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현대자동차
터보스피드 예측제어(Virtual Turbospeed Control, 이하 VTC)는 터보차저를 최적으로 제어해 엔진 성능을 극대화한 기술이다. 터보차저는 대기 중 공기를 압축 시켜 엔진 연소실에 강제로 주입해 엔진 성능을 향상시키는 장치로, 보통 고성능 차량에서 더 큰 출력을 내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이처럼 고성능차의 필수 장치인 터보차저도 고지대와 산길에서의 와인딩 주행에서는 평소 기량을 발휘하는데 제약이 따를 수 있다. 대기압이 부족한 환경에서 압축 공기 생성을 위해 터보차저가 무리하게 작동하면 장치 내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터보차저 작동이 일부 제한되기 때문이다. 즉, 평소보다 엔진의 실제 최고 성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반면, 현대차가 새로 개발한 VTC는 기압이 낮은 고지대에서 엔진 성능을 크게 제한하던 기존 터보차저 제어시스템의 단점을 극복했다. 모델예측제어(Model Predictive Control, 이하 MPC)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주행 변수를 반영해 터보차저의 작동 조건을 예측, 선제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이다. 즉, 터보차저의 현재 작동 상태와 주행 조건 등 다양한 변수를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해, 장치 내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까지 엔진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터보차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대차 i20 N 은 VTC 기술이 적용된 덕분에 1,750 ~ 4,500rpm에 달하는 넓은 엔진 회전 영역에서 최대토크 28.0kg·m를 발휘한다. 특히 오버부스트가 활성화된 주행 모드(N모드)에서는 VTC가 터보차저 제어를 극대화해 2,000~4,000rpm 구간의 최대토크가 31.0kg·m까지 높아진다. 최대토크가 높아지면 차량의 응답성 뿐만 아니라 가속 성능도 향상된다. 토크는 엔진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VTC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MPC 기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 MPC 기술이란 수집한 데이터를 예측 모델에 입력하고 해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해 이를 제어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VTC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운동선수의 기록 신장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신체 능력상 최대 7.0m 기록이 가능한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평소 기록은 6.0m 수준에 머무른다. 기후 및 외부 조건 영향도 있겠지만 스스로 부상 등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가 크다. 그러나 VTC 기술과 같이 선수의 컨디션, 경기장 조건 및 측정 기록 등을 분석한 뒤 6.8m 기록이 가능한 최적 자세를 제안하고 이를 수행한다면, 부상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며 기존 성적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MPC 기술은 운전에도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은 이미 MPC와 같은 원리로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주행 정보, 차량 흐름 등을 바탕으로 도로 상황을 예측하고 조향, 가속 및 감속, 가야 할 경로 등을 결정한다. MPC의 원리도 이와 동일하다.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는 센서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예측 모델에 입력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최적의 제어를 수행한다.
그동안 MPC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지만 시스템 응답속도가 빠르지 않고 제어기의 연산량 제약이 적은 정유, 석유화학 등 화학공정제어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관련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MPC 기반 제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미 로봇제어,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 자율주행, 항공우주, 빌딩통합에너지제어, 스마트그리드, 금융공학 등 제어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MPC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GPS,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 등 센싱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작동 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고품질의 데이터가 늘어나고, CPU 성능이 향상돼 이런 대량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한편, 이전까지 자동차 분야에서는 MPC를 적용한 사례가 드물었다. 주행 환경, 운전 조건 등 제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다양해 실시간 연산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MPC의 제어 효과가 낮은 편이라 평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료량, 공기량, 배기압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엔진제어 시스템(EMS, Engine Management System)이 고도화됨에 따라 현재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MPC 모델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면서 MPC 기반 기술 적용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i20 N에 적용한 VTC는 MPC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을까? MPC의 터보차저 제어 방법을 알아보기에 앞서, 터보차저의 작동 원리를 먼저 살펴보자. 터보차저는 고온·고압으로 배출되는 배기가스의 에너지를 이용해 대기 중 공기를 압축시켜 엔진 연소실에 강제로 밀어 넣는 장치다. 배기가스가 지나가는 통로에 바람개비(터빈에 장착된 임펠러)를 달아 회전하게 하고, 이 바람개비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 또 다른 바람개비(컴프레셔에 장착된 임펠러)가 회전하게 되면서 외부 공기를 세차게 빨아들여 압축시킨 뒤 엔진 연소실에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다. 이때 엔진 연소실에 주입된 공기량에 맞춰 연료량을 적절히 혼합하면, 엔진 배기량이 늘어난 효과가 생기며 엔진 성능이 크게 증가한다.
한편, 임펠러의 회전 속도(터보스피드)는 터빈을 통과하는 배기가스의 양으로 제어한다. 많은 양의 배기가스가 지나가면 임펠러가 빠르게 회전하고, 적은 양의 배기가스가 통과하면 느리게 회전한다. 만약 터보스피드가 필요 이상 빠르면 유입되는 배기가스의 양을 조절하는 밸브(웨이스트게이트)를 열어 터보스피드를 낮출 수 있다.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이 터보를 정밀하고 정교하게 제어하기 위해서는 터보스피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지만, 기존의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은 엔진에 유입되는 공기의 양이나 압력(이하 부스트압)만을 계측해 터보스피드를 추정했다. 임펠러에 센서를 부착하면 정확한 터보스피드를 파악할 수 있지만, 고온·고압의 배기가스가 지나가는 가혹한 환경으로 인해 센서의 내구성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양산차에서는 터보스피드 계측 센서를 실제 적용한 사례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터보차저의 임펠러는 1분에 최대 20만 번(200,000rpm) 내외로 회전하고, 이를 크게 넘어설 경우 파손될 수 있다. 따라서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은 임펠러의 내구성이 담보되는 한계 이하에서 터보차저를 최적으로 제어하며 엔진 성능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스트압으로만 터보스피드를 추정하는 기존의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은 이를 최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웠다. 차량을 운행할 때 발생하는 외부 변수로 인해 부스트압 계측으로 얻은 터보스피드 추정값과 실제 터보스피드의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 기압이 낮은 고지대에서 차량을 운행할 경우에는 저지대보다 부스트압이 낮게 형성되며, 저지대와 동일한 부스트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임펠러가 더 많이 회전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저지대에서 부스트압 1.0바(bar)를 형성할 때 터보스피드가 210,000rpm인 터보차저라면, 기압이 낮은 고지대에서는 똑같이 부스트압이 1.0바여도 실제 터보스피드는 210,000rpm을 상회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외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터보차저를 제어하면 기압이 낮은 주행 환경에서 터보스피드가 설계 허용 한계를 벗어나 파손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기존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에서는 차량이 고지대를 주행한다고 판단하면, 평상시보다 터보스피드를 더 많이 제한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일부 엔진 성능이 감소할 수 있었다.
현대차는 기존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MPC를 활용한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인 VTC를 새롭게 개발하고 고성능 모델 i20 N에 적용했다. VTC는 부스트압 뿐만 아니라 연료량, 공기량, 배기압 등 다양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예측 모델로 분석해 보다 정확한 터보스피드의 값을 구한다. 또한 다양한 외부 변수를 반영한 짧은 미래(약 1초)의 제어 결과(터보스피드, 엔진 출력 등)를 예측하고 터보스피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웨이스트게이트를 조정하는 등 터보차저를 선제적으로 제어한다.
예컨대 VTC에서 약 1초 뒤 터보스피드가 설계 허용 한계를 벗어날 것으로 판단하면, 웨이스트게이트 밸브를 열도록 명령을 내려 터보차저로 유입되는 배기가스량을 조절해 터빈의 회전 속도를 낮춘다. 무엇보다 VTC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터보차저 제어 시스템과 달리 터보차저가 파손되지 않도록 내구성을 담보하면서 엔진의 성능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 엔진 성능을 보장하고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하는 고성능 모델 i20 N에 VTC를 적용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차는 엔진의 한계 성능을 높여주는 VTC 기술을 향후 다른 차종에도 적용 검토 중이다. 이는 고성능 N 모델 개발을 통해 얻은 경험 및 기술력을 바탕으로 베이스 모델에 ‘운전의 재미’라는 주행 감성을 강조하고, 성능 개발에도 기여한다는 N의 철학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또, 고성능 차량 뿐만 아니라 ‘전기차 열관리 통합제어’, 차량 속도를 도로 상황 예측에 맞게 제어해 연비 효율을 높이는 ‘예측 크루즈 제어’ 등 친환경차 및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도 MPC 기반 제어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기술자문: 전동화제어개발실 김치경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