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던 강원도 평창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따금 강렬한 환호성도 들렸다. 환호성의 근원지는 현대자동차그룹 2023 자율주행 챌린지 현장이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챌린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생 자율주행 경진 대회로, 지난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일 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개최됐다. 이번 자율주행 챌린지는 기존 대회와 달리 가상 현실 속 버추얼 트랙에서 진행됐으며, 국내 최대 규모답게 총 18개 대학팀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을 펼쳤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챌린지(HMG Autonomous Driving Challenge)는 지난 2010년부터 진행된 대학생 자율주행 경진대회의 새로운 명칭이다. 미래 자동차 기술의 핵심 분야로 손꼽히는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된 대학의 연구 활성화를 비롯해 연구 인력 저변 확대를 위해 2년에 한 번씩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 행사는 완성차 브랜드가 개최하는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 경진대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챌린지는 매회 발전을 거듭해 왔다. 2010년 첫 번째 대회가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방식이었다면, 이후 운전면허 기능시험장과 인제 스피디움에서 고정 장애물 회피 및 블라인드 미션 수행 방식의 서킷 레이싱으로 발전했다. 지난 2021년에는 상암 자율주행 시범 운행 지구를 주행하며 미래 자동차 기술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챌린지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챌린지는 올해 또 한 번 큰 변화를 거쳤다. 가상 공간에서 자율주행 기술력을 겨루는 버추얼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가상 환경은 실차 대회에 참가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결 자유로운 조건과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따라서 올해 자율주행 챌린지는 버추얼 부문과 하반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개최가 예정된 실차 부문 등 두 개 부문으로 각각 진행된다.
현대차그룹은 버추얼 부문 개최를 위해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 도로 모델과 EV 차량 모델, 64채널 및 16채널 라이다, 카메라 등 센서 모델을 제공했다. 참가팀은 주어진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자율주행으로 서킷을 주행해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완벽한 미션 수행을 위해서는 인지, 판단, 그리고 제어 등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수 요소였다. 쉽게 설명하면, 자율주행 로직 개발 완성도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참가팀들은 어떻게 가상 환경에서 자율주행을 가능케 했을까? 현대차그룹은 공정한 경기를 위해 동일한 조건의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지원했다. 참가팀에게 지원된 소프트웨어는 독일 IPG 사의 카메이커(CarMaker)로 차량 모델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에 필요한 센서류 모델이 구현돼 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참가팀은 저마다 전략을 수립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를 위해 각자의 전략에 따라 라이다와 카메라 등과 같은 자율주행에 필요한 센서의 조합, 그리고 GPS 값 연산을 통해 상황 판단 능력을 향상시켜 완성도 높은 자율주행 로직을 구현했다. 나아가 차량의 속도, 조향 성능 등을 고려한 로직을 적용해 차량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느끼는 버추얼 부문의 생소함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툴의 정확한 사용 방법을 교육했다. 나아가 전국 모든 대학팀이 수월하게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대전광역시와 서울특별시 문정동 등 2곳의 테스트 거점 장소를 마련했다. 또한 실시간으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와 메일 등의 채널을 통해 질의 사항을 받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와 같은 준비를 거쳐 버추얼 부문에 참가한 팀들은 본선 대회에 앞서 예선전을 치렀고, 총 18개 팀 중 건국대학교(AutoKU-V), 국민대학교(KUUVE), 성균관대학교(SAVE), 인하대학교(AIM), 한국기술교육대학교(K-ROAD), 충북대학교(Clothoid, 타요, Phoenix), 카이스트(EureCar-V) 등 총 9개 팀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본선은 3개 팀이 한 개 조를 이뤄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버추얼 대회는 총 7랩을 완주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차량이 우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 싸움만 펼치는 것은 아니었다. 고도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검증하는 자리인만큼 페널티 규정도 까다로웠다. 부정행위가 발견될 경우는 물론, 출발 제한 시간 초과, 경로 이탈 및 위반, 역주행 시에는 여지없이 실격 처리됐다. 또한 구간별 제한속도를 위반한 경우에는 40초, 추월 구간 미준수 시 매회 당 10초가 최종 기록에 가산되며, 차량 추돌 시에는 선행차량 5초/후행차량 20초 정지 후 재출발 등의 페널티가 부과됐다.
본선 경기는 장내 아나운서의 출발 신호와 함께 시작됐다. 출발선을 떠난 가상 환경 속 세 대의 아이오닉 5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순위 경쟁을 펼쳤다. 타이어 마찰음과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에 충분했다. 올해 버추얼 부문 경쟁은 총 세 곳의 직선 구간에서만 추월이 가능했기 때문에 코너에서 최대한 선행 차량과 가까이 붙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각 팀들은 정확한 레코드 라인을 따라 달리며 호시탐탐 추월 기회를 엿보았다. 또한 시속 90km 제한 구간을 지나 바로 이어지는 시속 40km 제한 구간에서는 일제히 감속을 했다. 경기가 달아오르고 있던 무렵 한쪽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차량 한 대가 멈춰 선 것이다. 차는 꼼짝하지 못했고, 점점 경쟁차들과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환희를, 또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안겨준 본선 경기가 마무리됐다. 본선 결과 각 조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한 건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인하대학교가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에 진출한 팀들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따로 마련된 점검 장소에서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등 우승을 향한 도전을 이어 나갔다.
대회 이튿날, 정상을 두고 싸우는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건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인하대학교 팀은 비장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입장했다. 앞서 4~9위 결정전을 치른 팀들은 관중석에 앉아 결승전에 입장하는 팀들을 위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승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숨 막히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카운트 다운과 함께 3대의 아이오닉 5는 일제히 출발선과 멀어졌다. 가장 뒤쪽에서 출발한 성균관대학교 AIM팀이 건국대학교 AutoKU-V팀과 나란히 달리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첫 번째 코너 진입 상황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코너 안쪽을 파고드는 SAVE팀을 AutoKU-V팀이 들이받는 사고였다. 뒤따르던 AIM팀 역시 사고에 휘말리고 말았다.
세 팀 모두 충돌 페널티 시간이 부여됐다. 가장 페널티 시간이 적었던 SAVE팀은 재빠르게 사고 현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AutoKU-V팀과 AIM팀 역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고요한 가상 상황에서의 레이스였지만, 마치 실제 레이스를 보고 있는 듯했다. 세 팀은 빠른 기록을 위해 과감하게 코스를 공략했다. 1위로 달리고 있는 SAVE팀과 그 뒤를 따르는 AutoKU-V팀, AIM팀의 격차는 사고의 여파로 꽤 벌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팀은 빠른 속도로 SAVE팀을 추격하며 격차를 점차 좁히기 시작했다.
접전은 경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AutoKU-V팀은 SAVE팀을 바짝 추격하며 추월 기회를 엿봤지만 SAVE팀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두 팀은 실제 레이스 경기에서나 볼 법한 ‘범퍼 투 범퍼(Bumper-to-bumper, 선행차 범퍼에 닿을 듯 붙어 달리는 상황)’ 장면까지 연출하는 등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세 팀은 시속 130km에 가까운 속도로 직선 구간을 질주했다. AutoKU-V팀은 ‘라인크로스(두 차량이 레코드 라인이 교차되는 상황)’ 전략을 펼치며 SAVE팀을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장 뒤에서 달리고 있는 AIM팀 역시 거리를 좁히기 위해 빠른 속도로 코너를 공략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팀은 성균관대학교 SAVE팀이었고, 간발의 차이로 건국대학교 AutoKU-V팀이 결승선을 밟았다. 두 팀의 차이는 약 1초에 불과했다. 뒤이어 AIM팀이 체커기를 받으며 무사히 레이스는 종료됐다. 결승전 집계 결과 14분 23초 만에 레이스를 마친 성균관대학교 SAVE팀이 최종 우승의 영예를 안았고, 건국대학교 AutoKU-V팀은 14분 24초로 2등을 기록했다. 인하대학교 AIM팀은 19분 21초를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다. 경기를 마친 세 팀은 순위와 상관없이 멋진 경기를 펼친 서로에게 격려를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성균관대학교 SAVE팀에게 부상으로 상금 2,000만 원을 전달했다. 또한 싱가포르 견학 기회도 함께 주어졌으며, 추후 현대차그룹 취업 지원 시 서류 전형 면제의 채용 특전도 함께 제공될 예정이다. 2등을 차지한 건국대학교 AutoKU-V팀에게는 상금 1,000만 원이 돌아갔으며, 3등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인하대학교 AIM팀에는 상금 500만 원이 전달됐다.
우승을 차지한 성균관대학교 SAVE팀 박영근 학생은 “가상 환경에서 자율주행으로 경쟁을 펼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율주행 시스템 구축 특성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한 부분은 기본이다. 자율주행의 가장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인지와 판단, 제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한 고속 주행 시에도 표지판, 선행 차량, 후미 차량, 미션과 같은 주행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 로직 개선의 필요성을 파악했다. 이를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로직을 꼼꼼히 확인한 후 개선한 부분을 파악해 수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며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팀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SAVE팀의 우승 소감에 이어 현대차 자율주행사업부 유지한 전무는 “이번 자율주행 챌린지는 버추얼 부문을 추가해 다양한 환경 속에서 더 많은 학생이 연구 역량을 뽐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국내 우수 대학교들과 협력해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챌린지는 경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대회다.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국내 우수 인재 육성과 자율주행 기술 저변 확대, 그리고 자율주행 핵심 기술 연구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울러 버추얼 부문 신설로 대회 참가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참고로 현대차그룹의 2023 자율주행 챌린지는 버추얼 부분에 이어 아이오닉 5로 진행되는 실차 부문 대회를 앞두고 있다. 실차 부문은 오는 11월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매회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챌린지는 앞으로도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는 장이자 자동차 기술 발전을 위한 문화로 자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글. 허인학
사진. 박기덕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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