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고성능 분야에도 다양한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고성능 전기차 시대가 열렸다.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친환경 이동 수단으로 부상한 전기차, 짜릿한 즐거움과 스릴의 영역인 고성능. 2가지 요소의 아이러니한 조합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무거운 배터리를 품은 전기차가 민첩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성능에 대한 열망과 기술의 발전 덕분에 비현실의 영역은 현실로 다가왔고, 모순일 것만 같았던 고성능과 전기차의 조합은 역설적이게도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출력을 빠르게 쏟아내는 전기 모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어해 가속 및 코너링 성능을 높이고, 고전압 배터리의 전력 제어 및 냉각 기술을 개선해 가혹한 트랙 주행에 알맞게 충·방전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 밖에도 무거운 전기차의 제동력을 도우면서 알뜰하게 에너지도 회수하는 회생제동 시스템을 활용해 코너링의 짜릿함을 더하는 등 전기차의 특성에 고성능을 결합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기차에 고성능의 매력을 곁들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현대자동차그룹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인 기아 EV6 GT다. EV6 GT는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3.5초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 언제든 뒷바퀴를 미끄러트릴 수 있는 드리프트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EV6 GT를 비롯해 테슬라, 포르쉐, 아우디 등 여러 브랜드의 고성능 전기차가 각축전을 펼치는 중이다. 지난 8월 영국 굿우드 스피드 오브 페스티벌 행사장에서 화려한 드리프트 쇼를 선보이며 데뷔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N은 고성능 전기차 경쟁을 한층 뜨겁게 달굴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고성능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유럽 자동차산업의 중심인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3대 자동차 전문지 중 하나로 꼽히는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Auto Motor und Sport), 이하 AMS〉가 독일 자동차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고성능 전기차 3대를 불러들여 고성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자격이 되는지 면밀히 살펴본 배경이다.
〈AMS〉가 한 자리에 모은 고성능 전기차는 EV6 GT를 비롯해 EV6 GT와 플랫폼 및 많은 부품을 공유하는 제네시스 GV60, 그리고 포드 머스탱 마하-E GT다. 공교롭게도 고성능 전기차 3파전에 참가한 모델은 모두 크로스오버 SUV였다. 2,900mm에 달하는 긴 휠베이스의 차체 하단에 배터리팩을 배치해서 바닥을 평평하게 다듬고, 앞뒤에 전기 모터를 하나씩 탑재해 실내 공간과 주행 성능을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적인 선택이 디자인에 여실히 드러났다.
〈AMS〉가 마련한 무대에 필요한 참가 조건은 단 하나. 최고출력이 350kW(약 480마력) 이상일 것. 3대 모두 이 기준을 충족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격차는 분명했다. 최고출력 358kW(약 487마력)의 머스탱 마하-E GT와 360kW(약 490마력)를 갖춘 GV60가 요건에 딱 들어맞게 참가한 반면, EV6 GT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430kW(약 585마력)의 무기를 갖추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진일보한 모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 속도의 차이가 최대 60km/h까지 벌어졌다.
한편, 가속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대토크는 머스탱 마하-E GT가 860Nm(약 87.6kgf·m)로 가장 강력했고, 힘을 뽑아 쓸 수 있는 배터리 용량도 91.0kWh로 가장 컸다. EV6 GT와 GV60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서 태어난 형제 모델답게 77.4kWh의 배터리를 공유했다. 다만, EV6 GT의 후륜에는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2개의 인버터를 갖춘 2-스테이지 모터 시스템이 탑재됐다는 차이가 있다.
GV60의 경우 여느 E-GMP 전기차와 동일한 모터를 품었으나, 앞뒤 모터의 출력과 토크, 응답성을 순간적으로 높이는 부스트 모드를 갖춘 스포츠 플러스 트림(국내 기준 퍼포먼스 모델)으로 참가해 치열한 승부를 예고했다. 각 제조사에서 밝힌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최대 1초가량 차이가 벌어졌지만, 진검승부를 펼치기 전까지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는 일이다.
〈AMS〉는 그동안 진행해 온 비교 평가와 마찬가지로 바디(150), 안전성(150), 컴포트(100), 파워트레인(150), 주행 성능(150), 환경(150), 비용(150) 등 7개 부문에 걸쳐 참가 후보들을 면밀히 평가했다. 눈에 띄는 점은 승차감 및 편의 사양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컴포트 부문보다 출력 및 충전 성능, 운전의 즐거움과 역동성을 주로 살피는 파워트레인과 주행 성능 부문의 배점을 높였다는 것이다. 고성능 전기차의 우열을 가리는 자리에 걸맞게 평가 기준을 수정한 〈AMS〉의 꼼꼼함이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EV6 GT는 1,000점 만점 중 602점을 획득해 이번 비교 평가의 승리 모델로 기록됐다. 〈AMS〉가 꼽은 EV6 GT의 장점은 우수한 출력 및 가속 성능, 그리고 내연기관 스포츠카와 다를 바 없이 짜릿하게 달릴 수 있는 주행 성능이었다. 직진 가속 테스트, 18m 슬라럼 테스트, 서킷에서의 핸들링 테스트, 제동 테스트 등 다양한 주행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AMS〉는 EV6 GT의 주행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EV6 GT는 주행 성능 부문에서 격차를 크게 벌리며 앞서 나갔다.
모든 평가 부문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은 가운데, EV6 GT가 눈에 띄게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부문은 파워트레인 및 주행 성능 부문이었다. 〈AMS〉가 이번 비교 평가를 진행하면서 고성능 전기차에 걸맞은 기본기와 달리기 실력을 갖췄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봤던 만큼, 평가 결과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플랫폼과 많은 부품을 공유하는 EV6 GT와 GV60는 파워트레인 부문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동등한 평가를 받았다. 차이가 벌어진 항목은 동력을 만들어 타이어로 보내는 PE(Power Electric) 시스템의 성능, 그리고 충전 성능이었다. EV6 GT는 고성능 모델에 걸맞은 출력과 최고속도를 구현하기 위해 주요 구동 모터인 후륜 전기 모터의 회전속도를 2만 1,000rpm으로 높였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EV6 GT가 최고속도 260km/h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GV60는 빠르고 안정적인 충전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최고점을 획득, 파워트레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AMS〉는 “최고의 성능에도 불구하고 EV6 GT는 파워트레인 부문 승리를 아깝게 놓쳤다. GV60와 점수가 거의 비슷하지만, GV60의 충전 속도가 더 빠르고 주행 가능 거리도 길다”고 언급했다.
차량의 운동 성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종성 및 운전의 즐거움을 평가하는 주행 성능 부문에서는 EV6 GT의 강점이 빛을 발했다. EV6 GT는 ESP(전자식 차체자세제어 장치) 제어 항목을 제외한 주행 성능 부문의 모든 항목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핸들링 및 운전의 즐거움을 평가하는 항목에서 차이를 크게 벌렸다.
파워트레인 및 주행 성능 테스트를 마친 뒤 〈AMS〉는 EV6 GT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EV6 GT는 서킷의 핸들링 코스에서 차체 자세제어 장치를 해제할 때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운전자는 쉽게 제어할 수 있는 핸들링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며, GT 모드에서는 뒷바퀴로 더 많은 힘을 전달해 굽이치는 서킷을 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V6 GT는 힘을 폭발적으로 쏟아내며 모든 코너에서 파워 슬라이드를 일으키며 달릴 수 있는 전기차다.”
3대의 고성능 전기차의 가속 및 제동 성능, 핸들링 성능, 실제 전비 등을 측정하는 테스트도 이뤄졌다. EV6 GT의 우수한 성능은 실제 측정 결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EV6 GT는 가속 테스트에서 뛰어난 성능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줬으며, 회생제동을 극대화한 전용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제동 성능의 차이도 크게 벌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러버콘을 배치한 코스를 누가 더 빠르게 탈출하는지 겨루는 18m 슬라럼 테스트, 전방 장애물을 빠르게 피하기 위해 차로를 변경했다가 원래 차로로 돌아오는 회피 기동 테스트에서도 EV6 GT는 역동적인 성능을 과감히 발휘했다. 핸들링 성능, 일관된 조종성, 낮은 무게중심 등 차량의 운동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2개의 테스트에서 EV6 GT는 고성능 전기차에 걸맞은 실력을 뽐냈다.
“EV6 GT만큼 재미있고 빠른 데다 신뢰할 수 있는 고성능 전기 SUV는 없다시피 하다. 머스탱 마하-E GT는 뒤쪽 움직임이 뛰어나지만 EV6 GT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드리프트 및 가상 변속 시스템 VGS(Virtual Gear Shift)를 갖춘 GV60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고성능 내연기관차처럼 숭배의 대상이 될 만한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전기차는 EV6 GT다.” 모든 평가를 마친 뒤 〈AMS〉가 EV6 GT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한편, GV60는 뛰어난 품질의 실내와 넉넉한 주행 가능 거리, 빠른 충전 성능 등 대체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주행 성능 부문에서는 다소 낮은 점수를 기록해 결과적으로 2위에 머물렀다. GV60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추구하는 럭셔리한 가치와 뛰어난 품질,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는 부분을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고급스러운 소재로 장식된 실내 공간의 품질과 편안한 분위기를 두고 〈AMS〉는 “제네시스는 포드보다 두 등급, 기아보다 한 등급 위”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울러 반짝이는 보석처럼 마감된 회전식 컨트롤 버튼은 조작성도 쉬운 데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구성과 반응 속도 역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AMS〉는 GV60에 대한 종합 평가를 이렇게 요약했다. “GV60 역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강력한 전기차다. GV60에 적용된 가상 변속 시스템 VGS는 모터 토크를 제어해 고성능 내연기관차처럼 변속하는 기분을 선사하고, EV6 GT처럼 론치 컨트롤과 드리프트 모드도 겸비했다. GV60는 고급스럽고 편안한 전기 SUV다.”
이번 비교 평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충전 성능이었다. 고성능 전기차의 출력과 주행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충전이 원활하지 않다면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AMS〉는 주행 테스트를 하는 동안 소진된 배터리를 직접 충전해보면서 3대 전기차의 급속 및 완속 충전 성능을 자세히 살펴봤다.
EV6 GT와 GV60는 350kW급 초고속 충전기를 이용했을 때 평균 충전 전력과 최고 충전 전력 모두 높은 수준을 발휘해 우수한 충전 편의성을 보여줬다. 급속 충전과 초고속 충전을 모두 지원하는 400V/800V 멀티 급속충전 시스템, 최고 240kW의 충전 전력을 수용할 수 있는 충전 제어 기술 등 현대차그룹의 우수한 전기차 기술력과 E-GMP의 장점으로 꼽히는 뛰어난 충전 성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우수한 상품성과 다채로운 매력은 이미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 시상식과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자동차 전문지의 비교 평가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EV6 GT의 바탕이 된 EV6는 2022 유럽 올해의 차(Europe Car of the Year 2022)에 국산차 최초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23 북미 올해의 차(North American Car, Truck and Utility Vehicle of the Year) SUV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EV6 GT의 경우 2023 월드카 어워즈(World Car Awards) 최고의 고성능차로 선정돼 고성능 전기차의 가치를 증명했다. 〈AMS〉의 비교 평가 첫 등장과 동시에 승리를 거머쥔 EV6 GT의 눈부신 활약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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