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4 현대 모터스포츠팀

[2023 WRC 4R] 현대 월드랠리팀의 라피, 크로아티아에서 시즌 첫 포디엄 등극

현대 모터스포츠팀
nav-menu
크레이그 브린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많은 랠리 팬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현대 월드랠리팀은 소중한 동료를 기리는 의미에서 3번째 차를 포기하고 아일랜드 국기색으로 차체를 꾸몄다. 현대팀의 누빌은 경기 초반을 리드했지만 토요일 사고로 리타이어했고, 라피는 3위를 차지하며 현대팀 이적 후 처음 시상대에 올랐다.

포장 도로와 빙판, 눈바닥이 뒤섞인 개막전 몬테카를로를 지나 스노 랠리인 스웨덴과 멕시코의 고지대를 헤쳐 온 WRC는 이제 유럽으로 돌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시즌 첫 타막(tarmac, 포장 노면) 랠리를 맞이했다. 크로아티아 랠리는 2021년 WRC 캘린더에 처음 등장해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이던 1974년 델타 랠리(Delta Rally)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녔다. 유고 연방을 지배했던 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의 사망(1980년)과 1991년 동구권 붕괴,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등 격변기에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으며 2007년부터 ERC(European Rally Championship, 유럽 랠리 챔피언십)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2021년에는 드디어 크로아티아가 WRC를 유치하는 34번째 나라가 되면서 독일과 프랑스(Tour de corse)가 빠져 허전해진 타막 랠리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크로아티아 랠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대조되는 매우 까다로운 경기로 유명하다

올해 크로아티아의 20개 스테이지(SS)는 합산거리 301.26km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이 곳을 경험한 선수들은 가장 까다로운 경기 중 하나로 크로아티아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수도 자그레브 서쪽, 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의 시골길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폭이 좁은 도로는 파손된 부분이 많고, 건조한 상태에서도 그립이 낮아 상당히 미끄럽다. 앞서 달린 차들이 코너 주변의 흙을 퍼 올리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 노면이 매우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날씨마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타이어 선택도 까다로운 편이다. 


주행 속도가 빠른데 비해 파손된 노면이 많기 때문에 타이어 관리도 중요하다. 타이어 공급사인 피렐리에서는 금요일의 타이어 관리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타막용 컴파운드 두 가지(하드, 소프트) 외에 새로 개발한 빗길용 신투라토 RWB를 준비했다.

현대 월드랠리팀의 크레이그 브린은 크로아티아 랠리를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WRC (https://www.wrc.com)

크로아티아 랠리를 일주일 앞둔 지난 4월 13일, 전 세계 랠리 팬과 관계자들은 비통한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테스트 주행에 나섰던 현대팀 소속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이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33세(1990년생)의 한창 나이인 아일랜드 출신 브린은 시트로엥, M-스포트 포드, 현대팀 등에서 활동했으며 그 중에서도 현대팀(2019~2021년) 시절에 가장 빛나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시즌 다시 현대팀으로 돌아와 스웨덴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기대감을 높이던 참이었다. 현대 i20 N 랠리1의 3번째 차를 팀 동료인 다니 소르도(Dani Sordo)와 나누어 타는 동시에 포르투갈 랠리 챔피언십에도 참전하고 있었다.  


이번 사고에 대해 브린의 유족과 현대팀, 그리고 코드라이버인 제임스 풀턴(James Fulton) 등은 함께 신중한 논의를 이어갔다. 크로아티아 랠리를 아예 포기하는 옵션도 있었지만 경기를 진행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대신 브린이 탈 예정이었던 3번째 차는 투입하지 않기로 했다.

WRC에 참가한 모든 이들은 크로아티아 랠리에 앞서 크레이그 브린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팀 감독인 시릴 아비테불(Cyril Abiteboul)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관계자와 신중하게 논의한 끝에 우리는 크로아티아 랠리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브린을 향한 우리의 애도와 랠리를 향한 그의 열정, 그리고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두 대의 차만 투입하고 3번째 차는 브린을 기리는 의미에서 엔트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에는 브린과 유족, 친구 및 팬을 위한 상징을 그려 넣을 것입니다. 브린의 유지를 잇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 포기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동료이자 친구, 놀라운 경쟁자를 마음 속 깊이 품고 달릴 것입니다.”

현대팀은 크레이그 브린을 애도하기 위해 특별한 리버리를 입힌 경주차로 크로아티아 랠리에 참가했다

따라서 현대팀은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 두 명만이 출전했다. 차도 특별 리버리(도색)를 준비했다. 그린/화이트/오렌지의 아일랜드 국기 색상을 입혀 랠리 팬이라면 누구나 브린을 떠올리게 했다. 아울러 차체 구석구석에 그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참고로 FIA 역시 올 한 해 동안 WRC에서 그의 엔트리 넘버 42번을 결번하기로 했다.

WRC에 참가하는 모든 팀, 모든 드라이버는 크레이그 브린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누빌은 현재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 2위로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를 바싹 추격하고 있다. 라피의 경우 현대팀 이적 후 아직 포디엄 실적이 없는 상황. 다만 스웨덴과 멕시코 모두 선두를 달리다가 리타이어했기 때문에 자신감 회복이 우선이다. 도요타는 오지에, 칼리 로반페라(Kalle Rovanperä), 엘핀 에반스(Elfyn Evans),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 등 4명을 엔트리했다. 다만 현대팀 조치에 발맞춘다는 의미에서 챔피언십 포인트 담당 드라이버를 2명(로반페라와 오지에)으로 축소했다. 원래 랠리1의 팀 챔피언십 포인트 담당 드라이버는 한 팀에 3명까지 등록할 수 있으며, 그 중 점수가 높은 2명의 득점을 사용한다. 8회 챔피언 타이틀 보유자인 오지에와 디펜딩 챔피언이면서 지난해 크로아티아 우승자인 로반페라를 고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M-스포트 포드는 오트 타낙(Ott Tänak)과 피에르 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 2명만 출전시켰다. 타낙은 지난해 현대팀 소속으로 크로아티아에서 로반페라와 마지막까지 피 튀기는 접전을 펼쳤다. 루베는 최근 경기에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이번 경기의 랠리1 엔트리는 8대뿐으로 올 시즌 가운데 가장 적었다.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오프닝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4월 21일 금요일 아침 8시. 지난해와 같은 오프닝 스테이지(Mali Lipovec ~ Grdanjci)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이 날은 4개 스테이지를 오전과 오후에 반복해 달리는 SS1~SS8 8개 스테이지 130.18km 구간에서 진행되었다. 언제 비가 내릴 지 알 수 없는 날씨는 타이어 전략 수립을 어렵게 했다. 일부 선수가 웨트 타이어를 골랐는데,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랠리카를 향한 관중의 함성은 끝이 없다

아름다운 산과 마을을 끼고 도는 19.2km짜리 오프닝 코스에서 오지에가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25.67km의 SS2(Stojdraga ~ Hartje)에서는 피렐리가 언급했던 타이어 문제가 바로 현실이 되었다. 도요타팀의 오지에와 로반페라가 타이어 펑크로 시간을 잃었고, 누빌이 종합 선두로 부상했다. 오지에는 안전벨트 위반으로 1분 페널티까지 받았다.

현대팀의 티에리 누빌은 장애물과 부딪히며 범퍼가 파손되는 사고를 겪었다. 사진: WRC (https://www.wrc.com)

물론 누빌도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스테이지 마지막에 놓여있던 장애물을 들이박는 바람에 범퍼가 파손되어 공력 밸런스에 악영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오전의 남은 스테이지에서 페이스를 유지해 종합 선두를 이어갔다. 이 때 시케인(장애물을 이용해 만든 S자 코너)을 벗어났던 것은 다행히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 오지에, 로반페라의 펑크로 도요타 세력 선두가 된 에반스가 누빌 추격의 임무를 이어받았다.

라피는 경기 첫날부터 누빌과 함께 도요타 진영을 압박했다. 사진: WRC (https://www.wrc.com)

금요일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누빌이 종합 선두를 유지했다. 누빌은 이 날 여러가지 세팅을 시험했지만 최적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오전까지 누빌 16초 뒤에 있던 에반스가 점점 따라붙어 SS8을 마쳤을 때는 차이가 5.7초까지 좁혀졌다. 타낙은 오전 내내 스티어링 문제에 시달리면서 라피의 추격을 받았다. 라피가 SS6 톱타임으로 잠시 추월에 성공했지만 SS7에서 반격에 성공한 타낙이 다시 3위에 복귀했다. 라피는 타낙과 3.4초 차이 종합 4위로 금요일을 마감했다. 그 뒤로 50초 이상 시차를 두고 오지에와 가츠타가 있고 루베와 로반페라는 각각 7, 8위였다.

토요일에 펼쳐진 경기에서 현대팀의 티에리 누빌은 치명적인 사고로 경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4월 22일 토요일은 SS9~SS16 116.6km 구간에서 승부를 겨루었다. 이날 역시 4개 스테이지를 오전과 오후에 반복해 달리는 구성이었다. 23.76km의 오프닝 스테이지(Kostanjevac ~ Petruš Vrh)에서 로반페라가 가장 빠른 가운데 누빌이 에반스와의 시차를 4.8초 벌렸다. 이어진 SS9에서도 에반스보다 0.3초 빨라 시차는 10.8초로 늘어났다.

티에리 누빌이 코너를 돌아 나갈 때 콘트리트 관 때문에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WRC (https://www.wrc.com)

이어진 SS11(라브나고라-스크라드, Ravna Gora ~ Skrad)에선 누빌이 우측 코너에 진입하다 오버스티어에 빠지면서 사고를 일으켜 경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진입 속도 자체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브레이크가 살짝 늦었고, 그로 인해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었다. 하필 그곳에 콘크리트 관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 브린에게 우승컵을 바치고자 했던 현대팀과 누빌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였다. 


누빌이 리타이어함에 따라 자연스레 에반스가 선두를 이어받았고, 타낙은 2위, 라피는 3위가 되었다. 에반스는 타낙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해 달아났다. 토요일 시작하는 시점의 둘의 시차(24.3초)는 타낙이 톱타임을 기록한 SS14에서 12.5초까지 줄었다가 SS16까지 마쳤을 때는 다시 25.4초까지 벌어졌다. 참고로 타낙의 차는 핸드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었다.

현대팀의 에사페카 라피는 티에리 누빌의 바톤을 이어받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오전까지 종합 4위였던 루베는 오지에의 추격을 막을 수 없었다. 오지에는 금요일에 타이어가 두 번 펑크 났고, 토요일 아침에는 차를 고치느라 지각해 10초 페널티를 받았음에도 SS13을 마쳤을 때는 루베를 제쳐 종합 4위로 부상했다. 결국 토요일은 에반스가 종합 선두로 마무리했다. 타낙이 2위, 라피가 3위를 유지했다. 1~3위는 서로 꽤 떨어져 있고, 4위 오지에는 1분 이상 차이가 났다. 로반페라는 오지에를 불과 2초 차이로 추격 중이며, 가츠타와 루베는 각각 7, 8위였다. WRC2의 요한 로셀(Yohan Rossel), 니콜라이 그리야진(Nikolay Gryazin), 에밀 린드홀름(Emil Lindholm)이 9~10위로 득점권에 들었다.

아일랜드 국기 색의 리버리를 입은 현대팀 랠리카는 크로아티아를 종횡무진했다

4월 23일 일요일, 아침 7시에 SS17(Trakošćan ~ Vrbno)을 시작으로 4개 스테이지 54.48km 구간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렸다. 로반페라가 오프닝 톱타임으로 오지에를 제치고 종합 4위로 올라선 가운데 에반스가 타낙과의 시차를 30.5초로 벌렸다. 이어진 SS18(Zagorska Sela ~ Kumrovec)에서는 리타이어에서 복귀한 누빌이 가장 빠른 기록을 냈다. 득점권에 들기 어려운 누빌로서는 추가 점수를 챙길 수 있는 파워 스테이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따라서 누빌은 SS20 파워 스테이지와 같은 코스에서 열리는 SS18을 최대 속도로 달리면서 시뮬레이션을 마무리했다.

크로아티아 랠리의 결과는 거의 정해졌지만, 현대팀은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해 임했다. 사진: WRC (https://www.wrc.com)

포디엄 자리가 거의 확정된 에반스, 타낙, 라피와 달리 로반페라와 오지에의 4위 싸움이 막판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결국 에반스는 크로아티아 랠리 우승컵을 손에 넣으며 올 시즌 첫 우승을 기록했다. 2위는 타낙, 라피가 3위를 차지했다. 라피는 현대팀으로 이적한 후 올 시즌 첫번째 포디엄 등극이며, 파워 스테이지에서도 1점을 보탰다. 경기 내내 좋은 세팅 지점을 찾지 못해 고전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좋은 역할을 해냈다. 누빌은 금요일의 안타까운 사고로 득점권에는 들지 못했다. 다만 파워 스테이지 톱타임으로 소중한 5점을 챙길 수 있었다.

많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크로아티아 랠리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포디엄 시상은 크레이그 브린을 위한 묵념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에서는 누빌은 득점권에 든 에반스, 로반페라, 타낙에 밀려 5위로 떨어졌다. 대신 팀 득점에서는 손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도요타가 득점 담당 드라이버를 에반스가 아니라 로반페라와 오지에로 설정했기 때문. 이에 따라 선두 도요타와의 점수 차이는 2점 늘었을 뿐이다. WRC 제5전은 5월 11~14일 포르투갈에서 열린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포루투갈의 그래블 랠리는 산마루의 까다로운 흙 길에서 펼쳐진다. 지금까지 5번이나 세계 최고의 랠리로 선정되었던 인기 이벤트다. 



글. 이수진(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HMG 저널 운영팀

group@hyundai.com

HMG 저널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L) 2.0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복제와 배포, 전송, 전시 및 공연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단, 정보 사용자는 HMG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MG 운영정책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