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올봄, 월드와이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완전한 신차의 등장을 예고했다. 영상에는 대장장이가 철을 메질하고 담금질해 공예품을 완성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공들여 완성한 공예품은 새로운 픽업 모델의 이름인 ‘타스만(Tasman)’. 영상에는 타스만의 일부만 등장했지만 새로운 픽업 모델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이어서 기아는 타스만 공식 발표를 앞두고 유튜브 월드와이드 채널을 통해 테스트 영상을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바위투성이의 험준한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공략하는 모습은 마치 황야를 질주하는 야생 들소를 보는 듯했다. 영상 속 타스만은 위장막으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강인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험난한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하는 장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지난 4월에 공개된 영상에선 두터운 위장막을 걷어내고 화려한 위장 도색을 칠한 모습에서 정식 출시를 앞둔 타스만의 디자인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 출신의 아티스트 리처드 보이드 던롭(Richard Boyd-Dunlop)과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위장 패턴은 ‘아트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호주의 풍경을 녹여낸 독특한 감성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복잡한 패턴과 화려한 색감으로 디테일을 가리기는 했어도 최신 기아 디자인의 특징을 잘 녹여냈음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직사각형의 거대한 그릴이 전면부를 가득 채우고 곧게 선 윈드실드와 높은 후드로부터 강인한 픽업의 스타일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부진 차체 실루엣에서 오프로더의 터프한 인상이 두드러졌다.
7월 들어 연이어 공개되고 있는 영상에서는 서부극 촬영지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앨라배마 힐스(Alabama Hills)를 달리는 테스트카와 호주 툴랑기(Toolangi)의 깊은 숲, 빅토리아 주의 마운트 블랙(Mount Black), 그리고 머레이스 코너(Murrays Corner)의 거친 지형을 달리는 타스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상의 배경은 모두 보통 자동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가파르고 험난한 지형들로, 1만 8,000회 이상의 테스트를 통해 무려 3만 km 거리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타스만의 강력한 험로 주파성능을 보여준다.
타스만의 개발 과정을 다룬 <원 모어 라운드> 시리즈 중 ‘Off-roading test’라는 제목의 영상에선 화려한 위장 도색으로 마감한 타스만 테스트카가 미국 앨라배마 힐스의 가파른 지형을 주파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테스트카는 경사도 30% 이상의 험준한 바위 지형을 거침없이 타고 넘었으며, 무려 경사도 40%에 육박하는 험로와 불규칙적인 노면에서의 트랙션 확보 능력이 돋보였다.
‘Get a Grip’, ‘The Road Less Travelled’라는 제목의 영상에선 위장막을 두른 타스만이 험준한 산악 지형과 숲길을 횡단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뛰어난 그립으로 미끄러운 진흙 노면을 주파하는 모습에서 타스만의 우수한 4륜구동 성능을 실감할 수 있으며, 거친 임도와 숲길을 역동적으로 달리는 장면에서 타스만의 강력한 오프로드 주행 능력이 돋보였다.
한편 얼마 전 공개된 ‘Wading test’ 영상에선 타스만의 도강 능력이 빛을 발했다. 광주 오토랜드의 테스트 현장에서 수중 차량 운행 속도 및 수심 변화에 따른 도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시험에 나선 것이다. 타스만 테스트카는 시험로에 진입해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이 주행했다.
코드네임 TK1으로 알려진 타스만은 모하비처럼 보디 온 프레임 구조를 채용했다. 대부분의 승용차에서 쓰이는 모노코크와 달리 단단한 뼈대를 더해 강성을 높이는 보디 온 프레임은 극한 지형을 달리거나 많은 짐을 실어야 하는 오프로더, 트럭 등에 애용되는 방식. 이처럼 태생부터 차별화된 타스만은 온갖 종류의 비포장 환경과 도하 테스트를 거치며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8월 말 공개된 ‘On track test’ 편에서는 캘리포니아 프루빙 그라운드를 달리며 고속 주행성, 코너링은 물론 거대한 트레일러를 단 상태에서의 코너링, 우수한 차선유지 능력 등을 선보였다. 어떤 지형이든 달릴 수 있는 차라 해도 요즘은 많은 시간을 잘 포장된
도로에서 보내는 만큼, 도로에서의 주행 능력은 요즘 트럭이라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다. 아울러 커다란 캠핑 트레일러를 끌기 위해서는 브레이크 용량과 서스펜션, 구동계 세팅 등을 세밀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픽업 트럭은 국내에서 보통 짐차나 상용차로 취급받지만 해외에서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미국은 승용차 시장 베스트셀러 자리를 덩치 큰 픽업 트럭이 오랫동안 차지해 왔으며, 많은 나라에서 엄연히 승용차의 한 부류로 인정받는다. 오직 짐을 나르는 데 특화된 차가 아니라 다양한 화물을 싣고 어디든 달릴 수 있는 다재다능한 차종으로 사랑받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픽업의 위상이다.
SUV나 트럭은 지명에서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실제 그 모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타스만이라는 이름은 호주대륙 동남쪽 끝에 자리 잡은 커다란 섬 타스마니아와 이를 둘러싼 타스만 해(Tasman sea)에서 유래했다. 대항해 시대에 발견되기는 했지만 거칠기로 유명한 남극해의 영향을 받는 외진 지역이라 당시에는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되어 섬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제주도의 30배가 넘는 광활한 면적에 대중교통 인프라는 거의 없다 보니 관광을 원한다면 자동차를 몰고 장거리 이동은 기본. 이럴 때 바로 기아 타스만 같은 픽업은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넉넉한 크기와 넓은 화물칸으로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고, 커다란 캠핑카까지 끌 수 있으니 말이다. 픽업 시장은 대배기량 엔진을 얹은 풀사이즈 픽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환경규제와 다운사이징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픽업 시장에도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다. 적당한 크기와 엔진의 중형 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타스만은 기아가 글로벌 시장을 위해 선보이는 첫 번째 승용 픽업이다. 기아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봉고나 타이탄, 라이노 같은 다양한 트럭들은 철저히 짐을 나르는 데 특화된 상용차였다. 물론 승용 픽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태어난 기아의 첫 모델 브리사 역시 픽업 형태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꽤나 귀여운 덩치지만 1년 후 등장하는 브리사 세단과 달리 모노코크가 아닌, 프레임 보디라는 본격적인 구성이었다. 다만 픽업 트럭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팔렸던 승용 픽업은 숫자가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SUV 뒷부분을 짐칸으로 바꾼 형태였다. 픽업은 주력 차종이라기보다는 상용차의 싼 세금을 매력으로 내세우는 틈새 모델에 가까웠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국내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트럭의 종주국은 역시나 미국으로, 외모에서부터 보는 이를 압도하는 풀사이즈 픽업이 매년 승용차 시장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잘 팔려나간다. 미국은 도로 정비는 잘 되어있어도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포장되지 않은 길이 여전히 많다. 특히 미국이나 호주처럼 광활할 대지에 탐험과 개척으로 만들어진 나라의 경우는 많은 짐을 싣고 아무 데나 거침없이 달리는 픽업 트럭의 인기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타스만은 국내에서 생산되며, 우선 국내와 호주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픽업 트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추세다. 수입 픽업을 도로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레저와 캠핑 인구의 증가는 자동차 활용법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빠르게 바꿔놓았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국내와 달리 역사가 오랜 글로벌 픽업 시장 도전에는 커다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신입 브랜드에게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트럭 고객의 특성을 고려할 때 타스만은 그 어떤 카테고리보다도 진입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불안과 걱정, 기대와 희망을 담아 기아는 누구나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임하는 자세로 타스만을 개발하고 있다. 티저 영상 시리즈의 제목인 ‘One More Round’야 말로 바로 타스만에 담아낸 기아의 진심인 셈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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