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7 이노션
트렌드는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태어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리오프닝(Reopening)’ 그리고 ‘경기 침체(Economic Downturn)’라는 거대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가운데, 이노션은 이 속에서 5가지 주목할 만한 키워드를 도출해냈습니다. 팬데믹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든 것과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사회적 거리두기 제한 조치 해제가 가져온 달라진 일상. 또, 경기 불황 속에서도 슬기롭게 생존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를 만나봅니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만큼 감염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비대면’은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온라인 강의나 재택근무는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았습니다. 많은 혼란을 불러오긴 했지만 팬데믹이 부정적인 경험만을 남긴 것은 아닙니다. 예전엔 상상조차 못한 라이프스타일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는 이 현상을 ‘두 번째 지구 생활’이라 정의했습니다.
사회적 만남 등에 시간을 덜 소비하게 되면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늘어난 것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MBTI 성격유형 검사 같은 것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것이나, 적은 비용으로 혼자서도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클래스101’ 같은 플랫폼의 등장이 이것을 대변합니다. 또, 오프라인 모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가족∙친구∙직장 중심의 인간관계는 성별∙국적∙직업을 초월한 관심사 및 취향 중심의 관계로 그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며 도심보다는 집 근처의 맛집이나 공원 등 로컬에서 보다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새로운 변화입니다. 로컬 상권만의 매력이 널리 알려지고 당근마켓·번개장터와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이 크게 성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행되었지만 재택근무 그리고 워케이션(Workcation, 일을 뜻하는 ‘Work’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은 소멸 위험에 놓인 지방 소도시를 활성화하는 훌륭한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음에도 많은 IT 회사들이 워케이션을 장려하고 있으며, 부산∙강원∙전남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직장인을 유치하기 위한 워케이션 인프라를 구축 중입니다.
‘핫 플레이스’ 하면 성수동이나 삼각지 같은 특정 지역이나 유명 카페, 맛집, 쇼핑몰 등이 주로 언급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핫 플레이스에 ‘팝업 스토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났습니다. 팝업 스토어가 아예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 운영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세일즈 프로모션 차원에서 무료로 샘플을 나눠주고 호객행위를 하는 가판대 같은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더 재미있고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익선동의 ‘팰리세이드 하우스’, 청담동과 부산 해운대 등에 위치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성수동의 ‘디올 성수’ 등이 대표적인 팝업 스토어. 이중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운영했던 팰리세이드 하우스는 팰리세이드 차량의 프리미엄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조성해 방문객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또,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 전시를 열고, 굿즈 판매를 진행하고 있죠. 디올 성수에서는 새로운 시즌의 콜렉션 제품과 함께 이곳에서만 구매 가능한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팝업 스토어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생겨나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트렌드의 바로미터처럼 여겨집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억눌린 오프라인 경험을 한껏 충족시켜준다는 점도 팝업 스토어를 방문케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이후에는 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마치 신기루나 한정판 제품처럼 희소한 가치가 있는 셈이죠. 때문에 소비자들은 오로지 이 장소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오픈런’이나 오랜 기다림도 불사합니다.
이노션은 앞으로 팝업 스토어를 선택하는 브랜드가 더 많아질 것이며, 디지털 연결성이 강조되는 등 팝업 스토어의 형태가 다양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식음료(F&B) 사업에 하나 둘 뛰어들면서 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루이비통, 구찌 등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레스토랑이나 카페 같은 미식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매장 내 유명 커피숍이나 외식 프랜차이즈를 입점시키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직접 운영에 참여해 메뉴를 개발하고, BI와 고유 컬러를 입힌 식기·소품·제품을 인테리어와 엮어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게 특징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럭셔리 브랜드의 F&B 매장이 ‘힙한’ 트렌드를 좆고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MZ 세대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공간인 만큼 가격대가 상당히 높은 편임에도 대부분의 매장들은 예약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 예로 2022년 3월 구찌가 서울 한남동에 오픈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Gucci Osteria da Massimo Bottura)’의 경우 한 달 치 예약이 오픈 20분 만에 전부 마감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간 럭셔리 브랜드는 VIP 고객에 초점을 맞춰 보수적인 마케팅을 전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오프라인 문화 소비가 크게 늘었고, 럭셔리 브랜드들은 다양한 세대의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기 위해 브랜드 경험 극대화에 초점을 둔 오프라인 공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의상∙액세서리∙향수∙가구∙소품에서 이제는 미식으로 제안 범위를 확대한 것인데, 이런 F&B 매장들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합니다. 구찌부터 에르메스까지, 럭셔리 브랜드들의 F&B 사업 진출이 점차 활발해짐에 따라 미식 경험의 주제와 카테고리 역시 세분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명상하기’, ‘하루 30분 운동하고 일기쓰기’. 요즘 SNS 상에서 활발한 이른바 ‘갓생’ 루틴의 모습입니다. 갓생은 ‘God’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로 ‘훌륭한 인생’, ‘모범적인 인생’을 뜻합니다.
눈여겨볼 점은 독서, 공부, 운동처럼 자기개발 영역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갓생 루틴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1년에 책 100권 읽기’, ‘토익 만점 받기’처럼 거창한 계획을 설정하고 달성하는 게 아닌 사소한 일들을 꾸준히 지켜 나가며 더 나은 삶을 이어가는 것에 보다 목적을 두고 있는 까닭이죠.
갓생 살기의 포인트는 일상에서 아주 작은 것들을 해내고, 그를 통해 성취감을 얻음으로써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이겨내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려 애쓰는 대신 어제보다 나은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것을 성장이라 여기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갓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나 ‘플렉스(Flex)’ 같은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 물가가 고공행진하며 이제는 절약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일명 ‘짠테크’가 대세가 된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지출을 최대한 아끼고 월급 외의 소소한 수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데, 가계부 작성은 물론 각종 할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앱테크로 용돈벌이를 하기도 합니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의 시대,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절약을 생활화하자는 게 대부분의 생각입니다. 여기서 발전해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지출 챌린지란, 지출하지 않는 날을 정한 다음 교통비를 제외한 비용을 단 ‘1원’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성공적으로 무지출을 달성하면 이를 기록하거나 SNS에 인증하고, 점차 ‘무지출 데이’를 늘려갑니다.
무지출 챌린지를 하다 보면 OTT 구독료나 간식비 등 무심코 소비하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또, 챌린지에 성공하기 위해선 카페에 안 가거나 도시락을 싸는 등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돈을 아꼈다는 뿌듯함과 함께 평소 소비 습관에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이 챌린지의 참 효과입니다. 비록 경기 불황과 하락하는 투자 시장이 우리를 짠테크의 길로 인도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현명한 소비 습관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 번째 지구생활’, ‘팝 플레이스’, ‘미미를 찾아서’, ‘갓생 살기’ ‘쓰면 뭐하니?’ 등 5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살펴보았습니다. “트렌드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사회적 현상으로 부상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 결과물이 유의미한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는 이노션이 발행한 서적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의 추천사처럼, 트렌드 인사이트를 토대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해 의미 있고 빛나는 2023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