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현대자동차그룹
최근 현대·기아차는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최첨단 ADAS 안전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차체 안전성을 대폭 강화한 새로운 3세대 플랫폼 등 다양한 첨단 안전 기술과 장비를 탑재해 사고 시 탑승자의 상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최근에는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눈에 띄는 신기술도 선보였다. 바로 충돌 후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아주는 기술인 ‘다중 충돌방지 자동 제동(Multi Collision Brake, 이하 MCB)’ 시스템이다.
기존의 안전 기술은 사고를 예방 또는 회피하거나 최초 사고 당시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MCB는 최초 사고가 난 직후 상황을 생각한 기술로, 기존의 자동차 안전 범위를 조금 더 확장시킨 것이 특징이다. 기아차 4세대 쏘렌토와 제네시스 G80에 적용된 MCB의 개발 배경과 함께 작동 원리를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요인으로 인해 운전자는 통제력을 상실한다. 운전자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고, 자동차가 망가져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외부 충격에너지로 인해 차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교통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무척 다양하다. 1차 사고 후 발생하는 2차 사고의 위험성과 치사율이 높은 것은 이런 변수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조사한 고속도로 2차 사고 치사율은 52.7%로, 일반사고 치사율인 9.1%보다 무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사고가 위험한 것은 무엇보다 사고가 난 차의 움직임을 주변 차들이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충돌한 자동차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로로 진입할 수도 있고, 도로를 이탈해 주행 중인 다른 차, 보행자, 가로수, 가드레일 등과 2차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에 2차 사고 예방법을 검색하면 나오는 공통된 내용이 있다. 사고가 난 차를 안전구역으로 이동시킨 후 비상 삼각대를 설치하고 자리를 피해 사고 신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한계가 있다. 운전자의 몸과 의식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충돌사고가 발생한 차에 제동을 걸면 2차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소개된 ‘2차 충돌 완화 제동의 안전성 평가’라는 제목의 논문에는 1차 충돌한 사고 차에 제동 기능을 제공하면 2차 사고를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 현대·기아차가 MCB를 개발해 적용한 것에는 바로 이러한 이론적 배경이 있다.
MCB는 정면 및 측면 등 충돌사고로 인해 차량 에어백이 전개될 경우, 차에 적절한 자동 제동 기능을 작동시켜 2차 사고 등 다중 충돌을 경감시켜주는 안전 기능이다. 작동 조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어백이 전개될 정도로 강한 충돌이 발생했을 때 MCB가 작동하게 된다.
이를 위해 MCB 시스템은 여러 컨트롤러와 센서로 구성되며, 각 부분이 순차적으로 작동한다. 우선 사고가 발생하면 ACU(Airbag Control Unit, 에어백 제어 장치)가 충돌을 감지해 에어백을 전개시킨다. 이후 휠 센서와 IMU(Inertial Measurement Unit, 관성 측정 장치) 센서를 통해 차의 속도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한편, 페달 센서를 통해서 운전자가 가속 및 제동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즉 MCB 시스템은 충돌사고로 에어백이 전개된 이후 운전자의 페달 조작이 없거나 조작량이 적다고 판단하면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전자식 자세제어 장치)에서 당시 속도와 차량 운동 상태에 따라 적절한 제동을 걸어 차를 안전하게 멈추게 한다.
이렇게 사고가 나는 찰나의 순간 MCB가 작동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시스템이 처리해야 하는 정보는 방대하다. G80이나 4세대 쏘렌토는 차량 내 데이터 통신 방식으로 정보 처리 속도가 초당 200Mb에 이르는 3세대 CAN 네트워크 방식이 적용됐다. 덕분에 1차 충돌 사고를 인지하고 각 컨트롤러와 센서의 정보를 수집해 ESC로 자동 제동을 실시하는 과정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MCB가 발생시키는 제동력은 초당 5m/s(18kph)로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정도로, 안정적으로 차량을 감속시키면서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차의 이동을 최소화해 2차 사고 예방을 할 수 있다.
MCB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주행속도가 180km/h를 넘어서는 안된다. 고속에서의 급작스러운 제동은 오히려 더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 제동 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일정 강도 이상 밟으면 시스템 개입이 해제된다. 운전자가 또 다른 사고를 피하기 위해 제동 대신 가속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 마지막으로 자동 제동이 작동하여 차량이 정지하게 되면 MCB의 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2초뒤 자동 제동을 해제한다.
MCB는 유럽에서도 2차 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인정 받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기관인 유로앤캡(EuroNCAP; European New Car Assessment Program)의 경우, 성인보호 영역 충돌 테스트에서 MCB를 적용한 차에 1점을 부여한다. 또한 유럽 자동차 제조사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MCB를 적용한 차는 2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연간 최대 8%, 중상자는 4%가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 쏘렌토와 제네시스 G80 외에 내년까지 새로 출시하는 신차 16종에 MCB를 탑재할 계획이다. 또한 각 부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과 사고 시 차량의 이동 방향을 고려해 좀 더 안정적으로 제동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구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업그레이드된 MCB가 적용된다면 2차 사고로 인한 피해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MCB 같은 안전 기술로 자동차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현대차그룹의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사고 발생 이전과 사고 상황을 넘어서 사고 이후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안전 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술 개발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층 안전한 자동차 생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