웠다. 이 전시관 앞에선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던 1938년 9월 23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먼 미래 세계로 보내는 타입캡슐 매장식이었다.

야구공부터 농작물 씨앗까지, 당대의 산물을 품은 엑스포 최초의 타임캡슐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개최된 타임캡슐 매장식의 위치를 설명하는 지도

위의 지도에서 별도로 표기한 웨스팅하우스 전시관 앞 기념탑 지하에 1939년 뉴욕박람회 타임캡슐이 매장됐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그로버 웨일른 뉴욕박람회공사 회장과 A,W, 로버츠슨 웨스팅하우스 이사회 의장이 역사적인 타임캡슐 매립 테이프를 끊었다. 캡슐 통은 특수 개발된 부식 방지 소재 커팔로이(cupaloy) 비철 합금으로 제작됐다. 직경 22.2cm, 길이 2.3m의 총알 모양 캡슐은 웨스팅하우스 전시관 앞 기념탑 지하 15m에 묻혔다. 개봉일은 무려 5,000년 뒤인 70세기, 6939년으로 설정됐다.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개최된 타임캡슐 매장식의 모습

당대 사회상을 담은 각종 물품이 담긴 1939년 뉴욕박람회의 타임캡슐은 웨스팅하우스 전시관 앞 기념탑 지하 15m에 묻혔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타임캡슐 안에는 만년필, 알파벳 블록, 자명종 시계, 미키마우스 손목시계, 칫솔, 깡통따개 등 당시 시대상을 대표하는 생활용품과 잡지, 신문, 책, 사전, 연감, 뉴스, 영화 등의 각종 간행물이 수장됐다. 유리관에 밀봉한 12개 농작물 씨앗과 섬유·금속·플라스틱 샘플과 같은 원자재 75점도 들어갔다. 수장품은 인류학·역사·과학 등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선정한 뒤, 국립표준원의 내구성 검사를 거쳤다. 


이 밖에 과학·기술·산업·예술·교육 등 각 분야의 현황을 담은 글과 사진을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이를 볼 수 있는 마이크로스코프 기기와 함께 넣었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정보는 한번 읽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리는 방대한 양이다. 수장품 목록과 내용은 한 권의 기록서에 적어 후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개봉 연도의 숫자에 맞춰 6,939명의 시민이 쓴 메시지도 담겼다. 저명인사로는 앨버트 아인슈타인, 192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앤드류스 밀리컨,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만 등 3인의 메시지가 포함됐다. 아인슈타인은 함께 수장된 기록서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시대는 풍부한 발명으로 삶을 편리하게 했다. 우리는 동력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고 고된 노동에서 해방됐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전자파로 전 세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1939 뉴욕엑스포를 맞이해 매장된 타임캡슐 위에 세워진 표지석의 모습

1939년 뉴욕박람회 타임캡슐이 매장된 곳에 세워진 표지석. 타임캡슐은 긴밀히 봉인된 채 6939년에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박람회의 타임캡슐 수장품은 전시관에서 상세 정보와 함께 관람객에게 공개됐다. 타임캡슐이 묻힌 자리엔 표지석을 세우고, 관련 기록물 3,000부를 인쇄해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과 박물관에 배포했다. 표지석엔 “20세기 문명의 기록을 5,000년간 보존하기 위해 웨스팅하우스가 매설한 타임캡슐”이라고 적었다. 


웨스팅하우스는 1939년 타임캡슐에 이어 1964~65년 뉴욕박람회 때 2차 타입캡슐을 제작해 3m 옆에 매설했다. 1965년 타임캡슐에는 성서, 미국 국기, 신용카드, 전자시계, 컨택트렌즈, 냉동식품, 비키니 수영복, 자동카메라 등 일상용품 18점, 원자력에너지와 같은 과학적 성취물 25점, 16㎜ 마이크로필름, 각종 소리 녹음테이프 등이 수장됐다.


참고로 1964~65년 뉴욕박람회는 관람객 수 5,1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성대한 행사였으나 미국 정부와 BIE의 갈등 탓에 공식 엑스포로 승인받지 못했다. BIE는 세계박람회 개최 기간을 같은 연내 6개월 이내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상업성을 앞세워 2년에 걸쳐 2개 시즌 개최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1970년 오사카엑스포의 일본판 타임캡슐

1970 오사카엑스포에서 매장된 타임캡슐의 모습

일본 오사카성 앞에 매장된 1970년 오사카엑스포 타임캡슐

웨스팅하우스 타임캡슐에 이어 일본판 타임캡슐도 등장했다. 아시아의 첫 엑스포였던 1970년 오사카엑스포 때 매장한 타임캡슐이다. 제작 및 매장 방식은 미국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지하 15m에 묻고 5,000년 뒤 개봉하도록 한 방식도 같다.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과 마이니치신문이 일본판 타임캡슐 프로젝트를 공동 주관했다.

미국과 다른 점은 똑같은 캡슐 2개를 위아래로 나란히 매장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5,000년 뒤인 6970년에, 다른 하나는 2000년부터 100년 간격으로 개봉하도록 했다. 캡슐은 직경 1m, 높이 1.3m로 미국 것보다 통통한 실린더 컨테이너 형태다. 내부엔 29개 용기에 시계, 전자기기, 옷, 예술품 등 각종 기록물 2,098점을 담았다.


휴대용 라디오, 가계부, 우주식량, 위 내시경 등 미국 타임캡슐에 담기지 않은 물품도 새롭게 넣었다. 타임캡슐은 마쓰시타 전시관에 공개된 뒤 엑스포 폐막 후 1971년 1월 관광명소인 오사카성 공원에 매장됐다. 일본 정부는 애초 계획대로 캡슐 2개 중 상부 캡슐을 2000년 4월 개봉해 보존상태를 검증한 뒤 다시 매장했다. 다음 개봉 시기는 2100년이다.

원조 ‘타임캡슐’은 따로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타임캡슐 안에 들어 있던 소장품의 모습

엑스포에서 매장된 타임캡슐뿐만 아니라 이와 동일한 의미를 담아 매장된 당대의 기록물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물론 한 시대의 단면을 후대에 보낸다는 아이디어는 1939년 뉴욕박람회 타임캡슐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 물품을 전달하면서 수장 기록은 남기지 않거나 유실된 일이 많았다. 예컨대 2014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의사당 보수공사 중 발견된 청동제 함이 그런 경우다. 이 용기는 1795년 새무얼 애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건국 초기 자료를 매장한 것이었다. 여기엔 동전과 신문, 글을 새긴 은·구리판 등이 들어 있었다. 60년 뒤인 1855년 추가로 물품을 넣은 뒤 재매장됐는데, 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채 묻혀 있던 것이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1년 2월 9일 서울 정동 옛 배재학당 건물 철거 과정에서 발견된 청동제 함 ‘아펜젤러 타임캡슐’이다. 주춧돌 밑에 묻혀 있던 가로 28.5cm, 세로 16.5cm, 높이 10cm의 함이었다. 안에는 신약전서·찬송가 합본 1권, 동전 100냥, 10엔 일본 금화, 배재학당 이사·졸업생·재학생 명부, 학칙, 생도 수첩, 1932년 10월 22일자 <동아일보> 등이 들어 있었다. 함을 묻은 기록은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의 1887년 8월 6일자 일기에 있었으나 찾지 못하다가 114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내용물 검토 결과 1887년 묻은 함을 1932년 10월 대강당 준공 때 열어 수장품을 더 넣은 뒤 다시 묻은 것으로 판명됐다.

2030 국제박람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의 야경 모습

2030년 엑스포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 역시 최근의 다른 엑스포와 마찬가지로 타임캡슐을 매장할 계획은 없지만,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시대 정신을 다룰 예정이다

이처럼 타임캡슐 기능을 한 유물은 있지만, 세계 최초 타임캡슐을 1939년 뉴욕박람회 것으로 보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보존 장치와 수장품, 매장 위치, 공법 등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명확히 남긴 데다, 엑스포 무대에서 이뤄진 당대 문명의 대표성과 역사적 의미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타임캡슐’이란 말 자체가 당시 뉴욕박람회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하지만 오사카엑스포 이후 현대 엑스포에선 더 이상 타임캡슐 매장은 없었다. 


2030년 개최를 추진 중인 부산엑스포도 타임캡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타임캡슐은 엑스포를 떠나 세계 각국에서 이벤트 행사로 성행했다. 한국에서도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학교 등에서 크고 작은 여러 타임캡슐을 매설했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가 엑스포에서 유래한 뒤 별개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타임캡슐은 엑스포를 통해 처음 등장하긴 했지만, 현대의 유산을 미래의 후손에게 보낸다는 본래 의미는 변질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부산엑스포는 유치·개최만으로도 우리 후손에게 타임캡슐 못지 않게 많은 것을 남길 것이다.



글. 오룡(칼럼니스트)

언론인 출신 작가, 번역·집필가로 인문학·문화·역사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인류문명의 쇼케이스가 돼온 엑스포 역사에 매료돼 온갖 산물의 미시사를 탐구하고 정리했다. 서강대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한겨레신문 기자,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 국제평화재단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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