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김포 간 한강 하저를 통과하는 터널 조감도 파주-김포 간 한강 하저를 통과하는 터널 조감도

2023.03.31 현대건설 분량5분

자연에서 배운 스마트 기술, 터널 공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현대건설의 TBM 공법

터널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해 인간의 영역을 넓혀주는 위대한 기술입니다. 산을 뚫고 강과 바다를 건너며,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기에 터널 공법은 그 자체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자 21세기 최첨단 기술의 백과사전입니다. 현대건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 건설 기술로 터널을 뚫고 있습니다. 어떤 터널도 안전하고 빠르게 뚫는 거대한 드릴, 현대건설의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파주-김포 간 한강 하저를 통과하는 터널의 조감도로 차량이 달리고 있다.

현대건설은 2.98km에 달하는 구간을 한강 밑을 가로지르는 터널로 조성 중이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33개의 교량(고덕대교(가칭) 포함) 중 현대건설이 건설한 것이 몇 개인지 아시나요? 정답은 무려 14개. ‘가장 많은 한강다리를 건설한 회사’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대건설은 또 하나의 새로운 한강 도로를 건설 중입니다. 그런데 15번째 한강 횡단 도로는 강물 위의 다리가 아닙니다. 강물 아래 ‘터널’입니다. 

국내 최초로 한강 하저를 관통하는 도로터널인 ‘한강터널’ 공사. 현대건설이 맡고 있는 ‘고속국도 제400호선 김포~파주 간 건설공사 제2공구’ 6.734km의 왕복 4차로 구간(김포 하성면 마곡리~파주 연다산동) 중 한강 밑을 통과하는 터널 구간은 2.98km나 됩니다. 흙 두께가 얇고 수압은 높은 데다 복합지반으로 이뤄져 고난도 현장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이 강 아래 불안정한 지반에 터널을 뚫기 위해 현대건설이 채택한 공법이 TBM(Tunnel Boring Machine)입니다. 

현대건설 한강터널 공사에 실제 쓰이고 있는 TBM의 거대한 원형 헤드 모습

현대건설 한강터널 공사에 실제 쓰이고 있는 TBM의 전면 헤드

자연을 모방해 탄생한 TBM 공법

화약을 터뜨린 후 땅을 파내는 보편적인 터널 시공 방식과 달리 TBM은 원통형의 거대한 강철 굴착기를 회전시켜 땅을 파쇄해 나가며 터널을 만듭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심각한 교통 체증을 해결할 방편이자 화성에 지하 도시를 구축할 도구 중 하나로 ‘터널’을 꼽았는데요. 그가 선택한 터널 공법도 TBM입니다. 2016년 스페이스X와 함께 ‘더 보링 컴퍼니(The Boring Company)’라는 회사를 세우기까지 했죠. 

배좀벌레조개가 나무를 갉아 구멍을 뚫고 들어가고 있다.

나무 선박을 갉아먹는 배좀벌레조개에서 영감을 얻은 TBM 공법

진화한 터널 공법으로 여겨지는 TBM은 스마트 건설 기술의 하나지만, 그 태생은 ‘자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TBM 공법은 1812년 공학자 마크 브루넬이 ‘배좀벌레조개’를 보고 얻은 힌트에서 탄생했습니다. 어려운 이름의 이 조개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앞부분만 조개껍데기로 덮여 있고 나머지는 흐느적거리는 긴 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배좀벌레조개는 앞부분의 단단한 껍데기를 드릴처럼 회전시켜 나무에 구멍을 뚫습니다. 동시에 갉아낸 나무 부스러기를 삼킨 뒤 몸 뒤쪽으로 밀어 내보냅니다. 체액이 섞인 이 부산물이 배출되어 구멍 벽에 닿으면 시멘트를 바른 듯 굳어서 구멍을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얻은 영감으로 TBM 공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굴착과 동시에 터널을 짓는 공법으로 패러다임 전환

TBM 장비가 앞으로 굴진하고 있다.

TBM 장비가 앞으로 굴진하는 모습

TBM 공법의 작동 원리는 배좀벌레조개처럼 일사불란합니다. 일단 기차보다 큰, 터널 크기만 한 원통형의 회전식 강철 굴착 장비를 이용해 땅을 긁으며 파고들어 갑니다. 이때 지반을 파면서 나오는 암석이나 토사(버력)는 TBM에 연결된 슬러리(Slurry: 흙에 물이 많이 섞인 일종의 흙탕물) 배관을 통해 지상으로 운반됩니다. 이와 동시에 파낸 벽면에 ‘세그먼트’라 불리는 콘크리트 블록을 부착해 터널을 만들어 나갑니다. 터널의 굴착부터 구조체 시공, 토사 배출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어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죠. 이전 공법과 가장 큰 차이는 굴착과 동시에 터널 공사가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TBM 장비의 작동원리를 설명한 이미지

TBM 공법 작동 원리

배좀벌레조개가 나무에 구멍을 뚫는 모습 그대로지만, TBM은 흔히 ‘두더지 공법’이라고도 불립니다. 빠르고 가열차게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알아서 척척 터널을 파기 때문입니다. 현대건설의 한강터널 공사 현장의 TBM에 붙은 이름도 ‘두더지’입니다. 현대건설과 한국도로공사가 지난 7월부터 2개월간 ‘네이밍 공모전’을 실시한 결과, 친숙한 이미지의 ‘두더지’가 채택되었고 ‘두 배 더 안전한 지하 터널’이라는 의미까지 담게 되었습니다. 

현대건설 TBM 장비에 ‘두더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두 배 더 안전한 지하 터널’이란 의미의 ‘두더지’

소음, 진동 없이 빠르고 안전하게 시공되는 한강터널

현대건설의 한강터널 공사 현장에 투입된 ‘두더지’는 압도적 크기를 자랑합니다. 지름이 14m로 아파트 6층 높이에 달하고, 길이는 125m로 축구장 길이를 훌쩍 넘습니다. 무게는 3,200톤에 이릅니다. 국내 최대 구경이자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규모입니다. 

한강터널 공사에 투입된 TBM 규모를 나타낸 이미지

한강터널 공사에 투입된 TBM 규모

거대한 크기의 장비가 작동하지만 TBM 공사 현장은 타공이 아닌 압력으로 땅을 으깨 나가기 때문에 엔진음 외에는 소음이나 진동이 거의 없는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도심지에서 지하 터널을 개발하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지반 조건을 극복하기에 적합합니다. 도심지 터널 공사의 특성상 소음과 진동, 안전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화약을 사용하는 발파 공법에 비해 TBM 공법은 소음과 진동이 획기적으로 저감되고, 굴착된 토사나 암반도 분진 없이 배출돼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높습니다. 

한강터널의 굴진을 시작한 TBM 내부 사진이다.

한강터널의 굴진을 시작한 TBM 내부 모습. 일반 터널 공사와 달리 소음, 분진, 진동이 거의 없다

또한 굴착과 동시에 세그먼트를 설치해 터널 내벽을 만들기 때문에 안정적입니다. 원통형 실드(Shield) 자체도 지지대 역할을 하고요. 발파 공법에 비해 굴진 속도가 빨라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생산성도 높아 효율적입니다. 토사부터 연암, 경암 등 다양한 지층에 적용할 수 있고, 지하 수압이 높은 지반에서도 안전하게 시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한강터널의 굴진을 시작한 TBM의 공사 시작 사진.

고속국도 제400호선 김포~파주 간 건설공사 제2공구의 한강터널 구간. TBM 장비의 헤드를 대고 있는 부분이 터널 초입이다

기술력이 이끄는 스마트 터널 시공 현장

현대건설의 TBM 공법이 주목받는 다른 이유는 스마트 건설 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건설은 TBM 장비에 대기압 커터 교체 시스템, 디스크 커터 모니터링 시스템, 커팅 휠 마모 감지 센서, 전방 탐사 시스템, 막장 관측 카메라 등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안전성과 시공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대기압 커터 교체 시스템은 최근 개발된 기술로 국내에서는 처음 적용됐습니다. 굴착을 계속하다 보면 땅을 으깨는 전면의 디스크 커터가 마모되거나 손상됩니다. TBM에는 71개의 디스크 커터가 장착돼 있는데 핵심 부품인 만큼 마모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서 교체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헤드 뒤편 ‘챔버’라는 공간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교체해야 했습니다. 수압이 높은 구간에서는 전문 잠수부를 투입해 교체해야 할 만큼 위험한 작업이었는데, 이제는 챔버에 들어가지 않고 밖(일반 대기압 상태)에서 교체 작업이 가능해져 빠르고 안전합니다. 거기에 더해 디스크 커터에 센서를 장착해 회전과 온도를 감지해 실시간으로 손상 정도를 측정하는 시스템도 적용해 안전 확보는 물론 공정 효율 개선도 기대됩니다. 

한강터널 TBM에 적용된 스마트 건설 기술을 나타낸 인포그래픽

이와 함께 현대건설은 세계 최초로 ICT 기술을 접목시켜 운전자가 TBM 장비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TADAS(TBM 통합운전관리 시스템: TBM Advanced Driving Assistance System)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TADAS는 굴착 중 생성되는 데이터에서 지반 정보와 장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커터헤드의 회전 속도나 굴진추력 등 가장 적합한 운전 방법을 제시하는 기술입니다. 이로 인해 운전자의 숙련도에 따른 장비 손상 우려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공기 단축은 물론 원가 절감 효과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한강터널 현장 TBM 내에서 ICT 기술을 접목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한강터널 현장 TBM 내 모니터링 시스템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스마트 공법

‘국내 최초의 한강 하저 도로터널’, ‘최대 구경의 TBM 규모’ 등 이번 한강터널 공사는 여러 면에서 처음’ 시도되지만, 현대건설은 TBM 시공 노하우는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최초로 진동 없는 굴착 방식인 TBM 공법이 쓰인 곳은 1989년 착공된 ‘남산1호 터널 쌍굴’입니다. 일찌감치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해 TBM 활성화에 기여해온 현대건설은 ‘남산1호 터널 쌍굴’을 비롯해 지금까지 국내외 26개 TBM 터널을 시공했습니다.  

현대건설의 대표적 TBM 공사 프로젝트를 나타내고 있는 표

특히 싱가포르의 ‘남북 전력구 터널’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입니다. 싱가포르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총연장 40.2km의 전력구 터널로 길이도 지하철 터널에 비해 약 2배 깊고 구간별 연장도 길어서 공사의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현대건설은 이중 NS3 구간을 시공했습니다. 각종 업무 시설이 밀집돼 있는 싱가포르의 도심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공사에 더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직경 7m의 TBM 3대를 가동하면서 다른 회사가 시공하는 공구보다 가동률을 약 149% 높였습니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싱가포르 남북 전력구 터널의 내부 모습 사진

현대건설이 시공한 싱가포르의 남북 전력구 터널. 싱가포르 전력공사로부터 2년 연속 ‘최우수 시공사’로 선정되었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한강 하저 터널로 차들이 달리고 있는 것을 나타낸 조감도

현대건설의 이런 경험이 응집되어 구현될 한강터널은 2026년 12월 완공 예정입니다. 터널이 완공되면 현재 일산대교를 이용해 김포(하성면 마곡리)에서 파주(연다산동)까지 40분가량 걸리던 시간을 4분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10분의 1 수준이죠. 이와 함께 기존 제1외곽순환 고속도로 교통 혼잡은 물론, 수도권 서북측으로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연에서 찾아낸 과학의 원리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인류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해왔습니다. 배좀벌레조개에서 시작된 TBM 공법은 ICT와 접목한 스마트 공법으로 삶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강 하저를 관통하는 첫 번째 도로터널인 한강터널 시공으로 새로운 건설 히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현대건설은 TBM 공법의 효율성을 더 높이기 위해 특허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존 공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대건설은 스마트한 건설 기술 개발에 앞장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