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7 현대자동차
집단지성이 첨단 기술과 만나 창조 경제의 새로운 장(場)을 열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2005년 등장한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입니다.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고, 그 방법을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공유하며, 공유된 방법을 더욱 발전시키는 모든 과정을 가리킵니다.
메이커 운동을 대중화한 테크숍(Techshop) CEO 마크 해치의 설명에 따르면 ‘메이커’는 ‘새로운 만들기를 이끄는 새로운 제작 인구’를 뜻합니다. 과거의 제작 활동은 발명가, 공예가, 기술자 등 특정 부류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수준급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죠. 개인용 3D 프린터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피규어를 만들어 선물하는가 하면, 보급형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출시된 후에는 ‘백만 유튜버’ 세상이 됐듯이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메이커 운동은 이제 특별한 현상이 아닌 익숙한 일상이 됐습니다. 나아가 산업 시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만큼 확장됐죠. 바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과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의 사전적 정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인터넷을 활용해 개인에게 투자 자금 따위를 모으는 방식’입니다. 풀어 설명하면, 공급자는 아이디어 단계에 있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청사진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제작에 필요한 금액을 공시합니다.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공급자가 제시한 금액을 투자하고, 목표액에 도달하면 공급자는 해당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작/개발해 투자자들에게 보냅니다. 네트워크 기술과 금융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일이죠.
과거에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려면 전문 투자 기업이나 투자자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제약이 많고 기회가 한정적이었죠.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라는 개념이 ‘후원’에 가까울 만큼 대중화되자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덕분에 개개인의 머릿속에만 머물던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세상 빛을 보게 됐죠.
2018년 열풍이었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좋은 예입니다. 백세희 작가의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담은 이 에세이집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2천만 원을 모아 종이책으로 출간됐고,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출판사에만 의지했다면 자칫 묻힐 수도 있었던 실력 있는 작가, 훌륭한 작품이 대중의 자본으로 발굴된 셈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이 ‘투자’로 제작에 동참한다면, 크라우드 소싱은 그보다 직접적입니다. ‘생산과 서비스 과정에 소비자나 일반 대중을 참여하게 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기업 활동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가 각자의 지식, 정보, 기술 등을 활용해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해냅니다.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001년 등장한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등록하고,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입니다. 특별한 제약 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서 위키피디아의 정보는 늘 최신이며 다양하고 정확한 편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크라우드 소싱을 혁신 모델로 채택하는 민간 기업이 늘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레고(LEGO)입니다. 덴마크 장난감 기업인 레고는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라는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 마니아들로부터 제품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투표와 심사를 거쳐 상용화로 이어가는데, 채택된 아이디어 제안자에게는 매출액의 1%를 리워드로 제공합니다. 2018년 돋보이는 독창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레고 아이디어 팝업북(LEGO® Ideas 21315 Pop-Up Book)이 바로 레고 아이디어스의 결과물입니다.
현대자동차는 크라우드 소싱을 보다 이타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UNDP(UN Development Programme, 유엔개발계획)와 함께 2020년 9월부터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for Tomorrow’를 운영 중인데요. 교통, 주거, 환경 등 오늘날 글로벌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수집하고 현실화하는 캠페인입니다.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전 세계 누구나 상시로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에 의견을 보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30개국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50여 개의 다양한 솔루션이 홈페이지에 접수됐습니다. 특히 ‘나이지리아 지역 주민들이 태양광 가로등을 스스로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솔루션’, ‘네팔의 노후화된 미니 전기 버스에 고효율 배터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핀테크 플랫폼 솔루션’ 등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장밀착형 솔루션부터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혁신 솔루션까지 지역 사회에 맞는 다양한 솔루션이 모집됐습니다.
현대자동차와 UNDP는 홈페이지에서 제안된 다양한 분야의 솔루션 중 일부를 선정해 환경 운동가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David De Rothschild)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UNDP 산하 'UNDP 액셀러레이터 랩스(Accelerator Labs)' 그리고 '현대 크래들(Hyundai CRADLE)'을 통해 액셀러레이팅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를 거쳐 다 함께 만드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날카로운 경쟁보다는 유연한 협업이 필요한 지금, 가치 있는 아이디어에 기꺼이 힘을 보탤 때 비로소 세상은 긍정적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