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2021.06.07 현대 모터스포츠팀 분량5분

현대 월드랠리팀의 누빌, 제5전 이탈리아 랠리를 3위로 마무리하다

이탈리아 샤르데냐 섬에서 치러진 2021 WRC 제5전은 좁은 노폭과 거친 노면 등 높은 악명만큼이나 사고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 월드랠리팀의 티에리 누빌은 3위로 포디엄에 오르며 무사히 경주를 마쳤다.

지난해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10월에 열렸던 WRC 이탈리아 랠리는 올해 원래의 일정으로 돌아와 6월 3일부터 6일까지 2021 시즌의 제5전으로 치러졌다. 이번 경주가 열린 사르데냐 섬의 북부 몬테 아쿠토 지역은 거친 노면과 작렬하는 태양 등 참가자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 랠리는 1928년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2004년 사르데냐로 옮기기 이전까지 산레모에서 열렸다. 현재 이탈리아 랠리의 정식 명칭은 랠리 이탈리아 사르데냐(Rally Italia Sardegna)다.

상공에서 촬영한 이탈리아 사르데냐 랠리 코스

올 시즌 다섯 번째 랠리는 아름다운 서지중해의 사르데냐 섬 속에서 펼쳐진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제주도 13배에 달하는 면적의 사르데냐는 서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프랑스 랠리(현재는 WRC 캘린더에서 빠졌다)의 무대인 코르시카 섬과 인접해 있다. 코르시카는 타막 랠리인 반면, 사르데냐는 섬 산악 지역의 비포장길을 달린다. 올해의 사르데냐는 서비스 파크가 설치되는 랠리 베이스 위치가 달라진 것이 특징이다. 지난 7년간 사용했던 섬 북동쪽의 알게로를 떠나 그 이전에 쓰였던 서쪽 올비아로 되돌아갔다.

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이탈리아 랠리는 폭이 좁은 산길에서 펼쳐져 단 한 번의 실수가 리타이어로 이어지는 곳이다. 위는 SS7에서 누빌의 타이어 펑쳐 장면. 다행히 누빌은 사르데냐에서 끝까지 완주하며 경주를 3위로 마쳤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사르데냐의 산길은 고속이면서도 노폭이 좁아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노면 가장자리에 덤불, 나무와 바위가 늘어서 있어 라인을 이탈하면 큰 데미지를 각오해야 한다. 노면은 기본적으로 단단하며 흙과 자갈이 덮여있다. 포르투갈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피렐리 신형 그래블 타이어는 바로 이곳 사르데냐에서 개발 테스트를 실시했다.

인터뷰 중인 다니 소르도

최근 기세가 좋은 다니 소르도가 이번에도 현대 월드랠리팀의 세번째 랠리카에 탑승했다

포르투갈에서 더블 리타이어로 손실이 컸던 현대 월드랠리팀은 제조사 타이틀 방어를 위해 사르데냐에서의 승리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티에리 누빌과 오트 타낙, 다니 소르도라는 선택 가능한 최고의 카드를 투입했다. 누빌은 2016년과 2018년 사르데냐의 우승자이며, 소르도는 2019년과 2020년 두 번의 우승 경험뿐 아니라 현재 챔피언십 포인트 7위로 출발 순서도 유리하다. 타낙도 포드 시절(2017년) 사르데냐에서 우승 경험이 있다. 또한 제4전 포르투갈 랠리에서 리타이어 했지만 랠리카의 느낌이 한층 좋아지고 있다면서 넘치는 의욕을 드러냈다.

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여파로 C2 컴페티션 팀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참고로 현대 세미 팩토리팀인 C2 컴페티션은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와 올리버 솔베르크(Oliver Solberg)를 엔트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솔베르크의 아버지인 페터 솔베르크(Peter Solberg)가 코로나 확진을 받아 밀접 접촉자인 올리버 역시도 포르투갈에서 격리 조치에 들어갔다. 현대 WRC2 클래스의 올레크리스티앙 베이비(Ole-Christian Veiby)는 확진자 접촉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격리 의무도 지키지 않아 6개월 출장정지라는 중징계가 떨어졌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 월드랠리팀은 포르투갈 더블 포디엄의 여세를 몰아 리드를 넓혀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근래 이탈리아는 거의 현대 월드랠리팀의 독무대였다. 게다가 오지에와 에반스는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 1, 2위라 첫날 가장 먼저 출발해야 한다. 그래블 랠리는 먼저 달리는 사람이 흙과 자갈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하다.

M스포트 포드의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는 코드라이버 크리스 페터슨(Chris Patterson)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해 스튜어트 루돈(Stuart Loudon)을 임시 기용했다. 나머지 한 대의 차는 수니넨(Teemu Suninen)이 운전한다. 신예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의 대활약으로 입지가 좁아진 수니넨은 이번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 포모는 이번 경주에 WRC2 클래스로 참가했다.

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쉐이크다운 주행에서 현대 월드랠리팀 드라이버들이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이번 랠리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목요일 올비아 인근 2.89km 코스에서 실시된 쉐이크다운 테스트에서는 누빌이 가장 빨랐다. 타낙은 2위, 소르도는 5위였다. 토요타팀의 로반페라(Kalle Rovanpera)는 스티어링 이상이 발견되어 서비스를 받은 후 무사히 테스트 주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날 저녁에는 알게로에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세레모니얼 스타트가 있었다.

거친 노면을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오트 타낙이 랠리 초반 선두를 잡은 가운데 칼레 로반페라가 SS4에서 허무하게 리타이어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선수들은 금요일 아침 일찍 동쪽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경기를 시작했다. 오전에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린 후, 서비스를 받고 오후에 북쪽의 다른 스테이지 2개를 반복하는 127.4km의 구성이다. 이탈리아 랠리는 5년 전만 해도 40km가 넘는 초장거리 스테이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길어도 20km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오프닝 스테이지 SS1 필리고수-사 콘체다(Filigosu - Sa Conchedda)는 22.29km로 이번 경기 중 가장 길다. SS1에선 타낙이 13분 8초 3의 톱타임으로 상쾌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타낙은 포르투갈에서의 좋은 페이스가 우연이 아니라는 듯, 오전 4개 스테이지를 연속으로 잡아냈다. 로반페라는 SS4에서 리타이어해 경쟁에서 멀어졌다.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실내

주행중인 경주용 자동차 실내

랠리 기간 동안 팀을 막론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리타이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서비스를 받고 시작한 오후에도 타낙의 기세는 여전했다. 타낙은 SS5까지 잡아 선두를 질주했다.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소르도는 SS5에서 잠시 오지에에게 추월당했지만 SS6~SS8에서 3연속 톱타임으로 2위 자리를 회복했다. 선두 타낙과의 시차는 19.4초. 소르도의 16.8초 뒤에 오지에가 있고, 에반스가 종합 4위로 올라섰다. 세팅 변경으로 오후에 페이스를 회복하는 듯 보였던 누빌은 SS7에서의 타이어 펑크 때문에 5위로 밀려났다. 누빌과 4위 에반스와의 시차는 1.2초다. 한편, M스포트 포드팀은 첫날부터 경기를 망쳤다. 수니넨이 첫 스테이지에서 리타이어한데 이어 종합 7위를 달리던 그린스미스마저 SS8에서 경기를 포기했다.

점프중인 레이싱카

미키스 점프 코스는 단연 사르데냐 랠리의 백미다

6월 5일 토요일 경주는 조금 더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치렀다. 토요일의 129.62km의 스테이지들은 랠리 팬들에게 보다 익숙한 무대다. 오전 SS10, SS12에 사용되는 레르노-몬티 디 알라(Lerno - Monti Di Ala, 22.08km)는 사르데냐 랠리의 상징과도 같은 미키스 점프(Micky's Jump)를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모여든다. 토요일 역시 금요일과 마찬가지로 오전과 오후 각기 2개씩 4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렸다. SS13, SS15는 2005년 이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보르티지아다스(Bortigiadas) 스테이지를 조금 변형해 14.7km로 만들었다.

드라이버 관점에서 본 주행씬

드라이버 관점에서 본 주행씬

현대팀은 이번에도 드라이버 두 명이 리타이어하는 불운이 겹치고 말았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가장 빨랐던 타낙은 이어지는 SS10에서 2위, SS11 3위로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타낙은 오전을 마감하는 SS12를 빠르게 공략해 나아가던 도중, 8.9km 지점에서 도로 위에 놓인 커다란 돌을 피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이 때 생각보다 큰 데미지를 입은 타낙의 랠리카는 서스펜션이 부러져 더 이상의 주행이 불가능했다. 뒤따르던 오지에가 선두를 이어받고 소르도가 2위에 올랐다. 그리고 3위 에반스의 8.5초 뒤에서 누빌이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하지만 현대팀의 불운이 이어졌다. 소르도가 SS15에서 코너 오른쪽 둔덕에 부딪힌 뒤, 차가 구르면서 뒷바퀴가 찢어져 주행 불능 상태가 되었다. 현대팀은 이번에도 우승 후보 2명이 연속 리타이어했다. 타이어를 관리하며 토요일 5개 스테이지를 잡은 오지에가 종합 선두를 이어갔고 에반스는 2위 자리를 굳혔다. 현대팀에서 유일하게 남은 누빌은 에반스의 22.7초 뒤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현대 i20 WRC 레이싱카의 후측면

랠리 3일차, 상위권에 오른 드라이버들이 포디움 위치를 두고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6월 6일 일요일은 섬의 최북단 4개 스테이지 46.08km 구간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였다. 15.25km의 아르자체나-브라니아토규(Arzachena-Braniatogghiu) 스테이지는 2009년에서 약간 수정되었다. 해안에서 시작해 다시 해안으로 돌아오는 7.79km의 아글리엔투-산타 테레사(Aglientu-Santa Teresa, SS18 / SS20)는 완전 신규 코스로 사르데냐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이 코스를 끝내고 나면 우승자는 전통에 따라 바다로 뛰어들며 기쁨을 만끽한다.

드라이버 관점에서 본 주행씬

SS20 주행 도중 순간 시동이 꺼진 엘핀 에반스는 곧장 시동을 걸고 출발해 리타이어를 면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스테이지 SS17과 이를 다시 달리는 SS19에서 에반스가 가장 빨랐다. 하지만 오지에는 일요일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에반스에 39초 가까이 앞서 여유가 충분했다. 결국 오지에가 이탈리아 랠리 우승컵을 손에 넣었고, 에반스는 2위를 차지했다. 누빌은 3위로 시상대에 올랐으며, SS20 파워 스테이지 1위로 추가 5점을 챙겼다.

트로피를 들고 있는 티에리 누빌

티에리 누빌이 포디움에 오르며 현대팀의 체면을 지켰다

시즌 3승째인 오지에는 106점으로 챔피언십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에반스는 현재 95점이고, 누빌은 3위(15점)에 추가 5점으로 20점을 챙겨 77점을 기록하며 에반스와의 차이를 18점으로 좁혔다. 파워 스테이지에서 4점을 더한 타낙은 챔피언십 4위를 지켰다. 연속 4위에 오른 가츠타(Takamoto Katsuta)는 로반페라를 제치고 챔피언십 5위로 올라섰다.

WRC 제6전은 아프리카로 이동해 7월 24~27일 케냐에서 열린다. 오랜 전통의 사파리 랠리는 1953년 시작해 1973년 WRC 캘린더에 포함되었으며, 2002년 이후 오랜만의 부활이다. 애초 지난해 열릴 예정이지만 코로나 사태로 1년 미루어졌다. 예전처럼 60km짜리 초장거리 스테이지는 없지만, 거친 노면과 무더위만으로도 최악의 난이도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글 솜씨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미련을 놓지 못한 것이 벌써 27년이다. <카비전>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자동차생활>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2021 시즌 WRC 드라이버 순위 및 점수. 기준 5라운드 이탈리아 랠리. 1위 세바스티앙 오지에, Toyota World Rally Team 106점, 2위 엘핀 에반스 Toyota World Rally Team 95점, 3위 티에리 누빌 Hyundai World Rally Team 77점, 4위 오트 타낙 Hyundai World Rally Team 49점, 5위 타카모토 가츠타 Toyota World Rally Team 48점

2021 시즌 WRC 팀 순위 및 점수. 기준 5라운드 이탈리아 랠리.  1위 Toyota Gazoo Racing World Rally Team 231점, 2위 Hyundai Shell Mobis World Rally Team 182점, 3위 M Sport Ford World Rally Team 82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