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모빌리티에 있어 배터리는 많은 공정을 필요로 하는 특별한 부품이다. 배터리 셀(cell)을 모아 배터리 모듈(Battery Module Assembly, 이하 BMA)을 만들고, BMA 수십 개를 연결해 하나의 배터리 시스템(Battery System Assembly, 이하 BSA)을 완성한다. 그래서 BMA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BMA를 잘 만들면 필요한 BSA 용량에 따라 BMA 개수만 늘리면 된다. 이는 전기차를 넘어 전동화를 기반으로 하는 모빌리티 제조 전반에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BMA와 BSA를 만들기는 아주 까다롭다. 배터리 셀을 모아서 용접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다. 이런 까닭에 대다수 자동차 제조사는 처음부터 외부 배터리 제조사에서 BSA 단위로 공급받거나 합작법인(Joint Venture)을 설립해 배터리를 만든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BMA부터 BSA까지 직접 만들고 있다.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데다 자사 모빌리티에 최적화된 BSA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셀은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의 3가지가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제품 형상 자유도와 에너지 밀도가 높아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파우치형을 주로 사용한다. 다만 파우치형은 3가지 형태 중 제조 공정이 가장 까다롭다. 예컨대 아이오닉 5에 장착되는 BSA의 전기적 결합을 위해 필요한 용접 포인트는 1,176개에 달한다. 그중 하나만 잘못돼도 전기차에 탑재할 수 없다. 그만큼 BMA와 BSA 제작은 정밀한 생산 기술이 요구되는 공정을 필요로 하며,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제조 기술력이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과 같이 BMA부터 직접 만드는 제조사에게는 BMA 생산 역량이 곧 전기차 생산 역량과 직결된다. 빠르고 안정적인 BMA 생산이 가능하다면, 전기차는 물론 전기 기반 모빌리티의 빠른 수요 증가에도 대응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BMA)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을 개발한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기존 BMA 제조 라인 내 용접 공정은 3단계였다. 1단계에서 BMA의 전면과 후면 20개소, 2단계에서 측면 4개소, 3단계에서 고정쇠(클램프, clamp) 4개소를 용접해 완성하는 것이다. 이는 순서대로 필요한 부분을 용접하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정석이다. 기존 공정은 용접하는 데 14초, 제품을 위치에 맞추고 고정하는 데 14초씩, 용접 단계마다 28초가 걸렸다. 전체 공정으로 따지면 약 90초에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했다.
현대차그룹 제조솔루션본부 메카트로닉스연구팀은 중간중간 소요되는 바로 이 ‘14초’에 주목해 비는 시간 줄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제품을 위치에 맞추고 고정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정확한 고정은 용접 품질 확보를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카트로닉스연구팀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하나의 열에서만 생산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A열과 B열의 2열 생산 방식을 이용해 각각 순서대로 제품을 고정하는 것이다. 이에 맞춰 3단계 공정도 하나로 통합했다. 덕분에 ‘전기차 배터리(BMA)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은 불과 20초 만에 BMA 1개를 생산한다.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2대의 용접 로봇이 짝을 맞춰 28개의 용접 부위를 한 번에 용접하는 ‘통합 용접’ 공법이다. 2대의 다관절 로봇이 같은 호흡으로 작동해야 하는 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생산 속도가 빠르고 배터리 크기와 타입에 상관 없이 모든 타입에 대응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도 지니고 있다.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사전위치결정’ 공법이다. 2열 생산 방식을 이용해 용접 로봇이 A열에서 용접을 진행하는 동안 B열은 작업물을 위치에 맞춰 고정해 용접 준비를 끝내는 것이다. 덕분에 용접 로봇은 A열과 B열을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용접을 진행할 수 있다. 메카트로닉스연구팀의 배준혁 책임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용접 로봇이 일하지 않는 시간이 아까웠기에 이를 단축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원리 자체는 간단합니다. 한 손만 이용해 물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번갈아 사용하며 물건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이처럼 일상 속에서 자동화 설비에 접목할 아이디어를 찾고 있습니다.”
사전위치결정 공법은 듀얼 교차 생산을 위한 것이다. 자동제어시스템을 이용해 A열에서 용접을 진행 중일 때 B열에서 다음 용접할 제품을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A열에서 용접이 끝나고 B열의 제품까지 용접 로봇이 움직이는 데 2초, 28개소 용접에 16초, 다시 A열로 복귀하는 데 2초가 걸린다. 20초마다 A열과 B열에서 교대로 완성품이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고성능 용접 로봇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고정형 용접 시스템을 이용했지만, 전기차 배터리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은 6축 다관절 레이저 용접 로봇을 사용한다. 양측 2대의 로봇은 짝을 맞춰 동시에 앞, 뒤, 좌, 우 4면을 용접한다. 1대의 로봇만 사용 가능한 상황에서는 1대의 로봇만으로도 4면 용접이 가능하다.
청소 등 유지보수도 쉽다. 용접 과정에서는 금속성 잔여물(스패터, Spatter)이 발생하기에 이를 주기적으로 닦아줘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은 청소를 위해 각각의 지그를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존에는 청소를 위해 작업자가 용접이 이뤄지는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야 했다면, 이제는 지그가 작업자가 있는 공간으로 나오는 것이다. 덕분에 청소 등 유지보수가 간편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지그를 청소하는 중에도 다른 하나의 지그를 이용해 생산할 수 있어 쿨타임을 줄일 수 있다.
안전을 위한 기술도 새롭게 추가했다. 이에 대해 배준혁 책임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배터리는 화재에 매우 민감합니다. 불이 붙으면 화학 반응이 끝날 때까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끌 수 없어요. 소금물을 채운 수조에 넣고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불붙은 배터리를 옮길 수는 없죠. 그래서 자동 화재 발화 대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화재를 실시간 감시하면서, 화재를 감지하는 동시에 로봇이 배터리를 들어 염수조에 넣도록 했어요. 간단해 보이지만 이는 세계 최초로 적용된 기술이기도 합니다.”
품질이 우수한 용접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정확히 고정해야 한다. 이 고정 역할을 하는 부품이 ‘지그’다. 기존의 3단계 공정은 매 단계 각각의 지그를 사용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BMA)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은 ‘한번에 전체면을 고정하는 통합 지그(유연 원 클램프 통합 지그)’를 사용해 유연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버스바 용접용 가압 지그와 고정쇠 용접용 가압 지그를 동시에 사용해 4개 방향에서 제품을 고정하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이고 높은 품질의 용접이 가능하다.
특히, 유연 원 클램프 통합 지그는 용접 소재의 특성을 고려한 형태를 갖췄다. 파우치 셀의 전기적 결합을 위한 버스바 용접은 서로 다른 금속 종류의 용접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종용접은 열전도율과 용융점의 차이로 인해 난이도가 높은 용접에 속한다. 용융점의 차이가 큰 두 가지 금속의 이종용접의 경우 완전히 밀착시켜 용접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지그에 적정한 힘을 가해 원재료가 구부러지지 않게 하면서도 밀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연 원 클램프 통합 지그에 적용된 서보 가압 시스템은 압력을 가할 때의 반발력과 부하를 감지해 적정 수준을 맞출 수 있고, 크기에 무관하게 모든 타입과 형상에 대응할 수 있다.
반면, BMA의 고정쇠(BMA의 커버를 고정하는 장치)는 동일한 금속의 용접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에는 일정 수준의 간격을 둬야 금속이 타면서 발생하는 가스(용접 흄, Fume)를 배출할 수 있어 용접 품질이 좋아진다. 그래서 지그에 단차를 두어 이를 해결했다. 이처럼 유연 원 클램프 통합 지그는 소재에 적합하도록 구조를 변경할 수 있어 여러 가지 크기와 형상의 BMA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합 용접 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공정의 간단화’다. 기존에는 3단계 용접을 거치며 단계마다 비전 카메라로 무결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통합 용접을 활용하면 1단계만에 모든 용접 작업을 마치고, 무결성을 확인하면 된다. 그만큼 라인이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들고, 용접에 필요한 세팅, 청소 등의 관리 또한 크게 줄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은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기술개발 대회 ‘휴레카(H.eureka)’에서 대상을 차지한데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특허 출원에 성공하며 현대차그룹의 제조 기술력을 널리 알렸다.
특히, 해당 기술은 아이오닉 5 양산에 적용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향후 세대를 거듭하며 개선될 BMA에 모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 또한 해당 시스템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향후 전 공장에 전기차 배터리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생산 기술은 일반 소비자에게 보여지지 않는 이유로 존재감이 크지 않다. 하지만 생산 기술의 혁신은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꿀 만큼 큰 변화를 동반하곤 한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사전위치결정 듀얼 용접 시스템 또한 그렇다. 전동화 모빌리티 시대를 열기 위해 빠른 배터리 공급이 필요해진 지금, 시간과 공정을 줄이면서 여러 BMA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의 가치는 분명하다.
오랜 시간 발달을 거듭해 기술적 성숙도가 높아진 자동차 제조 기술이지만, 현대차그룹이 준비하는 혁신은 모든 부분에 걸쳐 있다. 제조 기술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오늘도 ‘창의적 혁신과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다.
HMG 저널 운영팀
group@hyundai.comHMG 저널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L) 2.0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복제와 배포, 전송, 전시 및 공연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단, 정보 사용자는 HMG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MG 운영정책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