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2 현대자동차그룹

엑스포가 낳고 키운 거대한 유산,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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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의 시초는 대관람차가 처음 선보였던 1893년의 시카고 박람회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의 저자 오룡이 엑스포와 놀이공원의 관계, 그리고 변천사를 상세히 소개한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전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대관람차는 엑스포의 유산이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등장한 80.4m 높이의 전망 휠이 그 원형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문명의 산물 대부분은 엑스포 무대에 등장한 뒤 진화를 거듭했다. 작은 생활용품부터 기계류, 교통수단, 전자제품, 가공식품, 대중문화 등 엑스포를 모태로 한 발명품 리스트는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개발품은 아마도 놀이공원일 것이다. 놀이공원은 보통 테마파크(Theme park) 또는 어뮤즈먼트파크(Amusement park)라 불리는 집단 위락시설을 말한다. 놀이공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바로 시카고 박람회였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이 탄생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물론 그 이전 박람회에도 각종 유흥시설이 있었다. 1867년 파리 박람회부터 야외 정원, 공연장, 수족관, 미니어처, 민속품 전시장, 탑승용 열기구, 식당과 바 등 오락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계 박람회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였으니 자연히 본연의 전람 기능 외 오락 기능도 커졌다. 하지만 시카고 박람회장에 세워진 놀이공원과 대관람차는 이전의 위락시설을 압도했다. 


‘미드웨이 플레이선스(Midway Plaisance)’라 불린 이 세계 최초 놀이공원의 면적은 290만m²로, 박람회장의 절반을 넘었다. 박람회장 자체가 거대한 오락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놀이공원 한복판엔 대형 바퀴 모양의 회전 놀이기구가 세워졌다. 36개 곤돌라를 매달고 빙글빙글 도는 이 기구는 박람회장 어디서나 보이는 랜드마크였다. 


바퀴 중앙축 양쪽엔 대형 성조기가 휘날렸다. ‘페리스 휠(Ferris Wheel)’ 또는 ‘빅 휠(Big Wheel)’이라 불린 세계 최초 대관람차다. 빅 휠의 탄생은 세상의 이목을 끌만한 획기적 기념물을 세우겠다는 박람회 조직위의 야심에서 비롯됐다. 특히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 세계 최고 높이의 독보적 상징물 에펠탑이 등장한 것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놀이기구의 신기원, 페리스 휠

시카고 박람회에 조성된 놀이공원 미드웨이 플레이선스의 ‘빅 휠’은 조지 페리스의 집념과 의지로 세워질 수 있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당시 시카고 박람회 조직위는 ‘에펠탑을 능가할 대담하고 독창적인’ 기념물 공모에 나섰다. 이때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이가 바로 철골 건축가 조지 페리스(George Ferris)였다. 수직으로 세운 거대한 철제 바퀴에 버스만 한 탑승용 곤돌라를 붙여 회전시킨다는 구상이었다. 페리스는 자전거 바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대형 휠 구상은 처음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엄청난 무게의 철골 구조물이 구동할 때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페리스는 전문가 기술 보증을 받아내고 직접 투자자까지 유치하는 추진력을 발휘해 결국 조직위의 승인을 얻어냈다. 마침내 세상에 없던 획기적 구조물이 제작에 착수했다. 

가장 중요한 공정은 엄청난 하중을 견딜 주탑을 세우는 일이었다. 높이 42.7m, 무게 40.5t의 주탑은 피츠버그 제련소에서 특별 제작됐다. 철탑을 세운 뒤 바큇살과 바퀴 테두리, 탑승용 곤돌라를 붙여나가는 순으로 공사가 진행됐다. 에펠탑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단조·제련 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빅 휠의 전체 무게는 71t에 달했다. 휠을 돌리기 위해 1,000마력짜리 대형 증기엔진이 장착됐다. 공사 기간이 늘어지는 바람에 빅 휠은 박람회 개막 7주 뒤에야 완공됐다. 완성된 대관람차는 우려와 달리 미시건 호반의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이 잘 돌아갔다. 

에펠탑과 페리스 휠은 엑스포를 빛낸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시설물이다

이처럼 빅 휠은 독창적인 조형물로서 건립됐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제공하는 놀이기구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인기는 그 크기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곤돌라에 탄 관람객들은 원형으로 돌며 다양한 높낮이에서 박람회장을 내려다보며 환호했다. 곤돌라 내부에는 의자 40개가 설치됐다. 입석 탑승자도 받아 곤돌라당 정원은 60명이었다. 탑승료는 박람회장 입장료와 같은 50센트였다. 탑승료가 비쌌음에도 휠을 타보려는 인파는 항상 긴 줄을 이뤘다. 1회 최대 2,160명을 태우고 20분간 운행된 빅 휠은 박람회 폐막 때까지 총 160만 명의 탑승자 수를 기록했다. 빅 휠은 박람회가 끝난 이듬해 4월까지 운행한 뒤 해체됐고, 시카고 북부의 한 공원에 다시 조립돼 설치됐다가, 1904년에는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으로 옮겨 운영됐다. 원본 휠은 이처럼 해체, 재활용을 반복한 뒤 폐기됐다.


하지만 대관람차는 설계자의 이름을 딴 명칭으로 전 세계에 전파됐다. 박람회장과 놀이공원, 도시 전망에서 빠질 수 없는 상징적 시설물로 자리 잡았다. 엑스포를 빛낸 수많은 건축가 가운데 조형물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에펠탑’의 구스타브 에펠과 ‘페리스 휠’의 조지 페리스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동시대 철공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 ‘철의 달인’이며, 엑스포 기념물 공모에 당선됐고,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불굴의 의지로 초유의 구조물을 만들어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하지만 에펠탑은 불멸의 기념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페리스 휠은 놀이·관람시설의 보통명사로 남은 채 실물은 사라졌다.

박람회의 흥행을 이끈 놀이공원

미드웨이 플레이선스는 현대 놀이공원의 효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놀이문화에 충실한 구성을 보였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첫 놀이공원인 시카고 박람회의 미드웨이 플레이선스는 빅 휠 말고도 놀거리가 넘쳐났다. 중앙로 1.5km를 따라 서커스, 오락극, 퍼레이드, 카지노, 토속인촌, 각종 놀이기구, 선술집, 식당가 등 온갖 오락시설이 줄을 이었다. 그야말로 먹고, 마시고, 보고, 타고, 노는 놀이문화의 결정판이었다. 


또한 이집트 카이로 풍경을 재현한 마을에서 음식과 술을 즐기고, 남태평양 토속촌에선 이국적 정취를 한껏 맛볼 수 있었다. 낙타 타기와 야생마 길들이기, 밸리댄스, 패션쇼, 마운틴 혼과 요들송 공연, 인조얼음 스케이트장 등이 인기를 끌었다. 유럽과 미국 식민지에서 가져온 각종 토속품도 눈요깃감이 됐다. 


대중 흡입력이 높은 놀이공원 덕분에 시카고 박람회는 흥행에 성공했다. ‘시카고 데이’로 선포된 10월 9일엔 총 75만 1,026명이 입장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진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시카고 박람회의 전체 관람객 수는 2,750만 명을 기록했고, 이후 놀이공원은 엑스포의 필수 요소가 됐다.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의 파이크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특별한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선 ‘파이크(Pike)’란 이름의 놀이공원에 가상 세계여행 동굴, 귀신의 성 등 당시로선 환상적인 오락시설이 들어섰다. 심지어 전쟁을 재연한 구경거리도 있었다. 6만m² 전장에서 영국군과 아프리카 보어족 간 전쟁을 2시간짜리 쇼로 재현했다. 관람객들은 입장료 25센트를 내고 전쟁이 벌어지는 마을로 들어가 구경했다. 

미국 박람회를 중심으로 엑스포의 놀이공원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1915년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1933년 시카고, 1939년 뉴욕, 1962년 시애틀, 1974년 스포캔, 1982년 녹스빌, 1984년 뉴올리언스로 이어진 미국 박람회에서 놀이공원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금주령 폐지 직후 열린 시카고 박람회의 놀이공원은 한층 다채로운 놀거리로 확장됐다. 자녀를 동반한 관람객들을 위해 ‘마법의 성’이란 최초의 어린이 전용 놀이공원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어린이 놀이시설은 인형극장, 링컨·워싱턴 생가, 초기 개척자 주거지, 100만 년 전 고생대 지구환경 디오라마 등 박람회가 추구하는 교육 기능을 발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엑스포는 예술과 교육, 대중문화와 상업주의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얽힌 복합적인 문화축제로 발전했다(출처 : https://www.bie-paris.org/)

1939년 뉴욕 박람회 놀이공원에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바닷속 세계를 주제로 지은 ‘비너스의 꿈’ 전시관이 인기를 끌었다. 티켓 부스 전면은 비너스상과 산호, 물고기 모양 등이 장식돼 있었고, 전시관 내부는 인어들이 헤엄치는 수조가 눈길을 끌었다.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럽과 달리 미국 박람회는 대중문화, 상업주의가 깊숙이 작용했다. 박람회 기획·운영에서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나누는 이원화 방식을 썼다. 

과거 엑스포의 필수 요소였던 놀이공원은 독립 상설 시설로 발전했다

이처럼 박람회의 놀이공원은 20세기 들어 본격화한 미국식 상업주의와 만나 하나의 문화상품이 되었다. 참고로 미국에선 세계 박람회를 보통 ‘페어(World’s fair 또는 The fair)’라고 부른다. 박람회(Exposition 또는 Exhibition)에 비해 ‘축제’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명칭이다. 그만큼 대중적 오락성이 강조됐다. 미국은 자원 결집도 유럽과는 다른 방식을 동원했다. 대통령 또는 주지사 직속 조직위 외 금융사를 별도로 설립해 재원을 조달했다. 


엑스포가 낳고 키운 놀이공원은 박람회장을 떠나 독립 상설 시설로 특화 발전했다. 뉴욕 코니아일랜드를 필두로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드림랜드, 무비월드 등으로 그 진화의 맥이 이어졌다. 자연히 엑스포에서 놀이공원의 효용도는 낮아졌다. 20세기 후반 들어 박람회 놀이공원의 규모와 기능이 대폭 축소된 이유다. 


인류 공통 과제 논의를 전면에 내세운 2000년 하노버 엑스포 이후엔 놀이공원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1993년 대전 엑스포는 모노레일과 함께 ‘꿈돌이동산’이란 놀이공원을 조성한 반면에 2012년 여수 엑스포는 놀이공원을 만들지 않았다. 

2030 부산 엑스포 예정지의 조감도(출처 : 부산광역시)

박람회에서 놀이공원은 자취를 감췄지만, 대관람차는 도시 전망시설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2030년 부산 엑스포 개최 예정지에도 대관람차 건립이 민간 차원에서 제안된 바 있다. 180m 높이의 대관람차를 세워 산복도로 등 특유의 도시환경을 배경으로 한 부산의 수려한 해안 경관을 조망한다는 구상이다. 위치는 현재 건설 중인 오페라하우스와 국제여객선터미널 사이 부지가 거론됐다.


만약 북항에 대관람차가 들어선다면 주변에 조성될 친수공원 엑스포 상징조형물, 재개발 건축물 등과 함께 부산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그리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 대관람차는 도시, 나아가 국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기능한다. 엑스포 유치를 통해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부산 경관을 더욱 빛내 줄 대관람차가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글. 오룡(칼럼니스트)

언론인 출신 작가, 번역·집필가로 인문학·문화·역사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인류문명의 쇼케이스가 돼온 엑스포 역사에 매료돼 온갖 산물의 미시사를 탐구하고 정리했다. 서강대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한겨레신문 기자,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 국제평화재단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2012) 등이 있다.

                        
                        
                        

전 세계 각국에서 펼쳐진 대관람차의 크기 경쟁

대표적인 놀이기구이자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대관람차는 198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높이 경쟁에 돌입했다. 1989년 일본이 요코하마에 세운 ‘코스모클록21’ 휠이 107.5m 높이로 처음으로 100m를 돌파했다. 이 대관람차는 이후 해체와 복원을 거쳐 112.5m로 더 커졌다. 그러자 중국, 베트남, 이집트, 호주, 미국, 대만 등이 잇따라 높이 100~160m 휠을 세웠다. 

박람회와 놀이공원의 전유물이었던 대관람차는 이제 일반적인 도시 전망시설로도 쓰이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러시아 ‘선 오브 모스크바(140m)’, 2008년 세운 ‘싱가포르 플라이어(165m)’, 2000년 건립된 영국 ‘런던 아이(135m)’ 등은 도시의 랜드마크로 세계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 높이 대관람차는 지난해 10월 두바이 엑스포와 함께 문을 연 블루 워터스 아일랜드의 ‘아인 두바이(Ain Dubai)’다. 현대건설이 건립에 참여한 아인 두바이는 250m의 높이로 이전 기록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하이롤러(167m)’를 크게 앞질렀다. 

아인 두바이는 250m의 압도적인 전고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높이 경쟁에 마침표를 찍었다(위 – 라스베이거스 하이롤러, 아래 – 두바이 아인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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