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HPO’)는 2009년 창단한 사내 동호회 개념의 오케스트라입니다. 다른 동호회와 차이가 있다면 전 그룹사의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그룹 단위의 동호회라는 점이죠. 비전공 초급 연주자부터 전공자, 서울권 근무자부터 경기권 근무자까지 각양각색의 임직원이 모였지만, 클래식 연주를 향한 애정 덕분에 에너지가 넘치고 단합력이 좋습니다. 음악을 통한 그룹 내 문화예술의 가치 전파, 사회공헌활동에도 매우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올해는 ‘개인의 도전이 모여 완성된 모두의 도약’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속에 함께하며 더욱 아름다운 하모니 조율에 나섰는데요. 최근 연말 정기연주회를 통해 1년의 성과를 선보였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백건우 피아니스트와 함께 협연하여 관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시간을 선물했다고 하는데요. 12회째를 맞은 HPO의 정기연주회를 중심으로 HPO의 활동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소개합니다.
2023년 12월 3일. 이날은 HPO의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 로비는 연주회 시간이 다가올수록 수많은 인파로 북적입니다. 단원으로 활동하는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클래식 자체를 즐기기 위해 찾은 현대자동차그룹 임직원은 물론 일반 관객도 많이 찾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관객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북’의 연주자 소개 페이지를 보면, 정기연주회에 임하는 HPO 단원들의 자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악기 파트에 따른 분류 아래 소속 그룹사와 직급 표기 없이 연주자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소속과 직급을 떠나 매진해 온 음악으로 말하겠다’라고 피력하는 듯합니다. 설렘과 기대 속에 오후 5시가 되고, 관객이 모두 입장한 세종대극장에서 정기연주회의 막이 오릅니다.
먼저 HPO의 정성록 단장이 무대에 섰습니다. 정성록 단장은 “저희에게 음악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음악을 통해 위로받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음악을 향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또, “HPO는 우리 그룹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도전했습니다. 이 연주회를 통해 일상을 함께해 준 분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며 연주회가 관객에게 값진 시간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제 저희 HPO 단원들을 뜨거운 박수로 맞겠습니다.” 단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수가 시작됐고, 꽤 긴 시간에 걸쳐 입장하는 단원 한 명 한 명을 향한 환영의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윽고 HPO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 협연을 수락했다고 밝힌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이 지휘자 바로 앞에 놓인 피아노를 향해 입장하고, 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집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은 무려 67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해 온 분입니다.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수차례 수상했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피아노 연습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그의 별명은 ‘건반 위의 구도자’. 선생이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로 꼽은 1부 곡,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시작됐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일생동안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은 단 3곡이라고 합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자 차이콥스키의 전체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품이지요. 특히 1악장 도입부는 현존하는 모든 협주곡을 통틀어 가장 유명합니다. 익숙한 그 도입부가 백건우 선생과 HPO 단원들의 협연으로 진행됩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합주와 힘차게 뻗는 피아노 독주가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거장의 격정과 단원들의 열정이 어우러지는 순간이 찰나 찰나마다 연결됩니다. 피아노 연주가 멈출 때면 백건우 선생은 선율에 몸을 맡긴 채 몸을 흔듭니다. 동일한 몸짓으로 연주하는 악기 파트와 합주는 파도와 같고, 춤사위 같습니다. 기대감 속에 연주회를 찾아온 관객을 향한 초겨울의 위로입니다. 실수를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은 무대를 온전히 누리면서 순간순간의 연주에 집중했습니다.
인터미션 후의 2부는 협연자 없는 HPO 단원들만의 시간입니다. 1부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악기의 연주석에도 연주자가 꽉 들어찼습니다. 곡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으로, 기존 교향곡의 형식과 규칙을 벗어나려는 대담한 시도 때문에 교향곡의 역사를 바꾼 첫걸음이라 평가받는 곡입니다. 말러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어렵다”는 평이 많은 작곡가이지만, ‘거인’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클래식 초보자들도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서정과 서사를 넘나드는 선율 속에 연주자들은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2인3각 달리기를 하듯 음을 주고받습니다. HPO라는 군집체가 한 명의 거인으로 거듭나 힘찬 걸음을 내딛고 포효합니다. 포효 뒤에는 무대를 즐기는 듯 가벼운 앙상블이 이어집니다. 재미난 퍼포먼스도 많았습니다. 트럼펫 연주자들만 무대 밖에서 연주하다가 중간에 입장한다든지, 일부 악기 연주자들이 자기 파트 연주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공연 형태를 보여준 것.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의 클래식을 선보이고자 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브라보~!” 뜨거운 환호 속에 마무리된 연주 덕분에 아마도 이 겨울의 추위를 1도쯤은 날려버리지 않았을까요. 세 번의 커튼콜 뒤에야 장엄한 마지막을 장식하는 앙코르 연주가 이어진 건 덤입니다. 연주회가 끝나고도 로비는 연주자를 기다리는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곳곳에서 축하와 격려의 대화가 오가면서 현장의 훈훈한 분위기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HPO의 1년은 정기연주회를 향해 달리는 마라톤과도 같습니다. 대체로 상반기에는 격주로, 하반기에는 매주 모여 합주 연습을 합니다. 올해는 일과 연습을 병행하기 어려운 단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오연완’이라고 명명한 챌린지인데요. 현실적으로 주간 활동 횟수를 늘리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연습에 동기를 부여하고자 ‘오늘도 연습 완료’했다는 영상을 SNS에 올리고 격려와 피드백을 진행한 것입니다.
정기연주회를 위해 HPO는 17번의 합주 연습과 3번의 총연습을 통해 합을 맞췄습니다. 특히 10월에는 1박 2일의 합숙연습인 ‘뮤직캠프’를 가지며 고강도의 담금질을 하는데요. 개인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진 뒤에 이뤄지는 합주 연습이기 때문에 이때가 HPO에 있어서 하모니가 완성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휘자인 김근도 선생은 HPO의 비상근 지휘자로 든든한 조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선생은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악원, 빈 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또, 빈 코리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KPO)의 창단, 헝가리, 오스트리아, 프랑스, 폴란드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습니다. 이번 정기연주회까지 여섯 차례 HPO를 지휘한 김근도 선생은 연주회의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백건우 선생께서 해준 조언도 HPO 단원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자기 파트가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다른 파트 연주가 계속되려면 나 역시 음을 끊거나 계속 들으면서 무음의 음악을 계속해야 해요. 연주자가 몇 명이든 100명이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덕분에 HPO는 모든 음이 조화를 이루는 최상의 하모니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HPO는 ‘내 도전의 결과를 선보이겠다’는 목적으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괄적인 목표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단원 및 주변인, 이웃에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곳이면 언제든지 기꺼이 달려갑니다.
정기연주회를 제외한 HPO의 활동은 크게 지역사회 음악봉사활동, 그룹사 연주회를 통한 사내 문화예술 증진 기여활동, 요청에 따른 주요 그룹 행사 지원활동 등으로 나뉩니다. 이때는 유닛 단위로 움직이는데,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30명가량이 참여합니다.
HPO는 지역사회 음악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연관된 지역 내 보육원, 어린이집, 양로원, 요양병원 등을 방문해 평소 클래식을 접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음악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인데요. 서울시 길동 지역아동시설 봉사연주회, 화성 지역아동시설 초청 롤링힐스 호텔 연주회 등 취약계층 대상 연주회는 물론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사회 기여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룹사 임직원들의 문화활동 기회 증대를 위해 진행하는 ‘힐링콘서트’도 있습니다. 주로 그룹사 사옥, 대강당, 로비, 야외공간에서 열리는 ‘미니 연주회’인데요. 올해는 양재 본사 로비에서 ‘음악이 있는 로비’를 테마로 점심시간에 연주회를 진행했습니다. 임직원들은 힐링콘서트를 문화 복지, 문화활동의 기회 제공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즐겨주었습니다.
한편 내년부터는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주요 사회공헌사업의 하나인 ‘예술마을 프로젝트’와 연계한 활동을 추진 중입니다. 음악의 예술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매년 5월 무렵이면 강원도 평창의 계촌마을에서 유명 연주자를 초청해 야외공연을 진행하는데요. HPO는 계촌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직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로 상담에 나서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기연주회를 마치고도 HPO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재교육원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단편영화제에서 축하공연을 진행한 것이지요. 영화 OST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면서 그룹사 행사의 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룹사 임직원의 화합을 통해 융합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HPO는 쌓이는 실력과 다양한 활동 속에 점차 현대자동차그룹의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HPO의 다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성록 단장은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나 어디라도 달려가겠다”라고 말하며, “우리의 음악을 통해 위로받는 이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며 담담한 진심을 전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자세로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도전을 이어갈 HPO. HPO는 소수의 마니아가 즐기는 어려운 클래식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기는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정기연주회는 그 과정의 한 단계입니다. HPO의 홍보를 담당하는 류연수 바이올리니스트가 밝히는 포부는 이렇습니다. “전 그룹사 임직원께서, 우리가 관계를 맺은 모든 분께서 연말에 있을 HPO의 정기연주회를 기대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설렙니다!”
사진. 안용길
사진 제공. H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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