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센트 경주차와 프로 엑센트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 엑센트 경주차와 프로 엑센트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

2022.08.03 현대자동차 분량6분

엑센트, 꿈을 안고 달리다

‘명차’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닐까요? 최고급 세단이나 슈퍼카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하며 꿈을 안고 달린 차들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잔디밭에 프로 엑센트가 정차한 모습

현대자동차가 1994년 출시한 엑센트는 지금까지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모델입니다. 작고 가벼운 차체, 경쾌한 핸들링 등 소형차다운 강점 덕분에 모터스포츠에서도 많이 사용되었죠. 특히 3도어 모델인 ‘프로 엑센트’는 스포티한 디자인과 운전 감각 덕분에 팬층이 한층 견고합니다.

잔디밭에 프로 엑센트가 정차한 측면 모습/ 잔디밭에 프로 엑센트와 오너 홍준영씨가 나란히 있는 모습

엑센트는 디자인, 섀시, 파워트레인 등 모든 부분을 현대차 독자기술로 완성한 첫 모델입니다.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의 국산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차체 설계 기술의 국산화라는 꿈을 이룬 모델이죠. 엑센트는 귀엽고 친근한 모습의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엑센트만 4대를 탔을 정도로 ‘엑센트 마니아’를 자부하는 홍준영 씨도 이 디자인에 반했죠. 

홍준영 씨의 애차는 ‘프로 엑센트 TGR’입니다. 1세대 엑센트에는 4도어 모델 외에도 5도어, 3도어 모델이 있었습니다. 모델에 따라 각각의 이름을 붙였죠. 4도어 모델은 ‘엑센트’, 5도어 모델은 ‘유로 엑센트’, 3도어 모델은 ‘프로 엑센트’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잔디밭에 프로 엑센트가 정차한 모습

1990년대 중반, 엑센트는 청춘의 차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작지만 귀엽고, 경쾌하지만 알뜰한 차였거든요. 엑센트의 크기는 길이 4,115mm, 너비 1,620mm, 높이 1,395mm이며, 휠베이스는 2,400mm 입니다. 전반적으로 자동차가 커진 지금 기준에선 작아 보여도, 영리한 설계 덕분에 실내 공간은 충분했습니다. 청춘의 데이트는 물론 어린 자녀를 둔 4인 가족의 나들이에도 잘 어울렸습니다. 


엑센트는 스쿠프에 먼저 사용했던 알파(α) 엔진을 개량한 ‘뉴 알파’ 엔진을 얹었습니다. 직렬 4기통 1.3L SOHC, 1.5L SOHC의 두 가지 엔진은 각각 86마력, 96마력의 힘을 냈고, 5단 수동변속기 또는 4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었습니다. 엑센트의 공차중량은 1.5L 모델 기준 965kg으로, 작고 가벼운 차체와 효율성 좋은 엔진의 조합 덕분에 최고속도가 시속 180km에 달했습니다. 가속 성능도 소형차 중에선 출중했습니다. 엑센트에 맞춰 2,000~3,000rpm대의 저중속 주행 성능을 보강해 최적화한 뉴 알파 엔진 덕분입니다. 

프로 엑센트의 엔진룸 모습

1997년 현대자동차는 엑센트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엑센트’를 출시하며 직렬 4기통 1.5L 알파 DOHC 엔진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3도어 모델인 프로 엑센트에는 짧은 종감속기어를 적용하며 ‘프로 엑센트 1.5 DOHC TGR’이라는 트림을 만들었죠. 프로 엑센트 TGR은 자동차 마니아들의 마음을 흔드는 차였습니다. 알파 DOHC 엔진의 경쾌한 고회전 감성, 날렵한 핸들링 등 재미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중후반의 ‘핫해치(Hot Hatch)’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 엑센트의 테일게이트 모습

엑센트는 국내 모터스포츠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한 모델입니다. 1997년 8월, 현대자동차는 국내 모터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국내 최초로 자동차 경주 전용 모델을 개발해 주문생산에 나섰습니다. 프로 엑센트 TGR 모델을 기반으로 경기에 출전할 때 필요하지 않은 28개 사양을 없애고 타이어 등 10개 사양을 경주용으로 바꾼 것입니다. 

프로 엑센트의 실내 모습, 프로 엑센트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프로 엑센트의 계기판

이처럼 엑센트는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운전 재미를 인정받았으며, 모터스포츠에서도 널리 사용됐습니다. 아직까지 엑센트를 아끼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은 이유죠. 홍준영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간 프로 엑센트 TGR만 4대를 탔고, 지금은 2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엑센트의 출시 시기에 홍준영 씨는 학생이었습니다. 전성기를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죠. 그가 어떻게 프로 엑센트의 마니아가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홍준영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중학교 때 엔진 달린 RC카(무선 조종 자동차)를 사면서 자동차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RC카의 구동 원리는 실제 자동차와 비슷합니다. RC카를 직접 수리하고 개조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웠죠. 좋아하면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잖아요? 인터넷에서 자동차 정보를 찾다 프로 엑센트를 봤고, 첫눈에 반했어요. 엑센트의 동글동글한 디자인에 스포티한 멋을 더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귀여운 악동 같았어요. 게다가 작고 가벼워 운전 재미가 좋다는 평가도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렇게 프로 엑센트는 제 드림카가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 배우고 싶어 기계공학과에 가겠다는 목표도 생겼죠.”

자동차와 함께하는 대학 생활을 꿈꾸며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홍준영 씨는 자동차 동아리를 제일 먼저 찾았습니다. 하지만 설렌 마음으로 찾아간 자동차 동아리는 문을 닫았고, 결국 직접 자동차를 사서 튜닝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서 첫차로 프로 엑센트 TGR을 샀어요. 첫차인 만큼 정말 기뻤고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친구와 각자의 자동차를 몰고 4박 5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도 했어요.”

잔디밭에 프로 엑센트가 정차한 모습

자동차와 사람은 서로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때론 자동차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죠. 프로 엑센트와 함께 대학 생활을 마친 홍준영 씨는 전공과 취미를 살려 자동차 부품 제조사의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첫차인 프로 엑센트 TGR이 홍준영 씨가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 것입니다. 물론 첫차와의 인연은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첫차를 떠나보내야만 하기도 했죠. 하지만 엑센트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연이어 프로 엑센트를 들였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엑센트의 매력이 궁금했습니다. 

프로 엑센트가 주행하는 모습

“저는 자동차 마니아 중에서도 스포츠 주행을 즐기는 쪽에 속합니다. 제게 엑센트의 매력은 성능과 질감에 있습니다. 가벼운 차체, 좁은 기어비, 앞 맥퍼슨 스트럿-뒤 멀티링크 서스펜션 구조는 당대 차들과 비교하면 구조적 우위를 자랑하죠. 작고 경쾌한 차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이만한 차가 없었어요. 물론 요즘 차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일상용으로 아반떼 N을 타고 있고, 현대자동차가 WRC에서 사용하는 i20 N과 같은 소형 고성능 모델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도 프로 엑센트를 탈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 옷이 있어도 가장 몸에 잘 맞는 옷이 있잖아요? 나와 딱 맞는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홍준영 씨의 설명입니다. 

프로 엑센트를 운전하는 오너의 모습

현재 홍준영 씨는 출고 상태에 취향을 약간 더해 꾸민 프로 엑센트 TGR 1대와 타임어택 경주용 프로 엑센트 TGR 1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인 순서에 따라 각각 2호기, 4호기로 부르고 있죠. 2호기는 20년을 넘는 차령에도 불구하고 신차 같은 상태를 자랑합니다. 오래도록 탈 생각으로 전체 분해 후 수리하면서 교체할 부품을 모두 새것으로 바꾼 덕분이죠. 홍준영 씨에게 2호기는 일상 속 특별한 순간을 위한 차입니다. 

프로 엑센트가 주행하는 모습, 프로 엑센트의 1열 시트 모습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서 2호기를 완전히 수리했어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가끔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데, 꼭 2호기와 함께합니다. 요즘 차와 다른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좋거든요. 톱니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죠. 출고 상태에 가깝게 복원했지만 제 취향을 반영한 부분도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연구원이란 직업 덕분에 엑센트의 승차감을 제 입맛에 맞게 조율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의 세팅 값을 찾기까지 80번 이상 조율을 반복했어요.” 


홍준영 씨의 2호기 실내를 구경하다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엑센트의 시트나 도어 트림에는 4가지 색깔로 그은 선이 있는데, 이것이 엑센트의 차체 색상을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기존의 무채색 제품에 색상을 더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가전제품이나 가구에 독특한 색깔을 칠해 디자인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엑센트는 자동차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습니다. 기존 승용차에 없었던 연보라(벨 플라워), 주홍색(스칼렛 레드), 연녹색(오팔 그린), 진보라(노벨리아) 등 4가지의 새로운 색상을 입혔고, 덕분에 기존의 무채색 자동차들과 다른 밝고 화사한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엑센트 경주차의 모습

한편, 홍준영 씨의 4호기는 우락부락한 인상을 자랑합니다. 과거 국내 서킷을 누볐던 엑센트 경주차보다도 과격한 인상이죠. 이는 경주에 맞춰 많은 부분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프로 엑센트는 홍준영 씨의 운전 스승인 동시에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여러 아마추어 레이스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은 그는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4호기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강력할까요? 성능이 궁금해졌습니다.

엑센트 경주차의 엔진룸

“4호기에는 직렬 4기통 2.0L 베타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얹었습니다. 출력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빠르게 코너를 돌아 이를 극복한다는 전략 아래 세팅했어요. 완전히 분해정비를 하면서 신품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교체했습니다. 하체 부품도 출고 시의 엑센트와는 다릅니다. 차체의 기울임이 되는 중심점(롤 센터)을 조정하기 위해 여러 부품을 직접 만들어서 끼웠거든요.” 홍준영 씨의 설명입니다.

엑센트 경주차의 실내 모습

홍준영 씨는 타임어택 경주를 위해 이 차를 세팅했습니다. 타임어택 경주는 이름 그대로 서킷에서 시간을 다투는 레이스입니다. 규정 내에서 빠른 기록을 낼 수 있는 차를 만들고, 이를 완벽히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와 운전자가 합을 맞춰 전략을 짜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엑센트 경주차의 후면부 모습

“제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모든 부분을 개조했어요. 바디킷도 3D 스캔 업체를 찾아 같이 디자인하며 만들었습니다. 공기역학을 이용해 차체를 단단히 눌러주길 바랐거든요. 전부 제 손길이 닿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암 서킷에서 테스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재미있었거든요. 코너에서 차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고 안정감도 좋았죠. 프로 엑센트로 도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추어 최상위 클래스보다 빠른 랩 타임을 기록하고 싶어요.”

엑센트 두 대와 홍준영씨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세상의 모든 자동차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동차는 주인의 꿈을 싣고 달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동차 마니아가 그렇듯, 홍준영 씨도 엑센트와 함께 꿈을 안고 달립니다. “엑센트와 최대한 오래 지내고 싶어요. 2호기와는 건강하게, 4호기와는 같이 한계를 넘어서고 싶습니다.” 1994년, 설계부터 제조까지 100% 국산차란 꿈을 안고 등장한 엑센트는 지금도 오너들의 꿈을 안고 달리고 있습니다.




글. 안민희

사진. 최대일,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