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9 해비치 호텔&리조트
우리는 때때로 맛을 통해 기억을 남깁니다. 해외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통해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죠. 향신료 가득한 알싸한 맛의 요리를 먹을 때면 그 나라의 풍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음식은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더운 지방과 추운 지방의 요리가 다르듯, 식문화는 사회와 환경에 밀접한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음식을 맛보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일부를 체험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해비치)’가 새롭게 준비한 식음료 R&D(Research and Development) 센터 ‘스패출러(Spatula)’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식, 중식, 양식, 제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세계 음식을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물론 단순히 세계 음식을 재현하는 곳은 아닙니다. 각 지역마다 달라지는 식문화와 조리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죠. 스패출러의 설립 목적은 모든 요리를 연구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해비치는 2014년부터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 내에 식음료 연구 부서인 ‘푸드랩’을 운영했습니다. 전국의 식재료와 요리 명장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메뉴와 미식 경향을 연구하는 부서죠. 국내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이 대표적입니다. 가령 숭어가 제철인 때에는 맛좋은 어란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죠. 기존의 방법에 그치지 않고 더 뛰어난 맛을 찾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스패출러는 푸드랩을 계승해 서울로 자리를 옮기는 동시에, 식문화 탐구의 범위를 세계로 확장한 것이 특징입니다. 오랜 준비 끝에 세계를 담을 준비를 마친 것이죠. 게다가 스패출러는 세계 곳곳의 음식을 연구하며 개발한 메뉴를 한정 기간 동안 선보이는 팝업 형태의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세계 곳곳의 식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훌륭한 식사는 시각, 미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모여 완성됩니다. 레스토랑의 공간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지하 1층에 자리한 스패출러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아늑합니다. 구석구석 설치된 따스한 조명 덕분이죠. 그런데 시선을 돌리면 재미있는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완전히 공개된 주방입니다. 주방은 스패출러의 무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손님과 쉐프를 분리하는 유리도 없기에 요리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스페출러의 디렉터, 박민우 쉐프는 스패출러의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스패출러의 주방(키친)에는 세계 곳곳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기가 있습니다. 음식의 장르, 조리 테크닉, 맛과 풍미, 질감 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기기 조합을 위해 정말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친환경성 또한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전체의 과제인 지속가능성을 식음료 산업에도 접목하고 싶었거든요.”
설명을 들은 이후 주방은 확연히 달라 보였습니다. 화덕과 그릴 외의 모든 기기를 전자 제품으로 갖춰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고, 주방 지붕에는 연기를 모아 필터로 보내는 흡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음료 산업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매끈한 철제 기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는 화덕이 눈에 띄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화덕 제조사 스테파노 페라라(Stefano ferrara)가 만든 나폴리 정통 피자 화덕이죠. 그런데 화덕을 들이는 과정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대체 어떤 난관이 있었던 걸까요?
“좋은 맛을 내고 싶어서 스테파노 페라라에 화덕을 주문해 받았는데, 출입구가 좁아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화덕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크레인까지 동원해서 겨우 화덕을 넣었죠.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은 해비치에서 다른 업장에 화덕을 넣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출입구의 크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껴봤으니까요.”
지상 2층의 르 바(Le Bar)는 멤버십 바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19세기 또는 20세기 초의 유럽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클래식한 공간에 맞춰 소품 대부분을 프랑스 파리에서 직접 선별해 가져온 덕분입니다. 르 바의 주석 테이블은 섬세한 취향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깃든 물건입니다. 주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래된 물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새 제품으로는 이런 느낌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죠. 따라서 프랑스 파리의 바에서 사용하던 테이블을 공수해 그윽한 멋을 냈습니다.
물론 르 바는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다양한 술과 리큐르가 준비되어 있거든요. 이는 어떤 취향에도 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취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르 바에서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물론 아주 오래된 술과 개성 가득한 독립병입자들의 술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술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아주 각별하기 마련입니다.
스패출러의 지상 1층에는 R&D 전용 주방이 있습니다. 통유리로 감싼 덕분에 바깥에선 쉽게 볼 수 있지만, 손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업무 공간입니다. 이곳은 지하 1층 레스토랑의 오픈 키친보다 더 많은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해비치에서 적용할 모든 요리를 개발하는 장소이자, 쉐프들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상 3층에는 공유 오피스가 있습니다. 책상과 의자가 가득하지만, 사무실과 달리 조금 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레스토랑과 바의 조합은 익숙하지만 공유 오피스까지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스패출러가 공유 오피스까지 갖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패출러는 세계의 요리를 연구하는 식음료 사업의 실험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리, 음료, 공간, 브랜딩 등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연구하고 기획하죠. 그럴 때는 쉐프, 소믈리에, 지배인, 기획자 등 여러 직군이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스패출러의 공유 오피스는 연구와 개발이라는 특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패출러 레스토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국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세계 곳곳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계속 메뉴를 바꾸고 있으니까요. 9월 현재 스패출러에서는 카리브 지역의 정찬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신규 사업을 앞두고 스패출러에서 팝업 스토어의 형식을 빌려 검증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스패출러는 국내 식음료 문화와 세계 식음료 문화가 만나는 접점에 서 있는 실험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패출러는 기존의 푸드랩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에요. 해비치의 신규 레스토랑과 기존 사업장의 메뉴 개발을 위해 더 큰 세상을 담아야 했죠. 지금의 요리에서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요리라고 하더라도 한식, 중식, 양식 등 각 분야의 쉐프마다 떠올리는 방식은 다릅니다. 이런 다양성을 합치면 새로운 시도를 끌어낼 수 있죠. 그래서 스패출러는 하나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 무국적 개념의 요리들을 시도하는 혁신가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스패출러에서 맛보는 카리브 지역의 맛은 어떨까요? 박민우 쉐프가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그릴의 화력과 높이를 조절하며 최적의 굽기를 조절하는 모습에 절로 침을 삼켰습니다. 조금 후에는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기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냄비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죠. 칼랄루, 세므룰라 피쉬, 저크 치킨의 세 메뉴가 완성됐습니다. 각 메뉴에 대한 쉐프의 상세한 설명도 이어졌죠.
“칼랄루는 카리브 지역의 채소볶음 요리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조리 방법이 상당히 복잡해서 더 열심히 연구해야 했던 메뉴였습니다. 지역에 따라 넣는 향신료와 채소, 조리법도 조금씩 다르거든요. 재료를 푹 익힐지, 식감을 살릴지 등 여러 방법을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각 지역의 특징을 확인하면서 어떤 맛으로 완성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메뉴에 따라 본토의 맛을 그대로 살릴 수도, 우리만의 변주를 더할 수도 있으니까요.”
세르물라 피쉬와 저크 치킨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이 두 메뉴는 카리브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입니다. 이 음식들을 만들 때는 향신료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이번 메뉴를 준비하면서 카리브 지역 요리의 핵심은 향신료에 있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세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해양 무역과 신대륙 개척에 나서면서 전파된 식문화가 해당 지역에 녹아든 것이거든요. 그리고 스패출러의 음식은 매번 진화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님들의 피드백을 받고, 더욱 좋아하는 맛이 될 수 있도록 같은 메뉴도 계속 개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메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응하려면 음료 또한 다양해야 합니다. 스패출러의 와인 리스트에서 이런 고민을 읽을 수 있죠. 어떤 요리와도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국가의 와인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패출러의 다음 주제는 무엇일까요? 해비치가 준비하고 있는 중식당에 맞춰 중국 요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북경 오리, 차슈, 크리스피 포크 등의 메뉴가 중심이죠. 음료도 빠질 수 없습니다. 중국 술을 이용한 ‘연태 하이볼’ 등의 마실 거리가 데뷔를 앞두고 있습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스패출러는 상당히 매혹적인 공간입니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찾는 것으로도 세계의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계 각국의 음식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만이 스패출러의 목적은 아닙니다. 스패출러가 만들어갈 미래의 가치는 협업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패출러의 다이닝 공간과 공유 주방은 누구나 대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쿠킹 클래스, 협업, 주방 대여, 레스토랑 대관 등을 통해 일반인 및 미식 업계 관계자들과 깊이 있는 소통을 이어갈 예정이죠. 마지막으로 스패출러가 향후 국내 식음료 문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를 기대하는지, 스패출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박민우 쉐프에게 물었습니다.
“스패출러는 해비치의 식음 관련 연구개발과 브랜드 역량 강화를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관련 직종 종사자와 관심 있는 분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허브(Hub)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협업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고, 국내 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겠죠. 저희는 스패출러의 한계를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틀을 넘어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사진. 조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