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시즌을 맞아 새롭게 바뀐 i20 N WRC 랠리1 2022시즌을 맞아 새롭게 바뀐 i20 N WRC 랠리1

2022.01.24 현대 모터스포츠팀 분량6분

<2022 WRC 1R> 현대 월드랠리팀, 몬테카를로에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WRC의 2022 시즌이 개막했다. 개막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현대 월드랠리팀의 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드라마는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

WRC의 새 시대가 밝았다. 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각지에서 독립적으로 열리던 랠리들이 FIA 주도 아래 IMC(International Championship for Manufacturers)로 통합된 후 WRC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 1973년의 일. 반세기를 힘차게 달려온 WRC는 올해 하이브리드를 처음 도입하면서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젖혔다.

2022시즌을 맞아 새롭게 바뀐 i20 N WRC 랠리1

2022 시즌과 함께 달라진 가장 큰 변화는 랠리카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력 파츠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기존 월드랠리카를 대체하는 랠리1 카테고리는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기존의 1.6L 터보 엔진을 이어받으면서 모터를 추가해 하이브리드로 변모했다. 100kW(134마력) 모터와 3.9kWh 배터리, 컨트롤 유닛 등이 통합된 패키지는 모든 차에 동일한 제품이 공급되며, 뒤 차축 바로 앞에 설치된다. 센터 디퍼렌셜이 사라지고 차체 무게는 1,260kg으로 늘었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일부 공력 파츠와 서스펜션은 단순화되었다. 대신 순간적으로 출력을 500마력(기존 380마력)까지 뽑아 쓸 수 있어 이런 단점들을 상쇄한다.

또 하나 달라지는 부분은 섀시다. 양산차 모노코크를 보강해 썼던 이전과 달리 강관 스페이스 프레임에 껍데기를 씌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룹B 시절에 쓰이던 랠리카 구조가 부활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양산차 형태를 그대로 살려야 한다.

2022시즌을 맞이한 현대 월드랠리팀 드라이버들의 모습

(왼쪽부터) 2022 시즌 현대 월드랠리팀의 종합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다니 소르도, 오트 타낙, 티에리 누빌, 올리버 솔베르그

현대 월드랠리팀은 3세대 디자인을 적용한 i20 N WRC 랠리1을 선보였다.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오트 타낙(Ott Tanak)은 현재 WRC에서 가장 강력한 투톱 현역 드라이버. 둘의 통산 스테이지 우승 횟수를 더하면 29승(누빌 15, 타낙 14)이다. 승수만 따지만 8회 챔피언의 오지에(Sebastien Ogier)와 9회 챔피언인 로브(Sebastien Loeb)에 못 미치지만, 이들은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일부 경기에만 출전하므로 챔피언십 경쟁자가 아니다. 현대팀의 3번째 차는 다니 소르도(Dani Sordo)와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가 나눠 탄다. 신예 솔베르그는 개막전부터 출전했으며, 소르도는 지난해 몇몇 경기에서 월드랠리카를 타고 적응 훈련을 마쳤다.

현대팀은 작년 말 안드레아 아다모(Andrea Adamo) 감독과 결별했다. 후임에 대해서는 거물급 인사가 여럿 거론되지만 아직 공식화된 것은 없다. 우선은 현대 모터스포츠 노승욱 법인장이 임시 감독을 맡고 각 분야 담당자들이 실무를 이끌고 있다.

2022 WRC의 개막전으로 열린 몬테카를로 랠리

GR 야리스를 투입한 도요타는 엘핀 에반스(Elfyn Evans)와 칼레 로반페라(Kalle Rovanpera) 그리고 오지에,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를 엔트리 했다. 지난해 8번째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은 오지에는 은퇴를 선언했고, 올 시즌 일부 경기만 참전한다. 남은 공백은 새로 영입한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로 메꿀 예정이다.

M-스포트 포드는 포드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이전보다 워크스팀에 어울리는 면모를 갖추었다. 랠리카는 기존의 피에스타 대신 CUV인 퓨마다.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을 영입하고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까지 3대 체제로 늘렸다. 게다가 개막전에서는 파트타임으로 출전하는 베테랑 세바스티앙 로브까지 무려 4대가 출전했다. 로브는 오랜 파트너 다니엘 엘레나(Daniel Elena)가 은퇴함에 따라 여성 코드라이버 이사벨 갈미쉬(Isabelle Galmiche)를 옆에 앉혔다.

야간 주행, 눈길 주행 등 코스 난이도가 높은 몬테카를로 랠리

2006년부터 WRC의 개막전을 담당하고 있는 몬테카를로 랠리는 가혹하고 난이도 높은 주행 코스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역시 개막전은 몬테카를로(Monte-Carlo)다. 모나코는 작은 도시국가라 랠리 스테이지를 구성할 만한 도로가 없어 개막식과 시상식, 일부 SS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근 프랑스 땅을 달린다. 노면은 기본적으로 타막(포장도로)이지만 1월이라는 시기와 산길이라는 특성상 눈과 얼음, 젖은 노면이 뒤섞여 있다. 따라서 소프트와 수퍼 소프트, 윈터 타이어 중에서도 스터드와 스터드리스 등 무엇을 골라야 할지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가끔은 앞뒤 혹은 좌우에 다른 타이어를 끼우는 변칙적인 선택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몬테카를로 랠리는 총 296.03km의 17개 스테이지를 달리는 구성이다. 지난해 코로나19에 대비하고자 14개 스테이지로 짧게 진행했던 것과 달리 코스를 대폭 늘렸고, 몬테카를로 랠리의 상징과도 같은 SS2의 콜 드 투리니(Col De Turini) 코스가 돌아왔다. 특히 올해는 콜 드 투리니 코스가 야간 주행으로 마련됐으며, 이는 2013년 이후 근 10년 만에 펼쳐지는 진귀한 볼거리였다.

험준한 산악 와인딩 코스로 이뤄진 몬테카를로 랠리

몬테카를로 랠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헤어핀 코스,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목요일 저녁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에서 개막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국경을 넘어 프랑스 알프 마리팀(Alps-Maritimes)으로 달려갔다. 경기 구간은 2개 SS 38.45km밖에 안 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는 고난도 스테이지. 특히나 콜 드 투리니는 연속 헤어핀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난이도의 코스다.

초반 분위기는 역대 타이틀 보유 1, 2위인 로브와 오지에가 주도했다. 오지에가 SS1과 SS2를 잡아 종합 선두에 오르고 로브가 맹추격했다. 에반스와 포모, 그린스미스, 누빌, 브린, 타낙 순으로 첫날을 마쳤다. 소프트와 수퍼 소프트 타이어를 섞어 쓴 누빌의 도박은 잘 먹혀들지 않아 선두와 12.6초 벌어졌다. 인터컴 문제로 내비게이션이 잘 들리지 않은 솔베르그는 10위로 꽤 뒤처진 가운데 첫날을 마무리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한 i20 N WRC 랠리1

공식 대회에 처음 출전한 현대 i20 N WRC 랠리1.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해 1,260kg으로 무거워졌지만, 순간적으로 최고 500마력까지 끌어낼 수 있다

금요일은 메흐껑뚜흐(Mercantour) 국립공원에 마련된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리는 6개 SS 97.86km 구성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오전 루프를 마친 후 서비스를 받게 되지만, 이번에는 저녁에 서비스 파크로 복귀하기 전까지 드라이버와 코 드라이버가 직접 차를 수리해야 한다. 따라서 단 한 번의 사고나 트러블로도 경기를 완전히 망칠 수 있다.

포드팀의 아드리안 포모가 사고로 리타이어하는 모습

포드팀의 아드리안 포모는 주행 도중 코스를 이탈해 경주차가 대파되는 사고를 겪으며 리타이어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금요일 오전에는 백전노장 로브가 반격에 나섰다. SS3부터 내리 4개 스테이지를 잡아 선두로 올라섰다. 오지에는 SS5에서 로브보다 15.8초 느려 종합 3위로 내려앉고, 대신 에반스가 2위가 되었다. 포드팀은 로브의 선두 부상으로 기세가 오른 반면 포모의 차가 SS4에서 대파되었고, 그린스미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포모는 사고로 인해 경기를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첫날 부진했던 현대팀은 페이스를 서서히 되찾는 듯 보였다. SS4와 SS5에서 누빌과 타낙이 상위권에 올랐다. 종합 순위로도 누빌 4위, 타낙 6위가 되었다.

오전을 넘기며 기온이 올라 노면이 빠르게 마르고 있었다. 오후에는 그린스미스가 SS7에서 톱타임을 기록. 개인 통산 첫 스테이지 우승에 환호했다. 금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 로브가 종합 선두를 유지하고 오지에가 2위가 되었다. 종합 4위로 금요일을 마감한 누빌은 선두와의 시차를 47.8초로 좁혔다. 타낙은 브린을 추월해 5위가 되었다.


도요타팀 엘핀 에반스의 사고 모습

도요타팀 엘핀 에반스도 코스를 이탈해 이번 경기를 포기하는 듯했으나 끝까지 달리는 데는 성공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토요일은 조금 더 서쪽에 위치한 알프 드 오뜨 프로방스(Alpes-de-Haute-Provence) 지역으로 이동했다. SS9~SS11의 3개 스테이지를 오전에 달린 후 SS10과 SS11을 다시 달리는 구성이었다. 오지에가 SS10을 잡으면서 다시 로브를 밀어내고 선두에 복귀했다. 그런데 토요일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가장 빨랐던 에반스가 SS11에서 코스를 벗어나며 경기를 망쳤다. 경사로에 걸친 랠리카는 관중의 도움으로도 끌어올릴 수 없었다. 덕분에 오전을 달린 뒤에는 브린이 3위, 누빌이 4위가 되었다.

현대팀 오트 타낙과 올리버 솔베르그가 사고를 당하는 모습

현대팀 오트 타낙과 올리버 솔베르그의 사고 장면. 사진 : WRC (https://www.wrc.com)

하지만 현대팀에게도 불운이 찾아왔다. SS12에서 스터드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누빌은 마른 구간에서 빨랐지만, 얼어붙은 노면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서스펜션 마운트 파손으로 SS12에서 3분 이상을 잃었다. SS11에서 코너를 위험하게 가로지른 후 벽과 충돌했던 타낙은 스테이지를 가까스로 마쳤지만 이동 구간에서 냉각수가 터지며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토요일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종합 선두는 오지에. 포드팀의 로브와 브린이 그 뒤를 이었다. 로반페라, 그린스미스가 4위와 5위, 누빌은 선두보다 7분 44초 뒤처진 6위다. 배기가스 실내 유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솔베르그는 SS10에서 코스를 벗어나 토요일 경기 결과 48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새로운 기술규정이 적용되는 첫 랠리였던 만큼 10대의 랠리1 출전자 중 무려 절반이 사고와 트러블에 발목 잡혀 득점권 밖으로 밀려났다.

현대팀 티에리 누빌의 주행 모습

오트 타낙과 올리버 솔베르그가 리타이어한 가운데 티에리 누빌의 전략적인 주행이 중요해졌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일요일은 알프 마리팀으로 되돌아와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67.26km 구간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렸다. 오지에가 선두지만 21.1초 뒤에 로브가 있어 안심할 수 없었다.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로브가 가장 빨랐고 1.1초 차이로 오지에가 따라붙었다. 누빌은 이어진 SS15에서 시즌 첫 톱타임으로 비로소 숨통이 틔었다. 솔베르그는 SS14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 리타이어를 결정. 타낙에 이어 솔베르그까지 경기를 포기함에 따라 현대팀에는 누빌만 남았다. 어제까지 시간을 많이 잃은 누빌은 순위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파워 스테이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소프트 타이어 한 쌍을 최대한 아끼는 전략을 골랐다.

치열한 선두 싸움은 SS16에서 다시 한번 대역전극으로 이어졌다. 오지에가 타이어 펑크에 발목이 잡힌 사이 로브가 9.5초 차이로 선두에 올라선 것. 게다가 브린이 종합 3위를 기록하고 있어서 지난해까지 최약체였던 포드팀의 대약진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최종 SS17에서는 로반페라가 가장 빨랐고 에반스, 누빌, 로브, 오지에가 추가 점수를 챙겼다.

살얼음길을 달리는 현대 i20 N WRC 랠리1

어둠, 눈, 비, 고갯길 등 복잡한 주행 환경이 뒤섞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10명의 랠리1 드라이버 중 5명의 드라이버가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로브는 47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몬테카를로 랠리의 우승을 차지했다. 2018년 스페인전 이후 4년 만에 개인 통산 80승 고지를 달성한 동시에 8번째 몬테카를로 우승컵이다. 오지에와 브린이 시상대 나머지 자리를 채웠고 로반페라, 그린스미스, 누빌 순으로 개막전을 마무리했다. 현대팀은 최종 6위(8점)를 기록한 누빌이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 3점을 추가로 챙겨 총 11점을 획득했다.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둔 현대 월드랠리팀

현대팀은 개막전의 불운을 딛고 제2전인 스웨덴 랠리에서 역전의 드라마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유달리 사고가 많이 벌어지는 몬테카를로 랠리의 매서움은 여전했다. 여러 악재를 경험한 현대팀에게는 다소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2019, 2020년에도 시즌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다가 중·후반부터 기세가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제2전 스웨덴 랠리는 만성적인 눈 부족 사태를 피해 남부 칼스타드(Karlstad)에서 북동부 우메오(Umea)로 자리를 옮겨 2월 24~27일 열린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2022 WRC 드라이버 및 팀 순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