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에만 초점을 맞췄던 전기차가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대형화와 고성능 키워드를 더하며 새로운 카테고리의 전기차들이 속속들이 탄생 중이다. 전동화 전환 시기를 적극 앞당기고자 하는 현대자동차그룹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형 전기 SUV와 고성능 전기차를 내놓으며 전기차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기차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전기차 성능의 핵심 요소인 고전압 배터리 및 ‘PE(Power Electric)’ 시스템의 고도화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고 있다. 충전 편의성을 높여주는 400V/800V 멀티충전 시스템과 800V 고전압 시스템, 외부 전자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V2L 등 편의성을 중심으로 한 부가 기능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본질인 성능과 품질 향상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여러 분야의 전기차 관련 시험실을 운영 중이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 인버터 등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평가하는 시설을 마련해 품질 높은 전기차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가령 소재 분석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성능 연구와 모터 기반의 출력 성능 시험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에 위치한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 인버터, 감속기로 이뤄진 PE 시스템의 품질을 높이고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곳은 각 시험실에 쓰이는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 시험실’과 ‘2축 시험실’, 그리고 ‘4축 시험실’로 나누어 운영 중이다. 각기 다른 구조의 시험체를 동력계 시험 장비에 장착해 성능을 측정하고 있으며, 시험체는 동력계 장비가 많아질수록 실제 자동차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우선 1축 시험실은 전기차의 PE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바로 전기 모터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시험체는 인버터와 모터를 한데 묶은 2 in 1 시스템이다. 모터-인버터 단품 시험의 목적은 매핑(mapping)을 통한 기본 동력원의 효율과 성능 연구다. 구동축이나 감속기처럼, 손실이 이뤄지는 요인이 없어 순수한 PE의 성능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험실 내부에는 일정한 테스트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 장비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를테면 배터리 시뮬레이터는 실제 전기차의 배터리 잔량(State of Charge, SOC) 상태를 모사해 다양한 전압 상황을 구현한다. 또한 냉각수 쿨러와 오일펌프가 모터와 인버터의 시험 온도를 유지하고, 분석계를 마련해 시험 중인 모터와 인버터의 전류, 전력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구성했다.
단순 성능 개발뿐만 아니라, 1축 시험실에선 시장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도 실행 중이다. 가령 북미나 유럽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주로 요구하는 등판 조건이나 트레일러 주행 조건 충족을 위해 정격 시험을 진행한다. 또한 국가별 기준에 따른 모터 및 인버터의 인증 시험도 병행하고 있다. 종종 전동화 장치의 출력이나 정격, 환경 등의 측면에서 상이한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어 글로벌 시장용 제품을 개발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2축 동력계 시험은 2 in 1 시스템에 감속기와 구동축을 결합해 테스트한다. 이는 실제 전기차의 구동계와 동일한 구조로, 모터에서 발생한 동력이 감속기를 거쳐 구동축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PE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체형 3 in 1 시스템의 전체 효율과 손실을 시험하는 것은 물론, 모터 회전력을 높이는 감속기 자체의 효율과 특성도 파악하는 작업을 거친다.
아울러 전기차의 전자식 오일 펌프(Electric Oil Pump, EOP)를 장착해 실제 주행 환경과 유사한 3 in 1 시스템을 구성했다. 이로써 고온에 의한 영향도와 냉각 성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으며 전기차 성능 최적화를 위한 EOP의 제어와 매핑 작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한편, 4축 시험실에서는 양산차와 동일한 사양의 개발 차량을 미리 확보해 평가를 수행한다. 따라서 시험실 내에서 전기차의 실제 성능을 가장 정확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전력 공급을 위해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했던 1, 2축 시험실과는 달리 전기차에 탑재되는 실제 배터리를 직접 활용한다. 동력계 장착과 전류 등의 수치 측정을 위한 부자재 이외에는 소비자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차량과 거의 동일한 상태다.
소비자가 경험하는 가장 가까운 형태의 시험체인 만큼, 4축 시험실에선 보다 다양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가령 연구원들은 여러 주행 상황에서 배터리부터 휠까지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을 관측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분석한다. 또한 실제 차량에 장착된 PE 시스템의 성능 최적화를 위한 냉각 특성도 연구 중이며, 경쟁사 차량의 시험으로 PE 시스템 개발 방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4축 시험은 휠 허브에 동력계 장비를 직접 체결해 테스트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차량 동력 성능을 시험하는 섀시 다이나모미터(Chassis Dynamometer)와 비교했을 때, 타이어와 롤 사이의 미끄럼이 없어 비교적 순수한 동력 성능을 측정할 수 있다. 아울러 시험실 내에 주행 속도와 연동해 작동하는 고용량 송풍기도 구비해 주행풍까지 재현하고자 했다.
운전석에 위치한 자동운전 로봇도 보다 현실감 있는 주행 환경의 조성을 돕는 장비다. 운전자 역할을 대체하는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페달을 밟는 동작을 모사하고, 심지어 자동으로 변속까지 할 수 있다. 사전에 설정한 운전자 프로파일을 기준으로 연구원이 시험실 외부에서 로봇을 제어하며, 신호를 전달받은 로봇은 피스톤 압력을 변화시켜 직접 페달을 밟는다.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원격으로 전자 제어하지 않고 로봇의 움직임을 반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물리적 조작이 실제 운전자의 움직임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봇은 사람이 수행하기 어려운 균일한 수준의 반복적인 시험을 가능케 한다.
2축과 4축 시험실에서 사용 중인 동력계는 최대 8,000Nm에 달하는 모터의 회전력(토크)을 측정할 수 있다. 또한 분당회전수(RPM) 역시 최대 8,000rpm까지 측정이 가능해 현존하는 모든 전기차용 모터의 개발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의 고성능화에 발맞춰 장비 사양도 꾸준히 향상시킬 전망이며, 특히 모터 단품 시험을 실시하는 1축 동력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양을 갖춰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전동화구동시험 담당 인원들은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 얻은 다양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전기차 설계 및 개발 관련 부서들과 긴밀히 협업 중이다. 예컨대 설계 측면에서 의도된 사양의 성능과 효율이 제대로 구현되는지 검증하고,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형태다. 또한 시험 결과 분석으로 신차의 콘셉트나 기술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는 등, 설계 조직과 차량 성능 개발 조직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또한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전기차 탄생에 기여한 장소이기도 하다. 일상 주행에 최적화된 전기차와는 달리, 고성능 전기차는 트랙을 비롯해 가혹 조건에서의 주행을 고려해 제작된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선 아이오닉 5 N이 도달할 수 있는 시속 260km의 고속 시험이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코스와 같이 극한의 부하 조건을 구현한다. 이러한 주행 조건에서의 데이터 습득과 함께 온도 관리나 제어 영역에서의 평가를 통해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결국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궁극적으로 차량 개발의 효율과 시험 데이터의 객관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한다. 전기차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시험 항목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시험실에서 습득한 데이터를 필드 테스트의 기본 데이터로 활용해 차량 개발 일정을 대폭 단축시키는 것이다. 전기 모터와 인버터의 성능을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험을 거쳐 최대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전동화구동시험팀의 노력은 곧 필드 테스트의 초석을 닦는 인고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전기차 시대를 두고 많은 이들이 상향평준화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만들기 어렵지 않아 비교적 진입하기 쉬운 시장이라는 이유다. 실제로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단순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작은 차이가 상품성 측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판가름한다는 이야기다. 전기 모터의 섬세한 특성까지 허투루 놓치지 않는 전동화구동시험 전문가들의 모습처럼, 미세한 격차를 만들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조혁수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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