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연구실에 입고된 기아 EV6 소음 연구실에 입고된 기아 EV6

2021.07.23 현대자동차 분량6분

조용한 전기차에 소리를 입히다 전기차 가상 사운드 디자인 기술

전기차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내연기관차 대비 뛰어난 정숙성에 놀란다. 반면 내연기관차의 주행 사운드에서 오는 즐거움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기차의 정숙성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기차에서도 액티브한 주행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을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다양한 장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운행 중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성, 출발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모터의 힘을 발휘하는 우수한 동력 성능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조용하고 매끄럽게 회전하는 전기모터 덕분에 실내로 전해지는 소음·진동(NVH: Noise, Vibration, Harshness)이 현저히 적다. 전기차의 이런 특징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에 비유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전기차의 정숙성을 생소하게 느끼는 운전자도 있다. 조용한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는 주행 사운드가 매우 작게 들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이 자칫 지루하게 여겨질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실내에서 주행 사운드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기차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ctive Sound Design, 이하 e-ASD)’ 기술을 개발했다. 전기차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 소리로 구현한 해당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전기차 소음·진동 특성, 내연기관차와 다른 이유

자동차 실내에 소음 유입을 시각화한 그림

전기차에 사운드 기술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아무리 조용한 전기차라도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음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자동차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바로 엔진과 변속기를 비롯한 파워트레인 소음, 공기의 저항으로 발생하는 풍절음, 타이어가 노면 위를 구르며 전달되는 노면 소음이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에서 들리는 소음의 비중을 분석한 결과, 내연기관차의 경우 엔진 소음이 실내에 전달되는 소리 중 50%를 차지하고, 노면 소음이 30%, 풍절음과 차량 시스템 소음이 각각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기차는 대부분의 소음이 노면 소음(40%)과 풍절음(30%)으로 구성된다. 전기모터 소음은 단 15%에 불과했다.

이는 전기차 소음의 양면을 보여준다. 엔진 대신 모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조용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엔진의 부재로 인해 더 많은 환경 소음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전기차에 더욱 정교한 소음 저감 기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청각적 요소를 통해 운전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엔진 사운드를 통해 현재 주행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주행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의 변화로 가속 및 감속, 현재 속도 등의 주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차의 경우 가속 시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 입장에서는 가속감을 느끼기 힘들다. 움직임이 청각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만 운전했던 사람에게는 낯선 경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음 유일 비율 분석 그래프

보행자에게도 전기차의 소리는 낯설기 마찬가지다. 길을 걸을 때, 뒤에서 서행하는 전기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는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관계 법령에서는 소리를 외부로 발생시켜 차량 주행을 주변 보행자에게 알리는 ‘가상 엔진 사운드시스템 (Virtual Engine Sound System, VESS)’을 전기차에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조용한 전기차,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움으로 재탄생하다

사운드 연구에 몰입한 연구원의 모습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가속 시 발생하는 진동과 소리를 조화롭게 조율해 차량의 동력 성능과 어울리는 주행 사운드를 만들어왔다. 내연기관차에 적용한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Active Sound Design, 이하 ASD)’ 기술이 바로 그 예다. ASD는 엔진 사운드와 실시간으로 디자인한 가상 사운드를 결합해 차량 성격에 어울리는 입체적인 사운드를 연출하는 기술이다. 가령 고성능차에선 주행 시 강렬함이 느껴지도록 소리를 구현하고, 럭셔리 세단에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소리를 연출한다.

이러한 기존의 주행 사운드 기술에 전기차의 특성을 담아 영역을 확장한 것이 바로 e-ASD 기술이다. 무엇보다 e-ASD는 가상의 주행 사운드를 다양한 콘셉트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엔진 사운드를 활용해 한 가지 테마만 구현하는 ASD 기술과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동안 일부 전기차 제조사에서 구현한 전기차 가상 사운드는 여러 이유로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먼저, 엔진회전수에 연동한 파형 생성법을 전기차에 적용한 사례가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기존 내연기관차의 ASD 기술과 동일한 원리를 사용한다. 이 방법은 우리 귀에 익숙한 엔진 사운드 외에는 전기차 고유의 색다른 소리를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일부 제조사에서는 각 RPM 구간별로 녹음한 엔진 사운드를 활용해 전기차의 가속 상황에 맞춰 재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엔진회전수를 영역별로 구분해 각기 따로 녹음한 사운드를 연이어 재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구간별로 단절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제작된 가상 사운드는 가속 페달을 조작할 때 들리는 소리의 변화가 둔감하고, 개성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기 어렵다.

사운드 연구 관련 기계를 조작하는 연구원의 손 동작

이와 같은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차그룹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은 실시간으로 가상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래뉼라 신디시스(Granular Synthesis)’ 방식을 도입했다. 그래뉼라 신디시스는 소리를 매우 작은 단위로 분해한 후, 짧은 소리를 모아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음향 합성 기술이다. 미세한 사운드를 배열하고 가공 및 재조합해 밀도 높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원리로 전자음악에 사용되는 기술과 동일하다. 디제이가 여러 음악을 섞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이 자동차의 각종 신호를 이용해 전기차 고유의 사운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래뉼라 신디시스 방식을 적용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사운드는 음색을 여러 갈래로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기존의 엔진 사운드와 비슷한 소리, 우주선이 이동하는 듯한 미래의 소리 등 다양한 테마의 주행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다.

선호도 높은 사운드 디자인과 사용자 맞춤형 기능

기아 EV6 사용자 사운드 설정 화면


운전자가 주행 속도에 맞춰 파워풀한 음색을 느낄 수 있는 점도 e-ASD의 특징 중 하나다. e-ASD는 주행 상황에 적합한 가상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모터의 RPM과 주행 부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최적화된 사운드와 음량을 결정한 뒤, 이를 탑승자에게 전달한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선호하는 음악 장르를 즐겨 듣고, 이퀄라이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소리로 튜닝하기도 한다. 소리는 감성의 영역으로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e-ASD를 개발한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이 우선적으로 고민한 것은 바로 ‘어떤 소리가 자동차 소리로 적합한가’였다.

달리는 자동차의 현장감을 충분히 전달하면서 심리적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려면 대중적이면서도 친숙한 소리를 재생해야 한다. 따라서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은 고객 취향을 고려하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사운드를 완성하기 위한 개발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먼저 사운드 디자이너가 수백 가지 소리를 선행 개발한 후, 사용자 설문 조사와 전방위적인 평가를 거쳤다. 이후 다양한 나라의 사용자가 선호하는 사운드를 찾는 과정을 통해 사운드 디자인을 보다 구체화했다. 마지막으로 이를 실제 차량에 적용해 주행 상황에 최적화된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사운드 조율 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서는 내연기관차에 가까운 엔진 사운드에 높은 호감을 보이고, 국내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느낌의 사운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국가별로 선호하는 사운드 테마가 다르다는 조사 결과는 현대차그룹이 최초로 e-ASD 기술을 적용한 기아 EV6에 반영됐다. 스타일리시, 다이내믹, 사이버 등 총 3가지 테마의 사운드를 차량에 기본 적용해, 운전자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보통 한 가지 사운드 테마만 차량에 구현한 타사 전기차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한 기아 EV6 사운드 테마 3가지

EV6에 구현된 e-ASD 사운드 테마 3가지 들어보기

스타일리시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전기차 사운드로 자연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존 내연기관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전기차 특유의 사운드가 스타일리시의 핵심 매력이다. 다이내믹은 내연기관차의 강렬한 엔진 사운드를 전기차에 맞게 재해석해 기아의 역동적인 브랜드 DNA를 전달한다. EV6의 고성능을 감성적으로 재현한 점에서 뚜렷한 존재감이 드러나는 사운드다. 마지막으로 사이버는 새롭고 창의적인 사운드 디자인으로 마치 미래 비행 물체가 이동하는 듯한 소리를 구현한다. 사용자는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전기차 고유의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아울러 e-ASD는 보다 개인화된 맞춤형 설정 기능도 제공한다. 사용자는 사운드 볼륨을 <낮음-보통-높음> 세 가지로 조절하거나 필요에 따라 소리를 완전히 끌 수도 있다. 또한 가속 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볼륨 및 음색이 변화하는 정도를 직접 설정하는 ‘가속 페달 사운드 반응’ 기능도 지원한다. 가령 e-ASD 설정 메뉴에서 ‘사운드 반응 빠르게’ 를 선택하면 가속 페달을 적게 밟아도 음색이 가파르게 변화해 보다 역동적인 사운드 피드백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사운드 반응 느리게’ 옵션을 설정하면 음색이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변화해 안정적인 사운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운전자는 이런 사운드 반응을 통해 청각적 주행 정보를 더욱 효과적으로 체감하고, 나아가 운전 몰입도까지 높일 수 있다. 

사운드 수집을 위한 마이크 모습

내연기관차에서는 실내에 유입되는 모든 소리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e-ASD는 단순히 소음을 줄이는 방법에 머무르지 않고, 전기차에 걸맞은 새로운 사운드 구현으로 정숙한 실내 환경 조성은 물론 사용자 경험까지 확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현대차그룹은 고객의 감성을 반영하고 미래 환경에 걸맞은 신기술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