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3 현대 모터스포츠팀

[2022 WRC 10R] 현대 월드랠리팀, 그리스 랠리에서 1‒2‒3의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다

현대 모터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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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월드랠리팀이 2022 WRC 그리스 랠리에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포디엄을 모두 차지하는 업적을 세웠다. 드라이버들의 고른 활약과 i20 N 랠리1의 뛰어난 성능 및 내구성을 바탕으로 한 결과다. 이 덕분에 도요타와의 종합우승 경쟁에 다시 한번 불씨가 붙었다.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서 출발하는 시즌 10번째 경기,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랠리(EKO Acropolis Rally Greece)가 9월 둘째 주말에 개최됐다. 1953년 시작돼 1973년 WRC 출범과 함께했던 역사적인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거친 노면과 짙은 흙먼지, 높은 기온으로 참가자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3년 이후 WRC 캘린더에서 사라져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줬지만, 지난해 화려하게 부활한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WRC를 통틀어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그레이블 이벤트다. 흙바닥은 대체로 단단하지만 돌이 많이 널려 있고, 달릴수록 속에 숨어 있던 암석들이 드러나 타이어와 차체를 위협한다. 그래서 추가 보호장비가 허용되며 오후에는 최저 지상고를 높이기도 한다.

올해 그리스 랠리의 코스 구성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지난해에 다소 쉬웠다는 의견이 있어서인지 올해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코스를 한층 까다롭게 재편했다. 특히 금요일은 108.31km의 거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마라톤 구간이라서 사고나 고장을 최대한 피해야만 한다. 즉, 드라이버의 정확한 컨트롤과 랠리카의 내구성이 뒷받침돼야 무사히 완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토요일 역시 점심 서비스가 있지만 하나에 20~30km가 넘는 장거리 스테이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누빌, 타낙, 소르도를 기용해 그리스 랠리에서의 승리를 노렸다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오트 타낙(Ott Tänak),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 다니 소르도(Dani Sordo)를 엔트리했다. 최근 핀란드와 벨기에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기세가 오른 오트 타낙은 챔피언십 2위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반면 티에리 누빌은 홈그라운드에서 불의의 리타이어로 타낙과 에반스의 추월을 허용하여 4위로 하락한 상황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소르도는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이은 시즌 3번째 출전이다. 출전한 경기에서 모두 포디엄(3위 2회)에 올라 횟수 대비 높은 성적을 거뒀다.


도요타는 칼리 로반페라(Kalle Rovanperä)를 필두로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를 엔트리했다. 지난해 우승자인 로반페라는 올해도 챔피언십 리더로 올라있다. 현재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72점 차로 단독 질주 중이기 때문에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서는 타이틀 확정도 가능하다.

그리스 랠리는 비포장 도로 곳곳에 숨은 돌이 타이어와 차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우승(13회)한 포드 진영에서는 노장 세바스티앙 로브(Sébastien Loeb)가 시즌 4번째로 등판했다. 은퇴 직전이던 2012년 이곳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한 로브는 “당시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이벤트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밖에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과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가 엔트리하고 그리스 출신 조단 세르데리디스(Jourdan Serderidis)가 사파리에 이어 다시 이름을 올렸다. 벨기에에서 부상을 당한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는 랠리카의 수리가 늦어져 엔트리에서 빠졌다.

랠리 본부가 마련된 곳은 유구한 역사의 도시 라미아(Lamia)다. 반면 목요일의 오프닝 스테이지는 수도 아테네에 마련되었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단연코 올림픽 스타디움에 마련된 SSS1이다. 오랜 WRC 팬이라면 단번에 2005~2006년 경기를 떠올릴 것이다. 당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스테이지로 사용한다는 결정이 나왔을 때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리스 랠리의 SSS1은 상징적인 올림픽 스타디움 스테이지로 마련됐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올해는 코스 길이가 1.95km로 다소 짧아졌지만 관중석은 코로나19 봉쇄에서 풀려난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6만 관중의 우렁찬 함성 속에서 진행된 오프닝 스테이지의 승리는 누빌이 가져갔다. 2위는 놀랍게도 현대 WRC2의 수니넨(Teemu Suninen)이었다. 랠리1보다 출력이 다소 낮은 i20 N 랠리2로 누빌을 0.1초 차이까지 따라붙었다. 소르도와 타낙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고, 덕분에 현대팀은 1~4위를 기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WRC2 포인트 리더 미켈센(Andreas Mikkelsen)은 출발과 함께 방호벽을 들이박아 왼쪽 앞 서스펜션이 부서졌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스테이지는 수많은 관중의 응원과 열기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짜릿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금요일은 12시간 동안 차를 손볼 수 없는 마라톤 랠리가 이어져 선수들의 집중력과 차의 내구성이 승부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SSS1 직후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 반도의 코린트(Corinth)로 이동해 하룻밤을 지낸 참가자들은 9월 9일 금요일, 관광지로 유명한 루트라키(Loutraki) 인근에서 본격적인 그레이블 스테이지에 접어들었다. 이날의 오프닝 스테이지 루트라키에서는 노장 로브가 가장 빨랐다. 2, 3위는 루베와 타낙이었으며, 오전의 페이스는 M‒스포트 포드와 현대팀이 대체로 좋아 보였다. 루트라키에서 흙먼지로 인한 시야 문제가 제기되어 SS3 하르바티(Harvati)부터는 출발 간격이 4분으로 늘어났다.


이날은 꼬박 12시간 동안 서비스(수리, 부품 교체 등) 없이 달려야 하기에 랠리카의 내구성과 운전자의 인내심, 위기 대응 능력 등이 시험대에 올랐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6개 스테이지 중 4개는 한 번씩만 달리기 때문에 가장 먼저 출발한 로반페라는 하루 종일 노면 청소를 도맡았다. 포디엄을 노렸던 브린은 SS4에서 타이어 펑크로 주저앉았다.

현대팀은 그리스 랠리 내내 큰 실수와 사고 없이 상위권을 유지했다

SS5 다프니(Dafni)는 1995년을 마지막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스테이지다. 로브가 실수한 사이 피에르‒루이 루베가 자신의 첫 스테이지 승리를 바탕으로 종합 선두로 떠올랐다. 페이스가 오른 에사페카 라피는 누빌을 제치며 종합 3위로 올라섰다. 하드 타이어 세팅을 찾느라 고전한 누빌은 선두와 4.9초 차 종합 4위였고, 타낙과 소르도가 그 뒤를 따랐다.


SS6까지 잡으며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었던 루베는 금요일을 마감하는 보크사이트(Bauxites)에서 파워 스티어링 문제에 직면했다. 로브가 종합 선두로 금요일을 마감했고 루베, 라피, 누빌, 소르도, 타낙, 그린스미스, 에반스, 로반페라, 가츠타 순으로 포진했다. 누빌은 선두와 16초, 소르도는 22.2초 차이다. 타낙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트러블로 전기 모터를 사용하지 못해 기록이 다소 뒤처졌다.

다른 팀의 선수들이 사고 또는 고장으로 리타이어하는 가운데 현대팀의 i20 N 랠리1은 큰 문제 없이 코스를 질주했다

토요일은 이번 경기 최장 스테이지인 피르고스(Pyrgos)를 시작으로 SS8~SS13의 6개 스테이지 147.98km를 달렸다. SS8 피르고스는 무려 33.2km에 이르는 코스로, 포르투갈의 아마란테(Amarante) 스테이지의 37.24km에 이어 이번 시즌 두 번째로 긴 구간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고친 타낙은 피르고스에서 25분 6초1의 톱타임을 기록하며 종합 5위로 올라섰다. 종합 2위로 부상한 누빌은 19초 앞의 선두 로브를 추격했다. 하지만 로브는 2005년 이후 처음 개최된 SS9 페리볼리(Perivoli)에서 알터네이터 고장으로 경기를 포기했다. 그린스미스와 세르데리디스 역시 문제가 생기면서 M‒스포트 포드 진영은 순식간에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도요타팀 칼리 로반페라에게는 이번 그리스 랠리가 아쉬운 시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이제 누빌이 종합 선두, 타낙이 2위고 라피에 이어 소르도가 4위다. 누빌은 SS10, SS11을 연이어 잡으며 질주를 이어간 반면, 타낙은 SS10에서 디퍼렌셜 문제로 라피의 추월을 허용했다. 로반페라는 금요일의 청소부 역할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페이스가 돌아오지 않았고, 차를 수리하느라 지각해 페널티까지 받았다.


오전 SS9를 다시 달린 SS12 페리볼리에서 가장 빠른 것은 소르도였다. 그런데 종합 2위를 달리던 라피의 차에 문제가 생기면서 현대팀 트리오가 1~3위가 되었다. 토요일을 마감하는 SS13 타잔(Tarzan)에서는 타낙이 가장 빨랐다. 이로써 누빌이 종합 선두를 유지했고 타낙이 2위, 소르도가 3위로 현대팀이 포디엄을 독점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4위 에반스와 소르도의 시차는 7.1초. 그 뒤로는 포드의 루베와 브린, 도요타의 가츠타가 있지만 큰 차이로 벌어져 있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전 스케줄이 마무리 됐을 때 그리스 랠리 우승컵의 주인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9월 11일 일요일, 운명의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완전히 새로운 엘라티아‒렌지니(Elatia‒Rengini)를 사이에 두고 엘레프테로리(Eleftherohori)를 두 번 달리는 3개 스테이지 45.06km 구간에서 경기를 치렀다. 오프닝 SS14에서는 타낙이 가장 빨랐고 누빌은 2위였다. 그런데 에반스가 터보 문제로 차를 세우면서 도요타팀이 상위권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소르도와 종합 4위 루베의 차이는 50초가량 벌어져 추격자에 대한 부담도 사라졌다. 이제 현대팀의 독주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트 타낙은 경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으며 파워 스테이지에서 1위를 기록, 추가 5점을 획득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고민은 오히려 현대팀 내부에 있었다. 현재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로반페라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는 타낙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누빌에게 우승을 양보하도록 지시해야 할지 딜레마가 생긴 것이다. 또한 오더 없이 마지막까지 팀 내 경쟁을 벌인다면 펑처나 불의의 사고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결국 현대팀은 현재의 순위를 유지한다는 오더를 내렸고, 타낙은 SS15에서 순항 모드로 바꾸어 자리를 지켰다. 대신 타낙은 최종 파워 스테이지를 잡아 추가 5점을 챙겼다.

티에리 누빌은 생애 첫 그리스 랠리에서의 승리와 올 시즌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이에 따라 누빌은 시즌 첫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그리스에서 거둔 개인 통산 첫 승리이기도 했다. 게다가 타낙 2위, 소르도 3위로 현대팀은 1‒2‒3의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현대팀은 시즌 하반기 3연승(4승째)과 함께 팀 역사상 처음으로 ‘WRC 포디엄 독점’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M‒스포트 포드의 루베와 브린이 각각 4위와 5위, 도요타팀의 가츠타가 6위를 차지했다. 주요 선수들이 대량 리타이어함에 따라 득점권 나머지 자리는 린드홀름(Emil Lindholm), 그리야진(Nikolay Gryazin) 등 WRC2 선수들이 차지했다.

누빌, 타낙, 소르도의 노련한 경기 운영과 높은 집중력 덕분에 현대팀은 팀 역사상 처음으로 포디엄을 휩쓰는 업적을 달성했다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타낙은 드라이버즈 포인트 154점을 기록하며 1위 로반페라(207점) 추격에 다시 한번 불씨를 당겼다. 팀 포인트 역시 현대팀이 무려 48점을 쓸어 담아 23점 추가에 그친 도요타와의 점수차를 63점으로 성큼 좁혔고, 이로 인해 역전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됐다. 참가팀들은 이제 바다를 건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9월 29일~10월 2일에 펼쳐질 11라운드를 준비한다. 2012년 이후 캘린더에서 사라졌던 뉴질랜드는 원래 2020년 복귀를 준비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2년이 늦어졌다. 올해의 WRC는 뉴질랜드와 스페인, 일본 등 총 3개 라운드만을 남겨두고 있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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