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아침, 짧은 가시거리 때문에 운전자의 심리는 위축된다. 안개 속에서는 전방 시야를 확보하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 다른 차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의 앞 범퍼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안개등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개등을 장착한 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나라에 안개가 끼는 날이 적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사실 이런 현상은 헤드램프 기술력의 발전과 큰 연관이 있다.
건조기후대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안개 발생 빈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연 10회 정도 안개가 발생한다. 도로교통공단의 기상 상태별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안개의 발생 빈도 자체가 낮아 관련 교통사고의 숫자도 여러 기상 상황 중 가장 적다. 하지만 안개로 발생하는 사고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사고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는 ‘사고당 사상자 수’에서는 안개가 발생한 날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안개등은 이처럼 치명적일 수 있는 안개 발생 상황에서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기 위해 장착되는 등화 장치다. 의무 설치 장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는 안개등의 설치 개수와 위치, 밝기 수준, 조사 방향 등 관련 법령을 상세하게 제정해 안개등이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가 되지 않게끔 유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3.5톤 이하의 차량들은 지상 25cm 이상, 80cm 이하의 높이에 안개등을 설치해야 하며, 램프의 밝기는 전조등의 최소 밝기보다 낮은 940cd(candela) 이상 1만cd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의 2 참고).
할로겐 램프를 주로 사용하던 과거에는 전조등만으로 안개가 발생한 상황에서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안개등은 이렇게 빛의 직진성이 다소 부족한 할로겐 램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였다. 색온도가 낮은 안개등의 빛은 상대적으로 파장이 길어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꼈을 때처럼 도로 위에 수분이 많은 상황에서 굴절이 적다. 즉, 안개 속에서 차량의 위치를 드러내기가 수월하다. 또한 안개등은 볼록렌즈 등으로 빛을 넓게 퍼트려 전조등이 미처 닿지 않는 근거리 하단 시야를 확보하고, 차선을 식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유달리 높이 위치한 헤드램프 때문에 차량 하부 부근의 시야 확보 성능이 부족한 소수의 상황을 제외하면 안개등의 장점이 그리 부각되지 못하는 편이다. 실제로 국내에 시판 중인 자동차 중 현재 안개등을 장착한 차량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안개등은 필수 장비’라는 고정관념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 것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반투명한 헤드램프 커버에 빛을 굴절시키기 위한 광학 패턴을 새긴 렌즈식 헤드램프가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클리어 커버와 반사판을 활용한 MFR(Multi Face Reflector) 헤드램프와 굴절 렌즈 기반의 프로젝션 헤드램프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방식의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램프의 광량 향상과 동시에 빔 패턴을 보다 정밀하게 형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기술 변화는 시야 확보에 대한 안개등의 기여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결정타는 기존 광원 대비 훨씬 적은 전력으로도 우수한 시야 확보 성능을 자랑하는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 다이오드) 광원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할로겐과 HID(High-Intensity Discharge)에 이어 탄생한 LED 헤드램프는 차량 특성 및 디자인에 맞춰 다수의 LED 유닛을 구성해 규정 이내에서 최대 시야 확보 성능을 낼 수 있다는 막강한 장점을 지닌다. 더욱이 파장이 짧은, 백색에 가까운 푸른 광원을 뿜어내는 LED는 높은 직진성을 발휘하면서도 빠른 응답성을 자랑한다. 다시 말해 헤드램프 단독으로도 충분한 전천후 시야 확보 성능을 갖춰 안개등과 같이 헤드램프를 ‘보조’하는 장치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LED 램프는 할로겐 램프 대비 20배 가량 뛰어난 에너지 효율을 토대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물론 LED 이전에 차세대 광원으로 각광받던 HID 역시 LED 헤드램프에 필적하는 시야 확보 성능을 지녔다. 그러나 LED는 HID 광원의 장점을 고스란히 갖췄을 뿐 아니라, 컴팩트한 램프 유닛 구조 덕분에 헤드램프 설계와 구성, 그리고 디자인 측면에서 자유도가 훨씬 높다.
이처럼 차량용 광원의 주축이 LED로 옮겨감에 따라 안개등은 더더욱 도로에서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다수 차종은 물론, 현대차그룹의 제네시스 브랜드 모델 중 안개등을 구비하고 있는 차종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할로겐 램프 기반의 안개등이 사라지면서 자동차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LED 광원의 핵심 특성과도 연관이 깊다. 예컨대 자동차의 전력 사용량이 줄어들고 미약하게나마 무게도 줄어든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앞 범퍼를 비롯한 차량 전면부의 디자인 자유도가 커진 것이다. 한층 아름다운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에어 커튼과 같은 공력 성능을 위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기능적인 방향으로의 진화도 이뤄지고 있다.
발광 성능의 비약적인 향상과 램프 유닛 소형화 뿐만 아니라, 센서를 비롯한 전자 계통과의 연동이 보다 자유로워지며 헤드램프 기술은 새로운 기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수많은 LED들의 개별 유닛 제어가 가능해짐에 따라 조사 영역을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네시스 브랜드의 모델 대부분이 탑재하고 있는 IFS(Intelligent Front-lighting System, 지능형 헤드램프 시스템)다. 이는 과거의 어댑티브 헤드램프(Adaptive Headlamp) 기능과 하이빔 어시스트(Hight Beam Assist) 등으로 대표되는 능동형 전조등 기능을 결합한 기술이다. 전조등의 빈틈을 메우는 안개등의 존재 의의가 무색하게도, IFS는 시야 확보가 필요한 어두운 구역에는 램프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동시에 다른 차 시야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해 주야간, 기상 상황을 가릴 것 없이 최적의 시야 확보 성능을 제공한다.
새로운 기술은 과거의 기술을 보완한다. 때로는 그 자리를 대체하기도 한다. 헤드램프 기술의 진화로 사라지고 있는 안개등 뿐만이 아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로 향하는 과도기에서 최신 자동차들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겼던 편의 장비나 안전 장비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현대차그룹 최초로 아이오닉 5에 적용된 디지털 사이드 미러(Digital Side Mirror, DSM)도 이런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자동차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 기능적 변화까지 일으켰던 안개등과 같이 DSM은 자동차의 매끄러운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악천후나, 야간 상황에서 기존의 사이드 미러보다 더 뛰어난 측후방 시야를 제공한다.
DSM과 같은 카메라 기반의 장치가 사이드 미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어쩌면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수많은 변화의 축적 끝에 우리는 오늘날 첨단 기술이 가득한 자동차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탁월한 성능을 기반으로 안개등의 역할을 포용하고 있는 LED 헤드램프처럼, 기술로 인한 대체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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