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시대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당대의 사회적 요구, 기술, 미학, 사상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우리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장소인 만큼 수요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해서다. 예컨대 과거와 지금의 아파트 구조를 비교하면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듯, 우리가 건축에 요구하는 것들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의 건축은 거주성, 효율, 친환경성 등 수많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오래전부터 모듈러 건축에 주목한 이유다.
‘H-모듈러 랩(H-MODULAR LAB)’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제철이 함께 세운 ‘기술 집약적인 모듈러 실대형 테스트 랩’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최고층(지상 13층) 모듈러 건립과 더불어 다년간에 걸쳐 개발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듈러 건축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현대제철은 건설 강재 분야에 뛰어난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모듈러 건축이라는 공통 분야에서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시너지로 이어진 것이다.
모듈러 공법은 제조업의 대량 생산 개념을 건축에 접목한 것이다. 모듈은 건물의 뼈대와 내·외장 마감, 가구, 욕실, 위생기구, 전기/통신기기 등 건축물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3차원 공간이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부어 짓는 기존 공법과 달리, 모듈러 공법은 미리 만들어진 모듈을 현장에서 쌓고 조립하여 건축물을 완성한다. 블록 쌓기에 비교되는 이유다.
모듈러 공법은 높은 품질과 안전성, 빠른 시공 기간 등 다양한 장점을 자랑한다. 표준화된 공간을 모듈로 제작하기에 품질 관리에 용이하고, 안전시설이 완비된 공장에서 70% 이상의 공정이 진행되는 만큼 현장 작업의 부담이 줄어 안전성이 우수하다. 모듈 제작 공장과 설치 현장에서의 동시 작업도 가능해 건설에 걸리는 기간을 30~50% 가까이 단축할 수 있다. 따라서 고층 및 대형 건물 적용 시 특히 유용하다. 그리고 모듈러 공법은 해체가 간편하고, 이동이 자유로워 미래의 수요 및 대지조건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효율과 친환경, ESG 경영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점 덕분에 향후 모듈러 건축물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이를 대비하여 H-모듈러 랩은 저층에서부터 고층까지 모듈러 건축 기술의 실증 시험 장소 역할을 한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제철은 이곳에서 설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 모듈러 건축의 모든 과정을 수행하며 새로운 기술을 연구 중이다.
바깥에서 H-모듈러 랩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H-모듈러 랩의 정면부를 이루는 모듈은 모두 다른 형태다. 이는 필요에 따라 여러 모듈을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는 모듈러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층의 모듈러 건물을 세운다고 상상해 보자. 층마다 다른 타입의 모듈을 조합해 다채로운 외관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또한, H-모듈러 랩의 각 면에는 대리석, 목재, 석재, 강판 등 다양한 종류의 패턴을 입혔다. 이는 프린팅 강판 기술의 다양한 활용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타일이나 대리석을 이용해 특정 무늬나 장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인원, 비용, 시간이 필요하지만, 프린팅 강판을 이용하면 쉽게 구현할 수 있다. 이는 비용 절감은 물론 공기(공사 기간) 단축에도 도움이 된다.
H-모듈러 랩을 감싸고 있는 보도블록 또한 특별하다. 이는 현대제철에서 개발한 제강슬래그 블록이다. 기존 콘크리트 블록에 활용되던 천연골재 일부를 제철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제강슬래그로 대체한 것이다. 제강슬래그는 전체 골재 중량 대비 35~40%를 대체하며, 이를 이용한 블록은 기존 콘크리트 블록보다 강도가 높다.
게다가 제강슬래그 블록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할 수 있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제강슬래그에 존재하는 산화칼슘(CaO)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와 반응해 탄산칼슘(CaCO₃)이 되는데, 이는 블록 내부의 미세한 틈을 채우는 효과가 있다. 그만큼 강도가 높아지고 수분, 알칼리, 황산염 등 외부 유해물질의 침투를 막아 내구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H-모듈러 랩은 층별 용도가 뚜렷하다. 1층은 모듈러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 및 기술 전시에, 2층은 층간 차음, 기밀 등의 모듈러 성능 기술 검증에 사용한다. H-모듈러 랩에 적용된 혁신 기술을 소개하는 홍보관과 병실, 기숙사 생활실, 호텔 객실 등 총 4개 모듈이 1층에 자리한다.
의료시설은 모듈러 건축의 이점을 크게 볼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빠르게 건축이 가능한 모듈러 공법은 팬데믹이나 전쟁 등 의료시설 확충이 긴급한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다. H-모듈러 랩의 내부에는 강판의 활용성을 확인하고자 인테리어에 적합한 프린팅 강판을 적용했다. 병실의 경우 환자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색감과 재질을 구현하면서도 적은 노력으로 유지보수를 할 수 있는 패브릭 마감을 적용했다. 패브릭 마감은 건식 공법으로 공기 단축을 이룰 수 있어 모듈러 건축과 잘 어울리는 자재라고 할 수 있다.
H-모듈러 랩의 기숙사는 일반적인 숙소보다 훨씬 쾌적한 분위기다. 모듈러 건축이 추구하는 빠르고 간편한 공간 구축, 여기에 짜임새 있는 실내 디자인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기숙사 생활실의 경우 개별 유닛 타입으로 되었다는 점에서 모듈러 건축을 적용했을 때 시너지를 높일 수 있으며, 기숙사 생활실 외에도 공용 생활 공간이나 교육 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호텔은 모듈러 건축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도심지의 비즈니스 호텔을 콘셉트로 삼아 실제 호텔과 똑같은 분위기를 구현했다. 호텔에도 프린팅 강판이 적용되었으며, 우드 패턴을 활용하여 편안한 분위기를 냈다. 호텔과 같은 상업용 건물 또한 모듈러 건축과의 조합이 좋다. 공기 단축을 통해 오픈 이후 수익 창출 시점을 앞당길 수 있어서다. 또한, 모듈러 건축은 올림픽, 국제 박람회 등 세계적인 행사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한 숙박시설 건립 등의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
① 고층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들: H형강 모듈러 구조 시스템
2층은 H-모듈러 랩에 적용된 기술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실증 공간이다.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H-모듈러 랩의 기반을 구성하는 ‘H형강 모듈러 구조 시스템’이다. H형강은 건설공사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철강재 중 하나로, 신뢰성이 높고 수급이 쉬우며 경제적이다. 또한, 개방형 단면이기에 모든 표면에 대한 가공 및 조립 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H형강 모듈러 구조 시스템은 표준화 골조 형식과 표준화 접합 시스템을 이용해 효율을 높였다. 표준화 골조 형식은 모듈의 모서리를 차지하는 보-기둥 조립체 부품을 모듈화한 것으로, 중간에 들어가는 H형강의 길이만 조절하면 어떤 크기의 모듈도 만들 수 있다. 표준화 접합 시스템은 수평 방향과 수직 방향 가이드를 이용해 적층 시 모듈의 위치를 빠르게 맞출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볼트도 미리 설치되어 있기에 모듈을 정위치에 맞추고 볼트를 조이기만 하면 된다. 해당 기술을 이용하면 현장에서 한층 쉽고 정밀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서 건축 과정에서의 효율성도 크게 높일 수 있다.
① 고층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들: 스틸 코어부 강판 전단벽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는 H-모듈러 랩에 사용된 스틸 코어부 강판 전단벽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물의 코어는 구조 중심 역할을 맡아 건물의 흔들림이나 비틀림을 방지하고, 지진과 바람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계단, 전기실, 기계실, 배관 및 설비 공간 등 건물의 주요 기능이 모여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기존에는 중·고층 모듈러 건축 시 경제적이고 그간 시공 노하우가 많이 쌓인 습식 콘크리트 코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제철은 모듈러 건축의 장점인 공기 단축을 극대화하기 위해 습식 콘크리트 코어 대신 건식 공법인 스틸 코어를 중·고층 모듈러 건축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스틸 코어부 강판 전단벽은 사각형 골조 안에 강판을 끼워 넣어 바람 및 지진과 같은 횡방향 하중에 대해 높은 강도와 강성을 발휘하는 구조다. 그리고 강판 전단벽은 큰 연성을 가진 만큼 내진 성능도 뛰어나다. 또한, 콘크리트 벽체와 비교하면 경량화가 가능하며,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모듈러 형태로 빠르게 조립할 수 있으므로 시공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① 고층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들: 하이브리드 내화공법
더 안전한 고층 모듈러 건축물을 향한 고민은 안전을 위한 내화구조(Fireproof Construction)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내화구조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긴 시간 동안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구조를 뜻한다. 건물 붕괴를 지연시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용도로, 고층 건축물에서는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도 13층 이상의 건축물에는 3시간의 내화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H-모듈러 랩에서는 내화보드와 내화도료를 함께 사용해 전체 내화보드층의 두께를 줄인 하이브리드 내화공법을 실증하고 있다. 내화보드가 역할을 다하고 손상되더라도 도료가 부풀어 올라 도막층을 형성해 열을 막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덕분에 전체적인 내화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기둥과 보를 감싸는 두께를 줄여 더 많은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H-모듈러 랩에서는 하이브리드 내화공법의 최적 형태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연구 중이다.
② 빠르고 정밀한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들: PC 바닥 슬래브
모듈러 유닛과 코어 사이의 복도가 복잡한 형태일 때는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발생하는 시공 오차를 고려해야 한다. H-모듈러 랩에서는 시공 오차에 대응하기 위해 시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안전과 품질도 확보할 수 있는 *PC 슬래브의 도입이나, 코어와 복도 슬래브의 접합 기술도 테스트하고 있다.
*PC(Precast Concrete) 슬래브 : 공장에서 타설 및 양생한 바닥 슬래브를 현장에서 조립 시공하는 공법
② 빠르고 정밀한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들: 배스룸 POD
배스룸(Bathroom) POD는 욕실을 하나의 모듈로 만들어 쉽고 빠르게 장착하는 기술이다. 욕실 공사는 방수턱/벽돌/방수/보호몰탈/타일/위생기구 등 다양한 공정이 필요하다. 현장에서의 작업 공정을 분리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다면 인력 수급 및 품질 측면에서 획기적인 공기 단축을 구현할 수 있는 공정이기도 하다. 또한, 배스룸 POD는 욕조와 동일한 재질의 방수판 위에 제작되어 누수 염려가 없고, *층상배관을 적용한 덕분에 주거용 건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층간 소음에서도 한결 자유롭다.
*층상배관 : 화장실 바닥의 기포층 또는 벽면 내에 배관을 시공해 아래층에 소음을 전달하지 않는 구조
③ 더욱 쾌적한 주거 생활을 위한 기술들: 철골 모듈러 구조용 방화문 프레임
현대엔지니어링은 모듈러 건축의 완성도와 주거 쾌적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H-모듈러 랩에 적용했다. 철골 모듈러 구조용 방화문 프레임은 얼마나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다듬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기존 모듈러 건축에서는 일반적인 방화문 프레임을 사용하며 보강철물을 문틀에 인접한 철골 구조체에 용접했다.
하지만 H-모듈러 랩에 적용된 철골 모듈러 구조용 방화문 프레임은 체결 부품의 일종인 플랜지(Flange)를 이용해 철골 구조체 정면에 방화문을 고정한다. 덕분에 설치 및 수정작업이 한결 간편해진 것은 물론, 기밀성도 높일 수 있었다. 철골 모듈러 구조는 기밀층 형성을 위해 기밀 방습지 등을 사용하는데, 플랜지를 사용하면서 기밀 방습지 고정 작업이 간단해졌고 기밀성도 높아졌다.
③ 더욱 쾌적한 주거 생활을 위한 기술들: 천장 속 공간을 활용한 층간 소음 개선
모듈러 건축에서도 층간 소음 해결은 중요한 문제다. H-모듈러 랩에서 바닥 충격음 성능 개선을 위해 1층 모듈 천장과 2층 모듈 바닥을 분리하여 교체 실험할 수 있도록 계획한 이유다. 모듈은 조립의 용이성과 운송 시 내부 마감의 보호를 위해 지붕에 보드가 부착되는데, 이 보드를 고정하기 위한 공간은 단순 공기층이 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해당 공간에 ‘공명기형 흡음재’를 적용해 층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틈새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층간 소음 감소 방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해당 기술의 검증을 위해 H-모듈러 랩 계획 당시 여러 시스템을 교체하면서 검증하기 위해 1층 천장을 분리/교체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또한, 현대엔지니어링은 천장 속 공간뿐만 아니라 바닥 구조의 최적화를 통해 층간 소음 저감 성능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건설생산 방식의 패러다임 혁신을 위해 미래 건축기술 개발의 일환으로 모듈러 건축기술 연구개발을 진행해왔다. 다양한 외부 기관과의 연구개발 및 협업, 다수의 OSC(Off-Site Construction) 국가 R&D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모듈러 건축 분야에서 풍부한 기술을 축적했다. 이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선보인 국내 최고층(지상 13층) 모듈러 주택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과 같은 결과물로 입증됐다.
모듈러 공법은 이제 주요 건축 기술이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제철은 세계적 수준의 모듈러 건축 기술을 통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건설과 제조업의 시너지를 통해 인력 부족 해소, 안전성 강화, 친환경적 건축을 넘어 ESG 경영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H-모듈러 랩은 단순한 기술 시험장이 아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제철의 모듈러 주택을 향한 마음과 비전을 담아,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장소다.
사진. 조혁수
HMG 저널 운영팀
group@hyundai.comHMG 저널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L) 2.0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복제와 배포, 전송, 전시 및 공연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단, 정보 사용자는 HMG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MG 운영정책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