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자동차 쏘울 EV가 국산차 최초로 ‘2020 월드카 어워즈(WCA)’에서 ‘2020 세계 도심형 자동차’로 선정됐다.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 역시 얼마전 ‘2020 워즈 오토 10대 엔진 & 동력시스템’ 부문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현대·기아차의 전기차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는 디자인, 편의사양 구성, 성능, 가격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동급 최고 수준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AER, All Electric Range)는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성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용 시 편의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면 충전을 자주 하지 않아도 돼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장거리 여행도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도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난해 EV 트렌드 코리아가 전기차 구매를 고려 중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중 45%가 전기차 구매 시 가장 중요한 선택 요소로 주행거리를 꼽았다.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친환경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특히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1회 충전 주행거리와 같은 전기차의 효율 측면에서 높은 기술력을 확보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공식 인증 기준 가장 높은 전비(電費)를 달성한 바 있으며, 쏘울 EV와 니로 EV, 코나 일렉트릭 등은 동급 최고 수준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 전기차의 높은 효율은 어떤 기술로 완성됐을까?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서 해결한 것일까? 현대·기아차의 e-파워트레인과 배터리에 담긴 핵심 기술, 그리고 효율적인 열관리로 저온에서의 주행거리 저하를 막아주는 히트펌프 기술에 대해서 살펴봤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하는 e-파워트레인의 진화다. 파워트레인은 동력을 일으켜 바퀴에 전달하는 자동차의 핵심부품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파워트레인은 엔진과 변속기로 구성된다. 전기차의 경우에는 파워트레인을 구성하는 부품이 내연기관차와는 다른데,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장치인 ‘구동모터’와 배터리의 전력을 변환하여 모터에 전달하는 ‘통합전력제어장치(EPCU)’, 그리고 완속 충전을 위한 제어기인 ‘온보드차저(OBC)’와 모터의 회전수를 줄여 구동력을 발생시키는 ‘감속기’ 등으로 구성된다.
현대·기아차 1세대 전기차의 e-파워트레인은 주요 부품이 따로 분리된 형태였다. 하지만 쏘울 EV, 코나 일렉트릭과 같은 2세대 전기차의 e-파워트레인은 부품을 일체화 시켜 무게와 부피를 줄였다. 차량 무게가 가벼워지면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소요되는 전기 에너지가 감소하게 되므로, 1회 충전 주행거리 역시 늘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구조를 변경하며 각 부품의 사양도 개선했다. 고효율, 고출력 구동모터를 개발해 적용했고, 전력변환 부품인 온보드차저와 통합전력제어장치도 사이즈를 줄이고 출력과 출력 밀도를 증대시켰다. 2세대 전기차의 경우 세대교체를 거치며 구동모터의 출력이 88kW에서 150kW로 늘었다.
두 번째는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의 개선이다. 전기차의 주행거리 확보를 위해서는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차량 내부에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무작정 용량을 늘릴 수는 없다. 사람과 짐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차의 주행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해야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정해진 공간에 배터리 탑재량을 극대화 하기 위해 공랭식보다 배터리를 더 촘촘하게 배열할 수 있는 수랭식 냉각방식을 채택했다. 공랭식 냉각방식은 배터리 셀 냉각을 위한 공기 통로가 필요하지만, 수랭식의 경우 이러한 공간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배터리 탑재량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또, 기존 시스템 대비 에너지 밀도가 약 35% 증가한 배터리셀을 적용했다. 전기차에서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중요한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용량을 늘리기 위해 배터리를 키우면 크기에 비례해 차량이 무거워지는데, 이 때 바퀴를 굴리는 전기 모터가 감당하는 부담은 늘어난 무게만큼 커지고, 에너지 효율은 떨어진다.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를 키워도 늘어난 용량에 비례해 주행 가능 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쏘울 EV의 경우 1세대 모델은 30kWh의 배터리로 1회 충전에 180km를 달렸지만, 2세대 모델은 64kWh의 배터리로 1회 충전 시 최대 386km를 주행할 수 있다(국내 복합 기준). 이와 같이 주행 가능 거리가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터리 시스템의 효율적인 구성과 향상된 배터리 셀의 성능 덕분이다.
e-파워트레인과 고전압 배터리의 개선은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 총량을 늘려주는 핵심기술이다. 이 밖에도 현대·기아차는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높이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2014년 쏘울 EV부터 적용한 히트펌프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의 히트펌프는 인버터, 구동 모터 등 전기차의 전장 부품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실내 난방에 활용해 전력 소모를 최소화한다. 전기차는 엔진 대신 전기모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을 난방에 활용할 수 없다. 따라서 전기차는 주로 배터리의 전력을 소모해 전기히터를 가동한다. 난방 시스템의 전력 소모가 크면 당연히 1회 충전 주행거리도 줄어든다. 겨울철 일부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크게 줄어드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전기히터 난방시스템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의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히트펌프 시스템을 도입했다. 물론 전장 부품에서 발생하는 폐열은 직접 난방에 이용할 정도로 충분히 뜨겁지 않다. 따라서, 이를 난방에 활용하기 위해 고온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히트펌프 시스템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외부 공기에서 받은 열과 전장 부품에서 발생한 폐열을 활용해 액상의 친환경 냉매를 기체로 기화 시키고 압축기로 압력을 높인다. 이 후, 고압의 기체를 응축기로 전달해 다시 액체로 변환한다. 고압의 기체가 액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실내 난방에 활용하는 것이다.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열이 필요하고, 반대로 수증기가 물이 될 때 열을 발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론 냉매의 압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압축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지만 배터리의 전력으로 직접 전기 히터를 가동하는 것보다 월등히 적은 전기에너지가 소비된다. 실내를 식히고 실외기를 통해 열을 배출하는 에어컨처럼 히트펌프는 열을 발산하는 전장 부품의 열을 흡수해 자동차 실내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정용 빨래건조기나 냉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에어컨도 위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현대·기아차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히트펌프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코나 일렉트릭에 적용한 고효율 히트펌프는 기존의 히트펌프보다 한층 더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 기존 히트펌프의 경우 외부 공기의 열과 구동모터, 온보드차저, 통합전력제어장치 등의 PE 모듈에서만 발생하는 폐열만 주로 활용해왔지만 개선된 고효율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 열과 PE 모듈은 물론 배터리, 완속 충전기 등에서 발생하는 폐열까지 활용한다.
현대·기아차는 2014년 쏘울 EV에 세계 최초로 폐열을 활용하는 히트펌프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코나 일렉트릭, 기아차 니로 EV 등 전기차 전 모델에 히트펌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도 최근 모델Y에 적용하기 시작한 히트펌프 시스템을 두고 ‘우수한 기술(Best engineering)’이라며 해당 기술의 효용성을 언급한 바 있다.
환경부가 실시하는 전기차 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 평가 결과를 보면 히트펌프 시스템의 성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환경부는 상온(25℃) 1회 충전 주행거리 대비 저온(-7℃, 난방 ON) 주행거리 비율이 60% 이상을 기록해야 친환경차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인증하고 있다. 코나 일렉트릭과 니로 EV의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은 90%로, 아이오닉이 갖고 있던 세계 최고 기록(76%)을 경신했다. 이는 난방 시스템을 켜더라도 배터리 소모량이 적어 상온 1회 충전 주행거리의 약 90%를 주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온에서 1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 에너지가 남았다고 가정했을 때, 코나 일렉트릭으로 히터를 켜고 주행하면 90km를 갈 수 있지만, 히트펌프를 적용하지 않은 전기차는 이보다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것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테슬라 모델 3와 코나 일렉트릭을 예로 들면 상온에서는 모델3가 코나 일렉트릭보다 9km 멀리 가지만, 저온에서는 코나 일렉트릭이 59km 더 멀리 주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코나 일렉트릭: 상온 406km/저온 310km, 테슬라 모델3 : 상온 415km/저온 251km
현대·기아차의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2014년 기준 0.9%로 15위였다. 2018년 5% 점유율을 기록하며 10위 권에 진입했고, 지난해 11월에는 공동 3위(7%)까지 올라갔다. 중국 브랜드 BYD의 전기차가 대부분 자국에서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글로벌 브랜드 중 2위 그룹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왔다.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다양한 전기차를 선보인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동급 최고 수준의 안전 및 편의 사양을 적용하고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행거리 성능을 꾸준히 개선하는 등 기본에 충실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기아차가 앞으로 선보일 차세대 전기차가 한층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