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EV3, EV4, EV6, EV9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선보인 E-GMP 기반 전용 전기차 EV5는 유독 정통 SUV 보디 타입을 강조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들과 차별화된 ‘전기차 스타일’을 내세우곤 하는 여느 전동화 SUV들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모름지기 SUV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차체 크기는 전장 4,610mm, 전폭 1,875mm, 전고 1,675mm, 축간거리 2,750mm로, 길이나 폭, 높이가 딱 준중형 SUV다. 이는 도로 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스포티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휠베이스와 전장 모두 넉넉하게 뽑아냈다. 가족 구성원 누구나 쉽게 적응하고 부담 없이 운전할 수 있을만한 크기다. 게다가 휠베이스가 길고 앞뒤 오버행이 짧은 형태를 가진 전기차가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체구를 가졌다면 실내 공간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단, 전기차는 차체 아래쪽에 배터리를 탑재하는 만큼, 내연기관 차종과 전고가 비슷할 경우 실내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EV5의 패키징을 눈여겨보게 된다. 81.4kWh의 넉넉한 삼원계(NCM) 배터리를 탑재했음에도 이로 인해 실내 바닥이 높아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동급 최고 수준의 2열 레그룸과 헤드룸까지 확보했다.
가족과의 이동이 잦을 경우 신경을 쏟게 되는 2열 공간을 먼저 살폈다. 뒷좌석에 앉아 등받이 각도를 뒤로 기울이면 꽤나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유연한 등받이 각도 조절은 물론 편안한 시트 쿠션 형상을 갖춘 EV5는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각도로 낮게 접혀 트렁크와 풀플랫으로 연결되는 기능을 갖춘 시트가 평소에는 이렇게 안락한 착좌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뒷좌석에 앉은 가족 구성원들을 미소 짓게 할 사양들은 더 있다. 2열 공간의 온도를 독립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3존 공조 장치는 탑승자 각자가 느끼는 온도의 차이로 인한 불편함마저 해소해 준다. 시트백 테이블은 간식을 먹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는 등 다용도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홀더가 있어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도록 만들 것이다. 뒷좌석 승객이 슬라이딩 방식으로 열어 사용할 수 있는 확장형 센터콘솔은 전기차의 평편한 실내 바닥에서 비롯된 공간 활용성을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사양들을 뒷받침하는 만듦새는 오랫동안 만족하며 쓸 수 있는 견고한 가구를 보듯 믿음직하다.
운전석에 올라도 낯선 느낌은 없다. 가장 대중적인 차종 중 하나인 준중형 SUV에 타고 내리는 익숙한 감각 그대로다. 12.3인치 클러스터와 5인치 공조 디스플레이, 12.3인치 내비게이션이 하나의 화면으로 연결되어 있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끌고, 새로운 GUI와 고급스러운 음색의 ‘볼드 모션 심포니(Bold Motion Symphony)’ 사운드가 반기며 최신 기아 모델임을 나타낸다. 조금 여유를 갖고 살펴보면, 컬럼 타입 전자식 변속 레버를 적용하고 평평한 바닥 공간을 십분 활용해 위아래로 알차게 구성한 확장형 센터콘솔에서 전기차의 탁월한 공간 활용도를 엿볼 수 있다.
출발 전 아웃사이드 미러와 시트를 조절해 적절한 운전 자세를 맞추고 나니 앞창 너머로 근육질인 보닛의 볼륨감이 눈에 들어왔다. 전방 노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시트를 높여도 머리 주변 여유 공간이 충분해 ‘정통 SUV 스타일’의 매력을 또 한 번 체감했다. 보닛 아래에는 44.4L의 실용적인 프렁크 공간도 마련됐다.
아울러 EV5는 날렵한 쐐기형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0.29의 우수한 공기 저항 계수를 실현했다. 공력 성능이 좋으면 바람의 저항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물론 소음도 줄일 수 있다.
8스피커, 외장앰프가 포함된 하만카돈 프리미엄 사운드가 적용된 시승차는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SD)을 통해 주행의 몰입감을 높이는데, 이 기능을 끄고 전기차 본연의 소음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헛일이었다. 내연기관 소음이 없는 전기차에서는 바람 소리를 비롯한 다른 소음들이 도드라지기 마련인데, EV5에서는 신경 쓰이는 소음조차 거의 없다. 분명 주행 환경에 따라서는 음색이 바뀌거나 충격음이 도드라진 구간도 없지 않았으나 정숙한 수준이었다. 가령 소음원을 몇 겹이나 둘러싼 것처럼 멀찌감치서 들리곤 했다.
EV5는 전기차 대중화를 이끄는 대표 모델로서 패밀리 SUV에 걸맞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주행 상품성이 특징이다. 먼저 EV5는 전륜 맥퍼슨 스트럿과 후륜 멀티링크 조합의 서스펜션 구조를 적용해 패밀리카에 적합한 승차감과 안정적인 핸들링 성능을 동시에 구현했다. 특히 거친 노면을 지날 때 인상적인 점은 차체 움직임이 매우 안정적인 것인데, 이는 후륜 크로스멤버에 적용된 하이드로 부싱의 효과다. 내부에 유체가 봉입된 부싱이 노면 요철에서 발생하는 잔진동을 매끄럽게 걸러주며, 과속방지턱이나 고속도로의 미세한 파동 구간에서도 차분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또한 기아는 EV5의 고급스러운 주행 감각과 핸들링을 완성하기 위해 주파수 감응형 댐퍼를 적용했다. 이 댐퍼는 노면의 진동 주파수에 따라 감쇠력을 달리해, 고속 주행 시 차체를 단단히 지지하면서도 저속 주행에서는 승차감을 부드럽게 유지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주행 상황에서 일관된 안정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여기에 차체 내부 곳곳에 흡차음재를 꼼꼼하게 더하고 흡음 타이어를 적용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실제로 고속 주행 구간에서 노면 소음 억제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듬직한 외관을 가졌지만 차체 움직임은 안정적이다. 패밀리 SUV에 걸맞은 정확하고 편안한 조향 반응과 선회 안정성을 보여준다. 산길에서 만난 가파른 코너 구간에 진입했을 때에도 스티어링은 정직하게 반응하고 차체 거동은 의외로 단단하게 버텨준다. 고속 선회 시에는 차체 쏠림이 나타났지만 높은 차체 강성을 갖춘 덕에 곧바로 균형을 되찾으며 운전자에게 확실한 신뢰를 준다. 또한 전기차 특유의 낮은 무게중심과 시승차의 235/55 R19 타이어가 잘 받쳐주는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로 EV5의 전비는 18인치, 19인치 타이어가 동일하다.
내친김에 과속방지턱을 향해 빠르게 진입해 보았다. 평소 다른 차들로 통과할 때는 속도를 낮춰도 충격이 크게 전달돼서 한쪽 바퀴라도 바깥쪽으로 피해서 갈 만큼 불쾌한 장애물이다. 그런데 EV5는 앞머리가 크게 요동치거나 뒤쪽이 세게 떨어지는 느낌 없이 아주 온화하게 넘었다. 그리고 차체가 부르르 떠는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기아는 수준 높은 국내 소비자를 고려해 EV5에 윈도우 프레임 일체형 패널 도어를 적용하고 프레임을 강화하는 등 NVH 성능을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승차는 전면과 1·2열에 이중접합 차음 글라스를 적용해 더욱 정숙하고 세련된 승차감에 일조한다. 반복되는 도로 이음매, 작은 돌들이 튀는 비포장도로, 주변 공사로 인해 움푹 파인 부분이 눈에 띌 정도인 시내 도로 등 다양한 길을 지났지만,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어지간한 고급 세단이 부럽지 않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매혹적인 순간은 교통량이 적은 숲 속 도로를 부드럽게 달릴 때였다. 창문을 내리자 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고 이름 모를 벌레 소리와 새소리만 귀가에 가득했다. 도시에서 아주 잠깐 떠나왔을 뿐인데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이렇듯 조용하고 세련된 주행은 물론, 내연기관과 달리 엔진음 없이도 경쾌하게 속도를 이어가는 전기차 특유의 가속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연기관 자동차였다면 시끄럽게 붕붕거리며 애썼을 경사로에서도 가속 페달을 사뿐히 조절하는 것만으로 매끄러운 주행을 이어갔다.
최고출력 160kW, 최대 토크 295Nm의 전륜 구동 모터를 탑재한 EV5는 추월 가속 상황처럼 필요할 때에는 빠른 반응과 여유로운 출력을 보여주는 반면, 평상시에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반응한다. 운전자 의도와 관계없이 힘 자랑하듯 움찔거리는 특성이 없어 긴장하지 않고 다룰 수 있다. 이는 패밀리 SUV로서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브레이크는 노멀 모드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제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즉각적이고 선형적인 반응이 신뢰감을 더한다. ABS가 작동할 정도로 강한 감속 상황에서도 회생제동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잘 조율되어 있다.
전기차 운전의 묘미인 원페달 주행은 ‘i-페달 3.0’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가장 강한 회생제동 단계에서만 작동했던 이전과 달리 운전자가 선호하는 감속도에서 가속 페달 조작만으로 감속과 완전 정차가 가능해 운전 편의성은 물론 탑승객의 승차감까지 향상됐다.
개인적으로 더 반가운 것은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이다. 기존에 비해 차간 거리, 굽은 도로, 고속도로 진출입로, 방지턱, 회전교차로 등 다양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정차 제어까지 가능하다. 이걸 이용하니 도심 주행을 하는 동안 브레이크 페달 밟을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달리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해도 비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요긴하다. 물론 돌발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최근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해 잘못 조작한 바람에 발생한 사고가 심심치 않다. 혹시 우리 가족은 그럴 리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도심 주행이나 주차 및 출발 시 페달 오조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해주는 ‘가속 제한 보조’와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를 기본으로 적용한 EV5에서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한편 동승자들을 먼저 내리게 해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할 때는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RSPA 2.0)가 큰 도움이 된다. 평행, 대각선, 직각 주차를 스마트 키를 사용하여 원격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됐다.
EV5가 주목한 ‘패밀리’는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TV 광고 속 엄마 모델(배우 강말금)이 “막내야!”하고 부르는 다섯 번째 식구가 강아지인 것에서 보듯이, 반려동물 인구 증가에 맞춰 ‘펫 모드’를 갖췄다. 반려동물을 차에 두고 내려야 하는 경우 실내 적정 온도를 자동으로 유지시키고 반려동물이 버튼들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도록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다.
출발 전 배터리 잔량이 90%일 때 에코 모드에서 주행 가능 거리는 500km로 표시됐다. 하지만 실제 시승은 노멀 모드와 스포츠 모드로 진행했고, 약 120km를 주행한 뒤 주행 가능 거리는 노멀 기준 400km 이상 남아있었다. 제원상 전비는 5.0km/kWh인데 이번 시승에서는 6.2km/kWh를 기록해 기대 이상이었다. 참고로 ‘주행 가능 거리 가이드’는 운전 스타일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최대/최소 주행 가능 거리를 클러스터에 표시해 운전자가 보다 효율적인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편 350kW급 충전기를 사용할 경우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30분이 걸리므로 일상적인 주행은 물론 장거리 이동까지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
EV5는 얼리어답터를 넘어 일반 대중을 위한 가족용 차량으로 포지셔닝된 만큼, 첫 만남부터 친숙한 이미지가 우선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 이면에는 정통 SUV 디자인과 최신 전기차의 스마트한 기술,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에게 편안함과 편리함을 선사하는 사양들과 세련되고 실용적인 실내공간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강인한 SUV 이미지 뒤에 품은 사근사근한 운전성과 차급을 뛰어넘는 승차감은 속칭 ‘츤데레’를 연상케 한다. SUV 명가의 헤리티지 아래 ‘전동화 선도 브랜드’로 나아가는 기아는 진정으로 가족 모두를 배려한 패밀리 전동화 SUV를 탄생시켰다. 가족을 위한 차를 찾는 이라면 EV로서도 SUV로서도 EV5로부터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최대일,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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