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1 기아
친환경, 전기모터, 배터리, 매끈한 디자인 등은 최신 전기차를 설명하는 대표 단어다. 하지만 기아가 EV6 GT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수식어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고성능이다.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토크 75.5kgf·m 등 기존 스포츠카를 뛰어넘는 성능의 EV6 GT는 등장과 동시에 ‘한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동화 기술이 진정한 고성능 전기차 시대를 연 것이다.
EV6 GT는 초침이 채 4번을 움직이기 전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마친다. 하지만 단순히 빠른 가속 능력으로만 완성도 높은 고성능 전기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동, 조향 등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여러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아는 정통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EV6 GT를 위해 회생제동을 극대화한 고성능 전기차 전용 브레이크 시스템인 ‘Regenerative Braking Maximization(이하 RBM)’을 개발해 주행 품질과 안전성을 모두 만족시켰다. 그렇다면 RBM의 특징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EV6 GT의 RBM 개발을 담당한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 제동시험팀 윤경호 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고성능 전기차 EV6 GT를 위한 전용 브레이크 시스템을 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EV6 GT는 기아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중 가장 높은 585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성능에 대응할 수 있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필요했다. 경쟁사들의 경우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할 때 카본 세라믹 디스크 혹은 대용량 브레이크 시스템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는 개발 비용과 중량이 증대되는 문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아울러 이용자의 유지 보수 비용 또한 높아진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이를 고려해, 개발 비용과 중량 증대를 최소화하면서 나아가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유지 보수 비용이 상승하는 걸 막기 위해 회생제동 성능을 극대화한 RBM을 개발했다.
Q. RBM을 개발하면서 가장 중점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나?
고성능 전기차 특성에 맞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혹한 주행 환경 속에서도 안정감 있는 제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EV6 GT는 그랜드 투어러 콘셉트의 고성능 전기차다. 그렇기 때문에 장시간 주행에도 일관성 있는 제동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했다. ‘펀 드라이빙’ 환경에서 제어 이질감을 없애는 것 역시 핵심 개발 목표 중 하나였다.
Q. 기존 전기차 브레이크 시스템 대비 EV6 GT RBM의 차별화된 요소는 무엇인가?
브레이크 시스템 구성은 일반적인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동 응답성을 높이기 위해 직경 380mm의 디스크와 4 피스톤 모노블럭 캘리퍼를 적용했다. 이와 같은 구성은 이미 여러 모델에서 선보인 바 있다. 가장 큰 차별점은 전기차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회생제동을 극대화한 로직을 더했다는 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RBM은 회생제동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회생제동 협조 제어 기술을 적용해 현재 양산되는 모델 중 회생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많은 양의 회생제동 토크가 전륜과 후륜 동시에 고감속 영역까지 이어지는 RBM은 EV6 GT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 나아가 EV6 GT RBM은 전륜과 후륜 회생제동 비율의 가변 제어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전륜과 후륜 각각 50:50 비율로 회생제동이 이뤄지며, 조향 각도와 브레이크 조작량 등 조작 및 주행 환경에 따라 최대 전륜, 후륜 각각 70:30까지 회생제동 비율이 가변 제어된다. 가변 제어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제동이 가능하다.
Q. 회생제동 협조 제어 기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EV6 GT에 적용된 회생제동 협조 제어 기술은 기존 전기차 대비 회생제동의 양과 범위가 다르다. 가령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 제네시스 GV60, 기아 EV6 일반 모델 등은 전륜과 후륜에 전력 효율 차이가 있는 인버터를 적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력 효율이 높은 후륜 회생제동을 먼저 사용하며, 이후 전륜 회생제동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 경우 회생제동은 전비 측면에서 제동력을 보조하는 기술로 사용된다.
가감속이 많고 가혹한 환경에서 주행 빈도가 높은 EV6 GT의 GT 모드에서는 제동력을 보조하는 것이 아닌 유압 제동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개발 방향을 설정했다. 회생제동이 주 제동 장치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전륜과 후륜 모두의 회생제동량을 최적화해 회생제동을 최대한 이끌어 낸다. 아울러 많은 양의 회생제동을 사용하지만 하중 이동을 최소화했고, 유압 브레이크 시스템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기술을 구현했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진행된 EV6 GT 시승 행사에서 많은 사람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만 회생제동이 개입되는 것 같다고 시승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유압 브레이크 시스템과 회생제동의 제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또한 고전압 배터리, 구동 모터의 전반적인 상태를 고려하여 브레이크 회수율을 극대화해 제동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차별화된 협조 제어 방안을 적용했다.
Q. 새로운 회생제동 시스템 적용으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RBM을 사용할 수 있는 GT 모드에서는 기존 방식인 후륜 우선의 회생제동이 아닌 전륜과 후륜 동시 협조 제어가 이뤄지고, 회생제동이 작동하는 모터의 토크 응답성을 향상해 제동 안정성과 에너지 회수율을 동시에 개선했다. 이 방식을 통해 기존 대비 유압 브레이크 사용량을 최소화했다. 유압 브레이크 사용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운전자가 일상적으로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구간에서 제동은 모두 회생제동이 담당한다. 이는 브레이크 디스크와 브레이크 패드 사용량 감소로 이어진다. 덕분에 마찰재 분진 배출이 줄고, 브레이크 관련 소모품의 교체 주기도 늘어났다. 안전성 역시 기존 회생제동 대비 뛰어나다.
Q. 서킷 주행과 같은 가혹 조건에서 주행 시 일반 브레이크 시스템 대비 개선된 점은 무엇이며, 제동력 및 내구성 검증에서 어떤 결과를 보였는가?
GT 모드로 서킷과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주행할 경우, 전륜과 후륜 회생제동 비율이 최적화되면서 최대한 많은 양의 감속도를 회생제동 에너지로 회수한다. 더욱 거친 영역에서도 회생제동은 작동이 멈추지 않는다. 내구성 검증 과정은 영암, 인제, 태안, 독일 뉘르부르크링 등의 서킷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운전자가 방문하는 서킷인 인제 스피디움에선 다섯 바퀴를 주행한 시점에도 *페이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아울러 브레이크 디스크의 온도 역시 일반 브레이크 시스템 대비 감소했다. 영암 서킷 주행 결과를 보면 이해가 쉽다. RBM 적용 전 1랩 주행 시 브레이크 최고 온도는 640℃였지만, RBM 적용 후 최고 온도는 475℃로 낮아졌다. 아울러 제동 에너지 회수율을 0.7%에서 40.5%까지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페이드 현상: 브레이크 페달을 과도하게 사용했을 경우,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 마찰 계수가 감소해 제동력이 약화되는 현상
Q. 일반 전기차 브레이크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회생제동량은 얼마나 증가했는가?
EV6 GT RBM의 회생제동량은 일반 전기차와 비교해 50% 증가했다. 제동량에 따른 순간적인 충전 비율도 개선했다. 일반 전기차 운전자들이 이용하는 급속 충전기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국내에 설치된 일반적인 급속 충전기는 100kW~200kW 수준으로 충전이 된다. RBM의 경우 급감속 시 중력가속도 0.6G에서 순간적으로 320kW 이상의 에너지 회수가 가능하다. 급속 충전기보다 높은 양으로 에너지를 회수하기 때문에 주행거리 증대에도 영향이 있다.
Q. 회생제동 성능이 강화됨에 따라 유압 브레이크 관련 부품의 내구성이 길어지고, 이는 유지 비용 측면은 물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내연기관 모델과 같이 유압 브레이크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 브레이크 패드에서 많은 양의 분진이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분진은 환경 악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열화로 인한 브레이크 시스템 성능 저하라는 문제도 발생한다. 회생제동 범위가 넓어지면 유압 브레이크 사용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 교체 주기가 길어지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유지 비용 측면으로 연결된다. 물론 회생제동 사용량을 증가시켜도 운전 습관과 주행 환경 등에 따라 디스크 교체는 필요하기 때문에 유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EV6 GT만을 위한 신규 재질 적용이나 사이즈 증대는 피했다.
Q. RBM 개발 과정에서 제동 테스트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그리고 비슷한 출력의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유압식 브레이크와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성능인가?
EV6 GT는 높은 출력을 발휘하는 고성능 전기차이기 때문에 제동 테스트 역시 가혹도가 높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제동 시스템은 단위 시간당 높은 열에너지를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 주회로에서 시속 215km에서 제동을 시작해 시속 70km까지 고감속한 후 재가속하는 테스트를 10회 이상 반복 진행했다. 서킷 주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량은 아니지만, 영암과 인제 서킷에서도 주행 테스트를 거쳤다. 동일한 조건에서 비슷한 출력을 발휘하는 내연기관 고성능 스포츠 모델로 고감속의 가혹 주행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가정하면, 유압 제동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페이드 현상과 열화로 인해 일정한 제동 성능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Q. 향후 전기차 전용 브레이크 시스템의 미래를 예상해본다면 어떤 발전 가능성이 있을까?
EV6 GT에 적용된 RBM 콘셉트에 이어 회생제동의 사용범위를 확장해 능동적인 제어가 가능하도록 하는 개발을 진행 중이다. 향후 전기차 전용 브레이크 시스템은 회생제동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차량 목적에 맞게 보다 간소화되고, 고효율화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가깝게는 유압 브레이크 전달 라인 없이 제동력을 휠에서 제어하는 시스템의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트라이 모터 시스템을 적용해 전륜으로는 극대화된 회생제동을 하고, 후륜은 독립적인 모터 제어를 함으로써 차체 자세 제어를 보조하거나, 각 휠에 장착되는 인 휠 모터로 유압 제동장치가 없는 시스템 역시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진. 임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