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4 현대 모터스포츠팀

WRC 출범 50년, 랠리카의 변천사

현대 모터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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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라는 이름으로 랠리가 개최된지 벌써 50년이 되었다. 그동안 경주차는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을까? WRC 랠리카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몬테카를로 랠리가 처음 열린 해는 무려 1911년이다. 랠리는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세기 말 유럽 각지에서 태동한 초창기 모터스포츠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이는 지금의 랠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FI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국제 자동차 연맹)가 유럽 각지에서 생겨난 다양한 랠리를 하나의 시리즈로 통합해 IMC(International Championship for Manufacturers)를 출범시킨 것은 1970년이며, 1973년부터는 이름을 WRC(World Rally Championship)로 변경하고 제조사뿐이던 챔피언십 타이틀도 제조사/드라이버 양대 타이틀로 바꾸어 지금과 같은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WRC의 50년 역사 속에서 경주차는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을까? WRC 출범 초기의 그룹 4부터 얼마전 도입된 랠리1까지 랠리카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초창기(Group 4, 1973~1981년)

1973년 열린 WRC 랠리의 현장. 사진 : WRC (https://www.wrc.com)

WRC가 생기기 이전, 유럽의 랠리판은 규정이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그룹1 랠리카는 몬테카를로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영국(RAC) 랠리의 출전은 불가능했다. 이처럼 다양한 랠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통일된 규정이었다. 

1976년 핀란드 랠리에서 우승한 피아트 131 랠리카. 사진 : WRC (https://www.wrc.com)

WRC 출범 초창기의 랠리카는 그룹 4 규정을 따랐다. 양산차를 개량한 레이싱카 중에서 매우 강력했던 그룹 4는 서킷 레이스는 물론 랠리에서도 널리 쓰였다. 그룹 4는 당초에 12개월간 25대만 만들면 되었지만 승인만을 위한 스페셜 버전이 난립할 가능성 때문에 최저 생산 대수가 500대로 급히 변경되었다. 알핀 A110, 포드 에스코트 RS1600, 란치아 풀비아 등과 같은 전설적인 랠리카들이 활약한 무대가 바로 그룹 4다. 

괴물의 시대(Group B, 1982~1986년)

사륜구동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WRC 경주차들의 성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됐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1982년 시작된 그룹 B는 WRC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1979년부터 합법화된 네바퀴 굴림 시스템(AWD)의 도입을 아우디가 성공시키자 너나할 것 없이 네바퀴 굴림 랠리카 개발에 나섰다. 당시 네바퀴 굴림 시스템은 아직 복잡하고 무거우며 기술적으로 미성숙했지만, 최저생산대수가 200대에 불과한 그룹 B 규정이 도입되면서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 

푸조 T16 E2 랠리카가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푸조 205 T16이나 란치아 델타 S4처럼 겉보기는 소형 해치백이라도 실상은 강관 프레임에 복합소재 보디를 씌우고, 미드십 엔진으로 네바퀴를 굴리는 괴물들이 줄줄이 제작됐다. 뒷바퀴 굴림 경주차도 일부 있었지만 그룹 B를 거치면서 네바퀴 굴림 시스템은 랠리카의 스탠다드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그룹 B는 화끈한 고성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영광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끝없는 출력 경쟁은 결국 끔찍한 사고들을 불러와, 1986년을 마지막으로 쫓기듯 그룹 A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말았다.

대량생산 자동차로의 전환(Group A, 1987~1996년)

그룹 A에서는 양산차를 베이스로 한 경주차가 활약하기 시작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1987년 시작된 그룹 A는 연속 12개월 안에 2,500대를 생산하도록 규정이 강화되면서 양산차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랠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반 양산차로 WRC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네바퀴 굴림과 고성능 엔진을 갖춘, 랠리에 적합한 양산차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때마침 소형 해치백 델타에 네바퀴 굴림 고성능 버전을 준비하던 란치아가 기회를 잡았다. 델타 HF는 그렇게 1987년부터 무려 6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며 그룹 A 시대 전반기를 독주했다. 이어서 1990년대에는 도요타 셀리카 GT-Four, 스바루 임프레자 WRX,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같은 일본차들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랠리카에 적합한 양산차를 연 2,500대나 생산하는 것은 대형 자동차 메이커라도 많은 부담이었고, 이는 참가 메이커의 감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WRC는 새로이 월드 랠리카 규정을 준비하여 제조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월드 랠리카 1기(World Rally Car, 1997~2016년)

현대자동차의 월드 랠리카 역사를 시작한 엑센트 WRC

1997년 도입된 월드 랠리카의 가장 큰 특징은 그룹 A 시절의 공인용 스페셜 모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네바퀴 굴림 고성능 소형차가 없는 메이커도 WRC 참전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2,500대 이상 생산된 양산차만 있으면 고성능 엔진, AWD 시스템, 서스펜션 등 많은 부분을 바꾸어 랠리카로 개조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푸조, 시트로엥, 스코다, 폭스바겐, 세아트, 미니는 물론 현대자동차도 WRC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랠리카 개발 경험이 없던 현대차는 영국 MSD에게 개발작업을 맡겨 엑센트(국내명 베르나) 차체에 2.0L 터보 엔진, 액티브 디퍼렌셜을 장착한 엑센트 WRC를 완성했다. 

초창기 월드 랠리카는 액티브 디퍼렌셜, 전자제어식 댐퍼, 전자식 클러치 컨트롤 등의 기술로 전투력을 높였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월드 랠리카는 에어 리스트럭터(흡기제한장치)로 최고출력을 300마력으로 묶었지만 제조사들은 액티브 디퍼렌셜, 전자제어식 댐퍼, 전자식 클러치 컨트롤은 물론 GPS를 통한 지상고 컨트롤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활용해 랠리카를 진화시켰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운용 비용을 억누르기 위해 2011년부터는 앞뒤 디퍼렌셜을 기계식으로 제한하고 티타늄, 탄소섬유, 마그네슘 같은 고가의 소재 사용을 제한하는 등 규정을 강화했다. 

현대차는 2014년 WRC에 복귀하면서 i20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월드 랠리카를 공개했다

2003년을 마지막으로 WRC에서 퇴진했던 현대차가 2014년 복귀할 때 들고 온 i20 WRC 역시도 월드 랠리카다. 독일 알제나우에 위치한 현대 모터스포츠에서 2세대 i20를 바탕으로 직접 개발한 이 차는 그 해 독일 랠리에서 현대 월드랠리팀에게 첫 WRC 우승컵(드라이버 - 티에리 누빌, Thierry Neuville)을 안겨주었다. 

월드 랠리카 2기(World Rally Car, 2017~2021년)

현대 월드랠리팀의 랠리카가 오프로드를 질주하고 있다

2017년, 월드 랠리카 규정에 20년만에 큰 변화가 있었다. 엔진 배기량을 2.0L에서 1.6L로 줄이는 대신 흡기 제한장치 직경을 키워 최고출력을 300마력에서 380마력으로 높였다. 또한 2011년부터 금지였던 센터 액티브 디퍼렌셜을 부활시켰다. 외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차폭과 리어윙 크기 증가, 휠 아치와 리어 디퓨저 관련 규제 완화 등으로 더욱 공격적인 공력 디자인이 가능해 졌다. 화끈해진 외형과 고성능은 그룹 B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2019년과 2020년에 2년 연속 제조사 챔피언을 차지했다

2017년 현대팀이 선보인 i20 쿠페 WRC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2016년 사용했던 5도어 해치백 대신 3도어 해치백으로 섀시를 바꾸고, 넓어진 차폭을 활용해 공격적인 펜더와 공력 파츠로 무장했다. 구동계는 1.6L 터보 380마력 엔진에 센터 액티브 디퍼렌셜 조합. 현대팀은 새로운 i20 쿠페 WRC 경주차와 함께 2019년과 2020년 두 시즌 사이에 17승, 포디엄 62회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드디어 열린 하이브리드 시대(Rally1, 2022년~)

WRC 2022 시즌부터 도입된 랠리1 경주차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해야 한다
현대 i20 N 랠리 1은 새로운 구동계를 도입했을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인 변화도 거쳤다

빡빡한 규정의 틀 안에서 전투력을 개선하기 위한 각 제조사의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차 i20 N 랠리1 역시 지난해와 세부적인 내용이 달라졌다. 차량 앞부분의 항력을 줄이기 위해 노즈 끝부분을 뾰족하게 다듬고, 앞 펜더 경사를 거의 일직선으로 뽑아 추가 다운포스를 확보했다. 넓어진 휠 아치 개구부는 바퀴 주변의 공기를 더 효과적으로 배출한다. 리어윙 디자인도 지난해와 많이 달라졌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다. i20 N 랠리1의 업데이트는 시즌 도중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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