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9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을 집계해 제공하는 <EV볼륨스(EV-volumes.com)>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2020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가 14%나 감소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약 324만대의 판매를 기록해, 전년 대비 무려 43%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5%에서 4%로 늘었고, 전 세계 전기차 운영 대수 역시 1,000만 대를 넘어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0년 글로벌 시장에 전기차 19만 8,487대를 판매하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6.7%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혁신이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 않듯, 전기차 역시 무려 130년만에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부활에 성공했다. 전기차가 최근 10~20년 사이에 생겨난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차그룹 역시 1980년대부터 전기차 개발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전기차 판매 5위 안에 들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개발 역사를 살펴봤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기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기자동차다. 당시 기아자동차(이하 기아)가 개발한 베스타 전기차는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에서 기록게시용 선도차량으로 사용되었고, 1993년 엑스포 박람회에서는 VIP 수송을 위한 6인승 오픈카로 개조돼 활용됐다. 최근 용어로 ‘특수목적차량(Purpose Built Vehicle, PBV)’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베스타 전기차는 12V 160Ah 밀폐형 납축전지 9개를 직렬로 묶어 병렬 2세트(총 18개)로 사용했고, 성능은 최고속도 시속 90km, 1회 충전 주행거리 120km 수준이었다.
1991년 11월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전기차를 선보였다. 쏘나타 전기차는 납축전지와 직류직권모터, 그리고 차퍼(Chopper) 방식 컨트롤러를 적용했으며, 성능은 최고속도 시속 60km, 1회 충전 주행거리 70km였다. 현대차는 쏘나타 전기차를 시작으로 이후 성능이 향상된 전기차 콘셉트카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가령 1992년 6월 선보인 엑셀 전기차는 1회 충전 주행거리 100km, 최고 속도 시속 100km로 쏘나타 전기차 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그리고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공개한 쏘나타 전기차와 스쿠프 전기차의 경우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40km, 최고 속도는 시속 120km까지 끌어올렸다. 터널식 배터리 탑재방식을 적용해 합리적인 중량 배분을 시도했으며, 전기차 전용 냉난방시스템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아는 1991년 프라이드 전기차와 세피아 전기차를 개발했다. 프라이드 전기차는 당시 신뢰성과 효율성이 매우 높은 직류모터를 사용했고, 전력소모가 적은 자연 공랭식을 적용했다.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고 신뢰성도 높은 12V 145Ah 납축전지 10개를 사용했으며, 루프와 본넷에 설치한 솔라셀을 통해 총 160W의 전력생산이 가능했다. 이는 국내 최초 솔라 하이브리드 전기차로, 솔라셀 활용으로 주행거리를 약 16km 연장할 수 있었다. 아울러 가정용 전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110V용 탑재형 충전기를 도입했고, 200V 별치형 충전기를 사용하면 한층 빠른 충전이 가능했다.
세피아 전기차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최고출력 60kW급 모터와 인버터, 그리고 회생제동 기술을 적용했으며,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90km였다. 탑재형 충전기를 적용해 가정용 220V 전원으로도 8시간 만에 완충이 가능했으며 유도전류식 별치형 충전기로는 3시간 만에 완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었다.
한편, 현대차는 1995년 남양에 연구개발센터를 개소하면서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개발했던 전기차 관련 기술들은 1996년 니켈메탈수소전지를 탑재한 1회 충전 주행거리 390km, 최고속도 시속 140km, 제로백 15초의 성능을 지닌 엑센트 전기차로 이어졌다. 엑센트 전기차는 2년여간 10억 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개발됐으며, 당시 가솔린 자동차와 대등한 수준의 성능을 보였다. 아울러 미국 빅3 업체와 일본 혼다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미국 무공해차(Zero Emission Vehicle, ZEV) 인증을 획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차는 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에서 우리나라 최초 하이브리드 콘셉트카인 FGV-1를, 1999년에는 그 후속작인 FGV-2를 발표하며 하이브리드 개발을 본격화했다. 당시 성과들은 2008년 LPG 엔진과 전기모터를 활용한 최초 하이브리드 양산 모델인 아반떼 LPi로 이어졌다. 물론 현재 양산 중인 아반떼, 쏘나타, 그랜져 하이브리드 등에도 이런 연구 개발 노하우가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기아도 제1회 서울 모터쇼에서 하이브리드 컨셉트카인 KEV-4를 공개했다. 도심 출퇴근 용도로 연비를 높이기 위해 경량화를 실현했으며, 당시 최첨단 시스템인 내비게이션도 장착했다. 프라이드 전기차와 같이 루프에 솔라셀을 설치했고, 배터리를 제너레이터로 계속 충전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었지만 배터리로만 운전이 가능했고, 이럴 경우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0km, 최고속도는 186km/h 수준이었다. KEV-4의 배터리는 밀폐형 납축전지였으며, 제동시 차량의 관성운동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축전지를 충전함으로써 약 15% 에너지 절감을 실현한 것이 특징이었다.
199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개발의 붐이 일었던 시기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가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완전 무공해 자동차를 전체 판매대수의 2% 이상 판매해야 한다는 ‘ZEV(Zero Emission Vehicle)’ 의무 규정을 최초로 발표했고, 이로 인해 완성차 업체들이 가솔린 차량과 동등한 수준의 전기차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1980년~1990년대는 현재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위상 확보의 기반을 다진 기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아의 첫 특수목적차량,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콘셉트 정립 및 기술 개발, 그리고 현대차의 본격 연구개발 시작과 전 세계 다섯번째 미국 무공해차 인증 획득 등은 치열한 연구 개발로 얻은 소중한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면서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하이브리드가 떠오르면서 2000년대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9년 현대자동차는 아반떼 LPi를, 기아는 포르테 하이브리드 LPi를 출시했다. 두 차는 현대차와 기아의 친환경 브랜드인 ‘Blue Drive’와 ‘Eco Dynamics’의 첫 작품으로, 국산차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차량이자, 리튬폴리머 배터리와 함께 액화석유가스 연료를 사용한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프라이드 역시 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된 적이 있었지만, 민간 판매용이 아닌 공공기관 납품 모델으로, 일반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로는 아반떼와 포르테 LPi가 최초라고 볼 수 있다. 두 차는 모두 1.6 LPi 엔진에 15kW 모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통해 17.8km/L의 높은 연비를 제공하며 고연비 친환경 모델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참고로 독자개발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TMED)을 탑재한 현대차의 쏘나타 하이브리드(2011년 5월 출시)는 2008년 개발에 착수했다. TMED 시스템은 엔진과 모터의 동력 단속을 담당하는 엔진 클러치와 하이브리드 전용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덕분에 구조가 보다 간단하고 용량이 적은 모터로도 구동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 1990년대의 전기차 개발 붐의 배경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ZEV 의무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솔린 자동차와 비슷한 성능의 전기차를 개발하고, 이를 양산할 기술이 충분치 않았기에 캘리포니아 주의 공격적인 ZEV 의무 규정은 실효성을 갖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2000년대에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기차는 이후 2010년대에 들어 다시 양산화에 돌입하게 된다.
인간공학과 기술경영을 전공했으며, 현재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포티투닷 등에서 근무했으며, 국무조정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 국토부 모빌리티혁신위원회, 자율주행차 융복합 미래포럼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동의 미래〉, 〈잡 킬러〉, 〈공유경제와 사물인터넷의 미래〉 등을 집필했고, 국내외 모빌리티 정책과 미래 기술, 기업들의 전략과 얼라이언스 진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사람 중심의 안전하고 편리한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서비스 제안, 규제 해소 등을 통해 국내 모빌리티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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