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1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 키(Key)는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자동차에서 키가 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동차의 문을 잠그거나 여는 보안 장치로서의 역할이고, 두 번째는 자동차가 움직이게 만드는 시동 장치로서의 역할입니다. 다만 차 키가 자동차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개발 초창기의 자동차는 문이나 천장이 없는 오픈된 형태였기 때문에 별도의 보안 장치가 없었으며, 사람이 직접 플라이휠이나 크랭크 핸들을 돌려 엔진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렇다면 차 키는 언제 등장했으며,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요
자물쇠를 여는 것처럼 열쇠를 넣고 돌려 시동을 거는 턴키 스타터(Turnkey Starter) 방식은 1949년 최초로 자동차에 도입됐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검은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자동차 키도 바로 이때 등장했죠. 내연기관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시점이 1886년이니 무려 63년 동안 자동차는 키 없이 달린 셈입니다.
물론 63년간 앞서 소개한 것처럼 사람이 직접 동력을 만들어 엔진 시동을 거는 방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턴키 스타터 방식처럼 배터리와 코일을 이용해 엔진 시동을 거는 방식은 1910년 자동차에 도입됐습니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자동차 키가 없었을 뿐이죠.
자동차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자동차는 개인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내 자동차를 절도와 같은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중요해졌죠. 자동차 키는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차 키가 있어야만 자동차 실내로 들어갈 수 있고, 시동도 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유의 패턴으로 가공된 키 표면이 자동차 보안 시스템의 암호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키는 복제가 쉽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차 키 쇳조각의 외부 표면이 아닌 안쪽을 가공해 고유의 패턴을 만드는 방식의 열쇠가 등장하기도 했죠. 1994년 등장한 이모빌라이저 기술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이모빌라이저 기술이 탑재된 키는 겉보기에는 일반 키와 똑같이 생겼지만, 열쇠의 손잡이 부분에 ‘트랜스폰더(transponder)’라는 암호화된 칩이 들어갑니다. 이 칩의 정보를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가 인증한 뒤에야 시동을 걸 수 있게 했죠. 즉, 겉모양만 똑같은 키로는 자동차 문은 열 수 있어도 운전은 불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모빌라이저 기술은 현재도 사용되는 자동차의 중요한 보안 장치입니다.
자동차 키는 보안뿐만 아니라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해왔습니다. 1980년대에 개발된 리모컨키가 대표적입니다. 리모컨키는 여전히 많이 사용되는 자동차 키로,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차의 잠금 장치를 원격으로 여닫는 기능을 지원합니다. 차종에 따라 차의 위치를 찾기 위해 원격으로 경적을 울리거나 미리 엔진 시동을 걸어두는 기능을 지원하기도 하죠.
다만 리모컨키는 대부분 엔진 시동 부분에서 턴키 스타터 방식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 키를 넣고 돌려야 하죠. 참고로 초창기 리모컨키는 차 키와 분리된 형태나 차 키의 손잡이 부분에 버튼이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리모컨에 자동차 키를 접어서 수납하는 형태인 플립 형태의 키가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키는 편의성, 보안성 등을 두루 갖춘 만능 자동차 키입니다. 리모컨키와 외형은 유사하지만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하죠. 스마트키는 자동차와 저주파 통신을 통해서 작동이 이뤄집니다. 덕분에 리모컨키보다 더 멀리서 자동차의 잠금 장치를 여닫을 수 있죠. 또한 스마트키는 자동차 근처에만 가면 자동차가 이를 인식해 잠금 장치를 열거나 웰컴 모션 등의 편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편의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대부분의 스마트키는 턴키 스타터 방식이 아닌 버튼 시동 방식을 지원합니다. 과거 이모빌라이저 기능은 열쇠 손잡이 부분에 삽입된 칩을 통해 작동했지만, 스마트키의 이모빌라이저 기능은 안테나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자동차 내에 스마트키가 있으면 자동차가 이를 인식해 엔진 시동을 거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현대차 쏘나타, 기아 K5 등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RSPA)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의 경우 스마트키를 이용해 차 밖에서 내 차를 주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좁은 공간에서의 주차나 출차가 어려운 초보운전자에게 유용한 기능입니다.
2019년 출시된 8세대 쏘나타에 적용된 디지털키는 별도의 물리적인 키 개념을 없앤 자동차 키입니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자동차 키를 소지하고 있지 않아도 차의 잠금 장치를 열 수 있고, 엔진 시동도 걸 수 있습니다. 기존의 스마트키가 가진 기능을 스마트폰이 대체할 수 있도록 자동차 키를 프로그램화 한 것이죠. 디지털키는 현대차의 쏘나타, 아반떼, 투싼을 비롯해 기아의 카니발, K5, K8 등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디지털키 기술은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근거리 무선통신(NFC) 또는 저전력 블루투스 통신을 활용해 연결합니다. 물리적인 개념이 없는 특징 덕에 내 자동차 키를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단순히 공유를 넘어 사용 기간 또는 특정 기능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한적으로 자동차 키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택배 기사에게 트렁크만 열 수 있는 키를 전송해 배송 물품을 차에 실어놓게 하거나 지인에게 차를 빌려주며 사용 시간을 한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디지털키는 향후 개인 자동차 공유 시장이 활발해지면 더욱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 대여자와 수여자가 직접 만날 필요 없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디지털키를 주고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화 프로필 적용, 주차 위치 확인 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키 이후에 등장할 자동차 키는 무엇일까요?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생체인식 시스템입니다. 디지털키가 물리적인 키의 개념을 없어지게 만든 기술이라면, 생체인식 시스템은 자동차 키라는 개념 자체를 없어지게 만들 기술입니다. 자동차 키로 보안을 강화하지 않아도 나만 잠금 장치를 열 수 있고, 나만 엔진 시동을 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생체인식 기술은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중국형 싼타페(현지명 셩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자동차 도어 개폐 및 시동이 가능한 ‘지문 인증 출입·시동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제네시스는 최근 출시한 GV70의 카페이(차량 내 간편 결제 시스템), 발레 모드 등에 지문 인식을 적용해 편의성을 개선하였습니다.
향후 자동차에는 지문 인식뿐만 아니라 홍채, 안면인식, 음성 등 다양한 생체인식 시스템이 탑재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운전자 고유의 발걸음 소리를 인지해 자동차 스스로 잠금 장치를 열고, 홍채 인식 또는 목소리 인식을 통해 엔진 시동을 걸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보안에 대한 걱정 없이 한층 더 자동차를 더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