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전기차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전기차 제조사의 등장은 물론, 전기차 관련 부품 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 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 외에도 이차전지를 앞세워 성장하는 새로운 회사와 스타트업이 속속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회사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소재의 수급 문제다. 완벽한 제조 설비와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원소재가 없다면 배터리는 생산할 수 없다. 특히 배터리용 원소재로 쓰이는 니켈과 코발트 등의 희귀 금속은 현재 몇몇 국가만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어 이들과 제조사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형국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 관련 업계가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 결과, 최근에는 성능이 떨어진 사용후 배터리 혹은 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재활용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 2월에 발표한 산업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2030년을 전후로 사용후 배터리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용후 배터리란 신품 대비 약 70% 이하로 성능이 떨어져 더 이상 전기차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배터리를 말한다. 현재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은 2030년을 기점으로 폐차 규모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발생하게 될 다양한 폐기물의 처리 방안에 많은 고민이 따르고 있다. 특히 다양한 금속물의 집합체인 배터리의 경우에는 단순 폐기할 경우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에 사용후 배터리를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사용후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성능이 기존에 비해 떨어져 전기차에 사용하긴 어렵지만, 전기차 외 다른 분야에선 여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안은 크게 ‘재사용’과 ‘재활용’으로 나뉜다. 회수한 사용후 배터리는 검수를 통해 재사용 가능한 배터리와 그렇지 않은 배터리로 분류된다. 재사용 가능한 배터리는 내부 부품을 교체한 후 농업용 전기차, 전기 자전거, 캠핑용 충전기 및 ESS(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된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의 경우에는 방전 및 물리적 해체 과정을 거친 후 원소재를 추출해 새로운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원소재 확보가 수월해진다면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이 안정화되고, 전기차의 가격 문턱도 자연히 낮아질 것이다. 사용후 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하는 것은 전기차용 배터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전자기기를 비롯해 산업 전반에서 배출되는 모든 폐배터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도심에서 다량으로 배출되는 폐배터리에서 희귀 금속을 취득할 수 있기에 이러한 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도시 광산(Urban Mine)’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도시 광산’이란 1980년대 후반 일본 도호쿠대학 선광제련연구소의 난조 미치오 교수가 처음으로 정의한 개념이다. 도심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제품 또는 폐기물에서 다양한 금속 자원을 추출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도시 광산의 대상은 산업 전반에서 금속을 사용해 제조하는 모든 제품, 즉 수명을 다하거나 폐기된 전기・전자제품과 배터리 등이 해당한다. 도시 광산은 순환자원 중에서도 특히 ‘희귀 금속’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이 크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을 기점으로 사용후 배터리 시장은 더욱 큰 폭으로 성장하리란 것을 다양한 리서치 기관의 조사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외 에너지 산업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30년에 4,204만 대, 2035년에는 7,412만 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자연스레 사용후 배터리 시장과도 연결된다. 2030년 420억 달러로 추산되는 사용후 배터리 시장은 폭발적인 전기차 판매량과 맞물려 2040년 2,090억 달러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2040년을 기점으로 사용후 배터리 시장이 셀스크랩(Cell Scrap,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 산업의 규모와 동등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희귀 금속과 양극재, 음극재를 모두 수거할 수 있는 셀스크랩 산업은 배터리 관련 중요한 재활용 산업이다. 이처럼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용후 배터리 산업에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도 이러한 산업의 흐름에 발맞춰 사용후 배터리 사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물류 운송 체계를 활용하고 사용후 배터리 분류와 전처리를 통한 블랙파우더 확보까지 가능하도록 프로세스를 구축 중이다. 특히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핵심 중 하나인 블랙파우더의 경우 기술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블랙파우더에 포함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확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난 1월, 폐배터리 전처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현대글로비스의 핵심 경쟁력인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 역량은 폐기물, 위험 물질, 다양한 크기, 고중량이란 특징을 지닌 사용후 배터리 회수와 운송에서 빛을 발했다. 폐자원 업체, BaaS 사업자, 현대차그룹 딜러 및 AS 센터 등 다양한 거점에서 사용후 배터리를 일일이 수거하는 일은 높은 운영비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는 사용후 배터리 거점 간에 운송을 최소화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네트워크를 설계했다.
또한 사용후 배터리의 운송이 용이하도록 전용 회수 용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특허까지 취득했다. 현대글로비스가 개발한 사용후 배터리 회수용 ‘플랫폼 용기’는 절연 소재를 사용해 누전을 예방하고 다양한 크기의 사용후 배터리도 조절형 고정 장치를 사용해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다. 다단으로도 적재가 가능하며 11t 트럭 기준으로 최대 17개의 폐배터리를 회수할 수 있다.
회수되어 거점으로 운송된 사용후 배터리는 진단을 거쳐 재사용 또는 재활용될 수 있는 배터리로 분류된다. 이때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남아 있는 재사용 배터리는 전기차 외에 다양한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방안이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 UBESS(Used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다. UBESS로 재사용되는 사용후 배터리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가정, 빌딩, 공장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거나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보관 및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현대차그룹은 울산 공장에서 UBESS와 태양광 발전소를 연계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러한 UBESS 생산에 중요한 사용후 배터리 회수와 상태 진단을 수행한다.
재사용이 불가하다고 진단된 사용후 배터리는 해체되고 전처리 과정을 거쳐 블랙파우더로 만들어진다. 블랙파우더란 폐배터리를 물리적으로 분쇄하는 과정에서 얻는 검은색의 분말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배터리를 만들 때 사용되는 다양한 희귀 금속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희귀 금속들은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다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많은 기업이 블랙파우더를 확보하는 전처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또한 회수한 사용후 배터리에서 블랙파우더를 만드는 것까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폐배터리 전처리 기술은 새롭게 개발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주)이알’과 손을 잡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알은 2008년 설립된 재활용 전문 기업으로 폐리튬 이온 배터리를 저온 진공 시스템에서 처리하는 기술과 해당 설비에 대한 특허를 가진 곳이다. 아울러 전처리 과정에서 폐수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해질을 회수하는 친환경적인 공정 기술도 갖췄다. 현대글로비스는 이알과 협력해 폐배터리 전처리 기술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세계 각지에서 회수한 폐배터리를 직접 전처리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용후 배터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2030년부터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비전을 정립하고 있다. 사업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2029년까지는 사용후 배터리 사업을 위한 핵심 역량 확보와 초기 사업 전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생산 기지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의 전처리 작업 참여, UBESS를 위한 핵심기술 확보 및 양산 체계 구축에 힘쓸 예정이다. 이러한 준비를 밑바탕으로 2030년에는 유럽, 미주, 한국 권역별 사업 네트워크를 완성하고 재무적 성과를 도출하는 게 현대글로비스의 목표이다.
사용후 배터리와 도시 광산의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해당 사업을 선점하고자 그룹 차원에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도시 광산 밸류체인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핵심인 사용후 배터리의 회수와 진단 그리고 전처리 업무를 주도한다. 새로운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현대글로비스가 빈틈없는 준비로 현대차그룹의 순환경제 조성 계획의 선봉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길 기대한다.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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