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1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가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0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 컨벤션센터(JI EXPO Kemayoran)에서 열린 2022 IIMS 모터쇼(Indonesia International Motor Show)에서 아이오닉 5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번에 선보인 아이오닉 5는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양산한 모델이며, 아이오닉 5의 핵심 사양인 V2L(Vehicle to Load)을 활용한 전시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아이오닉 5가 공급하는 전력으로 작동하는 러닝머신과 각종 가전제품을 시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IIMS 모터쇼는 GIIAS(Gaikindo Indonesia International Auto Show) 모터쇼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양대 모터쇼다. 인도네시아에서 모터쇼는 방문 고객들이 현장에서 차량을 살펴보고 계약까지 진행할 수 있는 하나의 판매 채널 역할을 겸하고 있다. 아이오닉 5는 판매가격 미공개 상태에서도 11일간 약 800대에 달하는 사전계약을 받으며 좋은 시작을 예고했다.
4월 22일, 현대차는 아이오닉 5의 공식 판매가격을 공개하며 정식 계약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이오닉 5의 가격은 7억 1,800만~8억 2,900만 루피아로, 한화 약 6,300만~7,300만 원이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판매법인에 따르면 아이오닉 5는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1,587대의 정식 계약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공업 협회(GAIKINDO)가 집계한 2021년 전기차 전체 판매대수인 693대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이 6일 만에 계약된 것이다.
아이오닉 5의 돌풍은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독보적인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87%에 달한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팔린 전기차 693대 중, 현대차의 아이오닉 전기차와 코나 전기차가 605대를 차지했다.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은 한국을 비롯한 타 국가 대비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인도네시아는 수입 완성차에 대한 관세가 상당히 높은 국가로, 일본 브랜드는 1980년대부터 현지 생산을 통해 높은 점유율을 구축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현지 공장을 세운 지금, 상황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지난 2019년 11월,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약 1조 8,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2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립에 들어갔고 2022년 1월부터 크레타, 3월부터 아이오닉 5 양산에 돌입했다. 2017년 합작회사 형태로 설립한 베트남 공장이 연 1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2.5배 규모다. 특히 현대차는 전기차를 내세워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점에서 일본 브랜드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대기오염에 고통받고 있다. 대기질 정보 분석회사인 에어비주얼(AirVisual)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대기오염 정도는 전 세계 수도 중 12번째로 심각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며, 동시에 코발트, 리튬 등도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 시장 본격 진출에 앞서 카헤일링 서비스를 통해 친환경차를 선보이는 등 신중한 행보를 이어왔다. 2018년 동남아 최대의 카헤일링 서비스인 그랩(Grab)에 2억 7,500만 달러(약 3,502억 원)를 투자했고, 2020년 그랩을 통해 아이오닉 전기차 20대로 카헤일링 서비스를 시작하며 전기차에 대한 시장 반응을 살폈다. 판매법인 설립 후 첫 런칭 차종으로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코나 일렉트릭을 낙점한 배경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업하며 자체적으로 고속도로, 딜러, 쇼핑몰 등 주요 거점에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2021년 9월에는 LG 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인도네시아 카라왕(Karawang) 지역에 배터리셀 합작공장 착공에 나섰다. 해당 공장은 연간 15만 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는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 선점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전기차 보급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이런 진정성 있는 움직임은 인도네시아를 흔들고 있다. 올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 예정인 G20 발리 정상회의에서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이 VIP를 위한 차량으로 선정된 것이 좋은 예다. 지난 3월 16일에 열린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준공식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한 건,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이오닉 5가 가진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생산 아이오닉 5는 현대차그룹이 아세안에서 생산하는 최초의 전용 전기차이자, 인도네시아 진출 브랜드가 현지에서 생산하는 최초의 전기차다.
현대차의 위상은 전기차뿐만이 아닌 일반 모델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공식 판매를 개시한 현대차 크레타는 3월에만 1,440대가 판매되며, 동일 차급의 선두주자였던 혼다 HR-V를 제치고 2개월 연속 동급 판매 1위를 달성했다. 혼다 HR-V 역시 지난 3월에 출시된 신형 모델이지만, 크레타가 블루링크, ADAS 등 첨단 사양의 우위를 기반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인도네시아는 태국과 함께 아세안 지역의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국가이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공업 협회에 따르면 2021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총 88만 7,207대의 자동차가 팔렸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도의 103만 126대에 비하면 낮은 수치지만, 2020년도의 53만 2,407대에 비하면 극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빠르게 연 100만 대 수준으로 복귀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활약은 동남아 시장에서의 현대자동차 입지 강화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도네시아 시장을 향한 현대차의 도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