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2 현대자동차그룹

엑스포가 키우고, 엑스포를 빛낸 글로벌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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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는 글로벌 기업의 태동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의 저자 오룡이 엑스포와 글로벌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한다.

엑스포는 혁신 기업과 기술, 브랜드를 발굴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역대 엑스포를 빛낸 숱한 전시물 뒤에는 개발자와 기업이 있었다. 굿이어(Goodyear), 싱어(Singer), 코카콜라(Coca-Cola) 등 한 세기를 넘긴 장수 글로벌 브랜드들이 엑스포 무대를 통해 성장했다. 엑스포를 유치하고 초청하며 시행하는 주체는 국가지만, 엑스포의 콘텐츠와 트렌드는 기업이 주도하는 셈이다. 

1851년 런던박람회에서는 당대 최고 수준의 공산품과 개발품들이 선보였다

엑스포가 기업을 성장시킨 전통은 세계박람회의 효시인 1851년 런던박람회부터 시작됐다. 산업혁명 완숙기에 열린 런던박람회는 대형 기중기, 증기엔진, 압착기 등 당대 최고 수준의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영국산 공산품이 출품돼 관람객을 압도했다. 100만 종이 넘는 전시물 중에는 정밀시계, 전보타전기, 망원경, 색소폰, 가구, 유리 세공품 같은 실용적 개발품도 많았다. 


미국 발명가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총기제조업자 새뮤얼 콜트(Samuel Colt)는 연발권총을 비롯한 총기류를,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는 세계 최초의 고무 타이어를, 사이러스 매코믹(Cyrus McCormick)은 녹색혁명에 기여한 바인더 수확기를 출품했다. 이처럼 콜트, 굿이어, 매코믹 등의 혁신적인 발명가들의 이름은 전통 깊은 기업이자 브랜드로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1851년 제작된 파텍필립의 회중시계 (출처: https://www.patek.com/en/company/press-releases)

엑스포는 명품 브랜드의 고향이기도 하다. 가령 스위스의 파텍필립(Patek Philippe) 시계는 런던박람회 1등급 메달 수상작 중 하나로 눈길을 끌었다. 폴란드 기술자 파텍과 프랑스 기술자 필립이 공동 출품한 이 시계는 세계 최초로 독립 분침과 자동 태엽을 장착한 첨단 정밀제품이었다. 이 시계는 박람회 폐막 뒤 빅토리아 여왕과 부군 앨버트 공에게 헌정돼 명품 시계 계보의 시조가 됐다.

1867년 파리박람회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한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 트렁크 제품 안내서

프랑스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 비통(Louis Vuitton) 역시 1867년 파리박람회를 통해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루이 비통은 마차에서 기차 및 자동차로 전환되는 교통 혁신 트렌드를 미리 읽고 캔버스 천으로 제작한 트렁크를 출품해 주목받았다. 루이 비통 트렁크는 캔버스 소재뿐 아니라 새로운 교통수단에 적합한 직사각형 형태로 제작돼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이 됐다.

엑스포와 함께 성장한 글로벌 기업들

세계박람회 초기엔 무기 제조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콜트에 이어 유럽 최대 무기회사인 크루프(Krupp)가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 철강기술자 알프레드 크루프(Friedrich Alfred Krupp)는 1867년 파리박람회에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인 14인치(35.6cm) 구경의 대포를 선보인 이래 성능을 개선해 나갔다. 무기류는 20세기 초까지 인기가 높은 전시물이었으나 평화·번영 정신에 반한다는 지적에 따라 점차 퇴조했다. 이에 따라 크루프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무기를 생산하다 건축자재, 기계, 자동차부품 제조사로 변모했다.

1855년 파리박람회에서 선보인 싱어 재봉틀

한편 아이작 싱어(Isaac Singer)가 개발한 재봉틀은 1855년 파리박람회를 통해 첫선을 보인 뒤 1862년 런던박람회에선 별도 전시실을 차리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재봉틀은 단순한 바느질 도구가 아니라 가사노동과 의류산업의 근본을 바꾼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싱어는 이런 점을 마케팅 콘셉트로 적극 활용했다. 1876년 필라델피아박람회에선 엑스포 사상 최초의 기업 전용 전시관을 세웠고, 1889년 파리박람회에선 실용적인 전기 재봉틀을 내놓고 양산 체제를 갖췄다. 지금껏 명맥을 잇고 있는 재봉틀 회사 싱어는 엑스포 무대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힌다.


캐나다 출신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필라델피아박람회에서 전화기를 시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관람객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송수화기에 설치한 전자석 극의 얇은 철판을 유도전류로 진동시켜 음성을 재생하는 방식이었다. 소리가 전기로 바뀌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이로운 모습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토머스 에디슨과 그가 발명한 축음기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역시 엑스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다. 그는 1878년 파리박람회 때 설립한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을 통해 자신이 발명한 각종 발명품과 전기제품을 내놓았다. 파리박람회에서 백열전구, 확성기, 축음기를 선보인 그는 축음기에 자신의 음성을 녹음해 들려주는 시연으로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토머스 에디슨을 위시한 GE는 1889년 파리박람회를 통해 에펠탑, 그랜드 팔레, 오페라 거리 등에 각양각색의 컬러 전구를 설치해 ‘빛의 혁명’이란 찬사도 받았으며, 이후 박람회에서는 축전기, 영사기, 믹서, X선 투시경 등 각종 발명품을 잇따라 출품했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에선 영사기로 만든 짤막한 활동사진을 선보이며 영상 문화의 태동을 예고하기도 했다. 

엑스포, 자본주의의 성장을 촉진하다

미국의 상업주의 흐름 속에 개최된 1893년 시카고박람회 (출처: https://www.bie-paris.org)

엑스포의 흐름은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자본주의와 함께 움직였다. 20세기 들어 신흥 경제권으로 일어선 미국이 세계박람회를 주도했다. 국가주의 기반의 유럽과 달리 미국 박람회는 상업주의와 이윤 동기가 깊숙이 작용했다. 한편, 이 때쯤 엑스포의 운영은 박람회 기획과 집행을 정부와 기업이 역할을 나눠서 하는 이원화 방식을 썼다. 그만큼 기업의 참여 폭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이어지면서 개발자의 이름을 건 기업과 브랜드가 속출했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에서 코카콜라가 글로벌 브랜드로 떠오른 것을 비롯해 타자기의 레밍턴, 엘리베이터의 오티스, 케첩의 하인즈, 수프의 캠벨 등이 엑스포를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첫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완성된 포드의 모델 T (출처: https://media.ford.com/)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Henry Ford)는 1915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장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지었다. 전시관에 들어선 생산라인은 포드의 대표적인 자동차인 ‘모델 T’를 하루 18대씩 만들어 냈다. 포드는 대량생산 조립라인을 창안함으로써 전 산업 생산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포드의 이름을 딴 ‘포디즘(Fordism)’은 대량생산을 뜻하는 신조어가 됐다.

1939년 뉴욕박람회의 포드 전시관

싱어가 첫 테이프를 끊은 전용 기업 전시관은 1915년 포드 전시관 이후 관례로 굳어졌다. 미국 자동차 회사 GM(General Motors)은 1933년 시카고박람회부터 참여해 자동차 대중화의 문을 열었다. GE는 미국 박람회 중 절정을 이룬 1939년 뉴욕박람회에서 전력 생산 및 전달 기술 시연을 통해 전기시대의 리더임을 증명했다.

‘자본주의의 얼굴’ 미국 대기업의 활약

지상 최대의 쇼라고 불린 1939년 뉴욕박람회 (출처: https://www.bie-paris.org)

‘지상 최대의 쇼’라 불린 뉴욕박람회 개막식은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 생중계됐다. 미국 NBC방송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설한 개막식을 중계해 TV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 전기·전자기업 선구자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송신탑을 이용했다. 뉴욕 일원에 송출된 이 중계방송은 당시 보급된 200여 대의 수상기를 통해 1,000여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뉴욕박람회장에서는 ‘자본주의의 얼굴’인 미국 기업 전시관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 3’ 자동차 제조사를 비롯해 AT&T, IBM, 코닥, 코카콜라, 미국제철(US Steel), RCA,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GE 등 거대 기업들이 각자의 전시관을 개설해 박람회의 주제인 ‘미래 세계 건설’의 주역임을 과시했다.

미래 도시와 교통의 모습을 디오라마로 연출한 GM의 퓨처라마

‘퓨처라마(Futurama)’라 명명된 GM의 전시관은 미래교통에 관한 3,250㎡ 대형 디오라마 영상 쇼를 펼쳐 인기를 끌었다. 디오라마는 주택 50만 채, 자동차 5만 대, 고속도로, 고층 빌딩, 공공시설, 공원, 강, 산 등을 정교한 미니어처로 연출했다. 자동차 모형은 원격 조정됐다. 이 영상 쇼는 산업과 생활의 중추가 될 고속도로와 다면적 교통 시스템을 체감케 했다.


하루 평균 2만 7,500명의 관람객이 이 전시물을 관람한 뒤, GM의 최신형 자동차를 둘러보고 ‘나는 미래를 보았다’는 문구가 새겨진 배지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웨스팅하우스는 36가지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을 선보였고, 시대상을 대표하는 물품을 담아 5,000년 뒤인 6939년 개봉하도록 한 타입캡슐을 자사 전시관 앞에 매설했다. 

엑스포의 아시아 시대를 연 1970년 오사카박람회 (출처: https://www.bie-paris.org)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침체기에 빠진 엑스포는 ‘아시아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1970년 오사카엑스포를 기점으로 엑스포의 중심이 동아시아 3국으로 이동했다. 오사카에 이어 1975년 오키나와, 1985년 쓰쿠바, 2005년 아이치에서 개최된 일본 엑스포에선 소니, 도시바, 마쓰시타, NEC,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 등 일본 간판 기업들이 맹활약했다. 


기업 ‘공식 후원제’ 도입

이들 기업은 로봇, 초대형 스크린을 앞세운 대형 전시관을 개설해 다양한 첨단 제품을 선보였다. 후지필름은 오사카엑스포에서 가로 22m, 세로 16m 스크린의 아이맥스 영화를 내놓아 미디어의 지평을 넓혔다. 쓰쿠바엑스포에선 소니의 가로 36m, 세로 22m 점보트론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고, ‘로봇의 향연’이라 불릴 만큼 현란한 로봇의 전시가 펼쳐졌다. 


1982년 녹스빌엑스포는 미국 중소도시에서 열린 작은 박람회였지만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그건 바로 엑스포 사상 최초의 기업 ‘공식 후원제(Official Sponsorship)’ 도입이다. 재원 조달을 위해 기업 후원을 활성화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1982년 녹스빌엑스포 헝가리관에 설치된 대형 루빅큐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ubik%27s_Cube#/media/File:Expo_82_Rubik's_Cube.jpg)

녹스빌엑스포는 전 세계에 조각 맞추기 선풍을 일으킨 히트상품을 낳기도 했다. 6가지 색 정육면체 3개씩 9개 조각을 돌려 색깔을 맞추는 콤비네이션 퍼즐인 루빅큐브다. 헝가리 발명가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루비크 에르뇌(Rubik Ernő) 부다페스트응용미술대학 교수가 개발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헝가리는 자국 전시관 앞에 대형 큐브 조형물을 세우고 퍼즐 경연대회를 여는 등 엑스포에서 대대적 홍보전을 벌였다. 루빅큐브는 미국기업 아이디얼 토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2000년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3억 5,000만 개를 팔아 세계 최대 판매 장난감으로 기록됐다. 생산·판매사는 현재 루빅스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다양한 대기업의 참여로 첨단 개발품이 선보였던 1993년 대전엑스포 (출처: https://www.bie-paris.org)

인정박람회였던 1993년 대한민국 대전엑스포에선 한국IBM과 한국후지쓰가 독립 전시관을 세웠다. 현대, 삼성, 대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사들이 자동차관, 테크노피아관, 정보통신관, 전기에너지관, 우주탐험관, 주거환경관, 재생조형관 등의 전시관에 첨단 개발품을 대거 출품했다. 자기부상 열차와 태양열 자동차 등 미래 교통수단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2012년 여수엑스포에서도 국내 대기업들의 기술력을 선보이는 독립 전시관이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여수엑스포에 참가하는 기업의 독립 전시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동행”이라는 주제 아래 친환경 자원순환구조로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현대차그룹의 비전을 전달했다.

2030 부산엑스포에서 떠오를 업종은?

엑스포는 시대별 업종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4차 산업혁명의 진원지’로 불린 2000년 하노버엑스포에는 다임러 크라이슬러, 폭스바겐 등 자동차 회사와 지멘스, 소니 등의 전자회사, 그리고 맥도널드, 코카콜라 등의 다국적 식품회사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의 실현 방안을 제시했다. 

사상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던 2010년 상하이엑스포

사상 최대 규모였던 2010년 상하이엑스포는 기업 전시관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코카콜라, GM, 시스코 전시관, 석유 전시관, 한국·일본·상하이 기업공동전시관 등 총 19개의 기업관이 개설됐다. 공동전시관엔 현대차그룹, 삼성전자, LG, SK텔레콤, 포스코, 롯데, 효성, 두산, 신세계이마트, STX, 한국전력, 금호아시아나 등 대한민국의 대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의 기업공동전시관 (출처: 한국무역협회)

대한민국이 엑스포에서 기업 전시관을 개설한 것은 대전엑스포 이후 처음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연면적 4,000㎡의 전시관에서 ‘첨단지능 기술이 만드는 그린 시티’를 주제로 혁신 모빌리티와 녹색기술을 선보이고 사회공헌 메시지를 전했다. 아울러 남아공월드컵 공식 파트너로서 120인치 대형 LED 화면을 도입한 ‘월드컵 역사관’을 운영하여 월드컵 활성화에도 앞장섰다. 

한국 기업은 엑스포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왔다. 2020년 두바이엑스포 한국관에선 뷰티, 생활용품, 식품 등 국내 유망 소비재 기업 50개 사가 판촉전을 벌여 중동지역 바이어 200여 곳과 상담 실적을 올렸다. 자국에서 열리는 엑스포가 해외시장 공략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에 좋은 기회가 된다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하다. 

2030년 부산엑스포가 열리면 대한민국 기업과 브랜드, 제품·기술, 혁신 콘셉트를 전 세계 소비자에게 신뢰성 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앞선 인공지능, 확장현실, 나노융합, 블록체인, 퀀텀 컴퓨팅, 스마트팩토리, 혁신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과 관련된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촉진하게 된다. 이처럼 부산엑스포 유치는 국내 기업의 우수한 기술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글. 오룡(칼럼니스트)

언론인 출신 작가, 번역·집필가로 인문학·문화·역사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인류문명의 쇼케이스가 돼온 엑스포 역사에 매료돼 온갖 산물의 미시사를 탐구하고 정리했다. 서강대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한겨레신문 기자,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 국제평화재단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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