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브랜드 헤리티지를 재조명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인물이자, 1970~1980년대 현대차의 초기 디자인을 정립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이하 주지아로)를 한국에 초빙해 현대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디자인 토크 쇼를 개최한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다(Shaping the future with legacy)’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디자인 토크 쇼에는 남다른 의미도 있었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재조명하고 유실된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브랜드 정체성을 단단히 다지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할 야심 찬 프로젝트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복원할 대상은 바로 현대차의 첫 콘셉트 모델이었던 포니 쿠페 콘셉트다.
포니 쿠페 콘셉트는 현대차가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 프로토타입과 함께 출품했던 모델로, 날렵한 쐐기 형상과 원형 헤드램프, 기하학적인 선으로 빚은 차체 등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유명한 SF 영화인 ‘백 투 더 퓨처’에서 타임머신 자동차로 등장했던 ‘드로리안 DMC 12’에 대해 주지아로가 자신이 디자인한 포니 쿠페 콘셉트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산에 성공해 수출까지 이어진 포니와 달리 포니 쿠페는 양산 직전에 프로젝트가 중단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었다. 지난 7월, 포니 쿠페 콘셉트를 오마주한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롤링 랩(Rolling Lab, 움직이는 연구소) N 비전 74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N 비전 74는 현대차그룹의 수소연료전지 기술과 최신 전기차 기술을 결합해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친환경 수소전기차의 실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이유가 명확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요소는 차고 넘쳤다. 포니 쿠페 콘셉트를 재해석한 디자인의 N 비전 74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과거의 포니 쿠페를 추억하던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뉴트로 디자인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미래와 만난 과거의 디자인이 가진 매력을 상기시켰다. 아쉽게도 포니 쿠페를 보존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유산을 현시대에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포니와 포니 쿠페는 현대차 고유의 DNA와 디자인의 정수가 담긴 전통과 역사다. 어느 분야든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디자인 토크 쇼에 참석한 현대자동차그룹 CCO 루크 동커볼케 사장은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현대차에 왔을 때 브랜드를 먼저 이해한 뒤 미래를 위한 디자인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정신적인 아이콘인 포니 쿠페가 보존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포니 쿠페의 창시자인 주지아로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니 쿠페는 과거와 같은 개발 방식으로 복원이 이뤄질 것이며, 이야말로 진정성 있고 가치 있는 복원 작업이 될 겁니다. 미래를 향한 중요한 기점에 서 있는 현대차에게 포니와 포니 쿠페가 과거 50년의 출발을 의미했다면, 새로운 50년은 아이오닉 5에서 시작했습니다.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는 미래를 향한 중요한 여정의 기점이 될 겁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지아로는 현대차 디자인의 아버지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다. 1973년 정주영 선대회장의 요청으로 포니 개발을 맡아 단기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은 디자인을 완성한 주지아로는 그 뒤로도 20년간 포니 2, 엑셀, 엘란트라, 스텔라, 쏘나타 등 다양한 현대차 초기 모델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초기 현대차 디자인을 정립한 주지아로와 함께 현대차의 정수가 담긴 유산을 복원하는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주지아로는 포니 디자인 작업을 처음 맡았을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있었던 일화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대차 창업주가 이탈리아 토리노로 날아와 현대차를 위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디자인을 맡아 주길 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죠. 당시 한국은 자동차산업이 시작된 곳이 아니었거든요. 1973년 말 한국에 도착해 울산 공장을 방문했는데,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모습을 보고 현대차그룹의 열정과 의지를 실감했습니다. 그 뒤로 50여 명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쉽게 만들 수 있는 차를 설계하기 시작했고 8개월 만에 포니를 만들어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죠. 단순히 차의 외형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기술과 설계를 파악하고 엔지니어들과 협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지아로는 포니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오닉 5에 대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자동차는 단순히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진보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오닉 5는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잘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플하고 단순한 형태인데 그 안에 적용된 새로운 기술들을 보며 경의를 표할 정도로 훌륭한 작업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주지아로는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로 ‘엔지니어와의 긴밀한 협업’을 강조했다. “저는 때때로 직접 패널을 용접하며 차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은 엔지니어링에서 나오기도 하죠. 2가지 요소가 융합될 때 아름다운 디자인과 우수한 품질이 보장됩니다. 지금의 현대차 디자인은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열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결합 측면에서 저는 그저 하나의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 것뿐이죠.”
실제로 디자인 토크 쇼 행사 전 주지아로는 남양연구소의 현대디자인센터를 방문해 현대차의 미래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현대차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전했다. 또한 50여 년 전 포니를 생산하던 울산 공장을 다시 방문해 아이오닉 5가 자동화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끼기도 했다.
현대차의 초기 디자인을 정립했던 과거의 50년을 넘어 미래를 위한 현대차와 주지아로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물론 이번에도 1974년의 포니 쿠페 콘셉트, 2022년의 N 비전 74만큼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될 걸작이 나오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과 현대차 디자인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 주역들, 여기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는 현대차 디자이너들의 열정과 젊은 패기가 응집된 결과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다가올 2023년 봄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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