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카탈로그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 홈페이지의 한 코너를 장식하는 제원 정보는 제조사가 공인하는 기초 데이터다. 기계 공학을 넘어 ICT(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첨단 기술의 총체적 산물이 되어가는 오늘날의 자동차에서도 제원표는 중요하다. 셀 수 없이 많은 편의장비와 화려한 전자장비들 속에서도 자동차 본연의 기계적인 자료를 요약한 제원표에는 자동차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값진 정보들이 담겨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렇게 차량의 기본적인 자료들을 한데 묶은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제원 페이지는 복잡한 자동차를 직관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다. 가령 차체 크기 정보에는 실제 차량의 정면, 측면, 후면 이미지를 첨부해 세부 수치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소비자라면 평소에 접하지 않는 용어들이 많아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전기차와 같은 전동화 차량이 늘어나며 소비자가 숙지해야 할 정보들도 늘어나고 있다. 제원표가 해당 차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한 번쯤 알아 두어야 할 이유다. 제원표는 해당 차종의 특성에 대해 합리적인 추론을 돕는다.
차체 크기는 탑승 인원과 주요 용도 등에 따라 쾌적한 운용을 위해 차량의 크기를 파악할 수 있게 돕는 척도다. 우리나라는 자동차관리법 제2조에 따라 배기량과 차체 크기에 기반해 차종을 분류하고 있다. 다만 이는 행정상 편의를 위한 분류이기 때문에 엔진 다운사이징과 함께 차체 크기를 키우는 추세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전장은 ‘차체의 길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최근 인기가 높은 SUV나 크로스오버는 세단과 달리 승차 공간과 트렁크가 이어진 구조로 인해 전장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차체 너비를 뜻하는 전폭은 주차 시 차체의 좌우 여유 공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국내에서 전폭의 측정 기준은 사이드 미러를 제외하며, 보통 도어 캐치 부근이나 펜더 부근이 양쪽 끝 지점이 된다. 실내 설계와 패키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폭 수치는 실내 탑승 시의 팔 여유 공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차체의 높이를 의미하는 전고는 바퀴의 접지면에서 지붕의 가장 높은 부위 사이를 잰 거리를 뜻한다. 전고가 높으면 전반적인 부피감이 커짐에 따라 SUV나 크로스오버와 같이 차량의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으며, 탑승했을 때는 머리 공간에 여유가 더해질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축거와 윤거는 모두 바퀴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단어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매우 다르다. 먼저 축거(축간 거리)는 자동차의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를 가리킨다. 보통 축거가 길수록 실내 공간이 넓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구동 방식, 파워트레인의 크기, 서스펜션 구조 등 차체 설계 측면에서의 여러 가지 이슈를 이유로 축거 수치가 실내 공간 크기와 반드시 비례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축거가 길면 그만큼 실내 공간에 할애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져 무릎 공간을 비롯한 실내 공간이 넉넉해지는 경향은 있다.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의 경우 구동계가 콤팩트한 까닭에 전장 대비 축거의 비중을 높여 널찍한 실내를 구현하기도 한다. 내연기관 차량은 보통 구동계의 구조 때문에 뒷바퀴 굴림 차량이 비교적 축거가 긴 편이다. 반대로 앞바퀴 굴림 차량은 축거가 짧아도 실내 공간 확보가 유리하다. 즉, 구동 방식과 축거를 확인해 실내 공간을 나름대로 추측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축거는 주행 감각과 승차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통 축거가 짧으면 뒤 차축이 앞 차축을 따라오는 속도가 빨라 차량의 좌우 움직임이 경쾌해지며, 축거가 길면 불규칙한 노면을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 앞뒤 바퀴에 시차가 커져 승차감이 부드러워진다.
윤거(휠 트랙 또는 휠 트레드)는 땅에 맞닿은 좌우 바퀴 중앙과 중앙 사이의 거리를 가리킨다. 같은 차종임에도 휠과 타이어 사이즈에 따라 윤거 수치가 변하는 것도 타이어의 중앙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차량은 앞바퀴와 뒷바퀴의 윤거 수치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파워트레인 구조나 제조사가 의도한 핸들링 밸런스에서 비롯된다. 최근에는 소형급 차량들도 주행 성능의 향상을 이유로 전폭이나 윤거를 넓혀가는 추세다. 윤거를 넓히면 보통 코너 주행에서의 속도 한계도 높아진다.
동력 성능은 자동차의 핵심 정보면서도 소비자들이 제원표를 읽을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특히 엔진이나 모터의 제원은 차량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배기량은 엔진의 크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확히는 엔진 내부의 연소실에서 피스톤이 흡입 – 압축 – 폭발 – 배기의 행정을 1회 거치며 소비하는 가스의 부피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배기량이 커질수록 엔진의 힘과 연료 소모량도 함께 커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세금, 즉 자동차세의 기준을 배기량으로 매기고 있어 차량의 유지 비용을 고려할 때도 반드시 감안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동력원의 힘을 가리키는 용어로,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요소이면서 차량의 가속 성능과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이다. 최고출력은 일반적으로 엔진의 가장 높은 부하 상태에서 낼 수 있는 힘(마력, ps)과 그 힘을 내는 엔진 회전 영역(엔진회전수, rpm)을 병행하여 표기한다. 전기차는 전기 모터의 합산 출력을 *kW(킬로와트)로 표기한다.
*kW ≒ 1.36마력. 10kW는 약 13.6마력으로 환산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ps를 마력 단위 기준으로 함)
최대토크는 엔진 내부에서 연료가 연소하며 폭발하는 압력이 피스톤을 밀어내는 가장 큰 힘을 의미한다. 여기서 발생한 힘은 크랭크샤프트를 거쳐 차축으로 전달되어 바퀴를 굴린다. 이 역시 엔진 회전 영역대를 함께 표기하여 엔진의 힘 특성을 가늠할 수 있게 돕는다. 성능 중심의 차량은 엔진의 힘을 키우는 과급기를 장착해 최대토크의 발생 영역을 넓히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자연흡기 엔진은 엔진회전수가 높아짐에 따라 우상향 곡선의 그래프를 그리며 힘을 내기 때문에 최대토크를 내는 영역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은 kgf ·m/rpm으로, 전기차는 *Nm을 단위로 최대토크를 표기한다. 전기차의 경우 가동과 거의 동시에 최대토크가 발휘되어 초반 가속이 힘차게 느껴지는 편이다. 다만 차량의 퍼포먼스는 엔진이나 모터의 성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체 무게나 변속기, 타이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이루는 것이므로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
*Nm ≒ 0.102kg·m. 10Nm는 약 1.02kg·m로 환산이 가능하다.
아울러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는 제원표에 각각 연료탱크 용량과 배터리 용량을 기재하고 있다. 각 트림에 따른 연비와 연료탱크 용량, 그리고 전비와 배터리 용량 수치를 통해 1회 주유 시, 혹은 1회 충전 시의 주행거리를 간단히 파악할 수 있는 잣대로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중요한 전기차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사용성이 판이해질 수 있어 신중한 선택을 요한다.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유류비일 것이다. 연료 1리터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연비’이며, 이는 자동차의 대표적인 경제성 지표로 자리하고 있다. 내연기관의 연비와 전기차의 전비는 정부가 공인하는 에너지소비효율 측정 테스트를 거쳐 고지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연비 표기 방법은 상이하지만 우리나라는 연료 1리터당 주행할 수 있는 거리(km/l)로 표기하며, 모의 주행 시 생성된 배기가스에서 계산한 이산화탄소(CO₂)의 배출량을 함께 기재하고 있다.
위 사진은 현대차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쏘나타 디 엣지’의 표준연비와 에너지 효율 등급을 정리한 표로, 사양에 따른 다양한 연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사용 연료, 엔진 및 변속기, 타이어, 구동 방식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연비나 전비는 제법 큰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구매 예정인 차종의 세부 사양을 정확히 확인해 유지 비용을 계산해 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전기차의 에너지 소비 효율은 흔히 ‘전비’라고 일컫는다. 이 경우 배터리 용량 1kWh당 주행 가능한 거리(km)로 표기하며, 내연기관 차량과 마찬가지로 이 표기는 환경부 산하의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실시하는 연비 측정 시험에 기반하고 있다. 이 시험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도심 주행 및 고속도로 주행을 상정한 상황에서 측정한 에너지소비효율을 분석해 보정한 값을 전비 수치로 산정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과는 반대로 전기차는 고속도로보다 도심 주행 조건에서 에너지 소비 효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또한 제조사들은 대부분 배터리 용량을 이원화해 라이프 스타일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한편, 환경부의 저공해 자동차 제도에 따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각각 1종, 2종 저공해 자동차로 분류되며, 순수 내연기관 차량 중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종은 3종 저공해 자동차로 구분된다. 저공해 자동차는 공영 주차장이나 혼잡통행료 면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관련 제도 역시 체크하는 것을 추천한다(지자체별로 혜택 상이).
타이어는 주행 성능과 더불어 연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의외로 타이어 규격까지 꿰고 있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숫자와 알파벳이 얽힌 규격 정보는 쉽게 알아보기 어렵고, 타이어 효율 등급표에 새롭게 기재된 정보들도 생소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선 타이어를 공급하는 제조사 정보와 함께 제공되는 타이어 규격은 실제 타이어에도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기본 정보다. 가령 기아 EV9에 장착되는 21인치 타이어는 235/45 R21의 제원을 지녔다. 이는 ‘235mm 폭에 45%의 편평비를 가진 21인치의 타이어’로 풀이할 수 있는데, 여기서 편평비란 타이어 단면 폭에 대한 높이의 비율을 뜻한다.
대체로 타이어의 폭이 넓고 편평비가 낮을수록 주행 안정감이나 코너링 성능은 상대적으로 높아지지만, 연비와 승차감은 떨어질 수 있다. 아울러 타이어의 전체 지름이 커지면 연비와 가속 성능이 저하되기도 한다. 이렇게 같은 차종인데도 타이어에 따라 주행 감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타이어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차종에 따라 간혹 제원표의 기본 타이어 규격에 95H, 102Y와 같은 추가적인 정보가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앞쪽의 숫자는 하나의 타이어가 실어 나를 수 있는 최대 하중, ‘하중지수(Load Index)’를 의미하며, 알파벳은 ‘주행 가능한 최고속도(Speed Symbol)’를 가리킨다. ISO(국제표준기구) 는 간결한 표기를 위해 이를 암호 개념으로 요약하고 있으며, 각 허용 하중과 주행 최고속도에 고유의 숫자와 알파벳을 할당해 기준표를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 아이오닉 6의 20인치 타이어는 ‘99W’의 제원을 지닌다. 이 기호는 타이어 하나로 775kg의 하중을 감당할 수 있고, 시속 270km까지 가속이 가능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훨씬 높은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상용차들은 당연히 높은 하중지수를 지닌 타이어를 사용하며, 관련 기준표는 타이어 제조사 홈페이지나 차량 사용설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2011년 12월부터 승용차용 및 소형트럭용 타이어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타이어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 제도’에 의해 제원표에 추가되기 시작한 타이어 효율 등급은 제법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회전저항(RRC)은 말 그대로 주행 시 마찰력으로 인해 타이어가 회전하며 발생하는 저항(rolling resistance)의 비율을 1~5등급으로 구분한 것이다. 회전 저항이 적을 수록 1등급에 가까워지며 주행 연비가 높아진다. 타이어 제조사에 따르면 1등급 타이어는 4등급에 비해 연료 소모량이 최대 7.5%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또한 젖은 노면 제동력 지수 등급(G)은 기준이 되는 타이어 대비 젖은 노면에서의 제동성능 비율을 1~5등급으로 구분한 것이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젖은 노면에서의 제동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우천 시 주행 안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2020년부터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공단이 신차에 장착되는 타이어에 적용하기 시작한 타이어 소음도 등급제는 주행 소음을 측정해 등급화한 것으로, 측정 기준에 따라 A / AA 등급으로 분류해 소비자가 저소음 타이어를 고를 수 있도록 구성한 제도다. AA 등급은 소음 허용 기준보다 3데시벨 이상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같은 규격의 타이어라도 제조사에 따라 소음도나 효율 등급이 다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에너지 효율과 소음 등에 초점을 맞췄기에 관련 등급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타이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컨대 현대차 N 브랜드의 모델은 연비보다 코너링 성능 및 주행안정성과 같은 퍼포먼스에 집중한 차량들로, 퍼포먼스 타이어를 장착해 해당 기준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기가 어렵다. 따라서 차량 특성을 고려해 타이어 등급을 확인하는 것이 제원표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보들은 추후에 타이어를 교체할 때도 운용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참고 자료가 모든 것이 아니듯, 제원표의 정보만으로 자동차를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동차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반드시 전시장이나 시승 센터를 찾아 관심에 두고 있는 자동차를 직접 느껴보도록 하자. 자동차가 기계공학의 정점에 서있는 이동수단 중 하나라고 하지만, 실제로 자동차를 타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시각적 매력과 다양한 사용자 경험은 데이터만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HMG 저널 운영팀
group@hyundai.comHMG 저널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L) 2.0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복제와 배포, 전송, 전시 및 공연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단, 정보 사용자는 HMG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MG 운영정책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