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7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바로 시승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전시된 차를 살펴보는 것과 도로에서 차를 직접 타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고 주행을 하면서 다양한 요소를 꼼꼼히 살펴봐야 차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옷 한 벌을 살 때도 직접 입어보는 것처럼, 차량 구매 전 시승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자동차 영업소에서의 시승은 정해진 코스 안에서 1~2시간 동안 이뤄진다. 게다가 처음 타는 차를 냉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차량 구매 전 시승에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랜 경력의 자동차 칼럼니스트인 나윤석, 이동희, 류청희, 민병권 4명에게 자동차 구매 전 시승에서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물었다.
조언을 구한 영역은 시승하기 전에 살펴볼 수 있는 트렁크나 수납 공간 같은 실내 공간 요소, 그리고 실제 시승 중에만 파악할 수 있는 주행 성능과 승차감 부분이다. 현실적으로 시승 중 살펴볼 수 없거나 개인 취향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내외관 디자인이나 편의 사양에 대한 평가는 배제했다. 참고로 내외관 디자인이나 편의 사양 같은 부분은 전시차 등 다른 기회를 통해서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자동차에서 실용성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는 무척 많다. 수납 공간 수나 트렁크 크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차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실용성의 평가 기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납 공간이 많이 필요한 운전자라면 이와 관련된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장거리 주행을 많이 하고 각자의 짐도 실어야 한다면, 각 도어의 수납 공간이 넉넉한지, 컵 홀더나 충전 단자는 몇 개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민병권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트렁크 역시 각자의 용도에 맞게 살펴봐야 한다. 대형 차들은 트렁크 크기를 골프백 적재 가능 개수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형 차의 트렁크에는 골프백이 4개까지 실리지만, 이 기준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골프백이 실리는 트렁크에 유모차나 여행용 캐리어 등 부피가 큰 다른 짐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트렁크 용량이 크다고 실용성이 꼭 뛰어난 것도 아니다. 트렁크 벽이 반듯하지 못해 용량과는 달리 부피가 큰 짐을 싣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동희 칼럼니스트는 제원표 상의 트렁크 용량이나 골프백 개수 같은 수치가 특정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승을 하러 갈 때 본인이 자주 쓰는 물건을 직접 넣어보는 것입니다. 안쪽은 넓지만 입구가 좁아 물건을 넣을 수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나윤석 칼럼니스트 역시 트렁크 입구 크기와 함께 트렁크 바닥 높이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단 같은 경우에는 트렁크를 열었을 때 트인 부분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SUV에서는 턱의 높이도 중요하죠. 차가 높으면 짐을 싣기가 힘듭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들은 하나 같이 시승 전 차에 탑승하는 과정 중 불편함은 없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탑승 중 머리가 천장 쪽에 닿거나 다리가 걸리는 경우, 운전석이 너무 높거나 낮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처럼 어딘가 이상하다면 그 이유를 알아내고, 이후에는 올바른 운전 자세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운전 자세를 잡았다면, 여유 공간을 살펴야 한다. 특히 뒷좌석이 중요하다. “앞좌석을 맞춘 후, 뒷자리에 앉아 엉덩이를 뒤로 바싹 붙이고 헤드레스트를 적정 높이로 맞춘 상태에서 무릎 앞쪽 공간과 머리 위 공간의 여유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뒷좌석에 실제 탑승할 때는 엉덩이를 앞으로 조금 빼고 앉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사람마다 앉은 키가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민병권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뒷좌석 다리 공간은 운전석을 적절한 운전 자세로 조절한 상태에서 확인한다. 의외로 중요한 것이 발 공간이다. 바닥이 두꺼운 신발을 신었을 때도 앞좌석 아래로 발을 넣을 수 있는지, 시트 레일 또는 바닥 송풍구에 걸리진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발을 모아야 하거나 제대로 뻗을 수 없으면 앉은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유아용 카시트와 관련된 부분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카시트 장착 부위가 찾기 쉽게 노출되어 있는지, 장착이 쉽게 배치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류청희 칼럼니스트는 카시트 설치 편의성과 함께 아이들을 태우고 내릴 때 나와 아이의 몸이 차량 어딘가에 걸리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시트는 한 번 설치해 놓으면 떼어낼 일이 많지 않지만, 아이들을 태우고 내리는 일은 수시로 있기 때문이죠. 시승 전 도어의 열림 각도, 도어를 열었을 때 트이는 부분의 크기, 유아용 카시트 설치 상태를 고려했을 때의 좌석과 천장 높이, 그리고 앞좌석과의 거리 등을 골고루 살펴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시승을 시작했다면 주행 성능과 관련된 부분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엔진 최고출력이나 최대토크, 변속기 기어 단수, 혹은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 시간 같은 수치들은 실제 차를 사용하는 여건과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시승 전 참고 사항으로만 알아두는 것이 좋다.
“도로 시승에서 처음 타는 차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평가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속은 얼마나 쉬운 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멈추는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지 정도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동희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자동차 브랜드의 시승 센터에서 진행되는 시승은 안전과 원활한 시간 확보를 위해 코스가 정해져 있다. 민병권 칼럼니스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낯선 코스에서의 시승일 수록 편안하게 시승하는 게 좋습니다. 일정 속도를 유지하다가 가속 페달을 지그시 혹은 조금 빠르고 깊숙이 밟아 차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추월 가속’이라고 표현하는 주행 중 가속 특성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와 몸으로 느껴지는 가속감의 차이가 작을수록 성능에 여유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급출발과 급제동을 짧게나마 확인하는 것도 좋다.
나윤석 칼럼니스트는 제동 감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가속 감각과 더불어 비중을 두고 살펴봐야할 것은 제동 특성입니다. 이 역시 추월 가속 특성처럼 주행 중 브레이크 페달 조작 정도와 실제 속도가 줄어드는 정도의 차이를 비교하는 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적절한 가감속만으로도 차의 여러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가속 시 나는 소리, 변속감과 변속 충격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감속 때는 브레이크 페달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윤석 칼럼니스트는 기본기에 대해 강조했다. “짧은 시승 시간 자동차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차가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멈추는지를 최대한 살필 필요가 있죠. 의도에 따라 차가 따라와 준다는 느낌을 받는 기준은 운전자마다 다르거든요. 이건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주행 특성 파악과 함께 살펴봐야 할 부분은 바로 승차감이다. 류청희 칼럼니스트의 조언을 들어보자. “자신이 탈 차라면 평소 느낌을 기준으로 삼아, 내 차를 몰 듯 운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징들을 확인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평가 기준에서 승차감은 요철에서 차체 움직임의 차이가 작고, 변화가 자연스러울수록 좋습니다.”
뒷좌석에 누군가를 태울 일이 잦다면, 실제 뒷좌석에 주로 앉을 사람 혹은 많이 앉아본 사람을 실제로 태워봐야 한다. “같은 차라도 운전석에서 느끼는 승차감과 뒷좌석에서 느끼는 승차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느라 뒷좌석에 앉을 일이 거의 없었던 이들은 뒷좌석 공간이 낯설기만 할 수도 있죠.” 이동희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나윤석 칼럼니스트는 많은 운전자가 휠과 타이어의 규격이 승차감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다고 말한다. “같은 조건에서 지름이 작은 휠을 끼운 차가 지름이 큰 휠을 끼운 차보다 요철에 좀 더 부드럽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이어 편평비가 높기 때문이죠. 이런 점을 고려해 시승 전이나 후에 휠과 타이어를 확인하고 내 차에 어떤 규격의 휠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음과 진동도 반드시 살펴봐야할 요소다. 민병권 칼럼니스트는 소음과 진동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령을 소개했다. “공조 장치도 체감 소음과 진동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공조 장치를 끄면 차의 소음과 진동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죠.”
마지막으로 류청희 칼럼니스트는 시승하는 마음 가짐에 대해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새 차를 타면 낯선 느낌 때문에 차가 더 좋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평상시처럼 마음 편히 시승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와 잘 맞는 차인지 알아보는 게 차량 구매 전 시승의 목적이니까요.”
지금까지 차량 구매 전 시승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것들을 알아봤다. 확인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면, 중요 사항의 우선 순위를 미리 정리한 뒤, 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최대한 자연스럽고 폭넓게 느낀 후에 이를 잘 정리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조금 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_김준혁
도움말_ 나윤석, 이동희, 류청희, 민병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