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를 달리는 현대 i20 WRC 레이싱카 오프로드를 달리는 현대 i20 WRC 레이싱카

2021.05.24 현대 모터스포츠팀 분량5분

현대 월드랠리팀, 시즌 첫 그래블 전에서 2위에 오르다

2021 시즌 첫 그레블 전인 포르투갈 랠리에서 현대 월드랠리팀의 다니 소르도가 2위를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그래블의 비중이 큰 WRC 일정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랠리이다.

타막과 스노가 섞인 모나코, 풀 스노 랠리였던 핀란드 북극랠리와 신생 타막전 크로아티아에 이어 5월 20~23일 제4전 포르투갈 랠리가 열렸다. 포르투갈 랠리는 지난해 코로나로 취소되었기 때문에 2년 만의 개최다. 1967년 처음 열렸고, 1973년 WRC 시작부터 함께해 온 유서 깊은 이벤트다. 2000년대 들어 WRC 캘린더에서 빠진 적도 있지만, 긴 역사와 관중들의 열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2014년까지 열렸던 남부 알가르베 코스는 그다지 좋은 평을 얻지 못하다가 2015년부터 북쪽으로 돌아왔다. 랠리 본부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항구인 포르토 인근 마토지뉴스에 설치된다.

포르투갈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현대 i20 WRC 레이싱카 주행 모습

포르투갈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노면의 그립 특성 탓에 트러블이 잦은 전장 중에 하나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포르투갈의 노면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단단하고 거친 돌 위에 부드러운 모래와 자갈이 덮여있어 경기 진행에 따라 그립 특성이 달라진다. 코스는 고속과 테크니컬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번 라운드에서는 2개의 스테이지를 새로 추가했다.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는 피렐리는 이곳에서 신형 그래블 타이어(스콜피온 XK)를 투입했다. 지난해부터 많은 테스트를 거치기는 했지만 아직은 실전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개수가 충분한 하드와 달리 소프트는 8개만 지급되어 타이어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다니 소르도의 레이싱카 측면

PWRC 챔피언 출신의 보르하 로자다가 다니 소르도의 새로운 코드라이버 자리에 앉았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누빌과 타낙, 그리고 3번째 차에 다니 소르도를 태웠다. 누빌은 챔피언십 2위로 오지에를 바싹 뒤쫓고 있고, 개막전에서 리타이어했던 타낙 역시 제2전 아크틱 랠리에서 우승하며 챔피언십 경쟁에 합류했다.

시즌 개막 직전엔 누빌의 파트너 교체가 화제였다. 그런데 소르도 역시 새로운 코드라이버와 짝을 이뤘다. 개막전 몬테카를로 이후 거의 4달 만에 돌아온 소르도는 카를로스 델 바리오(Carlos del Barrio) 대신 보르하 로자다(Borja Rozada)를 새로운 코드라이버로 맞아들였다. 보르하 로자다는 소르도와 같은 스페인 출신으로 베니토 구에라(Benito Guerra)와 함께 2012년 PWRC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베테랑이다. 하지만 주로 스페인에서 활동해 아직 다양한 무대 경험이 적다는 것이 약점이다.

현대 i20 WRC 레이싱카 전측면

다니 소르도는 새로운 코드라이버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라운드 내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라운드는 5월 20일 목요일 밤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에서 세레모니얼 스타트 후, 21일 금요일 아침 인근 산악지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SS1~SS8의 8개 스테이지로 구성됐고, 총 길이는 122.88km다. 경기 첫날 상위권 대부분은 소프트를 끼우고 하드 타이어를 스페어로 실었다.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가장 빨랐던 것은 현대팀의 타낙이었고, 소르도와 누빌이 뒤를 이었다. 이어진 SS2와 SS3에서는 소르도가 톱타임을 기록하면서 종합 선두에 올라섰다. 풀 시즌 참전이 아닌 소르도는 출발 순서에서 유리한 입장이다. 자갈이나 흙이 많이 쌓인 노면에서는 먼저 출발할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소르도는 오후의 SS5까지 잡아 선두를 유지했으며, 코드라이버와의 호흡도 좋았다. 이처럼 오전에는 현대팀 3인방이 1-2-3 체제를 이루었다. 현대 C2 컴페티션의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는 SS2에서 길을 벗어나 리타이어했고, 포드팀의 그린 스미스(Green Smith)는 SS3에서 타이어 펑크로 시간을 잃어 선두권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주행 중에 파손된 레이싱카와 선수들의 모습

20년 만에 다시 도입된 모르타구아 구간에서 많은 선수들이 홍역을 치렀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순위권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SS7에서였다. SS7 모르타구아는 20년만에 WRC에 복귀한 스테이지다. 누빌이 왼쪽 코너에 오버 스피드로 진입해 흑벽과 접촉하면서 큰 데미지를 입었다. 대파된 오른쪽 뒷바퀴를 질질 끌며 스테이지를 마쳤지만 경기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소르도 역시 헤어핀에서 엔진이 꺼지고 타이어 마모도 심해 3위로 후퇴했다. 동료들의 부진 속에서 현대팀의 타낙이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드라이버 시선에서 본 레이싱 장면

드라이버 시선에서 본 레이싱 장면

호시탐탐 선두를 노리던 에반스는 선행 차량의 흙먼지로 시간 손실을 입었으나, 노셔널 타임 판정으로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포르투갈의 건조한 기후 때문일까, 누빌을 뒤따르던 토요타팀의 에반스는 서스펜션 파손으로 느리게 주행하는 누빌이 만들어내는 흙먼지로 인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맞닥트렸고,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주행을 이어가지 못하고 40초에 가까운 시간 손실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주최측은 천만다행으로 노셔널 타임(notional time, 유사 시 주최 측에서 정상 주행 시의 기록을 산정해 인정하는 제도, 스플릿 타임 등으로 판단함)을 받으며 2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드리프트하는 레이싱카

오트 타낙과 엘핀 에반스가 라운드 초중반 1위 자리를 놓고 혈전을 펼쳤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금요일은 루사다 랠리크로스 코스에서의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로 마무리했다. 2대가 나란히 출발하는 방식은 기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참가자는 긴장하고, 관중들은 끓어오른다.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오랜만의 포르투갈 랠리를 만끽했다. 에반스와 나란히 출발한 타낙은 SS8 톱타임으로 금요일을 마무리하며 선두 자리를 지켰다. 종합 2위 에반스와는 6초 차이였으며, 소르도는 종합 3위다. 토요타의 타카모토 캇츠타(Takamoto Katsuta)와 오지에(Sebastien Ogier), 로반페라(Kalle Rovanpera)는 4~6위에서 기회를 노리는 중. WRC2 클래스로 엔트리한 현대팀의 올리버 솔베르크는 종합 12위다.

현대 i20 WRC 레이싱카 전측면

레이스의 열기가 절정에 달할 즈음, 오트 타낙이 개인 통산 250번째 스테이지 우승을 기록했다

5월 22일 토요일은 마토지뉴스 북동쪽 카브레이라 산맥에서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린 후, 포르토로 돌아와 단거리 스테이지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구성은 SS9~SS15 7개 스테이지 165.17km다. SS11, SS14를 겸하는 아마란테는 37.92km로 이번 랠리에서 가장 길다. 한편 SS15는 16세기에 지어진 상 주앙 밥티스타 요새(Forte de Sao Joao Baptista) 주변을 3바퀴 도는 3.3km 스테이지다.

오프닝 스테이지 SS9에서는 타낙이 24분 11초 9로 가장 빨랐다. 이후 SS10과 SS11까지 3연속으로 타낙, 에반스, 소르도가 1~3위를 차지했다. 에반스의 끈질긴 추격에도 불구하고 타낙은 연속 톱타임으로 거리를 조금씩 벌렸다. 오전 경주를 마친 상태에서 2위 에반스와 차이는 19.2초. 소르도는 소프트 타이어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3위에서 맹추격 중이다. 사실상 포인트 피니시가 물 건너 간 누빌은 소프트 타이어를 아껴 일요일 파워 스테이지를 노리기로 했다. 오후 SS13에서 타낙은 개인통산 250번째 스테이지 우승을 기록하며 에반스와의 시차를 22.4초 까지 벌려냈다.

굳은 표정의 오트 타낙

라운드 중반까지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던 오트 타낙은 랠리카 파손으로 선두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런데 현대팀의 불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최장 스테이지 SS14 아마란테의 34.1km 지점에서 타낙이 우측 리어 서스펜션 손상으로 차를 멈추었다. 이에 뒤따르던 에반스가 종합 선두가 되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현대팀의 소르도다. 소르도는 포르토로 돌아와 치러진 SS15에서 에반스와의 시차를 10.7초로 줄였다. 토요타의 로반페라도 SS13을 마친 후 리타이어했다. 오지에는 동료 캇츠타와 격렬한 3위 경쟁을 벌였다.

Highlights Stages 12-14 : Vodafone Rally de Portugal 2021

점프 구간을 지나는 레이싱카의 주행 모습

점프 구간과 풍력발전기가 상징과도 같은 파페 코스에서 포르투갈 랠리 트로피의 주인공이 결정 지어졌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일요일은 5개 스테이지 49.47km 구간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렀다. 오프닝 스테이지 펠게이라스(9.18km)와 파페(11.18km)는 두 번씩 달리고, SS17은 한번만 달리는 구성이다. SS18 파페를 다시 달리는 최종 SS20은 파워 스테이지를 겸한다. 파페는 1973년 포르투갈 랠리 시작과 함께 태어난 전설적인 무대로, 아주 길진 않아도 광활한 언덕 지형에 풍력발전기들이 늘어선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코스 막판에 있는 페드라 센타다 점프 주변은 최고의 조망 포인트다.

오프닝 스테이지(SS16)에선 에반스가 톱타임으로 기세를 이어갔다. SS17과 SS19까지 잡으며 소르도와의 거리를 벌렸다. 반면 소르도는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에반스에 9.6초 뒤져 사실상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이제 남은 것은 11.18km의 SS20뿐.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최종 스테이지에서 타낙이 톱타임, 누빌이 2위를 차지했고 오지에, 로반페라, 에반스가 추가 점수를 챙겼다.

트로피를 들고 있는 다니소르도

다니 소르도가 현대 월드랠리팀의 원투펀치를 제치고 포디움에 오르는 쾌거를 안았다. 이는 코드라이버 로자다 선수의 WRC 첫 포디움이기도 하다.

이번 포르투갈 랠리에선 크로아티아에서 오지에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했던 에반스가 시즌 첫 승리를 가져갔고, 소르도는 2위를 자치했다. 소르도와 첫 호흡을 맞춘 코드라이버 보르하 로자다 선수는 WRC 첫 포디움 피니시의 기쁨을 맛봤다.

오지에는 캇츠타의 추격을 뿌리치고 3위에 올라 챔피언십 포인트 선두 자리를 유지했다. 이번 승리로 26점(25+1)을 챙긴 에반스가 누빌을 밀어내고 챔피언십 2위로 올라섰다. 누빌은 3위, 타낙은 4위다. 제조사 포인트에서는 토요타가 더블 포디엄으로 183점으로 달아났고, 현대팀은 파워 스테이지 1, 2위를 챙겨 146점이 되었다. 참고로 포르투갈을 떠난 랠리 행렬은 이탈리아로 건너가 6월 3~6일 사르데냐섬에서 제5전을 치른다. 거칠기로 유명한 노면과 작렬하는 여름 태양 아래서 펼쳐질 뜨거운 결전이 기대된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글 솜씨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미련을 놓지 못한 것이 벌써 27년이다. <카비전>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자동차생활>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2021 시즌 WRC 드라이버 순위 및 점수 기준 4라운드 포르투갈 랠리. 1위 세바스티앙 오지에 Toyota World Rally Team 79점 2위 엘핀 에반스 Toyota World Rally Team 77점 3위 티에리 누빌 Hyundai World Rally Team 57점 4위 오트 타낙 Hyundai World Rally Team 45점 5위 칼리 로반페라 Toyota World Rally Team 41점

2021 시즌 WRC 팀 순위 및 점수 기준 4라운드 포르투갈 랠리. 1위 Toyota Gazoo Racing World Rally Team 183점 2위 Hyundai Shell Mobis World Rally Team 146점 3위 M Sport Ford World Rally Team 6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