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이미 인류가 확장한 공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항공기는 고도가 높고 도심을 벗어나 지정된 공역에서만 운항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도심에서는 낮은 고도에서 운항이 가능하고, 소음을 최소화해야 하며,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새로운 이동 수단이 필요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류가 제한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늘 공간을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UAM과 RAM을 비롯한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로 말입니다.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는 ‘Advanced Air Mobility’의 약자입니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은 ‘항공 서비스가 부족하거나 이용하지 못하는 장소 사이에 사람과 화물을 이동하는 항공 운송시스템’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AAM은 도심 내 이동 효율성을 극대화해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한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와 지역 거점 사이의 항공 이동을 위한 ‘지역 간 항공 모빌리티(RAM, Regional Air Mobility)’ 개념을 포괄합니다.
UAM과 RAM 같은 혁신적인 AAM은 환경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탄소배출권 강화와 함께 일부 유럽 국가에선 기존 항공기들의 단거리 비행을 점진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친환경 파워트레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RAM과 UAM의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태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1년 미국에 AAM 사업 독립 법인 ‘슈퍼널(Supernal)*’을 설립, 올해 초 UAM 사업부를 AAM 본부로 개편하고 ‘AAM 테크데이 2022’를 개최하는 등 AAM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모빌리티 기업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뛰어난 품질의’, ‘천상의’ 뜻을 지닌 슈퍼널은 AAM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의 독립 법인입니다. AAM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기존의 교통망과 통합해 고객이 서비스를 원활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사업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추구하는 AAM의 핵심은 중·단거리를 낮은 고도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빌리티의 대중화에 있습니다. 먼저 CES 2020에서 공개된 ‘S-A1’은 현대자동차그룹의 UAM 사업에 대한 첫 비전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빌딩 숲을 날아다니는 기체라고 하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를 떠올릴 수 있지만, UAM인 ‘S-A1’의 경우 파워트레인은 배터리, 총 8개의 로터 활용으로 소음도 훨씬 적고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UAM과 RAM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UAM이 도심 안에서의 이동을 제공한다면, RAM은 지역 공항 등을 활용해 항공 서비스가 부족하거나 제공이 어려운 도심과 도심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UAM보다 더 먼 거리를 운항하며 더 많은 승객과 물류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UAM과 가장 큰 차이점은 파워트레인에 있습니다. RAM은 배터리 기반의 UAM과 달리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를 함께 탑재해 이동 거리가 길고 무게는 한층 더 가볍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의 상징적인 수소전기차 ‘넥쏘(NEXO)’의 이니셜을 따온 멀티콥터 드론 ‘프로젝트 N’을 공개해 RAM에 수소 에너지를 활용한 RAM 기체 개발 가능성을 실증했습니다. 프로젝트 N은 지난 2월 감항인증*을 받았고,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 최초의 수소연료전지 항공기 제조사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항공기가 비행에 적합한 수준의 안전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정부 기관으로부터 검증받는 절차를 말합니다.
전 세계 항공 업계가 주목하는 세계 2대 에어쇼 중 하나인 영국 판버러 에어쇼*.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번 행사에서 UAM의 인테리어 캐빈 콘셉트를 공개하고, 최고의 항공 업체와의 업무 협약을 진행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으로 화제의 중심이 됐습니다.
먼저 슈퍼널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전기 수직 이착륙 항공기) 인테리어 캐빈 콘셉트 모델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해당 모델은 기존 항공기 디자인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동차 내장 디자인 요소를 차용해 직관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게 완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나비의 생체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5인승 시트 디자인은 미래적인 모습으로 헬리콥터와의 차별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재활용이 가능한 첨단 탄소 섬유,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식물 추출물로 만든 섬유, 나무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점은 파워트레인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위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은 AAM 기체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판버러 에어쇼에서 세계 최고 항공 엔진 기술을 보유한 롤스로이스, 사프란과 업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롤스로이스는 1906년 설립된 영국의 항공기 엔진 회사로 우주항공 및 군수, 에너지, 선박 등의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항공기 엔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사프란은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항공기 엔진 및 로켓 엔진 등 다양한 우주항공 및 방위 관련 장비를 설계·개발하는 기업입니다. 이들은 업무 협약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이 개발 중인 UAM의 배터리 추진 시스템과 RAM의 수소연료전지·배터리 추진 시스템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 매년 짝수 해 7월에 열리는 판버러 에어쇼는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업체의 무역 박람회와 일반인 대상의 에어쇼를 겸하는 7일간의 행사입니다. 1920년 영국 공군 에어쇼를 시작으로, 1948년 이후 현재의 개최지인 판버러 공항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세계 2대 에어쇼 중 하나로 불리며, 다른 하나는 홀수 해에 열리는 ‘파리 에어쇼’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항공업계 미래 인재와 현업 전문가를 대상으로 AAM에 대한 소통의 장인 ‘AAM 테크데이 2022’를 개최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비전과 함께 현재까지의 기술 성과를 발표했으며 질의응답을 통해 100여 명의 우주항공 관련 학회원과 대학원생 및 대학생 참가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습니다. 이중 개발자 세션에서 어떤 기술이 소개되었는지 살펴봅니다.
1. AAM 전동화 추진 시스템
현대자동차그룹이 항공용 파워트레인의 전동화 연구 개발에 있어 유리한 점은 바로 전기차에 대한 연구 개발 결과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항공과 지상이라는 환경적 차이는 있지만, 전기를 동력원으로 전환하는 장치의 개발 과정에서 그간의 연구와 설계 방법, 시험 검증이 도움이 된 것인데요. 다만 운용 고도가 높아 절연이나 냉각 설계에 차이가 있고, 전자기 간섭이나 낙뢰 같은 요소에서 부품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인 설계를 고려해 개발 중입니다.
2. AAM 자율주행 기반 기술
하늘길은 전부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항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항공 안전법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운항을 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 속도 제어와 정밀한 항법 측위가 필수 사항입니다. 특히 AAM은 자동차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 먼 거리의 물체와의 충돌을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도로의 보행자처럼 새 떼나 소형 드론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비행 물체들에 대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의 FCA(Forward Collision-Avoidance Assist)와 유사한 DAA(Detect and Avoid) 기술 등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3. AAM 착륙장치 기술
AAM은 짧은 활주로에서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고 운용 자유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비행기와 달리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낙하 속도와 순간 제동력에 대한 높은 신뢰성이 중요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개발을 통해 축적한 높은 신뢰도의 안전율과 양산을 고려한 초기 설계 역량은 AAM 착륙장치 기술 개발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4. 항공기 설계를 위한 공력 해석
AAM 기체의 공력 개발에서는 풍동 시험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CFD, Computational Fluid Dynamics) 방식, 즉 디지털 트윈을 통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CFD가 더 빠르고, 실제 시험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에서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실제 크기와 디테일한 모델에 대한 공력 및 공력소음(Aeroacoustics) 해석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지금도 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도심항공교통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기체 개발뿐만 아니라 관련 인프라 구축 또한 중요합니다. 기체와 이용객을 위한 터미널 역할에 더해 교통수단과의 환승센터 역할을 하는 버티포트*는 UAM 생태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2021년 현대자동차, 인천국제공항공사, KT, 대한항공과 함께 ‘도심항공교통의 성공적 실현 및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데 이어 2022년 4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인프라 개발을 위해 이지스자산운용 등과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버티포트는 스마트시티의 새로운 모빌리티 허브이자 주택·업무·상업 시설과 연계해 다양한 개발 확장성이 예상되는 핵심 공간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공항이나 헬리포트와 다른 개념의 인프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착륙 시설, 여객처리시설, 환승·환적 시설 등을 갖춰 기존 공항과 유사하지만, 수직이착륙 기체(eVTOL)를 사용해 대규모 활주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도심 건물 옥상부나 지상의 유휴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헬리포트와 유사하나, 기존 헬기 대비 소음을 혁신적으로 낮춰 도심 내 상업적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버티포트 건설과 관련한 기술적인 이슈를 살펴보면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기체에 대응하기 위해 수소 에너지 및 고전압·급속충전을 고려한 에너지 관련 설비와 대규모 기체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소음에 대한 저감 설비가 필요합니다. 또한 기체 이착륙 시 진동 및 빌딩풍 등을 고려한 구조적 안전성 확보, 친환경 제빙·방빙, 소규모 버티포트를 빠르게 구축하기 위한 모듈러 기술 등도 필요합니다. 미래 도심항공교통의 실현을 위해 현대건설은 향후 다양한 기술적 이슈를 발굴하고, 필요시 관련 기술 개발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 버티포트는 수직 이착륙을 의미하는 ‘Vertical’과 터미널을 의미하는 ‘Port’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전기동력 수직 이착륙(eVTOL)’ 기반 기체의 이착륙 및 이용객의 터미널 역할을 하는 물리적 시설을 뜻합니다.
글 | 모터스라인 편집실
※해당 콘텐츠는 모터스라인 2022년 3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