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8이 뒷문을 활짝 연채 주차장에 서있는 모습 기아 K8이 뒷문을 활짝 연채 주차장에 서있는 모습

2022.02.08 기아 분량6분

K8, 메리디안으로 하이엔드 카의 시대를 열다

기아 K8과 이종학 오디오 평론가가 만났다. 그는 K8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을 ‘반칙’이라고 평가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기아가 K8을 시작으로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이하 메리디안 시스템)을 적용했다. 물론, K8의 메리디안 시스템은 옵션이다. 비용은 얼마가 추가될까? 주변의 오디오파일 몇 명에게 K8 메리디안 시스템의 예상 가격을 물어봤다. 대부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라고 답했다. 당연하다. 메리디안은 명성 높은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이고,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기본 성능과 가격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스피커가 부착된 운전석 도어 트림

실제로 스피커, 앰프, DSP 등을 모두 장착한 메리디안 홈 오디오 시스템(DSP8000SE)의 가격은 페어(Pair)에 8,600만 원이다. 그런데 K8에 추가되는 비용은 고작 1/100 수준인 85만 원이다.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오디오 애호가들은 당황했다. 나 역시 K8에 장착되는 메리디안 시스템의 가격은 동그라미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한다. 850만 원을 받고도 남을 만한 퀄리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이엔드 자동차에 대하여

운전자가 인포테인먼트를 통해 오디오 음향을 설정하는 모습

메리디안이 뭐길래?

A필러 내측에 부착된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의 트위터

메리디안은 여느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와 좀 다르다. 기업의 규모만 따지면 중소기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는 짓은 완전히 대기업 아니, 다국적 기업 수준이다. 자신들을 애플, 삼성, 필립스 등과 동급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메리디안(Meridian)’이라는 브랜드 네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리디안은 북극에서 남극까지 수직으로 쭉 이어지는 상상의 선인 ‘자오선’을 뜻한다. 자오선은 흔히 경도라고 하며 적도, 위도와는 수직으로 만난다. 자오선이 중요한 것은 미터법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오선의 길이는 4,000만 미터다. 즉, 미터라는 것은 자오선을 4,000만으로 나눈 값인 셈이다.

이중에 본초 자오선(Prime Meridian)이라는 게 있다. 지구 전체를 360개의 경도로 나눴을 때 0도에 해당되는, 자오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본초 자오선은 현재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본초 자오선을 자국으로 이전하려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그 기준은 바뀌지 않았다. 영국 회사인 메리디안의 이름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자신들이 오디오 업계에서 본초 자오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조용히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서라운드 프로세서나 MLP(Meridian Lossless Packing) 무손실 압축 기술, DVD 매체를 사용하는 오디오 전용 DVD-오디오 포맷 등이 모두 메리디안에서 나왔다. 최근에 나온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도 메리디안과 관련이 있다. MQA는 고해상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독자적인 코덱 기술을 투입한 포맷으로, 클래식 음악 재생에 탁월하다. K8에 적용된 메리디안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메리디안의 이런 기술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간판만 내건 여타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스피커가 부착된 뒷좌석 도어 트림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 구성 및 구조도

실제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서라운드 프로세서나 MLP(Meridian Lossless Packing) 무손실 압축 기술, DVD 매체를 사용하는 오디오 전용 DVD-오디오 포맷 등이 모두 메리디안에서 나왔다. 최근에 나온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도 메리디안과 관련이 있다. MQA는 고해상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독자적인 코덱 기술을 투입한 포맷으로, 클래식 음악 재생에 탁월하다. K8에 적용된 메리디안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메리디안의 이런 기술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간판만 내건 여타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다양한 컨트롤 옵션을 지닌 K8의 메리디안 시스템

그럼 K8에 장착된 메리디안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큼지막한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에서 메리디안 항목을 조사했다. 몇 가지 설정 메뉴가 눈에 띈다. 여기서 메리디안 시스템만의 독자적인 노하우를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언급할 것은 인텔리-Q(Intelli-Q) 기능으로, 차량의 속도에 따라 오디오의 음압 레벨과 음질을 자동으로 보정한다. 사실 낮은 속도로 달릴 때와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엔진 또는 외부 소음의 양과 주파수 특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두 번째는 호라이즌 효과(Horizon Effect)다. 이것은 사운드의 이미지와 서라운드를 동시에 조절해 마치 공연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과 입체감 있는 음향 공간을 조성하는 기술이다. 모든 좌석에서 일관된 음질을 제공하고, 공명을 세밀하게 제어하여 좁은 차량 내에서 한층 더 깊고 단단한 저음이 재생되도록 한다. 스테이지, 서라운드, 커스텀 등 3가지 모드가 있으며, 각 모드를 통해 생생하고 다양한 메리디안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원한다면 스테이지 모드, 현장감과 입체감 있는 사운드 취향이면 서라운드 모드, 고객이 직접 특색 있는 음향 공간을 꾸미고 싶으면 커스텀 모드에서 조정이 가능하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 특화 기능

인포테인먼트를 통해 세 가지 오디오 서라운드 음향을 설정하는 모습

세 번째는 디지털 정밀화(Digital Precision)다. 이것은 USB나 블루투스로 들어오는 디지털 음원 정보를 아날로그로 변환하여 출력하는 과정에서의 음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메리디안이 갖고 있는 장점이 듬뿍 드러나는 대목이다. K8의 메리디안에는 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량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MQA처럼 메리디안이 생각하는 음에 대한 철학이나 성격을 부여한다. 이 부분은 전문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가 아니면 손댈 수 없는, 음악성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RE-Q다. 이것은 차량 내부 공간의 특성이나 성격을 반영해서 적절하게 공간을 보정하는 기술이다. 홈오디오 용어로 설명하면 ‘룸 튜닝’과 유사하다. 어떤 음역대는 급격히 떨어지기도, 반대로 특정 음역대는 급격히 올라가기도 하는 등 차량의 공간 음향 특성은 내부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RE-Q는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메리디안 사운드 12채널 14스피커 구성

K8의 메리디안 시스템은 오디오 채널 구성도 화려하다. 사실 대부분의 카 오디오는 기본이 스테레오 음원을 고려한 2채널이다. 그러나 프리미엄 모델의 카 오디오는 좀 더 복잡하다. 일부 모델의 경우 멀티 채널을 소화하고 있다. K8에는 무려 14개의 드라이버(스피커)가 투입됐다. 트위터와 우퍼는 물론, 미드레인지와 서브우퍼, 그리고 센터 스피커도 있다. 심지어 서라운드 채널용 드라이버도 보인다. 덕분에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연결해 영화나 공연 실황을 감상하기에도 충분하다.

사실 메리디안은 대부분의 오디오 회사들이 2채널 하이파이에 머물러 있을 때 멀티 채널과 디지털 음원, 그리고 서라운드 음장 등 도전을 거듭하여 새로운 시장을 선점한 회사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퀄리티를 홈 씨어터에 실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메리디안의 이상이다. 이런 메리디안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K8까지 이어진 것이다.

카 오디오로 교향곡을 듣는 시대

오디오 전문가가 인포테인먼트를 통해 오디오 음향을 설정하는 모습

홈 오디오건 카 오디오건 나는 기본적으로 음악을 기준으로 리뷰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일단 모든 기능을 출고 당시의 기준, 그러니까 디폴트로 맞춘 가운데, 스테이지 모드로 음악을 들었다. 이 부분이 만족스러우면 다른 쪽은 체크할 필요가 없다. 첫 번째 트랙은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1악장>이다. 변화가 심하고, 다양한 악기가 등장해서 오디오를 평가할 때 무척 유용한 트랙이다. 우선 음이 가볍거나 얇지 않다. 적절한 볼륨감을 갖고 필요할 때 정확하게 엄습한다.

로우 레벨에서 디테일이 뛰어나고, 서서히 악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흉폭하게 몰아칠 때에도 아무런 파탄이나 왜곡이 없다. 확실히 급이 다르다. 힘 있게 폭발할 때의 에너지도 기대 이상이다. 이제는 카 오디오로도 심각하게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어서 카라얀이 지휘한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유려하고 매력적인 바이올린군의 움직임, 중간에 나오는 하프의 은은한 모습 등 북구의 신화가 떠오르고, 그 지역의 신비스러운 풍경이 연출된다. K8 메리디안 시스템의 재생 무대는 넓고 깊다. 바깥의 풍광과 어우러져 감상의 묘미가 배가된다. 좁은 실내 공간을 초월하여 차 주변으로 음장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느낌이다. 덕분에 창밖 풍경의 성격 자체도 바뀐다. 묘한 체험이다.

장르를 바꿔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을 틀었다. 바닥을 치는 베이스가 놀랍다. 손가락으로 튕기는 라인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보컬은 또 어떻고. 바로 앞 보닛에 크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크롤의 숨소리마저 정치하게 그려진다. 일렉트릭 기타의 풍부한 톤과 피아노의 영롱한 타건 등이 어우러져 감상에 묘미를 더한다. 악기와 보컬의 위치가 명료하고, 위 아래 막힘이 없다. 하이엔드 클래스의 오디오가 주는 느낌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사운드를 감상하기 위해 수 천만 원 아니 수 억 원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오디오 전문가가 뒷좌석에 앉아 음향을 평가하는 모습

뒷좌석 도어트림에 부착된 스피커를 손으로 만지는 모습

마지막으로 라디오헤드의 <Karma Police>를 들었다. 볼륨을 조금 높였더니 바로 공연장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또 몸으로 듣게 된다. 거대한 PA 스피커들 앞에 선 것처럼, 몰아치는 듯한 강력한 압박이 엄청난 쾌감을 선사한다. 이 정도라면 따로 공연장에 갈 필요가 없다.

본격적인 하이엔드 카 시대의 개막

운전석에 앉아 메리디안 오디오를 감상하는 모습

자동차로 야외에 나와 음악을 감상하면 주위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볼륨으로 이렇게 록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대단한 쾌감이고, 즐거움이다. 이 맛에 하이엔드 카 오디오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 난 카 오디오가 자동차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엔진이나 변속기 등 자동차들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 오디오 시스템의 완성도가 어느 한 모델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데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으로 과감하게 메리디안과 손잡고, 이런 사운드를 완성한 기아의 결정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또 그런 측면에서 K8은 본격적인 하이엔드 카의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K8의 메리디안 시스템은 솔직히 반칙이다. 그러나 옐로 카드 대신 꽃다발이라도 선사하고 싶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글. 이종학

월간 <스크린> 취재기자를 거쳐, 지금은 재즈 칼럼니스트와 오디오 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재즈 속으로>, <나는 재즈가 좋다>, <길모퉁이 재즈카페> 등 다수의 재즈 전문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3~2008년 하이파이 저널 <이종학의 진검 승부> 연재를 시작으로 인터넷 오디오 웹진 <하이파이 클럽>, <월간 오디오>, <하이파이 초이스>, <풀 레인지> 등에 평론을 냈다. 2015년부터는 중국 오디오 수입업체 <Zesen>의 고문으로, 2017년에는 마카오 오디오 쇼 고문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사진. 최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