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8 현대자동차그룹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공통점은? 모두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란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한 사람이 음악감독을 맡았다는 것이다. 바로 정재일이다. 음악계에서 그는 이미 유명하다. 1999년, 만 17세의 나이에 기타리스트 한상원과 가수 이적이 결성한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하며 ‘천재 뮤지션’으로 이름을 알렸다. 국악 퓨전 그룹 푸리의 멤버로도 활동했으며 윤상, 박효신, 아이유, 이적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의 음반 연주자와 프로듀서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영화는 물론 연극, 뮤지컬, 무용, 전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해 그에겐 무척이나 기쁜 일도 있었다. 11월에 열린 ‘2021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HMMA, Hollywood Music in Media Awards)’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TV쇼·드라마 부문 수상을 한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수상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현대자동차그룹과 협업해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였다. 바로 ‘자연의 소리 2’다. ‘자연의 소리’는 2019년 6월 기아 K7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처음 적용된 서비스로,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제공하는 음향을 통해 운전자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운드 감성 기능이다. ‘자연의 소리 2’는 기존 ‘자연의 소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자연 배경음만을 제공했던 기존 음원에서 정재일 음악감독이 테마에 맞게 직접 작곡한 음원이 추가됐다. 아울러 생동적인 음향을 위해 기존 스테레오 음원에서 차량 사운드 시스템을 활용한 5.1채널 입체 음향 음원으로 바꾸었다. 추가된 음원은 어떤 의도로 작곡되었을까? ‘자연의 소리 2’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정재일 음악감독을 만났다.
Q.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2021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TV쇼·드라마 부문 수상을 하셨는데요, 혹시 수상을 예상하셨나요?
A.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크게 히트를 친 후라 아주 살짝 기대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20년에 영화 <기생충>으로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은 못 했는데요, 이번에 다른 작품으로 수상까지 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Q.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A. 2018년 말 황동혁 감독님을 소개받게 되었고 감독님께서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때가 <기생충> 음악 작업을 마무리하는 단계였는데요. 신년 전야파티에서 황동혁 감독님과 자리를 갖게 됐어요. 그리고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죠.
Q. 황동혁 감독님과는 그때 처음 만나신 건가요?
A. 네.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미 황동혁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 <남한산성>을 5~6번 본 상태였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김훈 작가님의 원작도 정말 강렬했는데, 그 서사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연출이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거기에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까지 맡았잖아요. <남한산성>에서 느낀 감동이 워낙 커서 <오징어 게임> 음악 작업을 선뜻 하겠다고 했습니다.
Q. <오징어 게임>에서 많은 곡이 사랑을 받았지만, ‘Way back then’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직접 작업하신 것으로 아는데, 3∙3∙7 박수에 기초한 멜로디나 리코더 같은 악기를 활용한 것은 감독님 생각이셨습니까?
A. 네, <오징어 게임>의 모든 미션들이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놀이인 것에 착안해 ‘그 시절 음악 시간에 연주하던 간단한 악기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향수가 느껴지는 동시에 서툰 어린이들의 연주 솜씨가 의외로 기괴한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Q.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 <옥자> 등 다수의 영화 음악을 작업하셨는데요. 영화음악 작업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A.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장선우 감독님의 <나쁜 영화>가 나오네요. 그때 장선우 감독님 아들인, 지금은 현대 미술가로 활동 중인 장민승 작가와 3인조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던 것을 인연으로 그 영화의 두 장면을 작업하게 됐습니다.
Q. 1997년이면 16살 때 아니었나요? 굉장히 어릴 때 시작하신 건데, 부담이 컸다거나 하진 않으셨나요?
A. 그런 건 없었습니다. <나쁜 영화>의 장르가 좀 독특했잖아요. 실제 비행 청소년들이 출연했고,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구성을 택했죠. 그래서 마음이 편했어요. 영화 속에서 밴드가 나오는 장면만 보고 그냥 연주했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엉망진창이죠. 작곡이나 연주의 개념도 모르고 그냥 했으니까요.
Q. 최근에 조금 색다른 작업을 하셨다죠? 현대자동차그룹과 협업해 ‘자연의 소리 2’를 만드셨는데,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제안을 주셨습니다. 기존에 ‘자연의 소리’가 있었는데요, ‘자연의 소리 2’는 기존 ‘자연의 소리’에 저만의 새로운 음악을 덧입히는 작업이었습니다. 전 그 부분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둘이 합쳐져 누군가의 ‘힐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신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영화나 연극에서 쌓아왔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Q. 기존의 ‘자연의 소리’는 어떠셨나요?
A. 저는 기존의 ‘자연의 소리’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음악을 덧입힌다는 것에 아주 새로움을 느꼈습니다.
Q. 도시와 숲, 바다 등 특정 환경이 가진 소음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라는 기능도 여기에서 착안한 것일 텐데요.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A. 맞습니다. 광활한 바다나 깊은 산속의 소리 등을 들으면 그 어떤 음악도 초라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공적으로 재현해 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글래드 스튜디오에서 너무 멋지게 작업해 주시고, 현대자동차그룹 프리미엄 오디오의 청취 환경도 무척이나 뛰어나서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글래드 스튜디오라면, 이번에 함께 작업하신 스튜디오인가요?
A. 네. 글래드 스튜디오에서 포트폴리오를 보내주셨는데 훌륭한 것들이 많아서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아무래도 자동차에 들어가는 음원은 기존에 작업하시던 음악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크게 고려한 점이 있다면요?
A. 너무 당연하게도 음악이 주인공은 아니란 점을 깊이 되새기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혹은 바람처럼 그 공간에 존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음악을 5.1 멀티채널로 믹싱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음악 또한 5.1 채널로 믹싱해야 해서 음악적 느낌과 함께 공간감이나 울림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Q. 작업은 어디에서 하셨나요?
A. 작곡은 집에서 했지만 후반 작업은 모두 자동차 안에서 했습니다. 뱅앤올룹슨 시스템을 적용한 제네시스 전동화 모델에서 했는데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차 안에서 작업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음악을 5.1 채널로 만든다는 것도 새로운 작업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운전석은 물론 옆좌석이나 뒷좌석에서도 모두 좋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 저에겐 굉장한 도전이었습니다. 보통 음악은 이어폰이나 스피커에서 듣는 것을 기준으로 작업하니까요. 하지만 이번 작업은 음악 자체가 여러 스피커에서 나오고, 어디서든 좋게 들려야 해서 어려우면서도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Q. ‘자연의 소리 2’를 위해 총 8개의 음원을 작곡하셨는데요. 이번에 4개가 업데이트됐고, 나머지 4개는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죠? 개인적으로는 ‘우주와의 교신’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신선한 음원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A. 글래드 스튜디오의 정현성 대표님 아이디어였습니다.
Q. ‘우주와의 교신’은 사실 막연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니까요. 어떻게 표현하시려고 했나요?
A. 음, ‘우주와의 교신’은 실제로 무전기 소리겠죠? 일단 우주라는 테마를 잡았을 때 ‘우주의 소리가 뭐가 있지?’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래비티>라는 영화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생각을 했는데, 결국 우주엔 소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했죠. 다른 음원들이 굉장히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건 그냥 상상의 소리예요. 이 음원만은 그런 식으로 접근해보자고 했습니다.
Q. 모두가 생각하는 미래적인 느낌, 특히 전기차 사운드에 가까운 느낌이 아니어서 더 새로웠어요.
A. 이 프로젝트의 전제 조건을 들었을 때 ‘힐링’이 되어야 하고, 누가 들어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적인 소리나 전기적인 소리는 배제하기로 했어요. 솔직히 모두가 좋아하는 소리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접근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Q. ‘자연의 소리 2’에서 감독님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음원은 뭔가요?
A.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향후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하반기 배포 예정인 ‘성당에서의 평화’를 좋아합니다. 음악이 함부로 나서지 않고 그 공간에 잘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이럴 땐 이런 음원을 들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다면요?
A. 상황을 특정하기보다는, 전기차에선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바깥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분주하고 복잡한데 차 안은 평화롭고 고요하잖아요. 그럴 때 제가 작곡한 음악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지 않을까, 역설적인 신기한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실까요?
A. 지금처럼 여러 장르와 협업하면서 더 단단하고,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동안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아직도 안 해본 장르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번엔 음악을 만들었다면, 다음엔 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가령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작업한 전기차 사운드 같은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잖아요.
Q.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A. 사람으로서는 그냥 잊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먼 훗날 누군가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음악이 괜찮았지?’라고 떠올려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글. 서인수
사진. 최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